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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39화 (239/563)

제239화

제14편 뒷정리

마물들은 첫날 이후에도 계속 협곡으로 내려왔다.

하지만, 첫날만큼 많은 숫자가 내려오지는 않았다.

가끔 강해 보이는 마물과 둥지를 버리고 움직인 마물 떼가 있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숫자가 줄어들었다.

머지않아, 다른 때처럼 순찰하는 정도로 마물을 막을 수 있을 듯했다.

지금도, 마물을 제어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제국 요새가 무너져서 협곡 북쪽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 상태였다.

협곡으로 내려오는 마물들은 기사들과 시체들을 피해 모두 북쪽으로 올라갔다.

제국은 더 피해가 늘겠지만, 우리는 편하게 마물을 막을 수 있었다.

삼 일째 되는 날, 협곡에 남아 감시할 기사들과 병사들 이외에는 다들 요새로 복귀했다.

소식을 들은 요새의 영지민들은 모두 길가로 나와, 귀환하는 기사들에게 꽃을 뿌리며 환호를 보냈다.

기사들도 피곤을 잊고 영지민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몇몇 기사들은 가까이 다가온 여성들과 길게 입맞춤을 하기도 했다.

공주 뒤를 따르는 두 아카데미 기사들은 부러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 다, 아카데미에서만 일했었던 만큼,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하는 행사네요.”

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던 기사가 악셀 기사에게 말을 건넸다.

“공식적인 행사였습니까?”

“마물을 잡느라 고생한 기사들의 복귀를 축하하는 소로카 요새만의 연례행사죠.”

뭔가, 여행 온 사람에게 지역 특산품을 소개하는 듯한 어투였다.

하지만, 말을 하는 기사는 자랑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표정을 보니, 진짜로 자랑하는 말이었다.

악셀 기사는 다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모두 밝은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연례행사에 불려 나온 것치고는 다들 진심으로 기뻐하는 거 같은데요.”

“몇 년 만에 하는 행사거든요. 생활도 안 좋아지고……. 다들 답답했었을 텐데. 다행이에요.”

기사가 열심히 설명하는 사이, 어느새 악셀이 보이지 않았다.

악셀은 젊은 여성에 잡힌 채로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실실 웃는 것을 보니 일부러 끌려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같이 이야기를 듣던 미로 기사는 자신의 앞에서 말을 모는 공주를 쳐다보았다.

공주를 모시고 처음으로 같이 한 여행이었다.

고되긴 했지만, 그보다 훨씬 보람이 있었다.

그때 결정을 내리길 잘한 것 같았다.

공주는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악셀처럼 주변을 구경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사람을 찾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미로 기사는 공주가 누구를 찾는지 알 것 같았다.

다들 운이 좋아서, 혹은, 제국 요새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마물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공주도 미로 기사 자신도 누가 그 일을 해냈는지 알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도 어떻게 해냈는지 이해가 안 가지만. 어쨌거나 그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낸 아카데미 학생은 지금, 협곡에 남아서 글란과 함께 열심히 땅을 파고 있었다.

“저는 망을 보면 안 될까요? 마물들이 여기까지 올지도 모르는데…….”

땅을 파던 글란이 어깨를 두드리며 나에게 물었다.

며칠 같이 다녔더니, 내가 안 무서워진 모양이었다. 아니면, 너무 힘들어서인가?

하지만, 빨리 끝내려면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했다.

“안돼, 도와주기로 했잖아.”

“하지만, 이렇게 땅만 팔 줄은…….”

육체 능력자가 아니라서, 힘든 모양이었다.

그래도, 각성자라고 전생의 군인들만큼은 해내고 있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혼자 파기에는 구덩이가 너무 컸다.

지금 파고 있는 구덩이는, 수십 명은 묻을 수 있는 거대한 구덩이였다.

사실, 수십 명을 파묻기 위해 파고 있기도 했고.

배낭을 다시 써먹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요새로 돌아가기 전에 배낭에 있는 시체를 모두 파묻어야 했다.

“힘내! 오늘 안에 우리도 돌아가야지!”

“……네…….”

나는 울상이 된 글란과 함께 열심히 신검으로 땅을 파냈다.

* * *

얼마 뒤, 차르 제국의 수도.

차르마니아 중심부에 있는 중앙 신전은 교단의 총 본산답게 왕궁 다음으로 웅장했다.

거대한 신전 앞 계단은 평일인 오늘도 기도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많은 사람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계단 중앙은 번잡한 양옆 가장자리와 달리, 거의 사람이 지나가지 않고 있었다.

계단 중앙은 귀족들만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계단 아래, 한 남자가 서서, 사람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는 제복의 깃을 올리고, 모자를 푹 내려써서 얼굴이 반 이상 보이지 않았다.

일부로 얼굴을 가린 것 같았지만, 아무도 그에게 다가가 주의를 주지 않았다.

그가 입고 있는 고위 귀족의 제복 때문이었다.

또각또각.

잠시 뒤, 계단 위에서 한 여성이 내려왔다.

품위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다만, 여성의 표정은 무척이나 어두웠다.

그녀는 침울한 얼굴로 계단을 내려오다가 계단 아래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여성은 한숨을 쉬고, 다시 계단을 내려와 남자 앞에 섰다.

“부르시면 찾아갈 텐데, 왜 여기까지 나오신 건가요.”

“지금, 궁도, 행정부도, 군부도 모두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뛰어다니고 있는데, 내가 끼어들어서 같이 날뛸 수는 없잖아.”

그의 말에 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말하는 불길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신전에 와서 기도를 올린 것도 그런 이유기도 했고.

“조직은 괜찮나요?”

“괜찮아. 이번 일에 휘말린 조직원도 거의 없고. 어차피 조직은 재정비 중이었으니까…….”

카를로스 왕국의 대실패 이후, 조직은 몸을 움츠리고, 다시 아래부터 다지고 있었다.

그의 말에 여성은 더욱 표정이 어두워졌다.

“가면서 이야기하자고.”

그는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여성도 그의 뒤를 따랐다.

위쪽의 소란스러움과 별도로 제국의 수도는 화려하고, 장엄했다.

크고 높은 건축물과 조각들, 그리고, 포장된 바닥과 조경수까지.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제국의 힘과 위엄이 느껴졌다.

‘이런 모습도 고대 제국에는 비할 바가 아니겠지만…….’

남자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다시 움직일 생각이야. 황궁도, 다른 귀족들도 이번에 혼쭐이 났으니 내 말을 듣기는 하겠지.”

“오히려 호재가 된 거군요.”

“호재라고 말하기는 그렇군. 북부 산맥에서 마물들이 내려와 영지들에 피해를 준 것은 과거에도 종종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 같은 피해는 처음이었으니까. 거기다 요새가 박살 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잖아.”

다들 난리 칠 만했다. 지금도 남부 영지들이 피해를 보고 있었다.

요새와 붙어 있는 영지는 아예 망해버린 느낌이고,

죽은 사람과 병사, 그리고 피해액까지 생각하면, 다들 얼이 빠진 게 당연하달까.

하지만, 그동안 이런 일이 없었기에 놀란 것이었고, 이 정도 피해에 제국이 흔들릴 리도 없었다.

“그래도, 이 기회에 국내도 한번 정리해봐야지. 정보부는 어느 정도 장악했지만, 다른 곳은 아직 말을 안 듣는 곳이 많으니. 다행히 이번에는 황제 폐하께서 화가 많이 나셔서 파고들 여지가 많아.”

여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저 때문에 계획이 틀어질까 봐 걱정했는데…….”

“그게 왜 예언가 때문이야.”

“이번에도 제 예언이 어긋났잖아요. 이제는 제국에 관련된 일도 틀어지고 있어요. 미래도 점점 보이지 않고.”

예언가의 말에 남자가 혀를 찼다.

“결국, 기도는 도움이 안 된 건가?”

“그런가 봐요. 교단도 일이 있는지 소란스러워서…….”

남자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꽤 떨어졌는데도, 장엄한 신전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그는 신전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소란스러운 건, 봉인지에서 유물을 캔답시고 추살대까지 보냈는데, 몽땅 날아가 버려서야.”

그는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보니까, 그놈들이 봉인지에서 난리 쳐서 마물 왕이 움직인 게 아닐까? 이거 교단 놈들에게 손해배상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닌지 몰라.”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이 생각을 머릿속에 담아놓기로 했다.

나중에 교단과 의견 충돌이 있을 때 꼭 써먹을 생각이었다.

“기도도 도움이 안 되는데, 계속 다닐 생각은 아니겠지?”

남자의 말에 예언자가 고개를 저었다.

“네, 이번에 간 것은 아는 사제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간 것이었어요. 어떻게 알고 오신 건가요? 도련님도 예지능력이 있으신 것 같네요.”

그녀가 슬쩍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바라보았지만, 남자는 관심이 없다는 듯이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럴 리가. 뿌려놓은 정보원들 덕분이지.”

“하아, 그런 건 말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네요.”

“신비주의는 밖의 놈들에게나 쓰는 거야. 그보다, 카를로스 왕이 죽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지?”

남자의 질문에 예언가는 표정을 가다듬었다.

“네, 많은 것이 보이지 않지만, 틀리는 것도 많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어요. 천재지변과 사람의 수명, 그중의 하나가 카를로스 왕의 죽음이죠.”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슬슬 바람을 넣어볼까. 그리고, 일이 터지면, 이번에는 멀리서 부채질만 하자고. 왕자 놈들 욕심이라면 내전은 피할 수 없을 테니. 바닥까지 싸워 왕국을 결딴내주면 좋겠는데 말이야.”

“계획대로 되면 좋겠지만, 이번에도 잘못될 수도 있어요.”

너무 부정적인 말이었지만, 근래 예언이 자꾸 어긋나는 예언가로서는 주의를 줄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이번 일로 마물이 위험하다는 것을 다들 깨달았으니까. 마물들만으로 영지들이 박살이 났는데, 마물 왕들이 튀어나오면 어떻게 될지 충분히 예상될 테지.”

마물의 위험성을 깨닫게 된 것. 이번 사건의 제일 큰 호재는 바로 이것이었다.

“이제, 카를로스의 내전이 제대로 안 끝나면 제국군으로 밀어 버리면 돼.”

남자의 말에 예언가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람을 죽인다는 이야기는 언제나 그녀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마물 왕들이 제국으로 넘어오게 둘 수는 없어. 세상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국이 망하지 않게 하는 일이 더 중요해.”

그와 예언가가 걸음을 멈추었다.

어느새 수도 중앙 광장에 도착한 것이다.

광장 중앙에는 황제의 동상이 서 있었고, 그 아래, 화려한 마차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이 도착하자, 마차 옆에 서 있던 기사가 마차 문을 열었다. 남자가 모자를 벗고 마차에 올랐다.

그는 고개를 돌려 예언가를 바라보았다.

황제의 동상과 무척이나 닮은 젊은 남자, 제국의 황태자가 예언자에게 말했다.

“내가 다스릴 나라야. 세상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왕위를 물려받기도 전에 나라가 망해버리면 곤란해.”

문이 닫히고, 예언가는 황태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마차가 출발하고, 예언가도 발길을 돌렸다.

기도의 시간은 끝났고, 이제 일할 때였다.

예언가는 그녀가 있어야 할 곳, 조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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