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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38화 (238/563)

제238화

제13편 마물 몰이 (2)

협곡 남쪽.

크아아앙!

절벽 사이에 난 경사로로 마물들이 쏟아져 내렸다.

크고 작은 마물들이 엉겨서 굴러떨어지듯이 아래로 밀려 내려왔고, 다른 마물들에 밀려, 절벽에서 떨어지는 마물도 여럿 있었다.

쿵, 쿵, 쿵.

마물들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협곡 아래로 내려선 마물들이 넓지 않은 협곡으로 퍼져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런 마물들을 막아선 사람들이 있었다.

소로카 요새의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경사로 남쪽 협곡에 대각선으로 서서 마물들을 막아섰다.

뜻밖에 찾아온 기회였다.

기사들은 마물들을 남쪽 요새와 서쪽 바위산으로는 절대로 안 보내 줄 생각이었다.

캉!

마물들의 피부 위로 검이 튕겨 나갔다. 마물 피부에 흐르는 마나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사들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검이 안되면 방패로 막고, 갑옷으로 내려쳤다.

마물들의 진격이 멈추고, 더 나아가지 못한 마물들은 협곡 북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기사들의 진형 위로 충격이 계속 이어졌다.

멧돼지를 닮은 마물이 달려들어, 기사가 든 방패에 머리를 박았고, 기사는 뒤로 튕겨 나갔다.

“빨리 메꿔! 진형이 망가지면 안 돼! 어떻게 하든지 버텨!”

뒤에서 기사들을 지휘하던 선임 기사가 고함을 쳤다.

뒤쪽에서 진형을 받치고 있던 수련 기사들이 급하게 자리를 메꾸려 했지만, 수련 기사의 실력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큭!”

진형을 메꾼 수련 기사들이 점점 밀려났다.

“기사가 되겠다는 놈이 이것도 못 버텨? 적어도 어린 공주님만큼은 해야 하잖아!”

선임 기사의 말에 억지로 버티고 있던 수련 기사들은 대꾸하기도 어려웠지만, 다른 기사들이 마물과 싸우면서 투덜거렸다.

“아니, 공주님이 기사들보다 잘 싸우시잖아요.”

아이샤 공주는 진형 뒤에서 빠져나온 마물들을 때려잡고 있었다.

그녀가 검을 휘두르면 다른 기사의 검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마물들이 구멍이 뻥뻥 뚫려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시끄러워! 좀 더 버티기나 해! 튕겨 나온 놈은 왜 미적거려! 애들 나가떨어지기 전에 다시 달라붙어!”

다들 힘겨워하고 있었지만,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요 몇 년 동안 제대로 마물을 상대하지 못했던 기사단으로서는 오랜만에 살아있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으악!”

결국, 수련 기사들도 버티지 못하고 나뒹굴었다.

기사들이 만든 벽에 구멍이 나버렸다. 멧돼지를 닮은 마물이 뚫린 구멍으로 빠져나왔다.

크아아앙!

괴성을 지르며 뒤로 빠져나온 마물은 반대편 바위산, 남쪽 마물 통로로 달리려 했다.

하지만, 아직 마물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다.

판금 갑옷을 입은 어린 소녀였다.

소녀는 성인이 들만한 검을 양손으로 잡고, 마물 앞에 섰다.

푸웅!

마물은 콧김을 내뿜으며 소녀를 향해 달려갔다.

소녀는 검을 들고, 달려오는 마물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긴 앞니가 소녀를 꿰뚫으려는 순간, 소녀가 몸을 숙이고 검을 내질렀다.

푸우욱.

단단한 마나가 종잇장처럼 뚫리고, 검이 마물의 머리를 꿰뚫었다.

쿠우웅.

소녀 옆을 스쳐 지나간 마물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단 일격에 목숨이 끊어진 마물을 보고, 튕겨 나갔던 수련 기사들의 눈이 커졌다.

“뭘 보고 있어! 당장 움직여! 계속 오잖아!”

선임 기사도 놀랐지만, 지금은 할 일이 있었다.

공주의 실력이 생각보다 대단해서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잘하면 한 마리도 흘리지 않고 다 막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튕겨 나갔다가 겨우 몸을 추스르고 돌아온 기사가 그의 생각에 초를 쳤다.

“그런데 여기만 막아서는 소용없는 거 아닙니까? 북쪽은 상관없지만, 중앙도 비어있을 텐데요. 북쪽 통로야 제국 쪽으로 넘어가겠지만, 중앙 통로로 넘어오는 마물들은 왕국 쪽으로도 많이 이동할 텐데요.”

기사 말대로였다.

아예 포기하는 것보다야 괜찮겠지만, 협곡 중앙의 마물 통로가 비어있으니, 노력한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먼저 올라간 글란 공자와 아카데미에서 파견 수업을 온 학생이 위쪽에 남아 있었지만, 그들에게 기대하기는 무리였다.

협곡이 비어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대단한 활약을 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혼자 남아 있는 아카데미 학생이 걱정되었다.

글란 공자야 상속능력 때문에, 걱정이 안 되는데, 다른 학생은 그렇지 않았다.

선임 기사는 학생과 같이 온 공주를 살펴보았지만, 공주는 걱정하는 기색이 없었다.

출발하기 전에는 걱정하는 것 같았는데, 오히려 지금은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공주가 신경을 안 쓴다면, 그가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선임 기사는 잡생각을 멈추고, 뭉그적거리는 기사의 엉덩이를 뻥 차버렸다.

“우리가 막을 곳은 여기야! 다른 곳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빨리 구멍이나 메꿔!”

선임 기사의 호통에 포션을 마신 기사가 다시 자기 자리에 가서 섰다.

기사들의 벽은 다시 단단해졌고, 마물들이 참지 못하고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크아아아앙!

마물 떼가 협곡을 달리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간, 나는 협곡 중앙에서 마물을 죽이고 있었다.

퉤!

입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하도 많이 베었더니, 입안으로도 마물의 피가 많이 들어갔다.

마물의 피를 뱉어낼 정도이니, 온몸이 마물의 피로 가득 적셔진 것은 당연했다.

그래도, 계획대로 벽은 쌓을 수 있었다.

내 뒤쪽으로 마물들의 시체가 가득 쌓여 있었다.

여태껏 죽인 마물들이었다.

대검으로 잘라내고, 신검으로 터트린 수많은 마물.

나중에는 마물들이 알아서 북쪽으로 몸을 피하는 바람에 숫자를 채우기 어려울 뻔했다.

나는 마물들로 쌓아 올린 벽을 올려다보았다.

방어력은 대단치 않았지만, 마물들이 피해 가기에는 충분한 시체였다.

이제, 협곡을 넘어, 서쪽으로 향하는 경사로는 막혀버렸다.

남은 길은 협곡을 따라 움직이는 남쪽, 북쪽밖에 없었다.

남쪽은 공주와 기사들이 잘 막아줄 테니, 협곡으로 들어오는 마물들은 북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여기서 시체의 벽을 허물지 못하게 지키고 있기만 해도 충분했다.

이미, 이 앞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마물들은 눈앞에 보이는 마물들의 시체에 놀라, 다들 북쪽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었다.

이제, 마물들은 북쪽 마물 통로와 협곡 북쪽 끝에 있는 제국 요새로 몰려들게 될 것이다.

요새가 버텨내도, 북쪽 통로를 통해 제국으로 마물들이 쏟아지게 될 터였다.

가만히 있어도 충분했지만, 그래도,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동안 다른 왕국들이 제국 때문에 피해를 보았으니, 한번은 제국도 피해를 보는 게 맞았다.

겸사겸사, 내 흔적도 덮어버리고.

꽤 피곤하긴 했지만, 아직 마나는 괜찮았다.

숫자는 많았지만, 다행히 대단한 마물은 보이지 않았다.

약한 마물들만 넘어온 것인지, 아니면 강한 마물들은 늦게 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덕분에 시체의 벽을 수월하게 만들 수 있었다.

나는 검을 훑어 대충 피를 털어낸 뒤에, 허공에 대고 말했다.

“북쪽으로 올라갈 거야. 잘 따라와.”

배낭은 메고 있지 않았다.

마물들과 싸우기 전, 다시 글란에게 맡겼기 때문이었다.

안내원과 전령, 그리고 짐꾼까지.

글란은 정말 쓸만한, 훌륭한 후배였다.

나는 중앙 마물 통로를 떠나, 북쪽 통로로 향했다.

마물 통로, 협곡으로 마물들이 몰려드는 세 장소를 사람들은 마물 통로로 부르고 있었다.

협곡 양쪽의 높은 바위 절벽 사이에 그나마 마물들이 다닐 수 있는 경사로가 있는 세 지점.

봉인지의 마물들이 몰려올 때마다, 제국 기사들과 소로카 요새의 기사들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애쓰던 곳이었다.

어젯밤에 내가 제국 기사들을 쓸어버렸던 곳이었고.

도착한, 북쪽 마물 통로는 쏟아지는 마물들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협곡 안에 여러 종류의 마물들이 뒤섞여서 사방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멧돼지를 닮은 마물에 사슴을 닮은 마물, 머리가 두 개였지만, 전갈처럼 보이는 마물까지.

봉인지에 여러 번 다녀서 마물들을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마물들이 태반이었다.

많은 마물이 중구난방 움직이고 있었지만, 마물 떼는 벌써 큰 흐름이 생겨나 있었다.

내가 시체 벽을 만드는 사이에 북쪽으로 올라온 마물들 때문에 마물들의 방향이 정해진 것 같았다.

하나는 협곡을 가로질러, 서쪽으로 향하는 흐름이었다.

마물 떼는 좁은 경사로를 올라, 다시 북부 산맥을 따라 서쪽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북부 산맥의 북쪽 산자락을 타고 움직이는 길로, 이 길을 따라 움직이는 마물들은 결국, 차르 제국의 남쪽 영지들을 공격할 것이었다.

제국을 공격할 마물들이니, 이 마물들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북쪽, 제국 요새로 향하는 흐름이었다.

좁은 협곡을 따라 수많은 마물이 북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북쪽으로 움직이는 마물들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 * *

슈슈슈슉.

화살이 비 오듯이 쏟아지고, 병사들의 고함과 마물들의 괴성이 협곡에 가득했다.

불덩어리가 마물들이 모여 있는 곳에 떨어지고, 벽에 손을 박고 기어오른 마물에게 얼음송곳이 작렬했다.

제국 요새 앞. 남쪽 성벽에는 마물과 인간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인간들은 마물들을 잘 막아내고 있었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마물들이 많지 않았고, 아직 요새에는 상속능력을 가진 장교들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성벽을 기어오르던 마물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다시 아래로 떨어졌다.

그렇게, 병사들도 열심히 싸우고, 장교들의 상속능력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인간이 마물들을 이렇게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은 요새의 튼튼한 성벽과 성문 덕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보는 것만큼 요새의 상황이 좋지 못했다.

“화살이 떨어졌습니다!”

“젠장, 비축 화살은 어디 있지?”

“코프차 님이 알고 계십니다!”

“코프차 부관님은 죽었잖아! 젠장, 창이라도 휘둘러!”

“기사단은 언제 돌아옵니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병사들의 요구사항과 질문에 장교들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자는 구멍이 나고, 병사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튼튼한 성벽과 성문을 믿고 그들은 계속 버텨냈다.

시간이 지나고, 계속 공격해도 요새가 끄떡없자, 몇몇 마물들이 몸을 돌려 남쪽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병사와 장교들의 사기가 다시 올라갔다.

“좀 더 버텨! 시간은 우리 편이다! 성벽은 무너지지 않는다! 버티면 전부 물러갈 거다!”

물러가봤자, 북쪽 통로를 통해 제국의 다른 영지들에 피해를 줄 뿐이겠지만, 지금 그들은 그런 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힘내! 좀 더 버텨!”

“우리가 이긴다!”

병사들도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가운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드드드득.

분명, 문이 열리는 소리, 성문이 올라가는 소리였다.

다들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았고, 그들은 황당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어, 어, 성문이 열리고 있어!”

“어떻게 된 거야!”

“막아! 마물들이 들어온다!”

성문이 올라가고, 마물들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마물들을 막기 위해, 장교들이 아래로 뛰어내리고, 문을 닫기 위해 병사들이 달려갔지만,

이미, 성문 안으로 물밀듯이 마물들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나는 성벽 옆에서 마물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마물들에게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안타까운 광경이 펼쳐졌지만,

제국은 나와 왕국의 적, 눈을 감고 외면했다.

오전에는 들키지 않고, 요새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소란 중이라면, 성벽을 넘는 것도,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을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그 뒤에는 성문을 올리는 쇠사슬이 감겨 있는 바퀴를 돌려, 성문을 열면 그만이었다.

나는 그렇게 성문을 열었고, 지금 요새 안으로 마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내성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제, 제국은 협곡 밖으로 마물들이 빠져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더 보지 않고, 요새를 빠져나갔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 여름. 제국은 큰 충격을 받았다.

수많은 영지가 피해를 보았지만, 제국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왜 이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내지 못했다.

솔직히 알아냈다고 해도 믿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10대 소년 하나가 이런 사태를 일으켰을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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