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제7편 성기사 (2)
그는 나를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피센 후작가에 같이 갔을 때 이후로 처음 뵙는군요.”
내가 자리에 앉자, 그는 즐거운 얼굴로 말했다.
“그동안, 반갑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고생이었습니다. 공자님 같은 손님만 오시면 좋을 텐데 말이죠.”
그는 경매장 주인의 얼굴로 나를 상대했다.
“이러다가, 왕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내전이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들 날이 서 있어요.”
거기다, 은근슬쩍 정보도 알려주고.
그가 어떤 얼굴이든 나를 반가워하는 것은 사실 같았다.
“오늘은 뭔가 파실 게 있으신가요? 아니면 원하시는 물건이라도.”
아니면, 내가 가져오는 유물들이 반가운 것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오늘은 경매장 주인과 상대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니었다.
나는 거두절미하고 그에게 물었다.
“왜 신검을 찾는지 그 이유를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밝았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금방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꾸었지만, 바뀐 표정도 어색했다.
“제가 다른 검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찾은 검을 보여드려야 하는지 고민이 돼서요.”
내 말에 바뀐 표정도 다시 허물어졌다.
그는 ‘신검 추적자’의 얼굴이 되어 나를 노려보았다.
내 얼굴에서 정보를 얻으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얼굴을 봐서 뭔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아……. 공자님만 오면 엉망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는 한숨을 쉬고는 책상을 두드렸다.
똑똑.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책상을 두드리는 것 같이 보였지만, 밖으로 보내는 신호였다.
내 감각에 사람들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경계를 서고, 무기를 꺼내고, 다행히 나를 포위하려는 게 아니었다.
대화를 나누는 우리를 지키려는 움직임이었다.
나는 모르는 척, 그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검이 있는 곳을 알아내셨다는 건가요?”
“아뇨. 검을 찾았습니다.”
나는 손을 들어, 가슴을 탁탁 두드렸다.
신검 추적자는 내가 유물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만……. 저도 계속 말을 돌린 이유가 있습니다.”
나는 그 이유가 듣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검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말을 해드리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계속 이리저리 이유를 댔지만, 나는 그가 결론을 내릴 때까지 기다릴 뿐이었다.
결국, 신검 추적자, 레스티는 두 손을 들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신, 검을 먼저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검을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을 듣는 게 먼저라고 우길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만 끌게 되는 일일 뿐이었다.
나는 가슴에 손을 넣어, 주머니에서 검을 꺼냈다.
‘피센 후작가의 검’과 닮은 검.
하지만, 가지고 있는 능력은 전혀 다른 검이 모습을 보였다.
“맙소사. 정말이었군요.”
검을 보고, 레스티의 눈이 커졌다.
검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검을 쓸었다.
“치유의 검이 맞습니다. 이건 소문도 들리지 않았는데…….”
내가 꺼낸 검은 신전의 지하에서 찾은 치유 능력을 가진 검이었다.
내가 처음부터 ‘성기사의 신검’을 보여줄 리가 없었다.
‘성기사의 신검’을 보여주는 것은 이 남자가 무슨 말을 하냐에 달려있었다.
레스티는 검을 한참 동안 살펴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로서는 검의 비밀을 풀 수가 없군요. 이 검도 안되다니…….”
레스티가 하는 행동을 보니, 그도 마나의 선을 깨울 방법을 찾는 것 같았다.
그것이 ‘성기사의 신검’을 찾을 방법이라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유물 감식을 하는 사람. 유물 감정사였다.
마나를 보지 못하는 그가 검의 비밀을 알기는 어려웠다.
그는 아쉬운 얼굴로 검을 내려놓았다.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다행히 그는 말을 바꾸지 않았다.
대신, 조건을 달았다.
“듣기 전에, 비밀을 지켜주시기로 맹세해주십시오. 맹세를 지키실 기사라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신검 추적자는 내게 맹세를 요구했다.
신전에서 계약하는 게 더 좋을 테지만, 그는 기사의 맹세 쪽을 원했다.
내 예상대로라면 기사의 맹세를 원하는 게 당연했다.
맹세 정도라면 충분히 해줄 수 있었다.
더구나, 나는 전생의 기억 때문에 기사의 맹세를 꼭 지켜야 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에 놓인 검을 들고 맹세했다.
“상대방이 허락하지 않는 한, 신검 추적자, 레스티아도에게 들은 비밀을 지키겠다고 검의 이름으로 맹세하겠습니다.”
나는 어떤 편법도 쓰지 않고, 정직한 맹세를 했다.
구속력이 없는 맹세였으니, 제대로 맹세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내가 맹세를 마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검이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우우웅.
검은 은은한 빛을 뿌리며 울음소리를 냈다.
“맙소사. 이건, 성기사의 맹세처럼 보이는…….”
레스티는 채 말을 잊지 못했다.
마치, 자신의 말이 신성을 오염시키는 것처럼 그는 입을 막고 검을 쳐다보았다.
다행히 검은 오래 울지 않았다.
너무 빨리 사그라들어, 레스티는 긴가민가한 얼굴로 검을 쳐다보았지만, 나는 속으로 한참을 투덜거렸다.
몸속에 검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이 마나는 신전에서 계약할 때 느꼈던 마나와 비슷했다.
‘정말 계약된 것은 아니겠지? 계약은 교단만 있는 거 아니었어?’
황당한 일에 난감해하고 있을 때, 레스티가 입을 열었다.
다행히 그는 지금 벌어진 일을 신경 쓰지 않기로 한 모양이었다.
“제가 ‘성기사의 신검’을 쫓는 이유는 저희 종교의 성물이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생각했던 대로였다.
유물 감정사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성기사의 신검’을 찾을 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부모의 유훈이라던가, 어렸을 때 들었던 이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신검을 추적하고, 추살대를 만나면서 다른 이유를 떠올리기 힘들어졌다.
그동안, 교단이 다른 종교를 지우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랐었다.
그래서 ‘신검 추적자’라는 이름을 쓰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믿음이 아니라면 그렇게 ‘신검’을 찾아 돌아다닐 리가 없었다.
예상과 틀리지 않아, 안심되었다. 적어도 쓸데없이 검을 보여준 게 아니었다.
그런데 잠깐.
‘저희’ 종교라고? 한 사람이 아니었나?
내 의문은 뒤로하고,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이실 테지만, 대전쟁 이전에는 교단이 없었습니다. 대신 각기 다른 신을 믿는 여러 종교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대전쟁 이후로 교단이 나타나…….”
그가 하는 말은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물론, 얼마 전까지는 몰랐던 말이었지만, 지금은 다 아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계속되니, 모르는 이야기가 자꾸 들려왔다.
“……남은 우리는……. 용병이 되어……. 이렇게 해서 제가 나서게 된 것입니다.”
오랜 이야기가 끝나고, 나는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그러니까, 성기사의 종교를 믿는 사람들 일부가 대전쟁 이후에 살아남았고, 당신과 경매장 사람들이 그 후인들이라는 말이죠? 유물 감정사 능력을 가진 당신이 대표로 신검을 찾는 거고.”
“네, 맞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남아 있는 교인이 경매장 사람들만이 아닌 것 같았다.
도대체 교인이 몇 명이나 살아남은 건지.
이건, 호기심을 풀려다가 짐을 떠안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시시콜콜 전부 말한 거죠? 이렇게까지 알려 줄 필요는 없었는데…….”
난 그냥 신검 추적자가 성기사와 같은 교인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런 뿌리가 딸려 올라올 줄이야.
“이왕 알게 되었으니, 전부 말씀드리고 신검을 찾는데, 도움을 받았으면 해서였습니다. 명예를 아는 분이니 외면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자의 말투가 또 변했다.
정중한 어조. 귀족이 말하는 방식이었다.
능력을 생각하면, 아마도 이쪽이 진짜일 터였다.
하지만, 생각하는 방식은 지금도 경매장 주인, 상인의 방식이었다.
알려지게 되었으니, 한통속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려나.
사실은 그냥 도움을 원하는 것일 가능성이 더 컸다.
나는 검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생각에 잠겼다.
홀로 남은 교인이 아니라 한 집단이었다.
교인이라면 신검을 보여주고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생각이었는데…….
일이 생각보다 커져 버렸다.
다른 때였으면, 그냥 모른 척 돌아갔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내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이었다.
눈을 감자, 공주가 아카데미 기사들을 받아들인 장면이 떠올랐다.
벤자민 선배의 말도 생각이 났다.
나는 다시 결정을 내렸다.
나는 가슴에서 신검을 꺼냈다.
치유의 검이 아닌, 성기사의 검.
나는 검을 들고, 선언했다.
“나는 신검의 새로운 주인, 성기사입니다.”
우우우웅.
내 선언이 마음에 들었는지, 신검이 빛을 발했다.
작은 방안을 채우는 빛이었지만, 그 기품은 신전의 제단에 뒤떨어지지 않았다.
환하게 빛나는 검.
레스티아도는 멍하니 검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는 말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한마디.
“신관 레스티아도가 성기사를 뵙습니다.”
최후의 신관이 돌아온 성기사에게 올리는 첫인사였다.
그날, 경매장 주인의 건물은 문을 닫았다.
하루도 닫은 적 없던 건물이 문을 닫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의아해했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건물은 다음날 다시 열렸고, 상점 거리는 여느 때처럼 흘러갔다.
* * *
경매장 주인을 만나고, 시간이 지났다.
1학기가 끝난 뒤 받은 성적표는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기사 학부 실기 성적은 언제나처럼 수석을 차지했고, 다른 과목들도 상위권에 속해 있었다.
교수들이 공주와 대공녀의 눈치를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정당한 성적에 편한 마음으로 파견 수업을 갈 수 있었다.
파견 수업 목적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소로카 요새.
나는 전날 출발 준비를 하기 위해 수도에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에 도착하니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와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언제나 깔끔한 옷차림의 노인.
그레시아 공작가의 총집사였다.
영지에 있어야 할 그가 수도에 와 있었다.
왜 왔는지 물어보니, 총집사가 쉽게 대답해주었다.
“둘째 공자님의 혼처 문제도 있고…….”
그럴 때가 되긴 했다.
시온보다는 빨랐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면, 미리 약혼이라도 해 놓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마누엘은 마지막 청춘을 누리기 위해 이미 친구들과 파견 수업을 떠났다.
작년처럼 여러 영지를 돌아다니며 영지들을 돕겠다는데.
나로서는 괜한 일을 벌여 결혼 준비를 망가뜨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답을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총집사의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왕실에도 볼일이 있습니다.”
왕실?
“왕비님을 찾아뵐 생각입니다. 공작님의 지시입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총집사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