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26화 (226/563)

제226화

제1편 성기사 (2)

텅 빈 지하 광장.

또 다른 통로도 없었고, 벽화도 구멍이 만들어질 만한 흠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조각상 하나가 서 있을 뿐이었다.

진짜 검을 든 기사 조각상이었다.

우리가 광장 안으로 들어간 뒤, 멈춰 있던 조각상이 움직였다.

다들 움찔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좀 전까지 골렘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서 들려온 음성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들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주변을 살폈다.

어디서 들려온 것인지, 누가 말한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나는 검을 들어 조각상을 가리켰다.

"녹음인가? 아니면 에고 유물?"

[나는 테오도라. 성기사라 불리던 자다. 아니, 그대 말대로, 성기사의 기억을 가진 에고 유물이다.]

조각상은 검을 쥐고, 천천히 다가와 내 앞에 섰다.

나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조각상이었다.

조각상은 무척이나 잘 만들어져 있었다.

갑옷과 투구도 돌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얼핏 보면 판금 갑옷 같았다.

조각상의 움직임도 사람 같았다.

돌로 만든 갑옷과 투구를 벗겨내면 안에 사람이 있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세상에……."

대공녀는 입을 가리며 놀라워했다.

나는 단도와 구슬 같은 에고 유물을 보아왔지만, 그녀는 에고 유물을 처음 본 것이었다.

나는 조금 미안해졌다.

단도도 그녀가 수리한 것이었고, 구슬도 그녀가 수리할 물건이었다.

그런데, 대공녀에게는 전부 비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시 한번 다짐했다. 때가 되면 그녀에게 꼭 알려주기로.

나는 다시 성기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조각상을 살펴보았다.

"설마, 성기사님의 모습을 조각한 겁니까?"

오면서 보았던 골렘과는 차원이 다른 조각상이었다.

[같은 실력을 발휘하려면 같은 모습이 좋으니까. 오랜만에 조각사 놈이 실력을 발휘했었지.]

말을 듣고 있으니, 유물이 아니라 성기사 본인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말을 놓기가 어려웠다.

"조각사라면 그 잘생긴 용사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발레아가 말한 대로 용사 중에는 조각사도 있었다.

용사 이야기에 나오기도 했는데, 뒤에서 열심히 조각만 해서 남자아이들에게는 별로 인기가 없는 용사였다.

[그놈이 맞아. 달이 떠오른다. 어쩌고 하면서 달빛 아래서 조각하기 좋아하는 놈이었지.]

허공을 보며 대답하는 조각상이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기억만 가져온 게 아닌 것 같습니다."

[글쎄……. 이건 철학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기사 조각상이 반대쪽 손으로 투구를 긁적였다.

습관이었던 모양인데, 조각상이 저러니까 무척이나 이상해 보였다.

[기억이 성격을 이루는 근간인지, 아니면 성격을 만드는 다른 것이 있는지는 철학자가 논할 이야기일 테고,]

조각상은 다른 손으로 검을 쓰다듬었다.

[성기사의 기억을 얻게 된 나는 성기사였을 때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은 테오도라라고 느끼고 있어.]

왜, 조각상을 성기사 본인으로 느끼게 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조각상은 행동도 말도, 모든 것이 인간 그대로였다.

신기했다.

어떻게 유물에 정신, 혹은 기억을 넣을 수 있었던 것인지, 그리고 조각사는 어떻게 유물을 만들 수 있었는지, 궁금한 게 많았다.

하지만, 조각상, 아니 테오도라는 우리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자, 그럼 빨리 일을 끝내볼까?]

우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테오도라는 내 손에 들린 검을 가리키며 다시 말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골렘들이 그 검에 고개를 숙인 것을 봤지? 그 검은 우리 교단의 성물 중 하나야. 그 검에 인정을 받았으니, 이 검을 받을 자격이 되는 거지.]

테오도라는 내게 ‘성기사의 신검’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형제 검을 가져왔다고 그냥 줄 수는 없잖아. 이 검을 지킬 수 있는지 확인해 봐야지. 자, 마지막 시험이야.]

수련 검도 그렇고, 용사들은 기본적으로 테스트하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검을 들었다.

대검은 물론, 다른 검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이 검을 써야 할 것 같았다.

내가 검을 들자, 조각상도 자세를 갖추었다.

[자세가 좋아. 카를로스를 보는 것 같은데.]

돌로 만든 투구 아래로 조각상이 미소를 짓는 것처럼 보였다.

조각상과 내가 자세를 잡자, 다른 사람들은 뒤로 물러섰다.

모두 질문이 한가득 있어 보였지만, 묻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나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 * *

열심히 싸웠지만, 이길 수 없었다.

테오도라 본인이 아니었지만, 그의 기억을 물려받은 유물도 보통 강한 게 아니었다.

물론, 목걸이나 다른 유물을 쓰고, 숨겨 놓은 능력을 썼으면, 지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싸움에는 그런 식으로 싸울 이유가 없었다.

나는 숨을 가다듬으며 조각상을 바라보았다.

상대는 인간이 아니어서 숨이 거칠어지지도 않았다.

다만, 그는 갈라진 가슴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군. 동안이 아니라면 아직 십 대일 듯한데 이 정도 실력이라니. 나중에는 얼마나 성장하게 될지 기대가 되는군.]

그는 내 앞에 신검을 꽂았다.

신검을 보고, 조금 전에 떠올렸던 생각을 반성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테오도라도 신검의 능력을 쓰지 않았다.

관통도 회복도 사용하지 않고, 본연의 검으로 쓰기만 했었다.

물론, 돌조각상을 회복시킬 수야 없겠지만, 그가 양보했다는 것은 외면할 수 없었다.

나는 가지고 있던 검을 허리에 차고, 신검을 뽑았다.

형제 검이라고 했지만, 진짜 신검은 달랐다.

모습과 느껴지는 마나도 ‘피센의 신검’과는 전혀 다르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정도면 믿고 맡길 수 있겠어. 자, 이만 돌아가도록. 이곳은 이제 폐쇄할 시간이야.]

"잠깐만요!"

테오도라가 말을 끝내기 무섭게 대공녀가 소리쳤다.

그녀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대공녀는 개의치 않았다.

"폐쇄라뇨. 앞으로는 여기에 못 들어온다는 소리잖아요!"

처음 보는 유물들에, 대공녀가 많이 흥분한 것 같았다.

"조금 더 시간을 주실 수도 있잖아요. 골렘도 조사하고, 유적도 살피고.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시간을 좀 주세요."

테오도라, 조각상은 대공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리따운 아가씨에게는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조각상이 반대했지만, 나도 대공녀와 같은 의견이었다.

검만 가지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처음 보는 검술과 심법을 두고, 그냥 떠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테오도라는 조각상으로도 자신의 검술과 심법을 모두 사용했다.

카를로스만큼 다양하지는 않았지만, 대단한 심법이자 검술이었다.

대련 한 번으로 습득하기는 불가능했다.

"밖의 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상황을 보니, 이 안에서 계속 시간을 보냈을 게 분명했다.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먼저 들어온 신전 기사가 왜 왔는지, 우리는 어떻게 오게 된 건지도 알려드릴게요."

정 뭐하면 조원들에게 말하지 못한 것까지, 따로 알려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알고 싶지 않다. 전부 순리대로 흘러가고 있을 테지.]

"그래서 신전 기사도 살려준 건가요?"

자꾸, 반대하니 말이 조금 뾰족하게 나와버렸다.

하지만, 그는 담담히 내 말에 대답할 뿐이었다.

[아니, 검을 맡길 사람이 온 것을 알았는데, 침입자라도 쉽게 사람을 죽일 수는 없지.]

골렘들과 그가 어떤 방법이든 연결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살려 주었는데, 내가 죽여 버렸으니…….

[도망치는 자를 놔 줄 수는 있지만, 죽이겠다고 덤비는 자를 살려 둘 수는 없겠지.]

내 생각을 알았는지, 그는 나 대신 변명해 주었다.

[신전 기사가 온 것을 보니, 비오 신관이 세운 종교가 제국과 대전쟁 전의 기억을 지우고 있을 테고, 우리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을 테지.]

그는 빤히 내 손에 든 검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검을 물려 줄 자가 있으니, 책임은 완수할 수 있었어.]

뜻밖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교단이 기록을 지우고 있다고?

이건 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 때문이라도 그를 붙잡아 두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은 내가 입을 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의 마지막 말은 너무도 지친 사람의 말이었다.

너무 오래 힘든 시간을 버틴 사람의 음성.

그는 대공녀를 보며 말을 이었다.

[나는 돌 속에 기억을 담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습니다. 나는 에고이지만, 테오도라입니다. 인간이 돌 속에 몸을 담고 살아간다는 것은 감옥 이상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는 손을 들어 자신의 몸을 두들겼다.

[감각을 느낄 수도, 향기를 맡을 수도, 맛을 느낄 수도 없습니다.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었습니다. 인간의 감각을 느낄 수 없는 삶은 정말 생각 이상으로 힘든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슴에 손을 올리고, 그는 대공녀에게 인사를 했다.

기사의 인사였다.

[책임을 완수했으니, 이제, 저는 쉬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그의 말에 아무도 입을 열 수 없었다.

잠시 뒤, 대공녀가 입을 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쉬세요.]

팔을 내리고 고개를 든 조각상은 허리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어차피, 이곳을 유지하던 마나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 검이 없으면 며칠도 버티지 못했을 테니, 미안한 얼굴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똑같이 돌로 만들어진 투구였지만, 조각상이 씩 웃는 것처럼 보였다.

아쉬워하는 조원들을 위해, 테오도라는 기념품이라며 몇 가지 유물을 건네주었다.

대공녀가 놀라는 것을 보니 평범한 유물은 아닌 것 같았다.

그 후에, 우리는 손을 흔드는 조각상을 뒤로 하고, 지하 광장을 빠져나갔다.

손을 흔드는 조각상, 테오도라는 진심으로 홀가분해 보였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던 우리는 바닥에 누워있는 추살 대장의 시체를 지나, 돌조각과 시체가 흩어져 있는 지하광장을 거쳐 지상으로 향했다.

성기사가 손을 썼는지, 돌아갈 때는 골렘이 나타나지 않았다.

돌아갈 때는 다들 말이 없었다.

나에게도 질문이 있을 테지만, 다들 묻지 않았다.

홀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니,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드드드드.

성기사가 유적을 폐쇄하는 소리였다.

우리는 발걸음을 빨리했다.

우리가 멀어질수록 건물이 더욱 흔들렸다.

안전한 거리까지 물러서자, 결국 건물이 무너져내렸다.

콰르르르르.

그는 폐쇄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었다.

단순히 문을 닫는 게 아니라, 모두 묻어버리겠다는 소리였다.

자신과 유적 전체를.

우리는 멍하니 무너져내리는 유적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나는 흠칫 고개를 돌렸다.

무너지는 소리 사이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땅이 울리는 소리였다.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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