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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25화 (225/563)

제225화

제25편 성기사 (1)

마물들의 사체가 널려있는 마물의 둥지.

피 냄새를 맡았는지, 벌레와 작은 마물들이 모여들어 잔치를 벌이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잔치 때가 아닌듯했다.

쿵.

멀리서, 충돌음이 들려왔다. 거대한 바위를 땅에 내려치는 듯한 소리였다.

소란스러웠던 공터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쿵.

다시 들려오는 소리에 마물 사체들에 달라붙었던 벌레들이 사방으로 달아났다.

쿵.

소리가 점점 다가왔다.

둥지 중앙에 누워있는 신전 기사에게 접근하던 작은 마물들도 버티지 못하고 급하게 몸을 피했다.

소란스러웠던 공터는 다시 조용해졌다.

대신, 땅을 울리는 소리와 진동이 그 소란을 대신했다.

쿵.

소리는 점점 더 커졌다. 이제는 바닥에 누워있는 마물과 기사도 흔들릴 정도였다.

콰직, 콰지직.

이제는 나무들이 꺾여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잔가지가 잘려 나가는 게 아니라, 나무 전체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쿠우웅.

다시, 땅이 울렸다.

크르르릉.

그리고, 나무 너머에서 거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콰직, 콰아앙.

이어서 나무들이 넘어가고, 울음소리를 냈던 존재가 공터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마물이었다.

한 손으로 거대한 나무를 쓰러뜨릴 만한 괴수였다.

괴수는 무척이나 징그러웠다.

멀리서 보면 거대한 곰처럼 보일듯했지만, 그 몸은 헤지고, 갈라지고, 무너지고 있었다.

피부가 갈라져서 내장이 보이고, 팔다리는 피부가 흘러내려서 혈관과 근육이 꿈틀거리는 게 보일 정도였다.

멀쩡하지 않은 몸이었지만, 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혈관은 힘차게 움직이고 있었고, 갈라지던 내장은 다시 아물었다.

누더기가 된 몸과 달리, 마물은 머리에 낡은 투구를 쓰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투구 사이로 붉은 두 눈동자만 보일 뿐이었다.

거대하고 징그러운 마물은 공터를 둘러보다가, 중앙에 놓인 기사 시체를 쳐다보았다.

마물은 다리를 들었다가 아래로 내리찍었다.

콰아앙!

전과 달리, 평범하게 걷는 걸음이 아니었다.

공터에 흩어져 있던 마물 사체들이 튕겨 나갔고, 거대한 마물의 발은 땅속에 박혀버렸다.

발아래에 깔린 기사의 시체는 보지 않아도 어떻게 되었을지 충분히 예상되었다.

마물은 인간의 시체를 으깨버리고, 멀리 유적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오래전, 마물이 다른 마물들과 함께 무너뜨린 그 건물이었다.

인간들은 유적 쪽으로 간 게 확실했다.

마물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들을 친히 찾아보기로 했다.

유적에 있는 돌들은 꽤 귀찮았지만, 그렇다고 침입자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

잠든 마왕께 이곳을 지키라고 명령을 받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이 지역의 왕, 마물들의 왕은 유적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쿵. 쿵.

무너진 신전이 점점 가까워졌다.

* * *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골렘들의 모습은 왕께 고개를 숙인 기사들 같았다.

골렘들은 그 자세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긴장한 채로 골렘들을 살피던 우리는, 골렘들이 움직이지 않자,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앞에서 손을 흔들고, 슬쩍 손을 가져다 대도 변화가 없었다.

안전하다고 느껴지게 되니, 일행은 본격적으로 골렘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건 유물이라고 해도 되려나?"

제일 활기차게 움직인 것은 대공녀였다.

그녀는 문양을 살피고, 골렘의 몸에 손을 올리고, 능력으로 살펴보았다.

발레아도 자신의 능력으로 골렘을 움직여보려고 이리저리 용을 썼다.

하지만, 아쉽게도 골렘들은 발레아의 능력을 거부했다.

나머지 기사와 육체 능력자들이야 살아 움직이는 돌들이 신기했지만, 그저 처음 보는 물건들일 뿐이었다.

골렘들이 움직이지 않자, 발레아는 나에게 물었다.

"이 바위 인간들이 이러고 있는 것은 알렉스 공자가 들고 있는 검 때문이죠?"

일행은 모두 검이 울고, 골렘들이 멈추는 것을 보았었다.

"네, 저도 이유는 모르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그 검에서 얻은 정보로 이 던전에 오게 된 거잖아요."

"그렇죠."

"그럼, 이 던전과 관계가 있다는 것일 텐데요……."

관계가 없을 리가 없었다.

이 던전, 아니 유적은 신전이었다.

내 손에 들린, ‘신검’을 성물로 삼고 있는 종교의 신전.

이 유적은 ‘성기사의 신전’이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검을 다시 한번 숨겨보는 게 어떨까요? 저 바위 인간들이 다시 움직이는지, 아니면 물러설 줄도 알 수 있는……."

역시 발레아. 이리저리 말을 돌린 이유가 있었다.

다행히 내가 거절하기 전에 두 공주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안 돼요! 위험한 짓이에요!"

"안전하게 조사할 수가 있게 되었는데,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발레아는 두 공주에게 혼이 났다.

대공녀 말대로 고대 제국의 골렘을 안전하게 살필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여기서 마냥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다.

아쉬워하는 대공녀를 이끌고, 우리는 흔적이 남아 있는 중앙 통로로 걸어 들어갔다.

쿵, 쿵, 쿵.

우리가 모두 통로로 들어가자, 무릎을 꿇고 있던 골렘들이 다시 움직였다.

골렘들은 처음 떨어졌던 장소로 이동해 똑바로 섰다.

이어서, 천장에 다시 구멍이 열리고, 골렘들이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슉, 슉, 슉.

나는 골렘이 움직이는 것보다, 지금 골렘이 위로 솟구치는 게 더 신기했다.

저렇게 무거운 바위들을 손도 안 대고 끌어 올리다니.

바쁘지 않으면, 어떤 방법인지 확인해 보고 싶을 정도였다.

다시 통로를 따라 이동하니, 또다시 지하 광장이 나왔다.

이번에도, 부서진 골렘 조각들과 시체들이 보였다.

나는 검을 앞세우고 광장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벽에서 구멍이 만들어지고, 골렘들이 걸어 나왔다.

첫 번째 나왔던 골렘들과 다른 골렘들이었다.

하지만, 생긴 것 말고는 다른 점을 알 수 없었다.

두 번째 골렘도 검이 울자, 바닥에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었지만, 일행은 표정이 좋지 못했다.

두 번째 광장에는 돌 조각보다 사람 시체가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용병도, 신관도, 기사도, 엉망이 되어 쓰러져 있었다.

우리는 무릎을 꿇은 골렘을 살피지 않고, 광장을 지나갔다.

광장마다 세 개의 통로가 있는 모양이었다.

첫 번째는 중앙 통로. 이번에는 왼쪽 통로였다.

마나 선과 핏자국이 같은 통로를 가리키고 있었다.

처음 광장보다 통로에 묻은 핏자국이 줄어 있었다.

살아남은 사람이 줄었기 때문일 듯했다.

그리고, 세 번째 지하광장.

통로 끝에 서서 광장을 둘러본 일행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기서 다 죽었을까요?"

공주의 물음에 다들 동의할 정도였다.

세 번째 광장은 바닥에 돌 조각이 많지 않았다.

합쳐 놓으면 셋, 넷 정도일까.

하지만, 시체는 많았다.

그것도 대다수가 신전 기사였다.

시체는 모두 광장 중앙을 넘지 못했다.

이들은 반도 지나지 못하고 죽었던 것이었다.

나는 말 없이 검을 앞세우고, 광장 안으로 들어갔다.

우우웅.

이번에는 바닥에 구멍이 만들어졌다.

다시 골렘이 올라오고, 무릎을 꿇었다.

신기한 광경이었지만, 사방에 널린 시체 때문에 이제는 오히려 괴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는 말 없이 광장을 지나갔다.

마나 선을 따라, 오른쪽 통로로 향했다.

"생존자가 있습니다."

통로 벽에 피 묻은 손자국이 찍혀 있었다.

손자국 하나. 적어도 한 명은 살아서 이곳에 온 것이었다.

기분이 애매했다.

기뻐해야 할지, 애석하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가보죠."

우리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통로를 걸어가던 우리는 중간에 걸음을 멈추었다.

다시 광장이 보이는 통로 끝에 사람이 보였다.

조금 이상해 보이긴 했지만,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가 맞았다.

신전 기사. 혼자 살아서 통로로 들어온 기사였다.

나는 경계하라는 손짓을 하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왜 이상해 보였는지 알 수 있었다.

팔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지혈을 했기 때문인지, 출혈은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뚝뚝 떨어지는 피로 팔이 조금 전에 떨어져 나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냐."

서서 죽은 것은 아니었다.

광장을 바라보던 신전 기사가 고개를 돌렸다.

조장은 대공녀이고, 지도 교수는 카트린이었지만, 제일 앞에 있던 내가 대표로 대답했다.

"카를로스 왕립 아카데미의 교수와 학생들입니다. 실전 수업의 하나로 유적에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실전 수업이 아니라 조별 과제로 온 것이었고, 그것도 명목에 불과했지만, 상대를 이해시키려면 실전 수업을 말하는 게 제일 좋았다.

"아……. 그렇군. 지금이 그 시기였나."

역시, 상대도 실전 수업은 알고 있었다.

생긴 것처럼 날카로운 목소리였지만, 지금은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것처럼 보였다.

"안됐군. 괜한 곳에 와서 목숨을 잃게 되었어."

그는 고개를 젓더니, 우리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곳은 악신의 신전이다. 교단의 이름으로 정화를 하고 있으니, 너희들은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정신을 놓은 덕분인지, 기사는 친절했다.

기사의 말에 우리가 왜 유적에서 신전 기사에게 공격을 당했는지 알 수 있었다.

"어차피, 살아 돌아갈 수도 없을 테니, 내 손에 죽는 게 좋을 거다. 이 앞에는 악신의 사제가 있다. 오래전에 죽은 그자가 다른 옷을 입고 너희를, 나를 기다리고 있다."

검을 들고, 우리를 바라보며 기사는 횡설수설했다.

"왜, 나를 마무리 짓지 않을 걸까? 바위 인간들처럼 이곳에 매인 자도 아니었는데. 악신의 사제는 용서를 아는 걸까?"

기사는 말을 하면서 조금씩 정신이 돌아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온 거지? 전부 물리치고 왔다고? 그럴 리가, 아니 싸운 흔적도 없는……. 그 검은 뭐지?"

우리를 이상하게 보던 기사가 내 손에 들린 검을 보고 눈을 치떴다. 이 검을 아는 모양이었다.

"네놈들도 악신의 졸개들이었냐! 우리가 그토록 지웠는데, 이렇게 계속 솟아나다니!"

갑자기 기사가 열변을 토해냈다. 기사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어두웠던 표정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네놈들이 악신의 검을 가지게 할 수는 없다! 이 세상의 신은, 교단은 하나뿐이다!"

그는 우리에게 몸을 날렸다.

몸을 날리는 그는 처음 약해 보이던 기사가 아니었다.

쾅!

맨 앞에 있던 내가 그의 검을 막아냈지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대단한 실력이었다.

왕실 기사단의 부단장과도 겨룰 수 있어 보이는 실력이었다.

다만, 그는 싸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한쪽 팔이 잘리고, 마나도 육체도 한계였다.

검을 몇 번 휘두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네놈들을 죽일 것이다. 추살 2 대장인 나 프란츠가 신명을 받들어 너희들을 역사 속에서 묻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알지 못했다. 아니, 외면하고 있었다.

추살 대장이라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그의 원래 실력이라면, 추살 대장도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추살대라니…….

왜 추살대까지 끼어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싸움은 여기서 끝내기로 했다.

나는 그의 검을 쳐내고, 가슴 깊이 검을 찔러넣었다.

마지막 순간, 기사는 잘려 나간 팔을 나에게 흔들었다.

아마도 그의 능력과 관련된 행동이었겠지만, 잘려 나간 팔 때문에 의미 없는 행동이 되었을 뿐이었다.

기사가 쓰러지고, 우리는 난감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교단의 최고 무력이자 공포인, 추살대라는 말을 들었는데, 멀쩡할 수가 없었다.

"우선, 다음을 확인해 보죠."

발레아의 말에 우리는 이일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

모두 기사의 시체를 뒤로하고 광장으로 걸어갔다.

광장 안에는 돌로 만들어진 기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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