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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24화 (224/563)

제224화

제24편 추살대 (2)

두 개의 갈림길.

흔적을 살펴보니, 먼저 온 자들은 왼쪽 길로 간 것 같았다.

"어디로 갈까? 반대쪽으로 갈까?"

흔적을 살피는 나에게 카트린이 물었다.

어떻게 할까, 안 마주치는 편이 좋을 것 같으니, 반대편으로 가는 게 좋을까?

내가 생각에 잠기자, 지켜보던 공주가 입을 열었다.

"검에게 물어보는 게 어떨까요?"

풋.

악셀 기사가 웃음을 터트렸다.

소녀다운 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퍽!

당연하게도, 선임 기사가 그를 쥐어박았다.

"죄, 죄송합니다."

악셀 기사는 급하게 사과를 했고, 공주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공주의 말은 악셀 기사를 웃게 했지만, 나는 웃지 않았다.

공주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배낭에서 검을 꺼냈다.

이 안에 들어와서도 검은 작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검에 마나를 밀어 넣어, 스위치를 올렸다.

딸깍.

마나 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나 선은 전과 달랐다.

벽을 뚫고 목표와 이어진 게 아니라, 복도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마치 길을 알려 주는 내비게이션 같았다.

마나 선이 이어진 곳은 흔적이 남아 있는 왼쪽이었다.

"왼쪽이네요."

기사도 카트린도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우리 조원들은 주저하지 않고 왼쪽 길로 걸음을 옮겼다.

뒤를 따르는 내 곁에 카트린이 다가왔다.

"바람둥이 공자! 언제부터 이렇게 친해진 거야?"

작은 목소리였지만, 이 정도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방음벽을 펼쳤다.

"무슨 말이에요."

"아니, 뭘 믿고 네 말을 그렇게 신뢰하는 거냐고. 얼마 전까지 제일 친했던 나도 그렇게 믿기는 어렵단 말이야."

"발레아와도 더 친해진 것 같고, 공주님도 확 변해버렸고, 대공녀님하고는 언제부터 가까워진 거래."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가 했더니, 카트린의 말은 잡담, 수다에 가까웠다.

한숨을 쉬며, 펼쳐놓았던 방음벽을 없애려 할 때, 카트린이 다시 물었다.

"대공녀님도, 발레아도 슬슬 중매가 들어올 텐데. 괜찮겠어? 아니, 너도 졸업만 하면 여자가 줄을 서려나?"

걸음이 잠시 멈출뻔했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고, 정곡을 찌른 말이기도 했다. 아니, 일부러 피하던 이야기였다.

아카데미에 오지 않았으면, 대공녀도 발레아도 이미 약혼, 혹은 결혼했을 나이였다.

나도 강해졌으니, 아카데미에 오지 않았다면 약혼 정도는 했을지 몰랐다.

겨울 방학 때에, 영지에 있을 때, 둘째 형 약혼을 한창 진행하고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백작가 따님이라는 말을 얼핏 들었는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카트린은 결혼 안 하나요?"

"나야, 가문의 능력을 잇고 있으니까. 더구나 방패까지 쓸 수 있으니, 제대로 된 데릴사위가 오지 않으면 결혼은 힘들어."

카트린은 백작 가문의 최고 능력자였다.

더구나 선조의 능력까지 찾아왔으니, 그녀 말대로 함부로 다른 가문에 보낼 수 없을 터였다.

"말 돌리지 말고,"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누구한테 마음이 있냐는 거지."

카트린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게 내가 그동안 이 이야기를 외면한 이유였다.

공주와 대공녀와는 언감생심 말도 안 되었고, 발레아도 내가 그녀의 본성을 잘 알고 있었다.

생각해도 답이 안 나오는 일이었으니,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감각으로 주변을 살피던 나는 방음벽을 풀고 앞으로 나아갔다.

일직선이던 통로가 바뀌었다.

큰 지하 광장이 우리를 맞이했다.

지하에 있어서인지, 지상처럼 망가지지는 않았다.

지하 광장에 들어서자, 천장을 덮는 벽화가 눈을 어지럽혔다.

전생에 보던 천지창조 벽화와 닮은 벽화였다.

세상이 만들어지고, 인간이 나타나고, 악마가 등장하고, 신이 인간을 도와 악마를 쓰러뜨리는 이야기가, 천장 가득 펼쳐져 있었다.

오래되어서 낡아 보이는 벽화였지만, 무척이나 화려하고 잘 그려져 있어, 모두의 시선을 끌 것 같았다.

다만, 지금 우리는 벽화에 시선을 둘 수가 없었다.

바닥에 더 엄청난 광경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깨져나간 바위와 돌들이 바닥에 가득 흩어져 있었다.

평범한 돌과 바위가 아니었다.

돌과 바위에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거기다, 돌과 바위는 모두 일정한 형태로 깎여나가 있었다.

팔과 다리, 머리와 몸 같은 형태로. 관절 역할을 하는 돌도 있었고, 창과 칼처럼 보이는 돌도 있었다.

"골렘이 진짜 있었나……."

대공녀가 바닥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흩어져 있는 돌과 바위는 대공녀의 말처럼 바위 인간, 골렘이 파괴된 모습 같았다.

흩어진 돌과 바위를 보니, 멀쩡했을 때는 꽤 숫자가 많았을 것 같았다.

골렘이 파괴된 흔적도 신기했지만, 우리가 놀란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골렘은 오래전에 부서진 것이 아니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 골렘은 이 지하 광장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먼저 들어온 사람들과 싸워, 골렘들이 모두 부서진 것이었다.

골렘의 잔해를 봐도 알 수 있었지만,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

광장 바닥, 돌과 바위 사이에, 시체들이 보였다.

낡은 가죽 갑옷을 입은 용병처럼 보이는 남자와 사제 복장의 여성, 그리고, 신전 기사들.

온전한 시체는 없었다.

전부 부러지고, 박살 난 시체들이었다.

거대한 충격에 망가진 시체들. 모두 골렘에게 죽은 사람들이었다.

급하게 떠났는지, 마물 둥지에서 본 시체처럼 정돈해놓은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외면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런 광경을 충분히 보고 겪어왔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디로 향했는지는 따로 살펴볼 필요가 없었다.

피투성이가 된 발자국과 손자국들이 정면에 있는 통로로 이어져 있었다.

나는 들고 있는 검을 힐긋 쳐다보았다.

검에서 출발한 마나 선도 중앙 통로로 이어지고 있었다.

앞서간 사람들은 이번에도 길을 맞췄다.

그들도 ‘신검’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신검을 볼 수 있는 능력도 있고?

상황을 알 수 없으니, 상상만 계속 늘어갔다.

나는 중앙 통로를 가리켰다.

"계속 가죠."

앞서가는 사람들과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나게 될 것이었다.

그때였다.

그그그긍.

천장의 벽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라 고개를 드니, 천장에 커다란 구멍들이 생겨났다.

구멍에서 바위와 돌, 아니 바위 인간들이 떨어져 내렸다.

쿵, 쿠쿵. 쿵.

바닥에 굴러다니는 골렘과 같은 모습의 바위 인간들이었다.

다른 점은 이 바위 인간들은 움직인다는 점이었다.

바위와 돌에 새겨진 문양이 빛나고, 바위 인간들은 빠르게 움직여 우리를 포위했다.

* * *

신전 기사가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부우우웅.

마나가 담긴 검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휘둘러졌다.

쾅!

하지만, 그 검은 겨우 팔 하나를 잘라 냈을 뿐이었다.

상대는 팔이 잘려 나가도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추살 2대장 프란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를 고생시키는 상대는 같은 기사도 아니었고, 귀족도 아니었다.

차라리 마물이었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황당하게도 그와 부하들의 상대는 바위 인간들이었다.

악신을 믿는 종교 중에는 바위들을 시종으로 부리는 곳도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는데, 그게 이곳일 줄은 몰랐다.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해 곤란한 지경에 빠졌지만, 그렇다고 다른 종교를 공부할 수는 없었다.

결국 언제나처럼 자신의 힘으로 고난을 이겨내야 했다.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 앞을 막은 바위 인간을 쓰러뜨린 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위 인간들이 가득해서 부하들도, 다른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프란츠가 큰소리로 외쳤다.

"어거스틴!"

"여기 있습니다."

다행히 선임 기사는 무사했다.

"스테파노!"

"……죽었습니다."

어거스틴이 대신 대답했다.

"니콜라!"

"……."

"마티아!"

"저도 틀렸습니다. 사명을 지키겠습니다! 크아아악!"

프란츠는 계속 부하의 이름을 외쳤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지하 광장 세 곳을 지나오면서 거의 다 죽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바위 인간은 끝이 없었다.

부수고 부수어도 계속 등장했다.

첫 번째 광장에서는 천장에서 내려왔고, 두 번째는 벽에서, 이곳에서는 바닥에서 올라왔다.

더 나올 곳은 없었다.

다시 한번 반복되지 않는다면 이번이 마지막일 터였다.

그런 기대를 가지고, 다시 한번 크게 외쳤다.

"각자 빠져나간다. 이번에는 오른쪽 통로다!"

길을 알려 주는 유물을 지닌 신관도 조금 전에 죽었다.

광장이 더 있으면 이번에는 찍어야 할지도 몰랐다.

이렇게 어려울 리가 없는데…….

악신을 믿는 신전이고, 대전쟁 때 용사를 배출한 종교였다지만, 지금까지 신전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이곳은 대전쟁 때 마왕의 직접적인 공격을 받아 멸망한 고대 제국의 수도가 있던 곳. 봉인지였다.

신전이 이렇게까지 온전하게 있을 리가 없었다.

3대대까지 있는 추살대의 1/3이 이 던전에서 모두 날아가 버렸다.

추살대 한 대대면, 웬만한 나라의 왕실 기사단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런 대대를 날려 먹다니.

프란츠는 ‘신검’을 찾아오라는 고위 신관들과 거절하지 못한 자신에게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로막는 바위 인간들을 베어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큭!"

열심히 피하고, 검을 휘둘렀지만, 바위 인간들의 공격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그도 여러 번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었다.

저 이상한 문양 덕분인지, 바위 인간의 주먹질은 평범한 바위에 맞는 것과 차원이 달랐다.

마나가 가득 찬 바위에 두들겨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충격을 비껴낼 수 있는 그였기에 망정이지, 평범한 기사였다면 이미 죽었을 터였다.

그래서, 부하들과 다른 사람들이 바위 인간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한 것이었다.

충격에 내장이 흔들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는 바위 인간들을 뚫고, 통로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를 향해 달려들던, 바위 인간들은 통로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쿵.

통로 앞에서 바위 인간들이 멈추는 것은 다른 지하 광장과 같았다.

프란츠는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부하들이 넘어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다리는 부하들은 오지 않고, 바위 인간들이 물러서기 시작했다.

쿵. 쿵. 쿵.

프란츠는 입술을 깨물었다.

왜 이러는지 프란츠는 알고 있었다.

지하 광장에 살아 있는 사람이 없을 때 벌어지는 일이었다.

바위 인간들은 차례로 바닥에 생긴 구멍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모두 뛰어내리자, 지하 광장은 바위 인간의 잔해와 시체만 남게 되었다.

프란츠는 그 광경을 노려보다가 몸을 돌렸다.

그는 상대가 누가 되었건 이 값을 톡톡히 치러줄 생각이었다.

그는 다시 통로를 걸어갔다.

이번 통로는 짧았다.

통로 끝에는 광장이 있었다.

다행히, 이 광장이 마지막이었다.

광장 반대쪽에는 통로가 없었다.

다른 광장처럼 화려한 벽화도 보이지 않았다.

조각상 하나만 서 있을 뿐이었다.

거대한 조각상도 아니었다. 사람 크기의 기사 조각상이었다.

뭔가 꺼림직한 모습이었지만, 기사의 양손 아래 있는 검을 보고 프란츠는 눈을 빛냈다.

성기사의 신검이었다.

프란츠는 신검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몇 걸음 걷지 못하고 걸음을 멈춰야 했다.

그그그그긍.

돌로 만들어진 기사가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 * *

우리를 포위한 골렘을 향해 모두 무기를 들어 올렸다.

쉽게 되는 일이 없었다.

골렘이라면 부수기도 쉽지 않을 테고, 더구나 이게 다가 아닐 수도 있었다.

얼마나 더 나올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검을 슬쩍 쳐다보았다.

‘검을 바꿀까?’

이 검으로 실전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괜히 깨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그렇게 다른 검을 꺼내려던 순간.

우우우웅.

다시금 검이 울었다.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릴 정도였다.

검만 우는 게 아니었다. 골렘에서도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의아해하고 있을 때.

쿵. 쿵. 쿵. 쿵.

우리를 포위했던 골렘들이 차례대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마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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