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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21화 (221/563)

제221화

제21편 무너진 신전 (1)

나와 2학년생들은 1년 만에 다시 봉인지에 오게 되었다.

같이 공간 이동을 하는 1학년생들을 보니, 무척 어려 보였다.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생각보다 1년이란 시간이 긴 시간인 것 같았다.

1년 전과 같이 학장의 공간 이동 능력으로 숲과 밀림이 반쯤 섞인 봉인지에 도착했다.

봉인지에 도착한 뒤, 1년 전처럼 공간 이동을 한 학생들은 헛구역질했다.

2학년들은 조금 더 잘 버티긴 했지만, 헛구역질을 참아낸 것은 몇 사람밖에 없었다.

"조별로 모여! 장비를 확인해! 여기는 봉인지다! 언제 마물이 닥칠지 모른다!"

"2학년, 3학년생들은 1학년생들을 챙기고! 뭣들 해! 네놈들이 아직 신입생 병아리라고 생각하는 거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교수와 기사들이 헛구역질하는 학생들에게 소리쳤다.

공터 전체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지만, 우리 조는 달랐다.

1, 2, 3학년을 섞어 한 조로 만든 다른 조들과 달리, 우리 조는 조별 과제 때와 달라지지 않았다.

아쉽게도 행정 학부는 실전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 미리사는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주도, 발레아도, 대공녀도 모두 같은 조로 내 주변에 모여 있었다.

다들 얼굴은 창백했지만, 헛구역질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상 있는 사람은 없지?"

먼저 와 있던 카트린이 우리 쪽으로 걸어오며 물었다.

모두, 고개를 저었다.

"좋아, 조금 쉬고, 학장님의 훈화 말씀 뒤에 움직이도록 하자."

카트린은 다른 조원들에게 앞으로의 일을 설명하고는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알고 있겠지만, 내가 지도 교수니까 다른 계획 같은 게 있으면 나한테 꼭 이야기해야 해."

봉인지에서 조별 과제 조를 따로 보내는 어이없는 결정이 있긴 했지만, 아카데미에서 아무 후속 조치 없이 우리를 그냥 보낼 리는 없었다.

카트린이 지도 교사로 같이 가게 되었고, 저쪽에서 내게 손을 흔드는 아카데미 기사들, 미로 기사와 악셀 기사도 우리와 함께 가게 되었다.

미로 기사와 악셀 기사는 작년 봉인지에서 낙오했을 때, 같이 있었던 아카데미 기사들이었다.

평범한 실력의 기사들이었지만, 아는 사람들이었고, 성격도 나쁘지 않아, 같이 가는 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무슨 걱정 있어? 표정이 안 좋은데?"

같이 가는 인원이 예상보다 많아져서 좀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런 이유는 아니었다.

표정이 안 좋은 이유는 공간 이동을 한 뒤에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 때문이었다.

<봉인지에 도착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을 설정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메시지 창을 보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나타날 리가 없는 창이었다.

검이 있는 곳이 험난한 던전일 수도 있고, 가는 길에 위험한 마물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봉인지에 올 때마다 일이 생기니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

거기다, ‘저장 시점’을 만드는 것도 정해야 했다.

위험할 수 있으니, 그냥 ‘아니오’로 정하면 그만이긴 했다.

하지만, 다시 반복한다고 해서 더 좋은 결과를 얻기는 어려워 보였다.

대장간에서 검을 얻고, 기사 대전을 한 뒤에 ‘기사의 검’으로 능력을 얻고, 신전에서 ‘신검’을 얻기까지.

다시 한다면 같은 결과를 얻기는 어려운 일들이었다.

거기다, 능력과 검을 얻으려면 여기 올 때까지는 똑같이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바에는 이곳 봉인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나았다.

마지막으로, 반복된 삶은 무척이나 힘들었다.

결국, 결정을 내렸다.

나는 이번에는 "예."라고 대답했다.

다른 학생들이 정신을 차리고, 조별로 모이는 동안, 공간 이동 여파를 수습한 학장이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조원들을 쭉 둘러봤다.

그는 마지막으로 두 공주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문제가 생기면 두 왕족이 책임을 지겠다고 해서 허락한 일입니다. 솔직히 지금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무 사고 없이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역시, 공주와 대공녀가 힘을 쓴 모양이었다. 학장의 반대에도 결과를 만들어 내는 대단한 힘이었다.

권력과 거리를 두는 아카데미를 만들겠다는 초대 왕의 말과는 동떨어진 결정이었지만, 이번 결정은 내게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왜 학장이 찾아왔나 싶었는데, 자신은 책임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생긴 대로 논다고 해야 할지.

하지만, 찌들은 중간 관리자 같은 학장의 얼굴을 보니, 마냥 욕하기도 애매했다.

학장의 말이 끝나고, 우리 조는 카트린과 함께 공터를 떠났다.

우리가 먼저 공터를 나서는 것을 보고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저들의 표정을 보니, 실전 수업이 끝나면 또 이상한 소문이 아카데미에 가득 퍼지게 될 것 같았다.

학생들을 뒤에 남기고, 우리는 숲으로 들어갔다.

선두에 선 내가 덩굴을 베어가며 길을 만들면 조원들이 그 뒤를 따랐고, 기사들과 카트린은 맨 뒤에서 주변을 살폈다.

주위를 살피는 기사들은 판금 갑옷을 입고 있었고, 우리는 아카데미 제복 위에 흉갑을 덧입었다.

대공녀와 발레아도 마찬가지였다.

공주는 판금 갑옷을 입는 게 나았지만, 공주 체형에 맞는 갑옷이 없었다.

거기다, 공주도 나처럼 판금 갑옷을 불편해했다.

계속 나와 비슷하게 하는 모습이, 나를 따라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일행은 각자 무기를 들고, 가벼운 가방을 등에 멨다.

며칠 동안 봉인지에서 지내야 했다. 각자 먹을 비상식량들은 몸에 지니고 있어야 했다.

며칠 동안 봉인지에서 지내기에는 부족한 물품이었지만, 나머지는 내가 가지고 있어서 상관이 없었다.

나는 커다란 배낭을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방학 때 구한 유물 배낭이었다.

유물 배낭은 그동안 쓸 일이 없어서, 기숙사 방에 방치해 놓았었다.

이번에, 봉인지에 오게 되어 먼지를 털고, 가져온 것이었다.

이 배낭 안에 식량과 텐트, 노숙 용품이 가득 들어 있었다.

공터에서 꽤 떨어진 뒤에 나는 걸음을 멈추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길을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배낭에서 검을 꺼냈다. 신전에서 가져온 검이었다.

배낭에서 배낭보다 더 긴 검을 꺼내니 사람들의 눈이 커졌다.

"설마, 유물 배낭인가요?"

악셀 기사의 물음에 나는 바로 대답했다.

"빌려 온 겁니다. 보기와 달리 내부가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다른 물건들을 꺼낼 때 들킬 수밖에 없어 유물 배낭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유물 배낭의 주인이 나라고 생각하게 둘 수는 없었다.

유물 배낭을 아카데미 학생이 가지고 다니는 것도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었다.

거기에, 유물 배낭을 내 물건으로 생각하게 되면, 이상한 일을 넘어 의심을 사게 될 수도 있었다.

지금은 배낭에 물건이 많지 않으니, 최대한 평범한 물건처럼 보여야 했다.

유물 배낭 대신에 유물 주머니를 보여 주어도 되었지만, 유물 주머니는 내 비밀 무기였다.

유물 가방보다 용량은 적지만, 몰래 물건을 가지고 다닐 수 있어, 내게는 유물 배낭보다도 더 가치가 있었다.

내 대답에 기사들은 그럭저럭 이해했다.

그레시아 공작의 아들인 데다가, 공주, 대공녀와 같이 다니니, 용량이 작은 유물 배낭 정도는 빌릴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 공주와 대공녀, 발레아는 내 말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의심에 가득 찬 눈들을 보니, 다른 변명도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냥 모른 척하기로 했다.

검을 손에 쥐고 마나를 흘려 넣어 스위치를 올렸다.

다행히 마나 선이 보였다.

이번에는 한 가닥의 선이었다.

공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공주도 공중에 그어진 선을 본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같이 다니는데, 계속 숨길 수는 없었다.

나는 빤히 나를 쳐다보는 공주의 시선을 무시하고, 주변에서 가장 높은 나무를 타고 올랐다.

한 손에는 검을 쥐고 있었지만, 나는 평지를 움직이듯이 쑥쑥 위로 올라갔다.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마나 선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했다.

울창한 숲과 밀림을 넘어 북쪽으로 마나 선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지는 않았다. 시선이 닿는 곳에 목적지가 있었던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너무 멀면 위치만 확인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마왕이 봉인된 이 봉인지는 웬만한 나라만 했다. 거기다, 공간 이동으로 도착하는 곳은 봉인지의 외곽이었다.

실전 수업을 하는 동안에 목적지에 다녀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았었다.

나는 확인을 위해 등에 멘 배낭에서 다른 검도 꺼내 보았다.

화악.

배낭에서 꺼내자마자 마나 선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거기다, 이번에는 후작령에서 출발한 마나 선까지 보였다.

"형제 검 세 개가 다 연결이 되면 위쪽 검에 연결이 되고, 하나일 때는 가까운 검에 연결이 되는 걸까?"

가정일 뿐이지만, 여태까지의 상황을 보면, 꽤 그럴듯하게 느껴졌다.

위치를 확인했으니, 스위치를 내리고, 검들을 배낭에 넣었다.

* * *

같은 시각,

신관들과 추살대원들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그들 주변에는 마물 시체가 가득했다.

유물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바람에, 마물의 둥지와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둥지에 있는 마물은 모두 소탕되었고, 추살대는 다시 출발하기 위해 뒤처리를 하는 중이었다.

쓰러진 마물을 확인 사살하는 추살대장에게 신관이 다가왔다.

"방금, 다시 반응이 있었습니다. 기존에 확인한 위치가 틀리지 않았습니다."

"왜, 반응이 생기는지 이유는 알아냈나?"

"죄송합니다. 봉인지에서 파악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알았다."

대장은 죄송스러워하는 신관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준비되었습니다."

신전 기사의 말에 대장이 걸음을 옮겼다.

마물들의 사체가 가득한 둥지 중앙에 신전 기사가 누워있었다.

기사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조금 전 싸움에서 목숨을 잃었던 것이었다.

대장이 앞에 서자, 기사와 신관들이 죽은 기사 주변에 모여 눈을 감았다.

대장이 검을 바닥에 꽂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자리에 누운 형제는 자신의 사명을 위해 마지막까지 헌신한 진정한 신자입니다."

부하의 마지막을 위한 기도였지만, 대장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차가웠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는 신관과 기사 누구에게서도 불만은 보이지 않았다. "……. 우리는 그의 뜻을 이어받아 사명을 끝까지 이어나가기를 맹세합니다."

차가운 기도는 신에 대한 맹세로 끝났다.

차가웠던 기도와 달리, 맹세는 무척이나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맹세합니다."

그의 마지막 맹세와 함께 다른 이들도 맹세를 외쳤다.

이들은 동료의 시체를 뒤에 남겨두고,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걸음을 옮기는 사람 중에, 고개를 돌려, 뒤에 남겨진 동료를 확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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