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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11화 (211/563)

제211화

제11편 부단장의 아들

대검이 바람을 가르며 상대를 베어나갔다.

기사는 급하게 검을 들어 올렸다.

쾅!

"윽, 무슨 힘이……."

내 덩치를 보고 얕본 모양이었다.

내 대검을 막아서는 데는 성공했지만, 제1 왕자의 호위 기사, 다빗은 대검을 막아낸 여파로 뒤로 쭉 밀려 나갔다.

그래도 검은 유물급 검인 듯했다. 평범한 철검이었으면 박살 날 정도의 충격이었는데, 멀쩡해 보였다.

"하비에르가 말한 것보다 더 대단한데……."

다빗 기사는 나를 보며 손을 털었다.

힘에서 밀렸지만, 아직 기사는 여유로웠다.

"마나를 제대로 끌어올리지 않았긴 했지만, 이 정도 충격이라니, 같은 나이대에서는 당해낼 사람이 없겠어."

왜 여유로운가 했더니, 마나를 제대로 끌어올리지 않았기 때문인듯했다.

마나를 쓰지 않고도 내 공격을 막아내다니, 확실히 그는 왕실 선임 기사로 올라갈 만한 강한 기사였다.

하지만, 마나를 쓰지 않은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다른 말이 나오지 않게 하려면, 싸울 준비도 안 된 기사를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정신을 차리게 해주었으니, 이제 제대로 붙어볼 수 있을 터였다.

"좋아, 사과하지. 다음 경기를 위한 준비 정도로 생각했는데, 제대로 해야겠어."

뭔가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꼴이 저번에 부단장과 싸울 때가 생각이 났다.

죽을 때 고통까지 떠올리게 되니, 갑자기 기분이 안 좋아졌다.

부우웅.

나는 다시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이번엔 마나가 가득 담긴 검이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다!"

날아오는 대검을 보고 다빗 기사가 마주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검은 서로 맞닿지 않았다.

대검이 휘청거리며 휘어져, 기사의 검 아래로 파고들었다.

기사의 눈이 커졌다.

이렇게 큰 검이 휘어지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콰앙!

검 대신, 갑옷이 검을 받아냈다. 아니, 검이 갑옷을 부쉈다.

갑옷이 터져나가며 기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역시, 왕실 기사단 갑옷은 튼튼했다.

갑옷만 부서졌을 뿐, 기사는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기사는 급하게 몸을 굴려 거리를 벌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치지는 않았지만, 기사의 모습은 엉망이었다.

흉갑 한쪽이 터져나가 안쪽이 훤해 보이고, 바닥을 굴러서 번쩍이던 갑옷이 지저분해져 있었다.

더구나, 바닥을 구르느라 투구도 열려서 일그러진 얼굴이 잘 보였다.

"그게 무슨 검술이지? 그게, 네 능력이냐?"

능력이라면 능력이긴 했다.

검을 움직이는 도중에 심법을 전환해서 검의 움직임을 바꾸는 기술이었다.

검 속에서 카를로스와 싸울 때 그에게 여러 번 당했던 수법이었다.

그동안 알고 있는 심법이 적어서 쓰지 못했는데, 이제는 어떻게 쓰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기사는 입술을 깨물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한 방 제대로 맞고 나니, 그제야 내 실력을 인정한 모양이었다.

달려오면서도 내 검에 신경을 집중했다.

이미, 내 대검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겪었으니, 조심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조심해도 어쩔 수 없는 게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검을 변화시키지도, 심법을 바꾸지도 않았다.

우직하게 마나를 밀어 넣고,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왕실 기사가 우직하게 휘두른 검을 막지 못할 리가 없었다.

기사는 검을 들어, 내 대검을 착실하게 막아냈다.

그리고, 그는 멀리 날아가 버렸다.

거의 5미터 이상을 날아간 것 같았다.

그가 키도 더 크고, 체중도 더 많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마나를 이용해서 땅에 육체를 고정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내 몸은 땅에 고정되어 있었고, 내가 휘두른 대검은 오랜 세월 익혀온 마나가 가득 담겨 있었다.

당연히 상대가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쿵, 쿠르르.

기사는 한참 날아가서 땅을 굴렀다.

이번에는 갑옷이 더 망가지지는 않았지만, 겨우 다시 일어나는 기사의 모습은 아까보다 훨씬 보기가 안 좋았다.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고, 검을 든 손은 떨고 있었다.

거기다, 입가에 피가 보이는 것이 내 마나를 견디느라 속을 다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직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했으니, 포기하기 힘들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창백해진 얼굴로, 다시 내게 다가오려고 했다.

하지만,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그만, 다빗이 졌네. 승부가 났으니 대결을 끝내도록 하게나."

부단장이 나선 것이었다.

멍하니 고개를 돌린 다빗 기사는 뒤를 보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심각한 얼굴의 부단장과 제1 왕자의 짜증 난 표정 때문인 것 같았다.

* * *

다빗 기사가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며 제1 왕자는 혀를 찼다.

"왜, 벌써 끝내는 거야. 질 때 지더라도 좀 더 화끈하게 싸우고 끝내야지."

부단장은 제1 왕자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기사들이라면 수긍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아들이었다.

실력 차이가 확연했다. 더 싸워볼 필요도 없었다. 여기서 더 추한 꼴을 보일 필요가 없었다.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저런 괴물에 치여 아들의 창창한 앞날을 끝나게 둘 수는 없었다.

부단장은 공주에게 돌아가는 공주의 호위 기사를 쳐다보았다.

"서자라고 들었는데……. 어느 가문이지?"

분명 아직 아카데미 학생이라고 들었는데, 저렇게 강할 수 있나?

아마,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게 분명했다.

"서자이긴 하지. 그 그레시아 공작의 세 번째 아들이긴 하지만."

옆에 있던 기사단장이 그의 혼잣말에 대답했다.

갑자기 돌아와서 사람을 힘들게 하는 기사단장이었지만, 생긴 것과 달리 여러 가지 소문을 잘 알고 있었다.

기사단장의 말에 부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시아 공작이라면 말이 되었다.

"그레시아 공작의 서자였나……. 그럼, 공작의 비밀 병기 같은 겁니까?"

"그야 나도 모르지, 근데 비밀 병기가 왜 여기 와 있겠어."

하긴, 비밀 병기로 키워낸 기사를 공주의 호위 기사로 보낼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이런 자리까지 나오게 하다니.

비밀 병기라면 그렇게 할 리가 없었다.

어쨌거나 부단장은 그레시아 공작의 서자라는 말에 괴물의 실력을 수긍이라도 할 수 있었다.

젊었을 때 검의 천재로 이름 높았던 그레시아 공작이었다.

그 피를 이었다면 저런 괴물이 나올 수도 있었다.

물론, 알렉스가 실력을 어느 정도 감추었기에 그가 할 수 있는 가정일 뿐이었다.

조금 더 알렉스의 실력을 알고 있었던 기사단장은 부단장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기사단장은 다시 알렉스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렉스의 눈이 묘했기 때문이었다.

"저거, 아무리 봐도, 부단장을 비웃는 것 같은데……."

처음 보는 느낌의 눈이었지만, 얼굴을 알고 있으니, 어떤 표정인지 대충 유추가 가능했다.

분명, 저건 비웃는 얼굴이었다.

"왜, 갑자기 이간질입니까. 아들이 졌다고 복수를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괜히 시비를 붙일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부단장은 공주의 호위 기사는 본 적조차 없었다.

비웃을 일도, 비웃음을 당할 일도 없었다.

부단장도 알렉스를 쳐다보았지만, 비웃는 것 같지는 않았다.

분명, 이쪽을 보고 있기는 하지만, 투구에 가려져서 표정은 보이지도 않았다.

"분명, 비웃는 눈인데……."

기사단장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부단장은 기사단장에게 물었다.

"아는 기사입니까?"

"아니 뭐, 세우타 공작님 소개로 한번 보기만……."

기사단장은 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가만히 있는 날 왜 끌어들이는 건가!"

옆에 서 있던 노인, 세우타 공작이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는 거잖습니까."

"이놈이 기껏 데려왔더니, 풍파만 만드냐!"

두 사람의 만담이 시작되었다.

예전에 보았던 그 만담이었다.

왕이 아프기 전에 늘 보아왔던 모습. 그때는 자신도 웃으며 보았었는데…….

길이 달라져 버린 지금은, 이제는 마냥 웃으며 볼 수 없었다.

그때, 왕자가 그를 불렀다.

부단장은 단장이 쳐놓은 방음벽을 빠져나와 왕자 옆으로 갔다.

부단장의 아들은 엉망이 된 갑옷을 갈아입으러 연무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호위 기사인 아들이 자리를 비웠으니, 그가 대신 호위를 서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왕자가 부른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왕자는 다음 대결을 위해 다시 나오고 있는 공주의 호위 기사를 가리켰다.

"저 정도면 쓸만하지?"

부단장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쓸만하다니,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기사가 아니었다.

"쓸만한 정도가 아닙니다."

"뭐 하는 놈인데?"

"아직, 아카데미 학생이라고 합니다."

"아직 학생이라고? 내 호위 기사를 이기는 놈이?"

한마디 말 안에 여러 가지 내용이 담겨있었다.

상대에 대해 놀란 것과 호위 기사인 아들에 대한 욕까지

진 것은 사실이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이럴 때면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알아봐, 뭐 하는 놈인지."

조금 전에 단장에게서 어느 정도 들었지만, 부단장은 그냥 고개를 숙였다.

나중에 말해주면 될 터였다.

"이렇게 되면, 저놈이 이번에도 이겨줘야 할 텐데……. 동생 놈이 이기는 거 보는 것은 더 짜증 난단 말이야."

제2 왕자는 호위 기사를 내보내면서 싱글거리고 있었다.

승부에서 다 이겨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 * *

검을 몇 번 휘두르지도 않았으니, 따로 회복할 시간은 필요 없었다.

나는 바로 걸어 나가, 상대를 기다렸다.

제1 왕자의 호위 기사와 달리, 이번 기사는 정보가 없었다.

나보다 작아 보이는 기사가 제2 왕자에게 인사를 하고 내 앞으로 걸어 나왔다.

걸어 나온 기사는 말없이 자세를 잡고 나를 쳐다보았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이샤 공주의 호위 기사, 알렉스입니다."

내가 말한 뒤에도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이대로 시작해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할 무렵, 겨우 상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네스다."

저절로 눈이 커졌다.

"여자 맞지?"

"제2 왕자 호위 기사가 여자였어?"

이름도 여자 같았지만, 목소리가 완전히 여자였다.

나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다들 제2 왕자의 호위 기사가 여자라는 것을 처음 안 것 같았다.

제2 왕자는 사람들이 놀란 것을 보고, 더 즐거워하고 있었다.

숨겨놓았던 자신의 장난감을 자랑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내가 주저하자, 앞에 선 기사가 입을 열었다.

"……내가 여자라는 게 무슨 문제가 되나?"

말을 주저하는 것을 보니, 그동안 말을 많이 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제2 왕자를 호위하면서 여자라는 것을 들키지 않은 것도, 말을 안 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리고, 지금은 말을 하지 못하게 했던 제재가 풀린 것 같았다.

제2 왕자가 저렇게 웃고 있는 것을 보니, 이 자리가 제2 왕자의 호위 기사 데뷔 자리였던 모양이었다.

이런 대결을 승낙한 것도 호위 기사를 데뷔시키려는 속셈이 있었던 것 같았다.

결국, 다른 뜻이 없었던 것은 제1 왕자밖에 없었던 건가.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짓고는 등에 멘 검을 잡았다.

"여자라는 것이 문제가 될 리가 없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었다.

더구나, 이렇게 한 가닥 있어 보이는 능력자와 싸울 수 있다는 것이 기쁠 뿐이었다.

나는 검을 들어 인사를 했고, 상대는 답례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달려오면서 기사는 검을 뽑았고, 멀리서 검을 찔렀다.

슈아악!

검이 그녀의 손을 떠나, 나를 향해 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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