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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10화 (210/563)

제210화

제10편 호위 기사 대결 (2)

왕실 마차를 몇 번이나 타는 건지, 이제는 왕실 마차가 익숙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부도 나를 알아보는 것 같고.

미리 연락이 되어 있었던지, 마차는 검문 없이 성벽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연병장과 왕궁 정원을 지난 뒤, 마차는 본성을 지나, 멈춰 섰다.

마차에서 내리니, 왕비 궁에서 보았던 하녀장이 하녀들과 함께 마중을 나와 있었다.

"모시겠습니다."

하녀장. 하녀라고 하지만, 왕비의 친구를 겸하는 각성한 귀족이었다.

영지는 없겠지만, 아마 작위도 가지고 있을 터였다.

작위도 가지지 못한 ‘서자’인 나보다 훨씬 위쪽의 귀족이었지만, 그녀는 충실하게 하녀장의 일을 수행했다.

공주의 호위 기사를 싸우기 전에 제대로 준비시키는 일이었다.

왕의 치유 제사를 드리는 기사를 뽑기 위한 대결.

이름부터 긴 이 대결은 카를로스 왕국 역사상 처음 있는 행사였다.

왕의 치유를 위한 제사가 자주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그 제사들은 그동안 왕의 호위 기사가 해왔기 때문이었다.

처음 하는 행사였고, 시간도 많지 않았지만, 왕실 관리들은 수월하게 행사를 준비했다.

처음 하는 행사였지만, 왕실 기사들끼리 싸운 것이 처음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준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왕실 기사단에 기사단끼리의 결투와 대련이 한두 번 있던 것도 아니었고, 수많은 싸움 끝에 이미 대련 규칙이 정해져 있었다.

무기는 전용 무기를 인정하고, 대신 갑옷은 왕실 기사단의 판금 갑옷을 입는 것으로 하는 것이 왕실 기사단의 대련 규칙이었다.

갑옷은 같은 갑옷을 쓰면서 무기는 전용 무기를 허락하는 것은 차별처럼 보였지만, 이 세상은 초능력을 쓰는 세상이었다.

전용 무기를 이용해서 능력을 쓰는 사람도 많았으니,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나도 왕비의 하녀들의 도움으로 왕실 기사단의 갑옷을 입게 되었다.

판금 갑옷이 거추장스러울까 걱정했는데, 입고 보니,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왕실 기사단 갑옷은 거의 유물에 가까울 정도로 편했다.

그동안 입었던 가죽 갑옷에 뒤지지 않았다.

작년에 몇 번째 전 삶에서 왕실 기사단의 움직임을 보고 감탄했었는데, 그 감탄을 괜히 했나 싶을 정도였다.

다만, 주변을 느끼는 감각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가까운 거리는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판금 갑옷을 차려입고, 투구를 쓰니, 나도 왕실 기사단처럼 보였다.

다만, 왕실 기사단의 문양은 지워져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왕실 기사단도 아니면서 기사단의 문양은 쓸 수 없었다.

나는 투구를 쓰고, 바이저를 내린 뒤 거울 앞에 섰다.

다른 기사들보다는 키가 작았지만, 판금 갑옷을 입고 거울을 보니, 어엿한 어른처럼 보였다.

준비가 끝난 뒤, 기다리고 있던 왕실 관리의 뒤를 따랐다.

뒤에 남은 하녀장과 왕비의 하녀들이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관리의 안내를 받아, 한참을 걸으니, 정원에 둘러싸인 연무장이 나타났다.

길치도 아니었는데, 이곳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하기가 쉽지 않았다.

꽤 걷기는 했고, 이리저리 돌아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기억하기가 어려울 리가 없었다.

편법이었지만, 천재로 불리던 사람이었다.

몇 번 보지 않고 다른 사람의 검술을 훔쳐 낸 사람으로 지금 이 상황은 확실히 이상했다.

"마법 같은 걸까……."

"유물입니다. 연무장에 묻혀 있다고 들었습니다. 왕가에 인정받지 못한 사람은 찾을 수도 들어올 수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내 혼잣말을 듣고, 안내하던 젊은 관리가 대답해 주었다.

"저도 갱신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릴 겁니다."

말을 하는 쪽은 어떻게 기억하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대답해 주었다.

아무래도 대충이나마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비밀로 해야 할듯했다.

내가 이 정도나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마나 감응력’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작은 연무장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아는 얼굴도 많이 있었다.

제일 먼저 아이샤 공주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샤 공주는 드레스를 입고 서 있었다.

어린 소녀가 입은 드레스가 무척이나 귀여워 보였지만, 그녀의 표정은 전투를 앞둔 기사 같았다.

내가 그녀의 호위 기사로 싸우러 나온 것인 만큼, 그녀도 왕족으로 이 자리에 나와 있었던 것이었다.

공주 옆에는 대공녀가 있었다. 제2 왕자의 초청을 받고 오게 된 대공녀였지만, 그녀는 제2 왕자 쪽은 시선도 주지 않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왕자들이 다 와 있었다.

한쪽에는 대공녀를 자꾸 쳐다보는 제2 왕자가 있었다.

제2 왕자의 옆에는 나와 같이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가 보였다.

판금 갑옷으로 전신을 가리고, 투구까지 써서, 근육도 생김새도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키가 작은 기사였다.

나하고 같거나 작을지도 모르는 작은 키의 기사였다.

기사가 입고 있는 갑옷도 왕실 기사단의 문양이 지워져 있었다.

제2 왕자의 호위 기사는 소속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었다.

제2 왕자 옆에는 장교 복장을 한 노인들이 보였다.

많이 늙은 것을 보니, 계급장을 보지 않아도 어딘가의 장군 정도는 될 게 분명했다.

다른 쪽에는 죽기 전에 봤을 때처럼 미리 준비한 화려한 의자에 앉아있는 제1 왕자가 보였다.

제1 왕자는 저번에 보았을 때처럼, 지루해 보였다.

제1 왕자와 같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는 사람들이었다.

멋진 중년인은 모레나 자작이었다. 이바나의 아버지인 게 분명한 디버퍼 능력자.

죽을 생각이긴 했지만, 자작의 능력은 무서웠다.

발레아 이후 처음으로 육체 능력자가 아닌 능력자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만약, 나중에라도 제1 왕자에게 손을 쓰려면, 저 자작의 능력을 뛰어넘을 방법을 찾아야 할 게 분명했다.

그 옆에는 왕실 기사단 문양이 그려진 갑옷을 입고 있는 호위 기사와 왕실 기사단 부단장이 같이 서 있었다.

부단장이 호위 기사의 아버지였으니, 부단장이 와 있는 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단장 옆에 서 있는 남자는 확실히 이곳에 와 있는 게 이상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머리 두 개는 더 위에 있는 거인.

왕실 기사단장이 와 있었다.

그 옆에 세우타 공작까지 와 있는 것을 보니, 공작이 그를 데려온 것 같았다.

기사단장은 나에게 손을 흔들더니, 옆에 서 있는 부단장에게 자꾸 뭐라고 말을 걸었다.

그런데, 간간이 들리는 소리는 도박이니, 얼마를 걸자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부단장에게 이번 대결에 내기를 걸자고 꼬시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 보는 노인분들 몇 명과 신관도 한 명 와 있었다.

젊어 보이긴 했지만, 입고 있는 옷이나 표정만 봐도 높은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신관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마지막으로 도착한 모양이었다.

조금 낯 뜨거웠지만, 어차피 얼굴이 안 보이니, 시선들을 무시하고 공주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공주는 내 인사를 받아 주었고, 나는 다른 호위 기사들처럼 공주 앞에 섰다.

내가 자리를 잡자, 신관이 앞으로 나섰다.

왕실 관리가 진행할 줄 알았는데, 제사 때문에 신관이 진행하는 모양이었다.

"왕의 치유를 빌고자, 최고의 기사를 보내겠다는 여러분의 성심 때문에, 이 자리가 마련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신관이라서 그런지 포장을 멋지게 해 주었다.

"왕가 역사상 처음 있는 성심에 교단도 여러분의 마음에 보답하기로 했습니다. 왕의 치유를 위해 최고위 성법을 시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신관의 말에 자리가 무척 소란스러워졌다.

최고위 성법은 교단에서도 웬만하면 하지 않으려는 제사였다.

교단 최고의 제사로 시행할 수 있는 신관도 거의 없었고, 효과도 알아보기 어려워 교단마저 꺼림직하게 여기는 제사였다.

그런 성법을 해준다니…….

여태, 왕가와 거리를 두던 교단을 봐서는 이상한 일이었다.

거기다, 말이 많은 최고위 성법이었지만, 최고위 성법이라면, 효과가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곤란해지는 사람들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벌써, 두 왕자의 표정이 안 좋아진 게 눈에 들어왔다.

‘분명 카롤로스 왕국에 있는 신전들에는 최고위 성법을 할 수 있는 신관이 없을 텐데…….’

그렇다면, 지금 말하고 있는 젊은 신관이 그 최고위 성법을 할 수 있는 신관일 터였다.

"그럼, 이거 무조건 이겨야 하는 거 아냐?"

"그렇지, 최고위 성법이면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이 내릴 테니."

다른 제사들도 그렇지만, 최고위 성법이라면, 대단한 신관을 중심으로 수많은 신관이 유물과 함께 제단에 능력을 때려 붙는 작업을 가리켰다.

문제는 불가능한 기적을 일으키는 일이라, 쓸만한 효과를 본적이 거의 없었지만, 능력이 사용되고, 유물이 소모되는 것은 확실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 능력들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고위 성법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내려오고 있었다.

한순간에 각성한 평민 이야기라던가, 능력이 강해져서 대귀족으로 올라선 귀족 이야기라던가.

교단이 일반인이 제사에 들어오지 못하게 철저하게 막는 것은 그런 소문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최고위 성법이라니.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질 만도 했다.

호위 기사들의 기세도 달라졌다.

여유롭게 흐르던 마나들이 날카롭게 치솟았고, 눈들이 퍼렇게 빛났다.

계속 거절하던 부단장이 내기하기로 한 것 같았고, 지루해하던 제1 왕자도 이야기를 듣고, 즐거워 보였다.

고의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관의 말은 형식적이던 대련에 불을 지른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럼 먼저, 제비뽑기를 이기신 제2 왕자님의 호위 기사는 부전승으로 올라가고, 제1 왕자님의 호위 기사와 공주님의 호위 기사의 대결이 있겠습니다."

제비뽑기는 제1 왕자와 제2 왕자만 했던 모양이었다.

공주가 나중에 끼어든 것이니, 제비뽑기를 할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였다.

제삼자인 내가 들어도 유치한 이야기였다.

제비뽑기는 신관의 말대로 제2 왕자가 이겼고, 이긴 제2 왕자는 오히려 아쉬워한 모양이었다.

공주의 호위 기사와 싸우지 못하게 되어서 섭섭했다나.

‘그럼, 싸울 수 있게 해 줘야지.’

나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구경하는 제2 왕자를 힐긋 쳐다본 뒤에, 앞으로 나섰다.

연무장 가운데 서서, 몸을 돌려 공주에게 인사를 했다.

공주도 드레스를 잡고 내게 고개를 숙였고, 나는 몸을 돌려 앞에 선 기사를 바라보았다.

일반 남자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왕실 기사가 앞에 서 있었다.

"왕실 기사 다빗이다. 하비에르에게 대단한 후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보다 강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던데, 그 실력을 보게 되어 기쁘다."

정치적이긴 했지만, 부단장도 기사답더니, 아들도 무척이나 기사다웠다.

하비에르 선배도 알고 있는 것을 보니, 기사 생활도 잘하는 것 같고.

한마디 말만 들었지만, 사람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아이샤 공주의 호위 기사, 알렉스입니다."

다만, 나는 지금 공주의 호위 기사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제1 왕자와 부단장에게는 악감정을 상당히 가지고 있었다.

사람이 좋던, 훌륭한 기사건 상관없었다.

제1 왕자 밑에 있는 이상, 봐줄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내친걸음, 실력을 숨길 생각은 없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신관이 말과 함께 물러서고, 기사가 첫수를 양보하자,

나는 대검을 들고, 앞으로 달려갔다.

대검의 날이 일렁이고, 몸의 마나가 가득 치솟았다.

놀란 기사의 얼굴이 눈앞에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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