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5화
제5편 두 번째 신검 (1)
유물 주머니에 넣을 수는 없으니, 망가진 검을 낡은 천에 감쌌다.
망가진 검은 이제 낡은 천에 감싸인 길쭉한 무언가가 되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물건들 때문에 청년이 머리를 쥐어뜯는 것을 보고, 발레아는 슬쩍 고물들을 다시 한자리에 모아주었다.
청년은 땅에 박을 정도로 발레아에게 머리를 숙였다.
머리를 숙이는 청년을 뒤로하고 우리는 대장간을 나섰다.
대장간을 나선 뒤, 나는 들고 있던 천 뭉치를 툭툭 두드리며 공주에게 물었다.
"이거 어떻게 할까요?"
"네?"
공주는 내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공주님을 따라와서 찾은 검이니까요, 어떻게 할지 공주님이 결정하셔야지요."
이런 것은 확실히 해두지 않으면 곤란했다.
공주 성격에 자기 것이라고 채갈 것 같지도 않고.
조별 과제 전체 소유로 하려나?
"하지만, 그 검은 공자님이 사신 거잖아요."
고물 산을 산 게 나니까 이것도 내가 산 것이라는 이야기인 건가?
"저는 실제로 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 만족해요. 지금은 보이지도 않고요."
공주 말대로 하늘을 가로지르던 선은 사라진 상태이었다.
자연스럽게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망가진 검을 발견한 뒤에, 내가 검을 쥐고 이리저리 마나를 흘려 넣다가 없애게 된 것이었다.
피센 후작가의 ‘신검’은 마나 선이 나오는 부분이 망가졌다면, 이 검은 마나 선이 나오는 부분만 멀쩡한 것 같았다.
마나를 움직여서 그 기능을 끄고 켤 수 있었다.
다만, 아무나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마나 선이 보이는 사람이어야 이걸 끄고, 켜는 감각인지 이해할 수 있을 테니.
공주가 저렇게 말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다른 사람은 어쩔지,
나는 같이 걷고 있는 발레아를 바라보았다. 발레아는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저는 그게 뭔지도 몰라요. 생각보다 스펙터클 하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구경을 했으니, 저는 만족. 대신 저도 열심히 일했으니, 수고비나 주세요. 맛있는 음식으로."
"어, 그럼 저도요. 안내한 수고비."
내 앞에서는 공주도 어른인 척을 하지 않게 되었다.
보기는 전보다 좋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요구하게 되면 진땀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런 동네에서 귀족과 왕족을 만족시킬만한 식사라니…….
이건, 야시장에서 고급 레스토랑을 찾는 난이도였다.
하지만, 검을 얻게 되었는데, 그냥 모른척할 수도 없었다.
길로 다니면서도 물어보고, 큰 대장간에 공식적인 목적이었던 장검의 수선을 요청하면서도 알아보았다.
다행히 쓸만한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대장간을 찾는 큰 손들이 있었던 모양인지, 화려하고 비싼 식당이었다.
부자가 되니, 이건 좋았다.
바가지 씌울 게 역력한 식당에 와서도 손을 떨지 않을 수 있다니.
가격표를 보고, 그냥 밖으로 나가야 했던 전생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비싼 식당인 만큼 식당은 칸막이로 나뉘어 있었다.
주변의 시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공주도 발레아도 편한 얼굴이 되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먹고 싶은 것은 뭐든지 시키라는 졸부의 패기를 보여주었다.
내 호언장담에, 두 여성은 취향에 맞는 제일 비싼 음식들을 시켰다.
공주야 먹는 게 그런 것이니 당연했지만, 발레아는 정말 한바탕 나를 벗겨 먹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검을 얻어서인 것도 있지만, 생각보다 이 식당이 내게 도움이 되는 곳이었다.
"요즘 시세가 너무 올랐죠?"
"다들 사재기 중이니 오르지 않을 리가 없죠."
"결국, 내전인가요?"
"다들 왕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우리야 돈을 벌어서 좋기는 하지만, 나라 꼴이 어떻게 되려는지."
귀에 마나를 슬쩍 불어넣으니, 주변의 대화가 바로 들려왔다.
"후작은 제1 왕자 쪽이죠? 설마 내전이 되면 제2 왕자 쪽과는 거래가 끊어지려나요."
"글쎄요. 피센 후작은 우리 장사꾼들보다 더한 상인이잖아요. 뒷구멍으로는 거래를 할 걸요?"
칸막이가 친 식당에서 주변이 들리지 않게 작게 속삭이고 있었지만, 내 귀를 벗어날 수는 없었다.
"두 왕자만 치고받아도 문제인데, 공국왕도 참가할 것 같고."
"제국도 끼어들걸요."
"욕심 있는 대영주는 독립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을 테죠."
"내전 전에 슬슬 영지 전부터 벌어지겠군요."
"그레시아 공작님은 벌써 주변 정리를 끝냈다는 모양이에요."
"그분이야 이런 건 확실하신 분이니……."
"일 터지면 그레시아 공작령으로 가야 하나……."
"외국으로 가지 않으려면 그게 좋겠죠."
계속 듣고 있으니, 그레시아 공작령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왔다.
그레시아 공작령에 대해서 예상보다 훨씬 더 사람들이 좋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혼란한 왕국에서 하나 남은 안식처 같은 느낌이었다.
좀 이상했다. 공작령이 다른 영지들에 비해 괜찮기는 했지만, 지상 낙원은 아니었다.
식당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좋은 곳은 아니었다.
소문이 과장되는 경우가 많다지만, 이건 뭔가 인위적인 냄새가 났다.
분명 이런 이야기들이 돌아다니는 이유가 있었다.
‘공작가에서 이런 소문을 뿌리는 걸까? 공작도 뭔가 노리는 게 있었나?’
나는 식사를 멈추고, 잠시 공작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잘생기고 냉철한 얼굴.
과연, 혼란을 이용하면 이용했지, 혼란에 휘둘릴 성격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공작도 뭔가를 한다는 소리인데…….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는 어린 서자 따위가 참견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뒤통수를 맞을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인지 알아는 봐야 할 것 같았다.
그레시아 공작가 이야기 외에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내전과 왕자들에 관한 이야기. 경제 이야기와 유물 이야기. 치안 불안으로 용병들을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까지.
상인들이 알고 있는 왕국에 대한 고급 정보들을 무척이나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교단에 대한 말도 있었다.
"교단은 뭘 하는 건지……. 나라가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신전에서 나서 주어야 할 것 아니야."
"교단이야 내전이나 영지 전에서는 언제나 중립이었으니까요."
"그동안 헌금도 엄청나게 받았으면서……."
나라가 혼란하니까 가만히 있던 교단도 욕을 먹게 된 것 같았다.
그래도, 전생을 생각하면 그리 과격하게 헌금을 모으지는 않을 것 같던데…….
사람들을 치유 스킬로 치료해서 돈을 벌고, 계약 능력으로 번 돈도 많아서 교단은 표나게 헌금 장사를 하지 않았다.
"헌금은 유물 모으는 데 쓰잖아요. 신께 드리는 예물이라니 어쩔 수 없죠."
그러고 보니, 교단도 유물을 모으는 큰 손이었다.
종교라 껄끄러워서 리스트에서 완전히 빼놓았는데, 유물을 그냥 살펴보는 것일 뿐이니, 괜찮을지도 몰랐다.
그럼, 다음 조별 과제 목적지는 수도의 신전으로 할까?
식사를 마치고, 후작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검을 얻은 것은 우선 비밀로 하기로 했다.
후작가 사람들이 알게 되면 곤란했기 때문이었다.
다 망가진 검이었지만, 검을 쓰는 기사들이라면 기사단장의 검과 비슷한 종류의 검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게 분명했다.
망가진 검이었지만, 후작가에서 알게 되면 욕심을 부릴 게 분명했다.
그런 이유로 대공녀에게도 나중에 알리기로 했다. 괜히 만졌다가 빛이라도 왕창 뿌리게 되면 곤란했다.
‘신검 추적자’가 알면 좋아하겠지만, 그에게는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그는 아직 거래 상대일 뿐이었다.
마지막으로 미리사는……. 좋은 학생이었다.
비밀을 알려줄 사이가 아니었을 뿐, 나를 싫어해서 안 알려주는 것이 절대 아니었다.
다음 날까지, 하루 더 후작가에 머문 뒤, 우리는 돌아가게 되었다.
후작은 떠나는 우리에게 선물을 주었다.
"조금 망가지긴 했지만, 지금도 그럭저럭 쓸만할 걸세."
후작은 두 가지 유물을 내게 건네주었다.
하나는 마나를 불어넣는 동안에 빛을 뿌리는 구슬.
원래는 한번 불어넣으면 하루는 방 전체를 밝히는 유물이었던 모양이었다.
다만 망가진 지금은 손에 쥐고 계속 마나를 불어넣지 않으면 바로 빛이 사라지는 반쪽, 아니 기념품으로 쓸만한 물건이 되어버렸다.
또 하나는 물병이었다. 마나를 불어넣으면 공기 중의 수분을 흡수해서 물을 만들어주는 물병.
무척이나 유용한 유물이었지만, 아쉽게도 이 물병도 망가져 있었다.
마나가 질질 새서, 한 시간은 잡고 마나를 불어넣어야지 겨우 한잔이 나올 정도였다.
이것도 기념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후작은 내 생각보다 훨씬 좋은 유물들을 건네주었다.
망가진 유물이면 족했는데, 반쪽이나마 가동되는 유물을 건네주다니.
물론, 대공녀가 있으니, 완전히 망가지든, 반쯤 망가졌든 상관이 없었지만, 후작으로서는 크게 선심을 쓴 것이었다.
그것도, 나를 상대로.
"알렉스 학생에게 주는 걸세. 앞으로 크게 성장할 기사이니, 크지 않은 선물이지만 이것으로 기념을 삼도록 하지."
공주와 대공녀에게 방문 기념 선물을 주는 게 어떻냐고 말했지만, 후작은 꼭 집어서 내게 선물한다고 말했다.
후작의 과한 친절에 감사를 표하고, 우리는 피센 후작령을 떠났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도시를 벗어나, 마차는 수도를 향해 달려갔다.
* * *
수도에 도착해서 ‘신검 추적자’, 레스티와 헤어졌다.
신검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지 못해 아쉬워했던 그였지만, 그래도 피센 후작가에 있던 검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은 만족한 듯했다.
이제 그는 다시 ‘경매장 주인’으로 돌아갈 터였다.
대공녀가 공국왕의 저택 앞에서 내린 뒤, 아카데미로 돌아갈 조원들은 대공녀의 마차를 타고 아카데미로 향했다.
나는 아카데미로 가지 않고, 대공녀와 함께 남았다.
수도에 있는 공작의 저택에 들르겠다는 핑계를 댔지만, 실제로는 대공녀와 할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물로 받은 유물을 고쳐달라는 거죠?"
할 말이 있다는 말에 대공녀는 집안으로 나를 안내하며 내게 말했다.
"네, 원래 공주님과 대공녀님께 드려야 하는 선물인데, 후작이 다르게 받아드린 것 같습니다."
"제 선물이었어요?"
대공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둘 중에 뭘 가지고 싶으신가요? 고르시면 됩니다. 고장 난 유물을 고쳤다는 것이 알려지면 안 되니, 공주님께는 다른 것을 드릴 생각입니다."
"조심할게요."
내 말에 대공녀는 후작가에서 벌인 일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나로서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기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아이샤 공주님에게는 어떤 걸 주실 건가요?"
"아직 생각 안 해봤습니다."
"그동안 제가 고쳐놓은 유물 중에, 흠, 뭐가 좋을까나……."
대공녀는 방에 도착해서도 자기가 받을 선물 대신 공주에게 줄 선물을 고민했다.
대공녀의 지분도 있기는 했지만, 내 유물들인데…….
이미 말을 꺼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대공녀의 고민을 멈추게 하는 대신에, 나는 가져온 천 뭉치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