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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04화 (204/563)

제204화

제4편 선을 따라가다 (2)

우리는 마차도 놔두고, 기사나 고용인도 없이 평상복을 입고 거리를 나섰다.

공주와 내가 검을 차고 있었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다 크지 않은 소년 소녀가 어린 여동생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는 듯한 모습이었다.

나는 즐거워 보이는 발레아에게 다시 물었다.

"시내 구경을 하는 게 아니라, 대장간을 보러 가는 건데 괜찮겠어요? 공주님이야 기사 학부생이니, 문제가 없어도, 발레아 영애는 재미가 없을 텐데……."

내 말에 공주도 발레아를 쳐다보았다.

"재미있을걸요? 알렉스 공자가 혼자 간다고 했으니, 분명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거예요."

발레아는 대장간 구경도, 시내 구경을 하러 나온 것도 아니었다.

나를 따라다니며 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구경할 심산이었다.

문제는 그동안 지은 죄가 있으니, 반박할 말도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더구나, 이번에도 다른 이유로 혼자 나오려고 했었으니, 더욱 할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같이 나왔는데 두 사람만 떼어놓고 다닐 수도 없었다.

다들 자신 몸은 지킬 수 있는 여성들이었지만, 이 거친 광산 도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었다.

‘대장간들 쪽으로 선이 이어져 있어서 다행인 건가.’

대장간까지 가는 것은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대장간에 간 뒤에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았다.

역시, 거리를 직접 걸어보니, 이 도시는 관광을 하기는 힘든 도시였다.

고급 주택가를 벗어나니, 도시의 어려운 상황이 여실히 느껴졌다.

지저분한 광부들과 지쳐 보이는 영지민들까지.

치안이 엉망이 된 다른 영지들과는 다른 의미로, 이 영지도 상당히 안 좋아 보였다.

"광산이 있어서 영지민들이 지저분하기는 하지만, 이런 영지가 보통이에요."

공주도 표정이 안 좋았는지, 발레아가 현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하기야, 남작이 다스릴 때의 발레아의 영지도 다를 게 없었다.

치안이 망가진 뒤에 보기는 했지만, 다른 영지들은 더 심했다.

이바나가 있던 영지가 그나마 괜찮았지만, 그 영지는 무척이나 작았다.

‘큰 영지 중에 나름 괜찮았던 영지는 우리 영지밖에 없었나…….’

그렇게 따지면, 성격 나쁜 아버지가 대단히 훌륭한 영주라는 소리였다.

생각해보면 그레시아 공작은 ‘가정에 소홀한 위인’ 같은 인간일지도 몰랐다.

뭐, 위인이든 아니든 별 상관없었다.

나는 피해를 본 쪽이었으니, 공작이 위인 할아버지라도 내겐 의미가 없었다.

지저분한 주변을 보지 않으려다 보니, 공주의 시선이 하늘로 향하게 되었다.

그녀가 보는 방향은 정확하게 마나의 선이 가리키는 방향이었다.

공주가 마나의 선을 보는 것을 보고, 나는 결정을 내렸다.

나는 공주와 나만 두르는 방음벽을 쳤다.

공주도, 발레아도 내가 방음벽을 두른 것을 알아차렸다.

방음벽은 이게 안 좋았다.

가까이 있거나 마나에 대한 감각이 좋으면 방음벽이 펼쳐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무협지에서 보았던 전음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혹시 그런 능력은 없는지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나는 눈으로 발레아에게 사과하고, 공주에게 물었다.

"하늘에 뭔가 보이는 거죠?"

마나의 선은 나도 보였지만, 공주에게는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마나 감응력’을 지녔다는 것은 공주도,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마나 감응력’은 이 나라의 왕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다.

두 왕자가 마나 감응력을 다 가지고 있어서, 다음 대 왕을 뽑는 게 어려운 일이 되어 버린 것이었고,

공주가 자신이 가진 ‘마나 감응력’을 숨기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더구나, 아직 그레시아 공작가는 왕위 계승 순위에 남아있는 가문이었다.

그 말은 나도 공식적으로는 왕족이라는 이야기였고, 다음 대 왕이 될 자격이 없지는 않다는 말이었다.

물론, 서자라는 약점 때문에 왕 이야기도 나오지 않겠지만.

문제는 다음 대 왕을 노리는 사람들이 내가 ‘마나 감응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두 왕자는 물론, 양 파벌 귀족이 벌떼같이 나를 죽이려고 달려들 터였다.

공주도, 카트린도, 왕비도, 이 일에 관해서는 믿기가 쉽지 않았다.

내 물음에 공주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하늘에 선이 그어져 있어요. 어제부터 보였는데, 여태 안 없어졌어요."

혹시 나는 보이지 않는지, 궁금해했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물어봤다.

"그냥 선인가요? 착시 같은?"

"어제는 착시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제 능력 때문에 보이는 것 같아요. 마나로 만들어진 선 같은데……."

확실히 공주도 제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방향도 어제와 같나요?"

"네, 저택에서 우리가 가는 방향, 저쪽으로 이어져 있어요."

공주가 가리키는 방향은 마나의 선이 이어진 곳과 같았다.

"흠, 방향도 그리 다르지 않으니, 대장간을 보고 그 선이라는 것도 한번 알아볼까요."

"아니,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 그래야 했다.

혼자 가는 것도 실패했고, 마나의 선도 나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의심을 사지 않으려면, 볼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일을 떠넘기면 되는 것이었다.

당장은 혼자 이득을 보기는 어렵겠지만, 나에게는 한가지 비장의 수가 있었다.

나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었다.

거기까지 이야기를 한 뒤에 방음벽을 없앴다.

방음벽을 없애자, 공주는 바로 발레아에게 사과했다.

"왕족에 관한 일이라 방음벽을 쳤어요. 죄송해요. 같이 있는데 알려드리지 못해서……."

발레아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하죠. 그리고, 방음벽을 친 건 공주님이 아니라 알렉스 공자인걸요."

확실히 내가 방음벽을 친 것이고, 일을 만든 것도 나이긴 했지만, 발레아가 저렇게 말하니 뭔가 억울했다.

구경할 것은 없었지만,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며 중심가로 향했다.

하늘로 솟구친 하얀 연기가 점점 가까워졌다.

중심가에 모여있는 대장간들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리의 모습도 달라졌다.

지저분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어둡고 칙칙했던 분위기가 무척이나 활기차게 변해 있었다.

상가들도 많았고, 돌아다니는 사람 중에 용병이나 장사꾼들도 많이 보였다.

나는 공주를 선두에 세우고, 그녀를 따라 걸었다.

나는 선이 안 보인다고 했으니, 선이 보이는 공주를 따라가는 게 당연했다.

신기하게도 발레아는 내가 공주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보고도 의아해하지 않았다.

발레아는 요즘 내가 무엇을 해도,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공주를 따라 걸어가니, 어느덧 대장간들이 모여 있는 거리에 도착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대장간들이 많았다.

이 거리에서 무기와 농기구, 각종 도구까지, 수많은 물건이 만들어지고, 팔리고 있었다.

대장간들에서 흘러나오는 열기는 거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고, 같이 새어 나오는 소음은 귀를 아프게 했다.

대장간에 왔으면, 우선, 한곳이라도 들어가서 검을 수리해야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주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뜨겁고 시끄럽고 복잡한 거리를 지나, 한적한 뒷골목을 거쳐서, 공주는 한 대장간 앞에 멈춰 섰다.

낡고, 한적한 대장간.

불도 꺼졌는지, 대장간 안에서 열기도 나오지 않았다.

나도, 공주도 멍하니 불 꺼진 대장간을 바라보았다.

내가 다른 대장간을 찾지 않고 공주를 따라온 이유도, 공주가 멈추지 않고 계속 걸은 이유도 한 가지밖에 없었다.

이 대장간에 마나의 선이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청난 유적은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 선 끝에 이런 대장간이 이어져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공주는 대놓고 실망한 표정이었다.

뭔가 대단한 것을 기대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수도 밖에서 처음 보는 특이한 현상이었으니, 모험이나 탐험을 꿈꿨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런 대장간이라면 모험도, 탐험도 꿈꾸기 어려워 보였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

전생에 보았던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에서는 이런 대장간에 엄청난 실력의 늙은 대장장이가 있었다.

대장장이의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보상으로 멋진 검을 획득하는 클리세가 등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아, 오랜만에 손님이네요. 하지만, 너무 늦게 오셨는데요. 쓸 만한 물건들은 모두 팔려나갔어요. 며칠 뒤에 고물로 다 넘길 생각이었는데……."

대장간 안에 있는 사람은 지저분한 젊은 청년이었다.

그는 대장장이같이 근육도 있지 않고, 불에 그슬린 흔적도 없는 평범한 영지민이었다.

"그래도 남은 게 있으니 한번 확인해 보세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청소를 안 해서 지저분하니까 그건 감안하시고요."

그는 우리 모습을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추가했다.

평복을 입고 있어도, 일반인처럼 보이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면서 청년에게 물었다.

"대장간은 아버지가 하신 건가요?"

"네, 얼마 전에 돌아가셔서 다 처분하려고 내놓았죠."

클리세가 잘못된 게 아니라, 설마, 내가 너무 늦게 온 걸까?

"혹시,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대단한 대장장이셨나요?"

"아뇨,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농기구나 겨우 만들어서 가족들 입에 풀칠 정도만 겨우 하시는 분들이었는데요. 그 꼴을 보기 싫어서 직업을 잇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일 뿐이었다.

내가 들어간 뒤에 공주와 발레아도 대장간에 따라 들어왔다.

발레아는 지저분한 대장간이 마음에 안 들어 했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끝까지 나를 따라다닐 모양이었다.

마나의 선은 대장간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청년이 안내하는 곳도 같은 곳이었다.

청년은 버려진 화로 옆을 지나, 대장간의 뒷마당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망가지고 녹슨 물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고물의 동산, 농기구와 병장기, 그리고 원형을 알 수 없는 고물들이 마구 뒤엉켜있는 곳에서 맑은 마나의 선이 길게 자라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공주가 난감해했다.

"저 안으로 이어져 있는데……."

공주가 고물 산 중앙을 가리켰다.

"저길 헤쳐보면 되는 거죠?"

방음벽을 만들어 숨겼지만, 발레아는 공주가 뭔가 봤다는 것을 대충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 정도야 발레아라면 알아챌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 잠깐만."

손을 뻗으려는 발레아를 말리고, 우리를 안내한 청년에게 물었다.

"저기 쌓인 물건들 전부 다 하면 얼마죠?"

"네? 이거 다요?"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면 이 고물 산을 이대로 놔둘 수 없었다. 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다 사버려야 했다.

"금화 반 개는 주셔야……."

나는 품에서 금화를 꺼내 그에게 던져 주었다.

"뒤처리 비용까지입니다."

"네, 넵. 감사합니다."

청년은 우리에게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럼, 다 부셔도 되는 건가요? 고물 산의 주인님?"

"네, 중앙부만 남기고 해체해 주세요."

"알겠어요."

발레아가 다시 손을 뻗었다.

콰르르르르르.

오랫동안 영역을 구축한 것도 아니었고, 그녀의 능력은 환상 쪽 능력에 가깝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물체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높게 쌓여 있던 고물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녹슨 낫이 날아가고, 방패 비슷한 것이 옆으로 굴러갔다.

마치 고물들이 사방으로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히힉!"

청년이 옆에서 작게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반인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능력을 쓸 수 있는 귀족들이라는 것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영지민들이 귀족을 상대할 일은 거의 없었다.

다들 먼발치에서 귀족들을 보았을 뿐, 그들이 상대하는 것은 귀족이 보낸 집사나 고용인이 전부였다.

아마도 청년은 귀족이 능력을 쓰는 것을 처음 본 모양이었다.

사방으로 날아간 고물 산 가운데에는 이상하게 뭉쳐진 쇳덩어리가 있었다.

마치, 안에 있는 물건을 감싼 것 같은 쇳덩어리였다.

나는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히힉!"

다시 비명이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쇳덩어리에 검을 내려쳤다.

날이 상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일렁이는 검기가 쇳덩어리를 잘라냈다.

그렇게 잘라내자, 선이 이어진 물건을 볼 수 있었다.

검이었다.

망가진 검. 검날이 구겨지고, 이가 나간 검이었다.

하지만,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 검은 피센 후작의 신검과 같은 ‘신검’의 형제 검이었다.

왜 이런 곳에 쇳덩어리에 쌓여 굴러다니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유물 하나를 찾은 것이었다.

망가진 검이었지만, 괜찮았다.

지금 후작가에는 망가진 유물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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