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203화 (203/563)

제203화

제3편 선을 따라가다 (1)

하늘을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선.

공주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발레아가 물었다.

"왜 그래요?"

"하늘에 흐릿한 선 같은 게 보여서요."

공주의 말에 발레아가 눈을 가늘 게 뜨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보일 리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발레아의 말에 공주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지금은 또 안 보이네요. 착각했나 봐요."

고개를 흔드는 모습에 발레아는 고개를 갸웃거렸을 뿐이었지만, 나는 공주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렇게 말한 뒤에도 하늘을 힐끔거리는 모습을 보니, 말과 달리 지금도 계속 보이는 모양이었다.

하긴, 내가 보인다면, 공주도 보일 만했다.

그럼, 제1 왕자, 제2 왕자도 여기에 있었으면 보이려나?

하지만, 능력도 성장 여하에 따라 급이 나뉘게 되니,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이 아니었다.

최대한 빨리, 저 선 끝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확인해 봐야 했다.

대련이 길어진 덕분에 오늘 일과는 이것으로 끝내기로 했다.

저택에 도착한 우리는 저녁 식사 때 모이기로 하고,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여학생들이 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뒤에, 나는 노크를 하고 ‘신검 추적자’, 레스티의 방에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그는 팔을 벌려 나를 환영했다.

유물 거래 때 보았던 과장된 행동. 일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줄 알았는데, 습관인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환영을 받았으니, 편하게 침대 옆 의자에 앉았다.

나는 침대에 앉은 레스티에게 물었다.

"검을 보고 뭔가 알아냈습니까?"

열심히 시간을 벌어줬으니, 뭐라도 건졌을 게 분명했다.

"엉성한 분장으로 찾아오셔서 생각보다 어린 나이라는 것은 알아차렸지만, 아카데미 학생이자, 그레시아 공작님의 아들이신 알렉스 공자님이라는 것을 알고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하지만, 내 정체를 알고도 전혀 놀란 표정이 아니던데…….

거기다, 뜬금없는 이야기를 왜 지금 꺼내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본 장면만큼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신검 기사 세르히오에게 밀리지 않고 그 오랜 시간을 싸우다니. 거기다 마지막에는 공자님이 세르히오 기사단장의 검을 베어버렸지 않았습니까."

세르히오 기사단장도 별명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신검 기사라니, 신검 주인으로 마음에 드는 별명일 것 같았다.

"평범한 검으로 지도 대련을 해주었던 것에 불과합니다. 신검을 들었으면 바로 끝났을 겁니다."

내가 신검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면 불리한 대결이었을 지도 몰랐다.

물론, 내가 목걸이나 다른 유물을 쓰면 또 달라지겠지만, 그렇게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었다.

"세르히오 단장은 신검이 없다고 해도 왕국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기사입니다. 그런 기사와 몇 시간 동안 맞상대를 했다니……. 다른 이들이 알면 공자님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겁니다."

왜, 딴소리를 계속하는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비밀입니다. 제 정체는 정보로 팔아먹지 않기로 약속했었을 텐데요."

"아니, 이건 비밀로 할 일도 아니잖습니까? 본 사람도 많고, 후작가에서 공식적으로 벌어진 대련이니, 알려진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알리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귀족들에게 이번 일을 팔아먹고 싶은 모양이었다.

"우리 조원들과 대련 당사자들만 보았습니다. 그리고, 후작이 소문나는 것을 막을 겁니다. 그런데도 소문이 나면 후작이 화를 낼지도 모릅니다."

저번 삶에서는 저택 고용인들이 다 보게 되어 어쩔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우리 말고는 대련을 본 사람이 없었다.

아들이 결투에서 열심히 두들겨 맞고 돌아왔는데, 가문의 최고 기사가 같은 상대에게 이기지도 못했다는 소문이 도는 것을 좋아할 리가 없었다.

더구나, 그 상대는 아직 아카데미를 다니는 학생이었다.

내 인기가 올라가기보다는 후작의 명예가 떨어질 게 당연했다.

언젠가는 알려지겠지만, 그 소식을 최대한 늦추려고 할 게 분명했다.

"그렇겠죠."

레스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 검은……. 다행하게도 신검과 관련이 있는 검이었습니다."

단검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던 내용이었다.

그래도, 유물 감정사에게서 확답을 듣게 되니, 단검에게 들을 때와 달리,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신검의 형제 검이라고 할까요."

레스티는 담담한 어조로 신검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용사 가브릴, 마지막 성기사라고 불리던 가브릴의 신검은 대전쟁 이후 잊힌 옛 교단의 성물입니다."

마왕을 봉인해서 대전쟁을 마무리한 용사들은 각지로 흩어져서 나라를 세우고, 새로운 왕족과 귀족들의 시조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소식이 끊어져서 후손이 남아 있지 않은 용사들도 있었다.

그런 용사 중에는 성기사 가브릴도 있었다.

그런데, 성기사의 신검이 사라진 교단의 성물이라는 것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종교의 성물이 ‘성검’으로 불리지 않고, ‘신검’으로 불리고 있더라…….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을 듯했다.

대전쟁 이후 이 대륙에는 하나의 종교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다른 종교와 교단이 대전쟁 때 쇠락하고 파괴되기도 했지만, 대 전쟁 이후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된 용사들이 하나의 종교만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교단이라는 대명사 자체로 불리는 종교. 이름 없는 신을 믿는 그곳만이 이 대륙에서 종교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교단을 두고, 없어진 다른 교단의 성검을 ‘성검’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을 터였다.

이런 일을 들을 때마다, 용사에 대해 거슬리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성기사가 사라진 것도, 새로 등장한 교단 때문일까?’

그런 의문이 머리에 떠올랐지만, 이어지는 레스티의 말에 의문은 한쪽으로 치워둘 수밖에 없었다.

"대전쟁 때 사라진 그 교단은 ‘신검’ 이외에도 다른 검들을 지부에 내려 수호 기사가 지부를 지키도록 했습니다."

전생과는 달랐다.

이쪽 세상은 성물을 권위의 상징이자, 장식용으로 쓰지 않았다.

의외로 실용적인 세상인 건가.

"그리고, 오늘 본 검은 그 지부를 지키던 수호 기사가 쓰던 검입니다. 아마도 같은 곳에서 만들어졌겠죠."

그 정도면, 단검이 떠든 ‘신검’과 관련이 있다는 말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말을 하는 레스티는 별로 기뻐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실망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피센의 신검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예상했었습니다. 비슷한 능력을 지닌 유물이 비슷한 이름을 가졌으니,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형제 검일 확률이 제일 높았습니다."

"그런데, 왜……."

"아, 왜 이런 표정이냐고요? 열심히 살펴보았는데, 진짜 신검에 대해 알아낸 게 없었습니다. 교단의 수호 성물이라면 서로 찾는 방법 같은 것이라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레스티의 말에 하늘을 가로지르는 마나의 선이 떠올랐다.

‘설마 그 선이 수호 성물끼리 연결된 걸까?’

"오래되어서 감정이 안되는 부분도 있기는 한데, 마나와 관련된 작은 부분이라 이건 상관이 없을 테고……."

그 뒤에도 검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지만, 나는 하늘에서 본 마나의 선을 생각하느라, 그의 말에 집중하지 못했다.

그 와중에 들었던 것은 이번에 확인한 검이 그 사라진 교단의 성물 중에 처음 발견된 검이라는 것과 레스티가 대공녀를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검이 빛을 뿌린 뒤에 한 번 확인해 봤으면 좋았을 텐데요. 기사단장도 조금 느낌이 다르다고 했으니, 제가 확인하면 정확하게 어디가 달라진 것인지 알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고쳐진 부분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공국에 유물을 수리할 수 있는 귀족이 있다고 말한 사람이 레스티였다.

대공녀는 공국에서 온 유물 감정사였고, 그녀의 손 위에서 유물이 빛을 뿌렸으니,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무시무시한 공국왕의 딸. 레스티가 감히 확인하기도 어려운 상대였다.

그래서 슬쩍 말을 돌려 내게 물어본 것이었지만, 나도 당연히 모른 척했다.

"기사단장이 얼마나 놀랐는지 보셨잖습니까. 다시 빌려달라고 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실제로도 검을 다시 빌리기는 어려웠다. 예의는 생각지도 않고, 대공녀에게서 검을 뺏어갔었다.

다시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주는 대신 검을 휘두를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주의할 일이 하나 더 생긴 모양이었다.

비밀을 가지고 있었으면, 잘 숨겨야지, 지금 이바나를 욕할 때가 아니었다.

하기야, 대공녀는 나한테도 쉽게 자기 능력을 털어놓았었다.

‘쉽게 찾아내서 좋아했는데, 좋아할 때가 아니었었네.’

내 방으로 돌아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니, 주변에 비밀을 가진 사람은 대공녀 하나만이 아니었다.

내 주위에는 왜 이리 비밀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드는지 알 수 없었다.

* * *

그날 저녁은 기사단장에게 붙잡혀서 처음으로 과음을 하게 되었다.

계속 마나를 돌린 덕분에 실수는 하지 않았지만,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꽤 안 좋았다.

만찬장에서 후작이 나를 보는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기사단장이 대련 결과를 보고한 듯했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은 그 일을 알지 못해서, 전처럼 후작의 딸들이 나에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마나를 돌려 안 좋은 속을 가라앉히고, 일행이 모여 있을 응접실로 향했다.

"공자님이 제일 늦게 온 것은 처음이네요."

발레아의 뼈있는 인사에 이어, 대공녀가 내 몸을 걱정해 주었다.

"몸은 괜찮아요? 온종일 싸우고 밤에는 그렇게 마시고. 각성을 했다고 해도 몸이 어떻게 버티는지……."

확실히 평범한 일반인이었으면, 중간에 기절했을 양이었다.

"괜찮습니다. 기사의 육체가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웬만한 독도 버티는 몸이었다. 술로 어떻게 되기는 무리였다.

인사가 끝나고, 발레아가 입술을 쭉 내밀며 말했다.

"그럼, 오늘도 유물을 살펴보겠네요."

"다른 유물들도 꺼내 오신다고 하니까요. 볼 게 많을 거예요."

발레아의 의도와는 다르게, 대공녀는 기대가 담긴 표정으로 대답했다.

기대하는 표정과 지루해하는 표정이 교차하는 가운데, 내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잠시 시내를 다녀오겠습니다. 어제 대련으로 검이 많이 상했습니다. 대장간 구경 겸해서 다녀오겠습니다."

아카데미에서 지급된 검이었지만, 그래도 기사 된 도리로 검은 잘 관리해야 했다……. 는 핑계에 불과했다.

이미 부숴버린 검이 여러 개였고, 내 개인 검도 따로 있었다.

우선 저택을 나가야 했다.

너무 늦기 전에 마나 선을 확인해 봐야 했다.

"아, 대장간이 엄청 많았죠? 저도 갈게요."

그런데, 내 말에 공주가 번쩍 손을 들었다.

공주도 유물을 보는 것은 지루했던 모양이었다.

"저도! 저도 가요!"

거기다, 발레아까지.

발레아는 또 음흉한 미소를 짓는 것이, 지루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반란군들의 등장에 대공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들 유물에는 관심이 없군요."

확실히, 유물 조사단이긴 했지만, 공주도 발레아도 유물에 관심이 있지는 않았다.

"그럼, 오늘은 저희 세 사람만 조사하겠어요. 알렉스 공자와 같이 가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테고,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세요."

대공녀의 결정에 미리사가 우울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도 유물 조사가 지루한 것은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와 같이 다니는 것보다는 대공녀와 함께 있는 것을 택했다.

결국, 내 생각과 다르게, 저택을 나서는 사람은 공주와 발레아, 나 이렇게 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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