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98화 (198/563)

제198화

제23편 귀환(3)

유적에는 수십 명이 모여 있었지만, 간간이 들리는 말의 울음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선임 기사는 다시 한번 고함을 치려 했지만, 늦지 않게 학생 중 한 명이 나섰다.

"요하힘 공자는 여기 없습니다."

대공녀였다.

선임 기사는 대공녀가 직접 나설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입을 벙긋거리다가, 겨우 말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숨겨 놓은 범죄자 요하힘을 내놓아라. 계속 방해한다면 왕실 기사단의 검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이유도 말하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지도 않는 포악한 말이었다.

당연히 공주와 대공녀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선임 기사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목에는 진땀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물론, 선임 기사가 진땀을 흘리는 이유는 공주와 대공녀 때문이 아니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거인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내친걸음이었다.

다행히 거인은 뒤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지금 일을 키워야 했다.

선임 기사가 미리 이야기가 된 기사들에게 눈짓했다.

하지만 미리 약속했을 때와 달리, 기사들은 우물쭈물했다.

‘뭐 하는 거야! 나서서 난리 쳐야지!’

선임 기사는 속으로 울화통을 터트렸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흐르자, 대공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훌리안 공국에서 온 프리다 데 카를로스입니다. 방금 제가 한 말도 그 이름의 명예를 걸고 한 말입니다. 말씀하시는 분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나요?"

자신은 대공녀의 이름을 걸고 한 말이었다는 소리였고,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데 대공녀에게 이렇게 시비를 거는 거냐는 이야기였다.

대공녀가 공식적으로 직위를 이야기하니, 기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훌리안 공국이라면……. 설마, 대공녀셨어?"

"어라, 옆에 공주님 아냐?"

"공주님 맞는데?"

"설마, 공주님 앞에서 저런 거야?"

"미친!"

기사들은 테러를 일으킨 자를 잡으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누구를 찾아온 것인지 알지 못했다.

원래는 중간에 선임 기사와 같은 파벌의 기사들이 나서서 다른 기사들을 회유하고, 설득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끼어든 저 거인 때문에 이곳까지 오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선임 기사는 억지를 쓴 것이었다.

그는 다른 기사들이 두 공주를 알아보기 전에 일을 밀어붙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미적거리는 다른 기사들 때문에 결국 일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공, 공주님이셔도 왕, 왕명은 따르셔야 합니다. 요하힘을 내놓으십시오!"

거기다, 눈치 없는 기사 하나가 뒤늦게 나섰다.

기사가 국어책 읽듯이 꺼낸 말에 선임 기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야 계획대로 일이 진행될 리가 없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 기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게 되자, 선임 기사는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일이 꼬이고 꼬여 버렸지만, 그래도 뭔가 결과를 들고 가야 했다.

칩거했던 기사단장이 갑자기 등장한 덕분에 선임 기사는 오히려 발등에 불이 떨어져 버렸다.

다른 때라면 계획했던 일을 물리고, 숨을 죽이고 있어야 했겠지만, 그는 이미 파벌에 발을 너무 깊게 담근 뒤였다.

물러날 곳이 없었다.

여기서 물러난다고, 기사단장이 이해해 줄 리가 없었다.

더구나, 왕세자에게 더 찍혀 버릴 가능성이 컸다. 제1 왕자 파벌이었던 그가 제2 왕자 파벌로 넘어가기도 쉽지 않았고, 결국 뭔가 해야만 했다.

그는 공주들을 죽이는 계획 대신에, 두 공주의 명예를 깎아내리는 쪽으로 일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는 따르는 기사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왕실 선임 기사 에르와르도 입니다. 두 공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만, 방금 들으신 대로 왕족이라도 왕명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요하힘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사죄를 청하면서도 앞에 있는 공주들이 범죄자를 숨겨 주고 있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처음에는 범죄자가 안 보여서 곤란했지만, 계획이 바뀐 지금은 오히려 안 보이는 쪽이 좋았다.

아예 잡히지 않거나 나중에 잡히더라도, 이런 식으로 계속 추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을 죽이는 일에 비하면야 별거 아닌 일이었지만, 왕족이 명예를 잃고 추문에 휩싸이는 것도 작은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공주는 대공녀에게 맡긴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뒤쪽에 있는 기사들을 보는 것 같았지만, 선임 기사는 대공녀를 상대하느라 공주에게 더 관심을 두지 못했다.

"숨기지 않았습니다. 아까 용병이 와서 급한 일이 있다고 그를 데려갔습니다. 우리는 따로 들은 바도 없습니다. 여기 있는 모두가 증인입니다."

"조금 전에 떠났다는 말을 믿기 어렵군요. 이곳까지 오면서 아무도 보지 못했습니다. 확인이 될 때까지 잠시 저희와 함께하시죠."

선임 기사의 말은 두 공주를 임의 동행, 혹은 체포하겠다는 말이었다.

무례한 말에 대공녀는 물론, 공주도 발레아도 표정을 굳혔다.

"여러분을 수도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범인을 찾게 되면 바로 사죄를 청하고 집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공주들을 체포해서 끌고 가는 것을 수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 주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이번에는 참기 어려웠다.

"감히!"

대공녀가 분노에 찬 음성을 토해 냈다.

다른 기사들이 듣기에도 선을 넘은 무례한 말이었다.

하지만, 뒤에 기사단장이 지켜보고 있기에 오히려 다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두 공주도 분노에 차 있었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고, 기사들도 기사단장이 지켜보고만 있어서 어떻게 하지 못하는 상황.

선임 기사로서는 인생에 다시없을 줄타기였다. 뒤에서 지켜보던 기사단장도 감탄했을 정도였다.

다만, 오늘 그의 계획은 마지막까지 엉망이 될 예정이었던 것 같다.

멀리서 말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공주가 알아보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알렉스예요!"

그녀의 말에 다른 여학생들도 기사단 뒤쪽을 보게 되었다.

다들 표정이 밝아졌지만, 다시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저 말은 분명 아까 본 말인데……."

발레아의 말대로 그가 끌고 오는 말은 얼마 전에 보았던 비실거리는 말이었다.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말 안장에는 붉게 물든 짐이 얹어 있었다.

* * *

멀리, 기사단과 조원들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친 사람도 없고, 싸운 것 같지도 않으니, 다행히 늦지 않은 것 같았다.

열심히 움직였어도, 결국 큰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다.

중간에 자잘한 것이 달라져서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이렇게 큰 흐름은 변하지 않아, 마지막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준비한 것들은 효과가 있었다.

대치하고 있는 기사 중에 머리 하나가 불쑥 올라와 있는 기사가 있었다.

기사단장이 와 준 모양이었다.

맨 앞에 서 있는 표정이 안 좋은 기사가 전과 똑같은 사람인 것을 보니, 기사단장 덕분에 사고가 없었던 것 같았다.

저 기사는 나중에 손보기로 하고.

우선, 이 말에 실린 짐을 건네주어야 했다.

말에 실린 짐. 요하힘은 내게 격렬하게 저항했다.

그와 나는 대련이 아니라, 결투, 생사를 건 싸움을 했다.

실력 차가 많이 나서 상처 없이 쓰러뜨릴 수도 있었지만, 나도 성심성의껏 상대를 해 주었다.

아마, 내 속마음은 그렇게 되어 죽게 된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도 몰랐다.

물론, 두 공주님에게는 손해일 터였다. 내 계획에도 없는 일이었고.

하지만 왕실 기사단에게 첩자로 체포되어 고생하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나는 요하힘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결국, 요하힘은 죽지 않았다.

대신, 마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용병은 이번에도 내 손에 죽었다.

내가 두 사람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마틴 용병이 저번 삶에서 안가로 나를 안내해 준 덕분이었다.

안가로 가는 길을 막아선 덕분에 두 사람을 잡아낼 수 있었지만, 마틴 용병은 조직의 일원이었다.

그에게 죽음 이외에 따로 보답할 길은 없었다.

반가워하는 조원들을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들은 내가 끌고 가는 말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마, 잠시 뒤에는 반가움 대신에 다른 표정들이 떠오를 게 분명했다.

다만, 그 표정들이 실망이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잠시 뒤, 기사단들을 지나 일행 앞에서 말을 멈추었다.

조원들은 내가 끌고 온 말 위에 얹힌 짐을 보고 표정이 변했다.

"요하힘 공자가 다쳤어요. 여기 포션이……."

미리사가 급하게 포션을 꺼내려 했지만, 발레아가 그녀를 말렸다.

미리사가 어리둥절해서 공주와 대공녀를 쳐다보았지만, 누구도 요하힘에게 포션을 먹여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대공녀가 내게 물었다.

"죽을 정도의 상처는 아닌 거죠?"

"네. 죽기는 싫었던 모양입니다."

내 말에 대공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설명 정도면 그녀에게는 충분한 설명이었던 것 같았다.

그다음에 공주가 나를 보며 말했다.

"나중에 꼭 설명해 주세요. 빠진 이유부터."

"네."

공주는 대공녀와 달리, 전부 듣고 싶어 했다.

"내가 혼날 줄 알았어요. 계속 혼자 말도 없이 일을 벌이면 나중에 분명 여자들의 원귀가 달라붙을 거예요. ‘냐옹’ 하고요. "

발레아는 옆에서 고양이처럼 손톱을 드러내며 고양이 울음소리를 냈다.

다행히 다들 나를 신뢰했다.

미리사를 빼고.

상황이 정신없이 변한 덕분인지, 기사들은 우리들이 대화하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덕분에 인사를 나누고, 앞에 선 기사에게 요하힘을 넘길 수 있었다.

"달아났던 유학생 요하힘입니다. 잡는 과정에서 많이 다쳤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인상이 나빠 보이던 기사는 내 말에 더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가 범인인지는 확인해 봐야……."

"그가 맞습니다. 훌리안 공국의 딸인 제 이름을 걸고 말합니다."

"저도 카를로스의 이름을 걸고 맹세해요."

기사는 더는 반박할 수 없었다.

이름을 걸었는데, 뭐라 한다면 결투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거기다, 공주까지 나섰다.

뒤에서 움찔거리는 기사들을 보니, 한마디라도 딴지를 걸면 다른 기사들이 나설 것 같았다.

그보다 먼저 기사단장이 참지 못하고 움직일 것 같긴 했지만.

그렇게 기사단은 다친 요하힘을 데리고 떠나야 했다.

선임 기사는 우리에게 참고인으로 기사단을 방문해야 한다고 마지막까지 딴지를 걸었다.

그렇지만, 그때가 되면 참고인을 부를 정신이 없을 게 분명했다.

기사단이 떠나면서 머리 하나가 더 큰 거인이 나에게 따로 신호를 보냈다.

따로 만나자는 말이었다.

그에게 마나를 날려 알았다고 신호를 보낸 뒤 일행을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궁금함이 가득 찬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우선 그동안의 일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했다.

"사죄의 의미로 다음 방문지는 제가 추천해도 될까요?"

"에엑! 이런 곳에 우리만 보내 놓고요?"

발레아가 먼저 발끈했고.

"자기만 또 빠지려고 하는 것은 아니겠죠?"

대공녀도 그녀답지 않게 나를 향해 눈을 흘겼다.

하지만, 나도 이번만큼은 자신 있었다.

저번 삶에서 검증된 방문지였다.

"피센 후작의 영지로 가죠. 결투 승리의 권리로 조별 과제를 위한 유물 관람을 요청했습니다."

내 말에 일행 모두는 입을 딱 벌렸다.

과거와 똑같은 표정에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유물 조사단의 다음 방문지가 결정되었다.

우리는 요하힘 대신에 다른 사람과 후작의 영지를 방문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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