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93화 (193/563)

제193화

제18편 왕실 기사단장 (3)

처음, 공작에게서 기사단장이 있는 곳을 들었을 때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뜻밖의 장소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혼도 안 하고, 가족도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왕실 기사단장이나 되는 사람이 그런 곳에 머물 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왕실 기사단장이 칩거 중인 곳은, 수도의 외성 밖이었다.

그는 수도 근처의 울창한 숲. 왕실의 숲 안에 있는 사냥꾼 집에 머물고 있었다.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왕실의 숲은 왕이나 왕족들이 사냥하는 곳이었다.

왕실 소유로 왕족 이외에는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두 왕자는 사냥에 취미가 없으니, 왕이 아픈 뒤에는 숲을 찾는 사람이 없었다.

왕자들은 이미 몇 번이나 거절당했고, 부하들을 보낼 수도 없으니, 그곳만큼은 사람들에게 시달리지 않을 수 있을 터였다.

"아는 사람도 몇 사람 없고, 그곳에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으니, 이상한 소문만 무성하게 나는 거겠지."

멀리, 숲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세우타 공작이 말했다.

세우타 공작과 나는 마차를 타고 왕실 기사단장이 칩거하고 있다는 숲으로 향하고 있었다.

왕족이 아니면 방문할 수 없는 숲이긴 하지만, 내 앞에 앉아 있는 노인은 왕의 형제, 당연히 왕족이었다.

"마나를 잃었을 때, 불쌍한지 선왕께서 왕족 직위는 남겨두셨지. 덕분에 이 나이까지 호의호식하며 사는 거겠지."

상이용사에 대한 취급이 좋지 못한 세계였다.

이건 전생에 내가 살던 나라와 비슷했다.

물론, 이쪽 세계는 상이용사에게 지급해줄 돈이 부족해서이지만.

마나를 잃은 공작에게 왕족의 직위를 남겨놓은 것도, 이 세계에서는 큰 혜택이었던 모양이었다.

왕족의 직위는 남았지만, 아쉽게도 직위만 남아 있었다.

우리가 지금 타고 있는 마차도 왕실 마차가 아니라, 대여한 평범한 마차였다.

숲 진입로에 몇 명의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지만, 노인을 보자, 바로 통과시켜주었다.

"다들 알아보네요. 자주 다니시나 봐요."

내 말에 노인은 코웃음을 쳤다.

"내가 자주 다닌다기보다, 다른 사람이 아예 안 오는 거지."

숲에 들어서자 길이 험해졌다.

공작 말대로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모양이었다.

잡초에 가려져서 길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가 다니지 못할 것 같았다.

"쯧쯧, 사냥을 좋아하는 놈이 없으니, 누가 왕이 되든 이 길은 결국 없어지겠지."

제1 왕자와 제2 왕자 이야기였다.

왕의 자식이 그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누구도 공주가 다음 대 왕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험한 길을 계속 가다 보니, 통나무집이 보였다.

생각보다 크고 잘 만든 집이었다.

"사냥꾼 집이라고 들었는데, 크네요."

"다른 산지기들 움막으로 생각한 거냐? 사냥꾼 집이라고 해도, 이 나라 왕이 나와서 사냥을 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 왕이 머물 수는 없지."

다만, 낡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군데군데 보수는 한 것 같았지만, 이 집도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마차가 멈추자, 내가 먼저 마차에서 내려 노인이 내리는 것을 도왔다.

마나만 있으면 펄펄 날아다니겠지만, 육체는 제 나이의 노인일 뿐이었다.

마차에서 내리자, 노인이 소리쳤다.

"빨리 안 나오냐!"

마나도 싣지 않았는데, 노인이 목청은 좋았다.

끼익.

노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무거운 통나무 문이 열리면서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용 머리라도 삶아 먹고 온 것도 아니고, 다 늙어도 목청은 좋네."

수염이 덥수룩한 거인이 한 손으로 통나무 문을 밀면서 밖으로 나왔다.

당연히 문을 열고 나온 남자가 왕실 기사단장이겠지만, 나는 그를 보고 거인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키가 컸다. 2m는 훌쩍 넘는 것 같았다.

덩치도 컸다. 늘씬한 체형이 아니라, 보디빌더, 씨름 선수 같은 체형이었다.

아무리 봐도 몸무게가 150kg보다 적어 보이지 않았다.

기사들이 다 한 덩치 하지만, 지금 나온 사람은 기사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있어 보였다.

저건 아무리 봐도 거인이었다.

폭풍 성장을 한 덕분에, 기사들을 봐도 전보다 덜 꿀리는 느낌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올려다보고 있으니, 어렸을 때의 기분을 다시 느끼게 되었다.

"그래, 보여주겠다는 녀석이 이 꼬맹이입니까?"

기사단장은 노인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왕실 기사단장과 명예 공작이라는 직위와 상관없이 두 사람은 무척 친해 보였다.

다시 보니, 수염에 가려있지만, 얼굴은 나이가 꽤 들어 보였다.

노인과는 차이가 났지만,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정도로 나이가 꽤 많은 것 같았다.

왕실 기사단장이니, 나이가 많은 게 당연하긴 했다.

그의 말에 나는 손을 올려 가슴에 댔다.

"왕실 아카데미 2학년. 알렉스입니다."

"가문 명 대신 아카데미 생도를 말한다고? 너 각성한 평민이냐?"

귀족이라면 가문 명을 말하는 게 당연했다. 평민이라고 오해를 받을 만했다.

"그레시아 공작 아들이야."

"그런데 왜?"

"서자니까 그렇지."

"아, 그럼 애매하긴 하겠네요."

두 사람은 내 가문과 서자라는 내 위치를 편하게 이야기했다.

서로 편해서였기도 하겠지만, 두 사람은 그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은 마나를 잃었지만, 왕실 기사단 고문으로 남게 될만한 검술을 간직한 왕족이었고,

또 한 사람은 가문을 벗어나 혼자 힘으로 성공한 왕실 기사단장이었다.

다른 사람이 없는 곳이라면 공작 가문도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서자라는 것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나를 쭉 훑어보더니, 벽에 세워둔 커다란 쇳덩어리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녹슨 쇳덩어리 끝을 잡고, 들어 올렸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는 녹이 풀풀 날리는 쇳덩어리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부우우웅.

"콜록, 콜록, 관리 좀 해라. 누가 그걸 검으로 알겠냐!"

사방에 날리는 녹에 노인은 심하게 재채기를 했고, 나는 녹이 줄어드는 쇳덩어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쇳덩어리인 줄 알았는데, 검이었다.

녹이 가득 설어 있는 거대한 대검이었다.

저 거인이 잡고 있어도 대검으로 보이니, 다른 사람이 잡는다면 휘두르지도 못할 것 같았다.

몇 번 휘두르자, 검에 붙은 녹은 다 날아가 버렸다.

검에 마나를 불어넣어 불순물을 날려버리는 뛰어난 마나 활용법이었다.

물론, 녹을 날려버리는 데 저런 고급 기술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유물이라면 녹슬지 않을 테고, 보통 검이면 저렇게 녹슬게 놔두지 않을 터였다.

쿵.

그는 거대한 검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

"구차한 이야기는 필요 없겠지. 덤벼라. 공작께서 데려오실만한 놈인지 확인부터 하자."

정치적이지 않다고 들었기는 했는데, 그 정도가 좀 과한 것 같았다.

더구나, 실력 확인을 하는데 저렇게 마나와 살기를 가득 뿜어내고 있었다.

괜히 간을 보았다가 저 거대한 검에 죽도록 맞을 것 같았다.

들고 온 장검을 보고 거인의 대검을 보았다.

이걸로는 답이 없었다.

유물 주머니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벌써 여러 번 깨 먹은 아카데미 장검을 내려놓고, 가슴에서 검을 뽑았다.

"그레시아 공작가는 서자 취급이 괜찮은 모양이네. 유물도 주고."

내가 검을 꺼내는 것을 보고, 기사단장이 이죽거렸다.

공작 가문도 쉽게 이야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런 가문을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직접 구한 유물이었지만, 나는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검을 꺼낸 뒤, 마나를 끌어올렸다.

기사단장의 표정이 확 변했다.

"재미있는 놈이네."

그의 몸에서 마나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좀 전에 쏟아져나오던 마나가 전부가 아니었다.

몸 주위에서 번갯불이 튀어 올랐다.

기사단장의 마나가 내 마나와 부딪친 것이었다.

입술을 악물고, 마나를 최대한 끌어올렸지만, 스파크는 내 주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항상,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얕잡아 보았는데, 나도 그랬던 모양이었다.

이 왕국의 왕실 기사단장이었다.

숨어 있는 강자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왕실 기사단장이 약할 리가 없었다.

검을 섞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현실에서 내가 만나본 상대 중에 내 앞에 있는 남자가 가장 강했다.

아마도, 눈앞의 남자가 이 왕국에서 제일 강한 사람일 듯했다.

하지만, 올려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더 강한, 20살짜리 용사도 상대해봤었다.

검을 들고, 거인을 향해 달려갔다.

쾅!

"하하하, 정말 재미있어!"

검이 부딪치고, 거인의 환호성이 숲을 울렸다.

* * *

한참 검을 휘두르다 보니, 어느새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흘러가는 게 보였다.

이렇게 보면 전생의 하늘과 다르지 않았다.

대련은 내가 지는 것으로 끝났다.

목걸이도 쓰지 않고, 몇 가지 능력도 봉인했는데,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내 대검 덕분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준 장검이었으면, 예전에 깨져나가 한참 전에 대련이 끝났을 게 분명했다.

멍하게 있으니,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어디서 이런 놈을 찾은 겁니까?"

"공주와 카트린이 부탁했지, 검술을 배우기를 원하는 학생이 있다고. 억지로 아카데미에 갔더니, 글쎄, 이놈이 있더라고."

"아무리 봐도 규격 외인데요. 내가 여기 머무는 사이에 아카데미 학생들 실력이 좋아진 건가요?"

"좋아지긴커녕, 상속능력 학부로 다들 가버려서 더 안 좋아졌더라고."

"거기다, 사용하던 검술들도 이상하던데요."

슬슬 멍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이 돌아오니 삭신이 쑤시는 게 느껴졌다.

저 커다란 검과 신나게 부딪쳐댔으니, 몸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자기 집안 검술이야 당연히 쓸 테고, 공작님 검술도 배웠으니 쓸 수 있을 테지만, 피센 후작가 검술 느낌에 부단장 검술 느낌도 배어 있었어요."

어느 정도 들킬 것 같긴 했지만, 저렇게 다 알아낼 줄 몰랐다.

과연, 왕실 기사단장이었다.

"영 애매한 것도 있지만, 각성한 심법처럼 느껴지는 것도 있고,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기사단장의 말에 노인이 투덜거렸다.

"내가 가르친 거 아냐. 한 번밖에 안 봐줬어. 이놈은 그전부터 쓸 수 있더라고."

"특이한 능력을 이은, 그레시아 공작의 비밀병기 뭐 그런 걸까요?"

"그게 언제 적에 망한 이론인데. 거기다, 그렇게 만든 놈을 아카데미에 보낸다는 게 말이 되냐?"

두 사람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나도 알고 있었다.

대단한 능력자 둘을 결혼시켜서 초인을 낳게 하는 계획을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귀족.

용사들에게서 상속능력이 유전된 자손들은 선조인 용사의 일부 능력만 가질 수 있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그 능력을 강화할 방법을 찾았다.

그중에 가장 그럴듯한 방법은, 궁합이 맞는 능력이나 같은 용사들의 후손들끼리 결혼시켜서 더 강한 능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더 강한 능력이 아니더라도, 선조인 용사의 능력과 비슷한 능력을 만들어 내기를 원했지만, 그들의 시도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그 와중에 여러 흉악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그 실험 덕분에 귀족들의 피가 많이 섞이게 되었으니,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렇게 멍하니 이야기를 듣는 사이에,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을 알게 된 듯했다.

"정신 차렸으면 그만 일어나라."

노인의 말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오랜만에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