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90화 (190/563)

제190화

제15편 왕세자 (2)

"전부 알려주지. 왜, 왕실 기사단을 후작가에 보냈는지도, 그리고 내가 왜 여기 왔는지도."

왕자의 말에 가슴에 올렸던 손을 조용히 내렸다.

이렇게 일이 풀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따지고 보면 간단한 이유다. 이바나가 내 여동생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추리한 내용이 맞아 들어가는 걸까?

그렇다면, 이바나가 공주라는 말은 아닐 터였다.

"네 예상대로 공주는 아니야. 어머니가 낳은 딸이지."

점점, 이야기는 내 예상대로 흘러갔다.

"결국, 이바나는 저기 무덤에 어머니와 함께 묻혔지. 덕분에 나는 가족을 다 잃게 되었어."

어라? 그런데 왕자의 어머니, 전 왕비의 무덤도 여기에 있다고?

왜, 왕자가 조금 전 자작 아내의 무덤에 참배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니, 잠깐, 그렇다면 이바나의 아버지는 이 영지의 영주, 모레나 자작이라는 소리인가?

설마 그걸, 왕이 놔두었다고?

"아버지가, 아니 왕이 알 리가 없지. 알면 놔두었을 분이 아니니까. 이건 오랜 시간 지켜온 비밀이었다. 나와 몇 사람만 아는, 그 사람 중에 너도 포함된 거지."

왕자는 나를 이미 죽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전부 이야기하는 것일 테고.

그 생각도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모두 아는 것처럼, 어머니가 병 때문에 고향으로 내려가 돌아가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서 도망친 어머니가 죽음을 가장하신 거지. 다행히 도와주는 분들이 있어서 숨길 수 있었던 거고."

누가 도와주었는데, 한 나라의 왕비를 죽은 것으로 만들 수 있었던 걸까?

한숨이 절로 나왔다. 뿌리를 캐어냈는데, 자꾸 더 대단한 것이 딸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는 새로 온 왕비들에게는 어머니에게 한 것 같은 짓을 하지 않았지. 그때부터 아팠으니까."

설마? 왕이 아픈 것도 왕세자와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거기까지 관련이 있다면, 나는 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군. 제국에서 내 비밀을 알았는지는 잡아 온 놈들을 심문해 보면 될 테고, 너도 궁금한 것을 해결했으니 만족하겠지?"

제1 왕자는 나를 보며 씩 웃었다.

아무리 봐도, 제1 왕자는 어딘가 뒤틀린 것 같았다.

왕족인 가족 대신에, 어머니의 피가 섞인 여동생을 가족이라고 여기고, 죽은 어머니의 남편을 부하로 삼은 것만 봐도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 죽일 사람이니 이야기해준다는 것도 이상했다.

내가 무슨 대나무숲도 아니고.

권력이 그를 뒤 틀리게 한 것인지, 아니면 그가 원래 이상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궁금증을 풀 때가 아니었다.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다.

비밀 조직에 대해 더 알아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우선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나는 천천히 뒤로 물러서면서 가슴에 손을 넣었다.

왕자는 재미있게 나를 쳐다보았고, 왕자 앞을 지키고 있는 부단장은 나를 보며 눈꼬리를 세우고 있었다.

부단장은 바로 나를 제압하지 않았다.

왕자를 지키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다른 기사들이 모이기를 기다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덕분에 나는 주머니에서 원하는 것들을 꺼낼 수 있었다.

반지를 꺼내서 손가락에 채우고, 목걸이를 꺼내 목에 걸었다.

"호오, 여기서도 싸워볼 생각이냐?"

"어차피 살려주지 않을 생각일 테니."

어머니에게 나쁜 소식이 가지 않도록 하고 싶었지만, 왕자가 나를 죽일 생각인 것을 보니, 그건 어려워 보였다.

역시, 제국 스파이를 잡은 정도로는 무리인 모양이었다.

이제는 더욱 여기서 살아나가면 안 되게 되어 버린 것 같았다.

도망자가 되어 가족에게 걱정을 끼치느니, 여기서 죽는 게 나았다.

나는 계속 가슴에서 물건을 꺼냈다.

단도까지는 재미있게 지켜보던 왕자가 대검을 꺼내는 것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는 무슨 광대 출신이냐! 입에서 검을 꺼내는 것은 봤어도 가슴에서 꺼내는 것은 처음 봤어."

왕자는 내가 검을 꺼내는 모습에 손뼉까지 쳤다.

하지만, 부단장은 그러지 못했다.

그는 펼쳤던 방음벽을 날려버리고 크게 소리쳤다.

"빨리 포위해! 무장한 강자다! 혼자 상대할 생각을 말아라!"

부단장의 말에 왕자는 놀라서 되물었다.

"그 정도였어?"

왕자도 마나 감지로 내 실력을 알아냈긴 했지만, 한계가 있었나 보다.

하지만, 부단장도 정확한 실력을 아는 게 아니었다.

두 명이 함께 막아선다고 도망치는 나를 막을 수 있었을까?

물론, 나는 도망칠 생각이 없었다.

대신, 대검을 들어 부단장을 가리켰다.

"오시죠. 그곳에서 싸우면 왕세자님이 위험하실 겁니다."

부단장은 나를 노려보았다.

내 말이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이해가 갈 리가 없었다.

"푸하하하. 정말 재미있는 놈이야. 가서 싸워 줘. 어차피 자작도 왔으니,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저택에서 나이 든 귀족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멋있게 나이가 든 귀족이었다.

젊었을 때는 엄청나게 미남이었을 것 같은 남자였다.

왕자의 말에 따르면 그가 수도에 있다던 이 영지의 주인인 모레나 자작인 듯했다.

그도 흘러나오는 마나가 심상치 않았다. 기사는 아니었지만, 가지고 있는 능력이 평범하지 않아 보였다.

역시, 높은 사람을 만나게 되니, 전에는 알지 못하던 강자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그가 왕자 옆에 서자, 부단장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이해하기가 어렵군. 그 나이에 그런 실력을 지니고, 하는 행동은 감정에 휘둘리는 어린아이라니."

공주와 대공녀를 구하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죄를 용서받기 위해 같이 다니던 사람들을 팔아넘기고.

마지막에 부단장에게 검을 겨누는 것까지.

부단장이 보기에는 어린아이 같은 행동이었을까?

뭐, 아직 어른은 아니었으니, 어린아이 같다는 게 틀린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객기로 부단장에게 도전하는 것은 아니었다.

몇 번 배우지 못했지만, 왕실 기사단 고문인 세우타 공작에게 검을 배웠었다.

그에게 배운 검이 왕실 기사단에게 통하는지, 확인해 볼 시간이었다.

부단장과 내가 마주 설 때, 이곳에 있는 기사단원들도 모두 여기에 모였다.

그들은 나와 부단장을 넓게 빙 둘러서 포위했다.

모두 검을 들고 나를 노려보지만 않았어도, 기사들끼리의 대련을 구경하는 기사들처럼 보일 것 같았다.

그가 자세를 잡았고, 나도 세우타 공작에게서 배운 자세를 잡았다.

거의 똑같은 자세. 부단장이 눈썹을 씰룩였다.

"놀리는 게 아니길 바란다."

부단장의 모습이 눈에서 사라졌다. 역시, 마나의 힘은 차원이 달랐다.

왕실 기사단 부단장 정도가 되면 인간의 동체 시력은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카앙!

하지만, 눈이 따라가지 못하더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옆으로 기울인 대검이 그의 검을 막았다.

이번에도 비슷한 자세.

자세가 조금 다른 것은 내가 대검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흉내가 아니군."

"세우타 공작에게 배웠습니다."

어차피 알게 될 것이었다. 그에게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설마, 고문님이 아카데미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학생이 너였냐!"

뒷방 늙은이라더니 다 거짓말이었다, 부단장까지 그가 하는 일을 알고 있었다.

카앙! 카앙!

말을 하면서도 검은 계속 움직였다.

서로 비슷한 방식으로 공격과 수비를 이어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대련 비슷한 것이 되어갔다.

부단장과 지켜보던 기사들의 눈에 감탄 비슷한 것이 보였다.

다만, 왕자는 지금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었다.

"뭐 하는 거야! 재미있다고 했지만, 이렇게 장난치라고 한 것은 아닐 텐데?"

왕자의 말에 부단장의 표정이 변했다.

생각보다 친했지만, 역시 위아래는 확실했다.

그의 검이 변했다. 마나가 치솟고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와 내 주위에 마나가 부딪쳐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좀 더 왕실의 검을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이 정도도 충분했다.

나도 검술을 바꿨다.

목걸이에 마나를 불어넣고, 다른 손에 단검을 꺼내 들었다.

단검 끝에 아지랑이가 일렁였다.

다시 한번, 우리는 격돌했다.

콰앙!

잠시 뒤, 주변이 시끄러워졌다.

"막아!"

"왕자님 곁으로 못 가게 해!"

"협공해!"

"부단장님을 도와!"

다른 기사들이 끼어드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다.

나와 검을 나누던 부단장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목걸이 때문에 반쯤 정신을 놓은 모양이었다.

기억도 나고, 문제가 될 것도 없었지만, 시간이 훌쩍 지나간 것 같았다.

"갑자기 이렇게 강해지다니……."

이를 악문 모양인지, 부단장의 입에서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같은 검술로 싸운다면 부단장과는 실력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부단장이 확 밀렸고, 다른 기사들이 난입했다.

그리고, 나는 그 기사들과의 합격을 버텨내고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기사도 보였다.

뒤에서 몰래 암습을 하려 했던 기사였다. 아쉽게도 감각으로 미리 알아서 그를 베어버렸다.

힘껏 베어버렸으니, 아마 죽었을 터였다.

선방하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이들 모두를 쓰러뜨리기는 어려웠다.

마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왕실 기사단과 부단장을 상대로 이 정도 버틴 것만으로도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더 있었던 모양이었다.

왕자가 손뼉을 쳤다.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그는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마나가 실린 목소리가 난장판이 된 뒤뜰에 울려 퍼졌다.

"그만 되었다. 싸움을 멈춰라,"

기사들과 나,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어쨌거나 왕실 기사는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기사들은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피투성이가 된 부단장도 발을 끌면서 왕자 곁으로 움직였다.

왕자의 표정이 더 이상 지루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나를 직접 만나보겠다는 네 도박은 성공했다. 그 정도 실력이면 살려둘 만하다. 내 너를 중하게 쓰겠다."

역시, 왕자는 정상이 아니었다.

내 행동을 그렇게 오해하다니.

부단장도, 기사들도 왕자의 말에 모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내게 다친 사람이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부단장도 엉망이 되었고,

물론, 나도 피를 한껏 뒤집어쓴 상태였지만,

거기다, 지금 죽은 채로 바닥에 누워 있는 기사들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포섭이라니.

왕실 기사들이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게 당연했다.

부단장이 제1 왕자에게 뭐라 하려 했지만, 내가 먼저 풀썩 웃어버렸다.

"왕자님과 같이 일할 생각이 없는데요. 내가 여기 온 목표는 이미 거의 다 이루었습니다. 남은 것은 이제 하나뿐이네요."

내 말에 왕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목이 잘릴 생각이 없으시다면, 왕자님도 알 필요 없습니다."

나는 왕자가 했던 말을 똑같이 말해주었다.

왕자는 내 말에 잠시 멍한 얼굴이 되었다가, 곧이어 얼굴이 붉게 변했다.

과연, 나른한 얼굴이 변하니, 확실히 보기가 나았다.

좀 못생겨졌지만, 그래도 활력이 넘쳐 보이니 얼마나 좋아 보이는지.

"왕세자인 나를 능멸하다니, 당장 죽여버려!"

기사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왕자 옆에 서 있던 자작이 손을 들어 올렸다.

기다렸었다.

이바나의 능력은 분명 어머니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일 터였다.

죽은 왕비가 이바나와 비슷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아버지에게서 온 것일 터였다.

죽기 전에 한번 확인해보고 싶었는데, 때마침 움직여주었다.

쿠웅.

그가 손을 들자,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밖에서 들린 소리가 아니었다. 몸속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몸이 무거워졌다.

중력이나 염력 계열인가? 아니, 그런 게 아니었다.

줄어들던 마나가 아예 날아가 버렸다.

감각이 줄어들고,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마치, 약했던 과거로 돌아간 것 같았다.

'맙소사, 디버퍼인가.'

자작의 능력은 다른 사람을 약하게 만드는 능력이 분명했다.

아직 경험이 남아있고, 훈련된 육체가 남아있지만, 이래서야 싸우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얼마 남지 않은 마나가 다 날아가 버려서, 마나 고갈까지 느끼고 있었다.

이래서는 기사 하나를 상대하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마지막 발악을 해 볼까 하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부단장이 검을 늘어뜨린 나를 보고 혀를 찼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다른 기사들이 다가오기 전, 그가 먼저 검을 휘둘렀다.

"다음에는 실력만큼 정신도 성숙하기를."

그의 마지막 말에 나는 웃어버렸다.

저런 왕자를 따르면서 누구에게 훈계하는 건지.

다음에 만나게 되면 나도 한마디를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검이 지나가고, 목이 아파졌다.

시야가 뒤집히고 아래로 떨어졌다.

뒤집힌 시야에, 붉게 물든 왕자의 얼굴이 보였다.

시야가 어두워졌다.

…….

…….

빛이 밝아졌다.

나는 내 방의 벽을 보게 되었다.

아카데미 기숙사의 방.

나는 검은 검을 들고 서 있었다.

<사망하셨습니다. 자동 저장 시점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오늘은 개학식 날 저녁.

나는 다시, 과거로 돌아왔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