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89화 (189/563)

제189화

제14편 왕세자 (1)

3층 저택.

영주의 집이자, 지금은 퇴직 기사 오헨이 머무는 집은 저택이라고 불리기에는 조금 작은 건물이었다.

그래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있었다.

앞쪽에는 보기 좋은 작은 정원이 있고, 집 뒤에는 커다란 가족묘가 보였다.

신흥 귀족이라는데 벌써 가족묘라니.

관리인 딸인 이바나도 저기 묻히는 걸까?

정문 앞에는 왕실 기사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왕실 마차도 보였다. 공주와 탔었던 마차보다 훨씬 화려한 마차였다.

나는 정문 앞으로 다가갔다.

"멈춰라. 오늘은 들어갈 수 없다."

왼쪽에 선 기사가 손을 내밀어 나를 멈춰 세웠다.

문 오른쪽에 있던 기사가 내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카데미 학생인가? 이 영지에도 아카데미 학생이 있었나?"

나는 용병 옷을 벗고 왕립 아카데미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이바나 소식을 들었나 보군. 하지만, 아직 조문은 받지 않으니 돌아가도록."

그들은 내가 이바나 동급생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우선 오해를 풀어볼까.

"아카데미 학생은 맞지만, 이바나의 조문을 위해 온 것은 아닙니다."

내 말에 두 기사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게 아니면 아카데미 교복을 입은 소년이 찾아올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제 이름은 알렉스 데 그레시아입니다. 왕립 아카데미 2학년이고, 이곳에 온 이유는 이바나 학생을 살해한 파울라와 공범으로 의심되는 요하힘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왕세자와 여기 있는 기사들은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아직, 후작가에서 벌어진 일이 이곳까지 소식이 오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아니, 잠깐."

두 기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잠깐, 내가 보고하고 오지. 장난이든 아니든 붙잡고 있어."

아카데미 정복을 입고, 왕실 기사들이 있는 곳을 찾아왔는데, 장난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내 말을 믿기 어려웠는지 그런 말을 남기고 기사 한 명이 저택으로 달려갔다.

남은 기사는 난감한 얼굴로 검을 뽑아 나에게 겨누었다.

아쉽게도 그는 내 실력을 알아보지 못했다.

실력 차가 어느 정도 나는 상황에서 마나를 감추고 있으니,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렇게 기사에게는 뻘쭘한 시간이 지나고, 안으로 들어갔던 기사가 나이가 지긋한 기사를 데리고 나왔다.

'강하네.'

기사가 집 밖으로 나오자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내가 본 사람 중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능력자였다.

오헨은 아닌 것 같았다.

퇴직 기사라는 사람이 저렇게 강할 리가 없었다.

그도 나를 알아본 것 같았다.

성큼성큼 다가오던 걸음이 느려지고, 허리에 찬 검 위로 손이 얹어졌다.

정문 앞에 온 그는 다른 말부터 꺼냈다.

"정말 아카데미 학생 맞나?"

"네, 알렉스 데 그레시아. 왕립 아카데미 2학년입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내 소개를 해야 했다.

"학생이 이런 실력을 지닐 리가 없는데……."

다른 두 기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나이가 지긋한 기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지. 범죄자들을 잡았다고?"

"네, 제국 유학생 파울라와 요하힘을 잡아서 모처에 가둬 두었습니다."

"그게 어디지?"

"제일 윗분께 직접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 말에 기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나도 이건 물러설 수가 없는 일이었다.

"왕실 기사단 부단장 알바로다. 내게 말하면 된다."

부단장이라면 왕실 기사단 서열 2위. 생각보다 높은 분이었다.

왕실 기사단 부단장이라면 강하게 느껴질 만했다.

하기야, 왕세자가 움직이는데, 평범한 기사가 호위를 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

'부단장도 제1 왕자 파였나?'

왕실 기사단이 대체로 제1 왕자 쪽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부단장이 호위를 자처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거기다, 부단장이라면 책임자라고 자처할만했다.

하지만, 나는 손을 들어 마차를 가리켰다.

"왕실의 높은 분이 오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 직접 말씀드리게 해주십시오."

"감히!"

다른 기사들이 검을 뽑았지만, 부단장은 생각에 잠겼다.

"……좋아. 하지만, 허튼소리라면 죽을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다."

이미 죽을 각오는 예전에 한 상황이었다.

"네."

단도도 유물 주머니에 넣어두어,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간단한 검색을 끝으로 부단장과 함께 정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아직, 이들은 후작가의 일을 알지 못했다. 일이 예상보다 쉬워질 것 같았다.

그런데, 부단장은 집안으로 가지 않고 이상한 곳으로 발을 옮겼다.

그는 건물을 빙 둘러, 뒤뜰로 향했다.

나는 의아했지만, 아무 말 없이 그를 따랐다.

함정일 수도 있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었다.

다행히 함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이기도 했다.

저택 뒤뜰에 있는 큰 석실.

부단장은 기사들이 지키고 있는 가족묘 안으로 나를 안내한 것이다.

'정말로 이바나가 자작가 가족묘에 안치된 건가? 하지만, 왕세자가 왜 그녀를 조문하는 거지?'

이바나가 왕세자의 숨겨진 애인이라는 막장 드라마가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니 왕세자는 생각지도 못한 곳 앞에 서 있었다.

이바나의 묘가 있기는 했다.

새로 만들어진 묘가 뒤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세자는 맨 앞에 있는 묘 앞에 서 있었다.

분명, 그 묘는 자작 아내의 돌무덤. 이 가문의 안주인 묘였다.

부단장의 뒤에 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눈을 감고 돌무덤을 쓰다듬고 있던 왕세자가 눈을 떴다.

왕세자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왕세자는 공주의 각성 식 때 먼발치로 본 적이 있었다.

거의, 일 년 만에 다시 보게 된 왕세자는 30살이 조금 안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나름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지루해 보이는 표정이 그 잘생긴 얼굴을 상당히 깎아 먹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이 학생이 이바나 영애의 살인범인 파울라와 요하힘을 잡아두었고 합니다."

"뭐?"

왕세자, 제1 왕자의 눈꼬리가 올라갔다.

"어디지? 기사들을 보냈나?"

"그게, 이 학생이 전하를 뵙지 않으면……."

부단장이 나를 데리고 온 이유를 말하려는 순간, 기사단의 말을 가로챘다.

"마을 중앙에 있는 '푸른 들꽃' 여관 2층 1호실에 가둬 두었습니다. 둘 다 힘줄을 자른 뒤에 묶어두었으니, 반항할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내 말에 제1 왕자가 나를 처음으로 쳐다보았다.

"재미있는 녀석이군."

부단장은 말하는 중에 끼어든 나를 노려보았지만, 바로 다른 기사를 불러 지시를 내렸다.

이야기를 들은 기사는 석실 밖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부단장이 제1 왕자에게 다가가 나를 데리고 온 이유를 말했다.

"나에게 직접 말하겠다고 한 이유가 뭐지?"

제1 왕자는 예의 지루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에게 직접 말을 해서 점수를 따려는 생각은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라는 것은 미리 알려줘야겠군. 그 덕분에 부단장의 기분이 안 좋아졌으니까."

생각보다 부단장과 제1 왕자가 가까운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 정도는 되어야 왕실 기사단의 부단장을 파벌로 넣을 수 있었을 터였다.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두 사람을 잡게 된 것부터 이곳에 온 것까지 설명할 것이 많았습니다. 어차피 왕자님을 뵙게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긴, 네 말대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기도 하지. 나이답지 않은 실력도 그렇고, 그럼 이야기를 들어볼까?"

왕자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자작의 가족묘를 빠져나갔다.

왕자는 저택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뒤뜰 한쪽에 마련된 의자로 향했다.

뒤뜰 한쪽에는 이 저택과 뒤뜰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왕자가 가져온 것들인 것 같았다.

왕자가 의자에 앉자, 테이블 옆에 서 있던 하녀가 빈 잔에 차를 채웠다.

차에서 은은한 술 냄새가 풍겨 나왔다.

"자, 말해봐라. 나는 들을 준비가 되었다."

제1 왕자는 자신이 크게 베풀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이럴 때는 상대에 맞춰주어야 할 테니.

"감사드립니다."

나는 감사를 표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후작가에 기사들이 찾아온 것부터,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쭉 늘어놓았다.

다만, 한 가지는 다르게 설명했다.

나와 기사들이 싸운 게 아니라, 요하힘이 미리 알고 탈출하고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 일에 휘말린 것으로 이야기한 것이었다.

다른 것은 사실과 다르지 않게 이야기했다.

요하힘을 따라가다가, 파울라를 만나고, 그 뒤에 그들이 제국의 비밀 조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자신의 본심을 숨긴 채로 그들을 따라 움직이다가, 이 영지에 왕실의 높으신 분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되고,

마지막으로 암습을 해서 두 사람을 잡았다는 이야기까지.

사실과 거의 같은 말이었지만, 한 가지만 틀어버리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제국의 비밀 조직이라……. 설마, 알고 벌인 것일까?"

왕자는 내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알고 벌인다는 게 무엇일지. 저 내용이 내가 궁금했던 것일 것 같았다.

"그래도 재미있는 모험담이군. 한심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시간 낭비는 아니었어."

왕자는 내 이야기에 만족한 모양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확인하러 갔던 기사가 돌아왔다.

"확인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방에는 두 어린 남녀가 묶여 있었고, 시체가 한 구 있었습니다. 남자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로 요하힘이 맞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두 사람을 지금 데려오는 중입니다."

왕자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과 다르게 끝났지만, 겨우 제대로 이바나의 조문을 끝낸 것 같아. 어머니도 기뻐하시겠지."

또, 뭔가 간질거리는 말이 들려왔다.

어머니라.

좋은 소식을 들었기 때문인지, 왕자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지금이 기회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한가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내 말에 왕자는 피식 웃었다.

"그래, 무엇이 궁금한데."

"왜, 이바나 영애가 죽은 것에 왕실 기사단을 움직이신 겁니까?"

왕자의 표정이 단번에 딱딱하게 굳어졌다.

촤악.

부단장의 검이 뽑혔고, 왕자는 나를 보고 으르렁댔다.

"네 말을 받아주었다고 나를 우습게 보는 건가? 원래대로라면 너는 공범으로 목이 잘렸을 거야."

이런, 아쉽게도 무리였던 모양이었다.

결국, 추측 선에서 끝낼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가슴을 더듬었다. 운 좋게도 유물 주머니가 들키지 않았다.

다행히 이 자리에 실력을 가늠하기 힘든 왕실 기사단의 부단장이 있었다.

그와의 싸움이 남아있으니, 허무한 자살은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는 순간.

기사 한 명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급하게 달려와, 왕자의 귀에 속삭였다.

옆에서 이야기를 들었는지, 부단장이 왕자 앞에 서서 나에게 검을 겨누었다.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나도 들을 수 있었다.

후작가에서 벌어진 일이 이제야 이곳에 전해진 모양이었다.

아쉽게도 내 거짓말은 몇 분을 버티지 못했다.

"푸하하하하! 잘도 나를 속였군."

왕자는 이야기를 듣고 크게 웃었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았다.

"써먹을 생각으로 말을 안 해줬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어. 네가 궁금했던 것을 알려주지."

기사들이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부단장이 마나를 끌어올리는 것도 느껴졌다.

왕자의 말 때문인지 바로 덤비지는 않았다.

대신, 부단장은 마나로 방음벽을 펼쳤다.

왕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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