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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82화 (182/563)

제182화

제7편 납치가 목적이긴 합니다만 (2)

파울라는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이상한 오해를 하신 것 같으니, 그냥 제가 피하죠."

파울라는 멀찌감치 물러서서 벽에 등을 기댔다.

하지만, 이바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까, 갑자기 오헨 경이 왔다는 것도 의심이 드는군요."

진짜 아버지는 아니지만, 양아버지를 이름으로 부르다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파울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돌아가죠."

이바나가 몸을 돌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숨어있던 정보원 선배가 몸을 드러냈다.

그는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압해! 용병은 죽여도 된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전부 그녀와 같이 왕국으로 들어온 제국의 관료이자, 정보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갑옷 대신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기사도 육체 각성자들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무척이나 빨랐다.

그들은 마치 암살자들처럼 움직였다.

육체 각성자도 아닌데 이들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명령을 내린 남자 덕분이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이 정보원들의 대장인 남자가 모두에게 힘을 전달하고 있었다.

육체 전체가 강화된 것이 아니라 속도만 빨라진 것이었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했다.

달려들던 조직원들의 손이 펼쳐졌다.

펼친 손위로 불덩어리가 모여들었고, 풀어헤친 로브 안에서 무기들이 솟구쳤다.

조직원 중의 한 명은 바닥에 손을 짚었고, 반대로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사람도 있었다.

화아악, 슉, 슈육,

공격은 이바나, 아니 그녀 앞을 지키고 있는 용병에게 퍼부어졌다.

바닥이 출렁이고, 쏟아진 불길이 용병을 뒤덮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날카로운 무기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날아들었다.

속도가 느렸다면 피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 공격들은 기사도 대응하기 쉽지 않았다.

거기다, 용병 뒤에는 이바나가 서 있었다. 그것을 노리고, 조직원들이 용병을 공격한 것이기도 했다.

용병을 덮은 불길을 쏘아진 무기들이 꿰뚫었다.

땅이 출렁이고, 불길에 뒤덮이고, 무기까지 날아들었다.

하나면 모를까, 이런 다양한 공격은 실력 있는 기사라도 막기 어려웠다.

캉, 카앙, 캉.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소리 대신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달구어진 무기들이 불길 밖으로 튕겨 나왔다.

부우웅.

이어서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렸다.

불길이 꺼졌다. 꺼진 불길 속에서 용병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죽 갑옷은 검게 그을렸고, 머리카락도 불에 구워져서 곱슬곱슬했지만, 용병은 멀쩡했다.

붉게 달궈진 피부 외에는 어디에도 상처가 보이지 않았다.

검 하나로 불길을 날려버린 그는 이어서 발을 굴렀다.

쿵.

마나가 담긴 발소리가 퍼져나갔고,

"크윽."

땅을 움직이고 있던 조직원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순간에 그들이 가한 공격 전부 막혀버렸고, 부상자까지 나와버렸다.

공격하던 조직원들이 급하게 뒤로 몸을 피했다.

"용병이 아니었나?"

파울라도 더 이상 모른 척할 수가 없었다.

그런 파울라를 보고, 이바나가 피식 웃었다.

"평범한 용병을 데리고 다닌다고 생각했었나요? 말하는 것을 보니, 나를 납치할 생각이었을 테고."

그녀가 평범한 용병을 데리고 다닐 리가 없었다.

신분을 숨겨야 했으니, 많은 호위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었다.

하지만, 숨겨진 그녀의 신분은 평범한 용병으로 지킬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적은 인원이라도 제대로 된 실력자를 데리고 다녀야 했다.

그리고, 그런 실력자는 그녀, 이바나가 만들 수 있었다.

한동안 후작 아들을 키우느라 연결을 끊기는 했지만, 다시 연결한 지금, 자신의 호위 기사는 웬만한 왕실 기사보다 강했다.

"모두 정리하세요. 납치하려는 이유는 다른 것 같지만, 납치하려는 자들을 살려둘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혹시라도 그녀의 신분을 알고 납치하려고 한 것일 수도 있었다. 일말의 가능성도 남겨둘 수 없었다.

"납치가 목적인 것 같으니, 제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느새 이바나도 검을 들고 있었다. 육체 능력자는 아니었지만, 검을 들고 있는 모습이 초보는 아니었다.

이바나의 말에 용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상황이 뒤집혔다.

공격을 막던 이가 공격을 하기 시작했고, 공격하던 자들이 오히려 공격을 막아야 할 상황이 된 것이다.

"컥."

용병, 아니, 호위 기사가 처음 공격한 사람은 땅을 움직이다가 상처를 입었던 조직원이었다.

그는 채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하고 목이 베이고 말았다.

그다음은 불을 쏘아내던 조직원이었다.

검에 불이 잘려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직원의 양팔이 잘려 나갔다. 그는 역류하는 불길에 자신이 타들어 갔다.

호위 기사가 움직였지만, 그 틈에 목표를 납치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생각보다 이바나의 실력이 나쁘지 않아 보였고, 기사는 전투 중에도 이바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파울라는 확 바뀐 상황에 정신을 못 차렸다.

그녀는 조금 전에, 조직원들이 기사보다 더 강하다고 들었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눈앞에는 용병으로 분장한 기사에게 조직원들이 하나씩 죽어가는 모습만 보이고 있었다.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달아나라. 생각보다 일이 복잡해진 것 같다."

복잡해졌다고요? 그냥 망한 게 아니고요?

그런 생각이 맴돌았지만, 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남자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납치 성공 확률은 높지 않았다. 여기서 납치를 하더라도 제국까지 데려가는 것도 쉬운 게 아니었으니."

"그럼……."

"너무 걱정하니까 기운 차리라고 한 말이지."

그는 파울라를 보며 씩 웃었다.

"잘 기억해라. 언제나 이쪽 일은 차선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을."

파울라는 남자의 말에 한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납치를 실패하게 되면, 죽이라는 명령이었다."

그녀의 예상이 맞았다.

하지만, 그녀는 납치만큼이나 죽이는 것을 상부에서 원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남자는 가슴에 손을 올렸다.

목걸이는 지금도 목에 잘 걸려있었다.

"잘 될까 모르겠네. 테스트도 겨우 끝났다는데 잘못되지나 않을지 모르겠어."

생각해보니, 목걸이 테스트도 이 왕국이었다.

그 테스트가 잘못된 탓에, 이제 겨우 조직원들에게 지급이 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수령자가 그였다.

"빨리 가!"

불 능력자가 죽고, 염력 능력자도 죽었다. 은신 능력자가 도망 다니고 있지만, 곧 잡힐 것 같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파울라는 뒤를 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은신 능력자를 쫓던 기사가 속도를 올렸다.

도망치는 파울라도 잡을 생각인 모양이었다.

그렇게 놔둘 수는 없었다.

제국 관료이자, 조직의 정보팀장인 그는 이곳에서 조직의 마지막 명령을 이행하기로 했다.

"제국을 위해서.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그는 제국에 남겨놓은 가족을 떠올리며 앞으로 달려갔다.

목에 걸린 목걸이가 로브 밖으로 빠져나왔다.

목걸이가 빛나기 시작했다.

이바나의 눈이 커졌다.

콰아아아아앙!

조용했던 수도의 밤을 커다란 폭발이 깨워버렸다.

* * *

밤사이에 일어난 큰 폭발은 수도 전체를 소란하게 만들었다.

치안병들과 기사들이 사방을 뛰어다녔고, 사망자를 확인하기 위해 행정부와 아카데미까지 정신없이 움직였다.

오랜만에 바쁘게 움직인 덕분인지, 날이 밝기 전에 제1 왕자, 아니 황태자는 밤에 벌어진 참사에 대해 듣게 되었다.

"아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데……."

제1 왕자의 집무실.

자다가 뛰쳐나왔는지, 제1 왕자는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입고 있는 옷보다 제1 왕자의 표정이 더 가관이었다.

항상 비웃는 듯이 보이던 그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사라졌다.

대신 그의 얼굴에는 경악과 충격이 가득 담겨있었다.

"다시 한번 말해봐, 누가 죽었다고?"

"이바나 영애가 돌아가신 것 같습니다."

"영애가 아니라 공주. 아니, 아니 이런 상황에서 명칭이 무슨 상관이 있겠어."

"아카데미가 폭발한 것이 아니라고 했잖아. 아카데미에 있는 애가 왜 죽어?"

"오헨 경이 수도로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관으로 향하는 길이었다고 합니다."

"설마, 길을 가다가 휘말린 거야?"

"그런데 오헨 경은 수도에 올라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무슨 소리야. 전부 말해봐. 전부 다!"

제1 왕자의 참모인 젊은 귀족이 모아온 정보를 왕자에게 이야기했다.

이야기는 한참을 이어졌다.

잠시 뒤, 상황을 알게 된 왕자는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러니까, 오헨 경이 부른다고 속여서 이바나를 불러낸 다음에 골목길에서 납치하려고 했다고? 그런데 실패하니까 자폭을 해버렸고? 설마 자폭하는 능력이라도 있다는 거야?"

왕자가 쏟아낸 물음에 젊은 귀족이 차분히 대답했다.

"제국에서 파견된 자들입니다. 제국에서 새로 찾아낸 능력일지도 모릅니다."

"호위하던 놈은?"

그 물음은 중년의 기사가 대답했다.

"겨우 목숨만 붙어있습니다. 아마 오늘도 넘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가 알려 주어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말한 덕분에 습격한 사람들이 제국에서 파견된 사람이란 것도 알 수 있었고, 일이 어떻게 진행된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제1 왕자에게는 호위가 살아있는 게 불만이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살아남을 수 있었으면, 내 여동생을 지킬 수도 있었을 거잖아!"

여동생의 명령으로 떨어져 있었던 것이었지만, 이바나를 지키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으니, 제1 왕자가 화를 내는 것도 당연했다.

"동생도 지키지 못한 놈이 하루를 더 살 수 있다고? 당장 죽여버려."

하지만, 화가 난다고 죽여버리라는 것은 심한 명령이었다.

"알겠습니다."

이곳에 있는 왕자의 두 심복은 왕자의 말에 토를 달 수 없었다.

제1 왕자가 얼마나 여동생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왕자에게 아버지가 다른 여동생이 있다는 것은 여기 있는 두 심복만 아는 일이었다.

제1 왕자가 이 집무실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여동생의 존재가 비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제국 놈들은 거기서 전부 죽은 거야?"

"아닙니다.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던 유학생 소녀가 반대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카데미로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보니, 도망치는 중인 것 같습니다."

"그년 하나야?"

"유학생 한 명이 더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관계가 있는지는 확인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확인은 무슨 확인. 그놈 빼고는 전부 가담했다면서. 그놈만 무죄일 리가 없잖아!"

그건 젊은 귀족도 중년의 기사도 같은 생각이었다.

"제국 놈들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전부 잡아들여. 막는 놈들은 모두 죽여버려!"

왕자는 이어질 복잡한 국제 관계도, 정치적인 문제도 지금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우선 죽은 여동생의 영혼을 달래야 했다.

여동생의 죽음에 가담한 자들의 피로.

하지만, 심복들은 정치적인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건 기회일지도 몰랐다.

다른 제국 유학생이 있는 곳에는 공주와 대공녀가 있었다.

조금 전에 막는 자들은 전부 죽이라는 왕자의 명령이 있었다.

제국의 첩자를 잡는 것이니, 그 와중에 사고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중년의 기사와 젊은 귀족의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은 바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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