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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77화 (177/563)

제177화

제2편 피센 후작가로 (1)

1학년 여학생은 기숙사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는 다른 학생들과 같이 있더니, 오늘은 혼자였다.

"알렉스 선배,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평범한 대화 제의였기에 나도 평범하게 대답했다.

"바빠서, 이만."

황당한 얼굴을 한 여학생을 남겨두고, 기숙사 안으로 들어갔다.

후작 아들을 강하게 해준 능력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싶긴 했다.

하지만, 여학생을 보니, 이야기만 나누어도 복잡한 일이 휘말릴 것 같은 예감이 물씬 풍겼다.

한창 검술을 배우고, 조별 과제도 잘 진행되고 있는데, 괜히 일을 더 늘릴 이유가 없었다.

검술이나 심법을 강하게 해주는 능력이었다면 내가 나서서 부탁했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후작 아들을 보니, 내게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았다.

다행히 치근대는 성격은 아닌 모양이었다. 여학생은 처음 거절한 뒤로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 뒤로 평범한 시간이 이어졌다.

평범한 수업과 훈련이 이어졌고, 세우타 공작의 교육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실내 훈련장에서 노인을 만난 뒤, 그에게 먼저 유물 팔찌를 건넸다.

팔찌를 받고 노인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이렇게나 많은 마나를 넣은 거지? 학생마다 돌아다니면서 24시간 계속 넣은 거냐?"

혼자서 밤마다 자기 전에 열심히 넣은 것밖에 없었다.

마나를 넣기가 어렵다고 했는데, '마나 감응력' 덕분인지 오히려 팔찌가 마나를 마구 빨아들였다.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라 마나가 부족했다.

팔찌에 마나를 집어넣다가, 마나 고갈이 될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밤사이에 회복되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매일같이 골골댔을 게 분명했다.

"이러면 곤란한데……."

세우타 공작은 난감한 얼굴로 팔찌를 찼다.

그리고, 대련이 시작되었다.

전과 다르게 공작은 처음부터 강력한 공격을 퍼부었다.

세검이 번개처럼 찔러오는데, 까딱했으면, 몇 번 막지도 못하고 쓰러졌을 뻔했다.

능력으로 대검을 방패처럼 활용하고, 단검의 길이를 늘여서 공작의 파상공세를 겨우 막아낼 수 있었다.

공격은 엄두도 나지 않았다.

목걸이를 쓰고, 15세 용사에게서 얻은 마나 변형을 쓰면 얼추 싸워볼 만했지만, 지금은 검술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대검과 단검까지 휘둘러 공작의 세검을 막아나갔다.

마나를 많이 넣은 덕분인지, 대련은 전보다 길게 이어졌다.

과격한 공격이 이어져서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배우게 된 것도 많았다.

따로 설명도 들어야 하겠지만, 이런 대련만 이어져도 오래 지나지 않아 공작의 심법과 검술을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헉, 헉, 안 되겠다. 다음 주는 쉬어야겠다."

팔찌에서 마나가 떨어지자, 노인이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기 때문이었다.

마나가 늘어나, 시간이 길어지자, 노인의 몸이 버티지를 못한 것이다.

"설마, 그렇게 공격한 게 지치기 전에 쓰러뜨릴 생각이었나요?"

혹시나 한 생각에 물어보았지만, 대답은 듣지 못했다.

정답이었던 모양이었다.

"휴……. 잘 훔쳐 배우고 있냐?"

누운 채로 숨을 가다듬은 노인이 나에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도움이 되고 있었다.

검술의 형식을 배우는 것이라면, 검형을 반복훈련 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내 정도 수준이 되면 검술의 형식보다 검술에 담긴 뜻이 더 중요했다.

그것이 심법과 검술이 하나로 연결된 지점이었고, 그 뜻을 알기 위해서는 이렇게 제대로 된 고수와 대련을 해야 했다.

"검술은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 나중에 심법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만 알려 주면 되겠지."

심법도 따로 알려 주신다니, 점점 내게 이렇게 알려 주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래도 능력으로 얻은 심법과 다를 테니 너무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아니었다, 잘만 배우면 충분히 능력으로 만든 심법이 될 수 있었다.

그레시아 공작가의 심법도 이미 능력이 정보창에 기록이 된 능력이 되었다.

세우타 공작의 심법과 능력도 오래 지나지 않아 내 능력이 될 게 분명했다.

물론, 그 시간은 노인의 체력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였지만.

한참 뒤에야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나는 마차까지 노인을 부축해야 했다.

마나를 얻으면 날아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약해지는 것을 보니, 마나가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보람찬 시간을 보내니, 조별 과제 첫 출발 시간이 되었다.

조원들의 일정과 수업 시간, 피센 후작가와 협상까지 대공녀가 조율해 주었다.

덕분에 다른 조원과 나는 여행을 가는 기분으로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도 마차로 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왕실 마차가 아니라 대공녀가 준비한 마차였다.

왕실 마차에 뒤지지 않는 화려한 마차 두 대와 두 명의 공국 기사가 아카데미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공주와 대공녀는 물론이고, 이미 여러 번 왕실 마차를 탔었던 나와 발레아도 화려한 마차를 타는 게 이상하지 않았다.

요하힘도 가문이 좋아서였는지, 가볍게 마차에 올랐지만, 미리사는 마차에 오를 때부터 좌불안석이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마차에 오른 뒤에도, 구석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눈알만 이리저리 굴려댔다.

그래도, 발레아가 다독여주어서 미리사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그런데, 왜 이쪽 마차에 탔어요? 공주님이 아쉬워하시던데. 대공녀님도 그렇고."

"발레아도 이쪽 마차를 탔습니다만."

앞쪽 마차는 공주와 대공녀, 제국 유학생 요하힘이 타고 있었다.

그리고, 뒤쪽 마차에 나와 발레아, 미리사가 탔고.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네요."

마차별로 사람을 나눈 것은 별 뜻이 없었다. 가문의 위치 순이랄까. 작위 순이랄까.

학생들끼리야 작위도 위치도 없다고 하지만, 가문의 힘과 위치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수도에서 출발해서 후작가로 가는 길이었다. 남의 시선을 생각해서라도 형식을 갖추어야 했다.

앞쪽 마차를 탄 학생들은 공주와 대공녀와 제국 백작의 아들이었다.

죽은 남작 딸이나, 공작 아들이지만 서자인 나는 평민인 미리사와 함께 이렇게 뒤쪽 마차를 타는 게 맞았다.

그런 잡담이라면 잡담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니, 마차는 어느새 수도를 벗어나고 있었다.

다른 곳과 달리 언제나 활기찬 수도. 하지만, 외성을 벗어나니 분위기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표정이 안 좋네요."

의외로 미리사가 내가 본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발레아도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 있었던 영지 일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나도 표정이 굳었다. 하지만, 내 표정이 굳은 것은 전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내 눈앞에 글자가 떠올라 있었다. 메시지창이었다.

<수도를 떠났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을 설정하시겠습니까?>

어리둥절했다.

어째서? 라는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저장 시점이 왜 지금 나타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저번 저장 시점, 개학식부터 이제 겨우 한 달이 지났다.

벌써 생겨날 이유가 없었다.

이렇게 급하게 생겼다는 것은 뭔가 큰일이 일어난다는 말이었다.

더구나 문구가 의미심장했다.

어디를 도착한 것도 아니고,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도 아니었다.

문구는 분명 수도를 떠나서 저장 시점이 생겼다고 말하고 있었다.

특별한 의미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데는 충분했다.

한 달 전 아카데미 개학이 되었다고 '저장 시점'이 생겼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렇다면 다른 결정을 내려야겠지.'

나는 결정을 내리고, 메시지창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니."

나는 저장 시점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표정이 안 좋은 게 아니었나요?"

큰소리로 대답을 했던 모양이었다.

미리사가 내 말에 주눅이 들어서 구석에 쭈그러들었다.

발레아가 나를 째려보았고, 나는 두 사람에게 사과해야 했다.

불안했지만, 나는 이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앞날을 알지 못하는 데 불안하다고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더구나 나에게는 기회가 남아 있었다.

아무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문제가 생겨도 되감을 방법이 있었다.

* * *

알렉스가 일행과 함께 후작가로 향하는 사이, 신입생 이바나는 혼자 아카데미 식당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그녀 주위에 몰려 있던 학생들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 주위에서 식사하는 학생이 없는 것을 보면, 신입생들이 그녀를 의식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의식하는 것도 이바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홀로 당당하게 식사하는 이바나에게 한 여학생이 다가왔다.

그녀는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비어 있는 이바나 반대쪽 의자에 앉았다.

"여기 앉아도 되죠?"

의자에 앉은 뒤에야 물어보는 말에, 이바나는 고개를 들어 여학생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옷에는 색깔이 다른 휘장이 걸려있었다. 2학년 선배였다.

"네."

무심한 대답이었지만, 선배도 그녀의 대답은 상관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같이 다니던 기사 학부 남학생은 어디 갔나 봐요."

다른 학생들도 보이지 않았지만, 선배는 후작 아들인 가엘을 꼭 집어서 물어봤다.

"누구시죠?"

대답 대신에 이바나는 포크를 내려놓고 선배를 바라보았다.

"아, 저는 파울라예요. 제국에서 온 유학생 2학년이에요."

파울라는 이바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평범한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였지만, 제국에서 왔다는 말을 들으니, 이바나는 조금 거부감이 느껴졌다.

"가엘은 일이 있어서 집에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와는 잠깐 같이 다닌 것뿐입니다."

그리고, 다른 때보다 딱딱한 대답이 나왔다. 물론,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뭐가 다르냐고 말하겠지만.

"그런가요. 아, 맞다. 2학년하고 결투한 결과로 뭔가 들어줘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 일로 간 건가요?"

"개인의 일입니다. 무슨 일인지 저도 모릅니다."

갈수록 꺼림직한 느낌이 커졌다. 이바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약속이 있어서."

"네. 만나서 반가웠어요."

파울라는 자리에 앉아 떠나는 이바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뜻하지 않은 만남에 이바나는 기분이 안 좋았지만, 식당을 나선 뒤,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별일도 아닌데 감정을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한편, 식당 밖으로 나서는 이바나를 보며 파울라는 팔짱을 꼈다.

"일을 만든 장본인은 아닐 수도 있지만, 틀리더라도 낚아챌 만한 능력이긴 하지?"

방금 만난 이바나가 마지막이었다.

파울라는 1학년들에게서 이미 이바나에 대한 정보를 모두 모았었다.

정보를 얻을수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능력이 존재한다니.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멀쩡하게 아카데미를 다닐 수 있다니.

더구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건 분명 시간과 연관이 있는 능력이었다.

다른 정보원들의 곁다리로 온 유학이었지만, 운 좋게 대어가 걸렸다.

대어가 걸렸으니, 다른 사람이 채가기 전에 낚아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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