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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73화 (173/563)

제173화

제23편 기사단 고문 (2)

생각보다 너무 대단한 분을 모셔왔다. 아무래도 조언이 필요했다.

나는 다음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카트린의 교수실로 찾아갔다.

허락을 얻어 안에 들어가자, 카트린은 한창 방패를 닦고 있었다.

그녀답다면 그녀다운 모습이었다.

그녀는 나를 반갑게 맞이했지만, 나는 우울한 얼굴로 인사를 했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된 겁니까?"

카트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우타 공작님 말이야? 대단하시지? 내가 정말 고생해서 모셔왔어, 그런데, 왜?"

"우선, 공작님이 맞으신 거였군요."

아쉽게도 노인의 헛소리가 아니었다.

"영지도 없고, 명예직에 가깝긴 하지만, 공작님은 공작님이지."

이어진 카트린의 말에 따르면 세우타 공작은 전대 왕의 여러 동생 중 하나였다.

그는 왕의 자격으로 거론되는 '마나 감응력'을 얻지 못해 후계자 싸움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마나 회로 구축법', 속칭, 마나 심법을 얻어 왕실, 아니 왕국에서 가장 강한 기사가 되었다.

"나도 보지는 못했지만, 그때는 정말 대단했다고 들었어. 마물과 싸우다 마나와 능력을 잃지 않았다면 너희 공작가보다 훨씬 큰 가문을 일궜을지도 몰라."

그레시아 공작가도 그 당시에 왕가에서 분리되었다.

세우타 공작과 같은 이유였다. '마나 감응력' 대신에 마나 심법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공작가를 찾아다니며 심법을 구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유물 조사대]의 목적지에 공작 영지들부터 적어야 하나 고민을 하는 사이, 카트린의 말이 이어졌다.

마나와 능력을 잃은 뒤에도 세우타 공작은 왕실 종친의 위치가 유지되고, 공작 작위도 내려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종친이라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고, 공작 작위도 영지도 없는 명예직이었던 모양이었다.

"본인이 마나와 능력을 잃으면 자식도 각성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었겠지."

이 세계의 유전법칙인 왜 이리 개판인 건지.

선천적인 능력의 유전이 왜 후천적인 사고로 사라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설마 상속능력이라는 게 DNA가 아니라 마나로 계승된다는 건가.

"지금도, 왕실 기사단의 고문이시기는 하지만, 거의 집에만 계셔서 기사단에서도 아는 사람이 얼마 없지."

돌려서 말하긴 했지만, 결국은 능력을 잃은 뒷방 늙은이라는 소리였다.

너무, 안 좋은 소리만 한 것을 깨달았는지, 카트린이 정색을 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검술이 제일 뛰어난 사람이었어."

확실히 눈썰미 하나는 기가 막혔다.

그런데, 지금은 그 눈썰미가 너무 좋다는 게 문제였다. 그 눈썰미에 숨겨왔던 능력들이 다 드러날 것 같았다.

내가 걱정하고 있는 것을 알았을까?

카트린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네 능력이 드러나는 것을 너무 걱정할 것 없어. 이미 내가 준 단검으로 우리 집안 능력을 얻은 것도 말씀드렸어."

"네? 괜찮을까요?"

그런 비밀을 말하다니.

내가 카트린 가문의 능력을 얻게 된 것은 카트린만 알고 있었다.

카트린의 아버지인 백작도 모르는 일이었는데, 그걸 알린 것이다.

오래 같이 다녔던, 공주나 발레아라면 대충 눈치채고 있을 것 같았지만, 둘 다 그 점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 너에게 허락을 얻어야 했겠지만, 모셔오려면 방법이 없었어."

아무리 그래도, 나에게는 말했어야 했다.

내 표정을 훔쳐보던 카트린이 억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공주님이 직접 편지를 들고 오셨는데도 꿈쩍도 하지 않으셨다니까. 그 비밀을 말한 덕분에 겨우 움직이신 거야. 미안!"

그녀는 사과와 함께 고개를 푹 숙였다.

나를 위해 방법을 찾다가 말한 것이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거기다, 그녀가 준 검으로 얻은 능력이었고, 그녀 가문의 능력이었으니.

솔직히 그동안 비밀을 지켜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방금, 사과로 나는 아쉬움을 날려버렸다. 다만, 확인은 해봐야 했다.

"함부로 말하고 다니실 분은 아닌 것 같지만, 비밀이 지켜질까요?"

"나에게 약속하셨어. 그분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니까."

신기한 일이었다.

카트린이 무엇 때문에 능력을 잃은 노인을 이 정도로 신뢰하는 건지.

세우타 공작에 대한 의문이 더 커졌다.

카트린의 믿음을 나도 믿어보기로 했다.

솔직히 언제까지 비밀이 지켜지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계속 싸우다 보면 들킬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비밀이 지켜진 것만으로도 대단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했다. 내가 다 클 때까지, 밝혀진 여파를 이겨낼 힘이 생길 때까지.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삶이 반복된다는 것만은 절대 들키지 않을 생각이었다.

들키기도 어려운 능력이었지만, 다른 이에게 알려진다면 그 여파가 어떻게 될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어느새 대화는 단검 이야기로 넘어갔다.

"솔직히 지금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해. 능력도, 유물도 별의별 게 다 나오잖아. 네 능력하고 단검 유물의 궁합이 맞은 거겠지."

"세우타 공작님도 그런 식으로 이해하신 것 같고."

유물로 능력을 얻는다라…….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

세우타 공작을 상대할 방법을 찾은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기사 학부 수업 시간이 되었다.

나는 카트린의 지시로 연무장이 아니라, 개인 훈련장으로 향했다.

왕실과 귀족들이 한껏 지원하는 왕립 아카데미였지만, 개인 훈련장은 쉽게 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교수나, 대귀족, 왕족, 아니면 3학년 졸업생들이나 겨우 쓰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개인 훈련장으로 쓰이는 건물로 들어가, 알려준 연습실로 향했다.

건물 지하의 넓은 방에 들어가니, 예상대로 노인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네놈이 다른 사람들 시선 때문에 제 실력을 못 발휘하는 것을 보고, 여기 훈련장을 빌렸다. 남들 눈이 없으면 저번처럼 헛손질은 하지 않겠지."

그런 문제도 있었지만, 내 걱정은 그런 게 아니었다. 다른 학생들보다, 눈앞의 노인이 더 걱정이었다.

"네놈은 나도 못 믿을 테니, 자 받아라. 신전에서 받아온 계약서다."

노인은 내게 둘둘 말린 종이를 던져주었다.

노인의 말대로 신전의 계약서였다.

"네놈의 비밀을 지켜준다고 약속한 계약서다."

종이를 펴서 확인하니, 노인의 말이 맞았다.

다른 누구에게도 내 비밀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계약서. 신관의 공증까지 받은 제대로 된 계약서였다.

비밀을 어겨도 저주가 내리거나 하지는 않지만, 내가 이 계약서를 들고 있으면, 그가 비밀을 지켰는지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세우타 공작은 자신의 의지를 알린 것이었다.

내가 계약서를 보는 동안, 노인은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혼자 구시렁댔다.

의문이 드는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세우타 공작이 나를 위해 이 정도까지 해주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네놈은 알 거 없다. 나도 비밀이다."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대신, 좀 더 편하게 내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가지고 온 검을 꺼냈다.

허리에 맨 단검을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등에 메고 온 대검을 꺼내 들었다.

"단검은 들었는데, 그 커다란 놈은 처음 본 거군. 그게 네 전용 무기냐?"

"네, 단검하고 비슷한 검입니다."

솔직히 유물이라는 점 빼고는 전혀 안 비슷했다.

하지만, 공작이 알아서 오해해주어야 하기에,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런가, 그래서 저번에는 제 실력을 안 보여준 거였었나……."

내가 든 검들을 보고,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알아서 오해해주었다.

"자, 그럼 네 실력을 펼쳐봐라."

노인은 지팡이를 짚으며 뒤로 물러섰다.

처음 보게 된 실내 훈련장은 무척 훌륭했다.

카트린 집 지하 훈련장보다는 못했지만, 넓은 훈련장은 바닥도 벽도 무척이나 단단해 보였다.

나는 검을 들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실력을 보일 생각이긴 했지만, 노인 말대로 다 보여줄 수는 없었다.

특히, 지난 6개월 동안 용사 카를로스와 싸워서 얻은, 마나 운용법과 검술은 절대 보여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왕실 창고에서 검을 얻기 전의 실력을 보여주면 될 듯했다.

실전이 아니었으니, 마나가 움직이는 것을 정교하게 눈치채지는 못하겠지.

그런 생각을 가지고 검술을 펼쳤다.

부우웅. 슉. 부우웅.

대검이 공간을 가로지르고, 단검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대검과 단검이라는 변칙적인 무기들과 실전에서 키워온 검술이었다.

혼자 시연하고 있으니, 연무장에서 장검으로 시연했을 때와 달리, 체계도 없어 보이고, 검술처럼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래도, 노인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한참 동안 검을 휘두른 뒤에, 노인을 보니, 노인은 뭔가 고민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뭐라 물어볼 수는 없었다.

명예직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공작이었다.

왕의 삼촌이었고, 분리가 되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우리 공작가의 어른이기도 했다.

저번에 들었을 때와 달리, 왕실 기사단의 고문이라는 이름이 전혀 다르게 느껴지는 중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노인의 말을 기다렸다.

한참 뒤에 노인이 입을 열었다.

"좋긴 좋은데……."

지금도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다.

"이대로라도 나쁘지 않아. 몇 달 정도 가르칠 만도 하고."

오, 그래도 긍정적인 말이 나왔다.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끝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마나를 잃었으니, 심법을 배우거나 대련을 하는 것은 무리일 터였다.

하지만, 왕실 검술의 달인이라고 했으니, 제대로 된 왕실 검의 형식이라도 배울 수 있다면 감지덕지했다.

하지만, 노인의 고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싹을 봤으니, 그냥 가기도 그렇지. 아무래도 직접 확인해야겠어."

결국 이해 못 할 말을 늘어놓더니, 노인은 품에서 낡은 팔찌 두 개를 꺼냈다.

그는 입맛을 다시더니, 팔찌를 양팔에 꼈다.

팔찌는 알아서 손목에 맞게 줄어들었다.

유물이었다. 아니, 뭔 유물이 이렇게 흔하냐.

그것보다 갑자기 유물을 꺼낸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팔찌를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수십 년 전, 봉인지를 떠난 강대한 마물 하나가 서쪽으로 계속 이동한 적이 있었다. 세력 싸움에 진 강대한 마물 하나가 봉인지를 빠져나온 것이었지."

기억이 났다.

수십 년 전 마물의 왕 중에 한 마리가 봉인지를 벗어나 여러 왕국에 피해를 주었다는 것을 서재의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마물은 덤벼오는 인간들을 쓰러뜨리며 계속 서쪽으로 향했다. 강대한 마물의 마나에 다른 마물들이 따랐고, 마물들이 지나간 나라와 영지는 쑥밭이 되었지."

우리 동쪽에 있던 나라들이 그때 일로 제국의 속국 비슷하게 되었었다고 했었나.

"그렇게 우리 왕국의 차례가 되었지. 그리고, 우리는 막아냈지."

생각해보니,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었다. 이런 이야기라면 역사책에 남겨서 크게 홍보를 해야 했을 텐데…….

"이야기로 남기기에는 피해가 너무 컸으니까. 망한 영지도 있었고, 도망간 귀족도 많았고, 왕실도 피해가 있었지."

결국, 귀족과 왕실은 자신들의 오점을 숨겼다는 이야기였다.

뻔한 이야기라 이제는 놀랍지도 않았다.

"왕실 피해 중 하나가 나였어. 마물과 싸우다가 너무 심하게 다쳤지. 포션을 쓰고, 열심히 치료했지만, 몸을 고치는 게 겨우였다."

나는 말없이 노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알지 못하는 옛이야기였지만, 그에게는 인생의 반환점이 되었던 이야기였을 터였다.

그는 팔찌를 쓰다듬었던 손을 내렸다.

"다들 내가 마나와 능력을 잃었다고 했지만, 능력을 잃은 것은 아니었지. 마나만 사라진 거였다, 능력이 마나를 기반으로 움직이는 거니 다를 것은 없었지만……."

그는 지팡이를 짚고 있던 몸을 폈다.

그리고, 들고 있던 지팡이에서 검을 뽑았다.

"이렇게 마나를 담을 수 있는 유물이 있다면 잠깐이지만 마나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마나를 담아둘 수 있고 마나를 쓰지 못하는 사람도 마나를 쓰게 해줄 수 있는 유물이라니.

내 목걸이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 유물이었다.

하지만, 나는 검에 더 눈이 갔다. 지팡이가 숨겨져 있는 검이라니. 로망을 아는 어르신이었다.

"이런 건 몸으로 확인해봐야 하니까. 어서 덤비거라. 시간이 얼마 없다."

그의 말에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갑자기 마나가 실내 훈련장을 가득 메우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팔찌에서 마나를 끌어모았다지만, 그렇게 대단한 마나는 아닌 것 같았다.

다만,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기세가, 위압감이 달랐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노인은 전처럼 평범한 노인이 아니었다.

15살 용사보다 무서워 보이는 기사가 내 앞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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