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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71화 (171/563)

제171화

제21편 조별 과제

2학년 건물 출입구에 붙은 조별 과제 명단에 적혀 있는 우리 조원은 다음과 같았다.

이 일의 원흉일 게 분명한 두 지체 높으신 분.

아이샤 공주님과 프리다 대공녀님은 당연히 들어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과 친한 발레아가 포함되어 있었고, 그 뒤에는 행정학부 소속으로 피아르의 사촌인 미리사가 적혀 있었다.

발레아는 이해가 됐지만, 미리사가 왜 포함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무시무시한 맴버에 평민이 버틸 수 있을지,

거기다, 미리사라면 없어진 삶에서 입학식장을 피아르와 함께 날려버렸던 폭파범이었다.

물론, 미리사는 피해자에 불과했지만,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니, 다음 사람을 생각하면 미리사의 포함도 이해할 수 있었다.

요하힘.

그 이름을 보고 고개가 옆으로 기울어지는 게 당연했다.

왜 제국 교환학생이 우리 조에 포함되어 있는지. 뭔가, 제국의 거대한 음모나, 정치적인 거래가 있는 것일까?

그런 의심이 절로 들 수밖에 없었다.

각설하고, 우리 조의 구성원을 보면 정말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공주와 대공녀, 발레아와 미리사, 그리고 나와 요하힘.

내가 괜히 역대 최고, 최악의 조별 과제 조라고 말한 게 아니었다.

다른 조들도 이리저리 연관된 귀족들끼리 조가 짜여 있었지만, 우리 조를 모두 눈여겨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샘과 부러움도 많이 포함된 것 같았지만, 그런 시선에는 이미 면역이 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런 조를 짜버렸는데, 평범한 과제가 나올 리가 없었다.

거기다, 아무리 공주님과 대공녀님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해도 어떻게 이런 조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2학년 조별 과제는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전공 수업의 심화로 인한 다른 학부생들과의 단절을 해결한다는 취지가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여러 능력과 성격을 지닌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서 왕국 곳곳에 숨어있는 문제를 해결하고, 조원들의 협동심과 실력을 키운다는 거창한 내용이었다.

예상과 달리 이 조별 과제는 초대 왕인 용사 카를로스가 만들었다.

"학생들의 성장에는 용사들이 가던 길을 똑같이 밟아보는 것이 제일 좋다!"

라는 일갈과 함께 초대 왕은 조별 과제를 아카데미 정식 수업에 넣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마왕을 봉인한 우리도 이런 식으로 성장을 했으니, 군소리 말고 따르라는 말에 신하들은 반대하지 못했고, 결국, 조별 과제가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 조별 과제는 '용사의 길'이라는 낡지만 거창한 이름이 붙어있었다.

초대 왕이 조별 과제를 만든 이유에는 학부생들 간의 교류는 들어있지도 않았을 게 분명했다.

저 길고 거창한 두 번째 이유가 초대 왕이 이 조별 과제를 만든 진정한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수백 년이 지나는 동안, 초대 왕의 생각은 이 조별 과제에서 잔재만 남게 되었다.

용사들이 걸어간 길, 사람들을 돕는 모험가로 성장하라는 초대 왕의 뜻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별 과제 우리 조의 첫 번째 모임은 벽보가 붙은 다음 날 수업이 끝난 뒤였다.

우리 조는 아카데미에 마련되어 있는 손님맞이 응접실 중, 한곳에 모이게 되었다.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었지만, 대공녀의 요청으로 우리가 하루 동안 빌리게 되었다.

모두 모이고, 대공녀의 하녀들이 다과와 차를 내어놓았다.

대공녀가 먼저 차를 마신 뒤, 응접실에 모인 학생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아이샤 공주님과 제가 모르는 분들과 1년간 과제를 진행하는 것은, 여러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주가 고개를 끄덕여 대공녀의 말에 동의했다.

뒤에서 조용히 결정되었는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정식으로 이야기가 나온 모양이었다.

"배정하는 분들이 오해를 살 수도 있고, 학생들 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기야 이런 어수선한 시절에 대공녀와 공주와 함께 조별 과제를 한다는 것은 두 사람과 같은 편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공주의 줄을 잡았다고 생각될 수도 있고, 공국왕의 편에 선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평범한 귀족의 자녀도, 대귀족의 후계자라도 곤란해질 수 있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아는 분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저희 두 사람의 요청이 크게 작용한 것이니, 모인 분들에게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내 생각과 조금 다른 이유로 조원이 결정된 모양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발레아도, 요하힘도 이해가 되었다.

발레아는 원래 그런 쪽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아버지인 남작이 죽은 점도 있지만, 얼마 전에 영지에서 벌어진 일 덕분에 그런 쪽은 더욱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게 되었다.

제국인인 요하힘도 그런 쪽 문제는 전혀 없었고,

그렇게 되면 미리사는 평민이라서 같은 조가 된 것일 터였다.

아니, 잠깐,

그렇게 따지면 오히려 내가 문제가 되었다.

나는 오해받기 충분한 그레시아 공작의 자식이었다.

"오해 때문이라면, 그럼 저는요?"

내 질문에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모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왜?

"오해할 게 없잖아요. 다들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데. 알렉스 님은 공주님의 호위이자, 대공녀님의 보호자라고."

발레아의 말에 공주님이 옆에서 침울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설마 제가 그동안 믿은 게 오해였나요?"

나는 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오해는 아니지만요……."

오해는 아니었지만,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같은 조가 된 것에 불만이 있으신 분은 없죠?"

대공녀의 물음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물론, 모두가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닐 터였다.

바로 내가 마음속으로 불만을 가득 품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 조는 고생길이 훤해 보였다.

그동안, 내가 가는 곳마다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그냥 운이 나빠서인지, 아니면 내 능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인원이면 그 사건들이 장난이 아닐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 조에서는 괜한 마음고생을 할 필요가 없었다.

대공녀와 공주라는 줄을 버릴 생각도 없으니, 불만은 마음속에만 담아두기로 했다.

"불만은 없으신 것 같으니, 그럼, 자기소개를 해 볼까요? 우선 저는 프리다입니다. 공국에서 유학을 왔어요."

역시, 사교계 만렙이었다. 대공녀는 물 흐르듯이 대화를 주도했다.

대공녀가 시작했으니, 공주가 받을 차례였다.

"아이샤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11살이 된 아이샤 공주도 1년 전과 꽤 달라졌다.

1년 동안 키는 그리 크지 않았고, 어린 모습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지만, 성격과 표정이 그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처음 봤을 때, 무표정한 가면으로 자신을 숨기고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겁먹고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일부 사람들 한정이었지만, 무표정한 가면이 전보다 조금 부드러워졌다.

가면이 흐려진 것은 지치거나, 포기가 아니라 자신감 덕분이었다.

1년 동안 공주는 정신이나 육체 모두가 많이 성장했다.

공주를 흐뭇하게 보고 있자니, 이번에는 요하힘이 말했다.

"요하힘 폰 시라흐입니다. 카를로스 왕국 아카데미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알렉스 님과 검을 나눌 수 있을 테니, 저는 만족합니다."

제국인이라고 다 나쁜 놈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요하힘도 제국뽕이 가득한 제국인이었지만, 그래도 인간적으로 꽤 괜찮은 녀석이었다.

물론, 그만큼 귀찮은 놈이긴 했다.

나는 비드라는 자와 비슷한 그의 얼굴은 이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집안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으니, 알 방법도 없고, 비드가 요하힘의 친척이라고 해도 지금 내게는 별 상관이 없었다.

다음은 내 차례이려나.

"알렉스입니다."

이름만 말하고 끝내자, 발레아가 옆에서 야유를 보냈다.

"그게 뭐예요. 좀 더 말해야 해요."

발레아는 어느새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고개를 숙인 것도, 변한 어머니의 말에 버벅거리던 것도 모두 잊은 것 같았다.

"재미없는 알렉스 공자님 다음은 저 발레아예요. 귀족 자리가 아슬아슬한 상황이니, 좋은 귀족 남자가 있으면 소개 부탁드려요."

전혀 귀족 여성답지 않은 자기소개였지만, 발레아라서 그런지, 다들 그러려니 했다.

다만, 요하힘은 왕국 귀족 영애들을 오해하게 될 것 같았다.

나는 발레아의 재기발랄한 인사를 보고, 다시 다짐했다.

기필코 새 계약을 받아내기로.

그리고, 마지막은 미리사였다. 그녀는 겁먹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저, 저는 시키는 대로 열,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답도 여러 번 더듬거린 덕분에 겨우 마칠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 자리에 있는 멤버들은 그녀가 말도 붙이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제국인인 요하힘은 무서워서 안 될 테고, 공주와 대공녀에게는 접근도 어려울 터였다.

발레아와는 그럭저럭 말하는 것 같지만.

그런데, 왜 나는 저렇게 무서워하는 것 같지?

나와 눈이 마주친 미리사는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소개가 끝나고, 대공녀가 다시 대화를 이끌었다.

"조별 과제는 다들 아시겠지만, 2학년 일 년 동안 진행됩니다. 조별 과제를 이유로 수업을 뺄 수도 있고, 행사도 건너뛸 수 있어요."

그 정도 빼는 사람은 없긴 하지만, 거창한 조별 과제를 받은 선배 중에는 수업의 반을 뺀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대공녀가 계속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을 보니, 아무리 봐도 우리 조의 조장은 대공녀가 될 것 같았다.

그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좋고, 일을 진행하기도 편했다.

하지만, 대공녀가 분명 이렇게 나서서 일을 진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우리 조도 수업을 많이 빼야 할 것 같아요. 과제가 꽤 대단하거든요."

대공녀가 슬쩍 내 눈을 피했다. 분명 저건 미안해하는 표정이었다.

도대체 무슨 과제길래.

대공녀가 책상에 올려져 있던 종이를 뒤집었다.

빈 종이인 줄 알았는데, 조별 과제 문서였다.

"이정도 인원을 한 조로 만들었는데, 평범한 과제를 줄 수는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주신 과제가……."

그녀는 종이에 있는 내용을 쭉 읽어내렸다.

"본 조는 조별 과제의 초기 기획으로 돌아가자는 대공녀의 뜻을 받아들여서, 용사들이 걸어간 길과 남긴 후손과 능력, 유물들을 확인하고, 유적을 방문해서 역사와 비교하는 과제를 내리겠다. 과제 수행 방법은……."

뒤에 수행 방법과 성적을 어떻게 줄 지에 대해 길게 적혀 있었지만, 그리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결국, 과제는 쉽게 말해서 왕국을 돌아다니면서 용사의 후손을 만나고 유물을 확인하는 그런 과제였다.

"교수가 주신 과제라고 하셨나요……."

내 말에 대공녀가 고개를 더 돌렸다.

"과제 이름은 뭔가요?"

애매해진 분위기에 발레아가 다른 것을 물어봤다.

"유물 조사대……. 입니다."

대공녀의 대답에 분위기가 더 애매해졌다.

'반지, 아니 유물 원정대가 아닌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내가 과제 이름을 듣고 처음 떠올린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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