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6화
제16편 신부 호위
그렇지만, 기사단장은 두 사람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요새는 또 무슨 이야기입니까?"
그는 오늘 돌아와서 다른 조의 활약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총집사가 기사단장에게 알렉스 조가 한 일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기사단장은 입을 딱 벌렸다.
"그걸 전부 알렉스 공자가 혼자 생각해서 해냈다는 이야기입니까?"
"운도 따랐겠지만, 결국 아무 지원도, 조언도 받지 않고 해낸 거지."
기사단장의 물음에 공작은 동의했다.
공작의 말을 듣고, 기사단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설마……. 알렉스 공자가 후계자 자리를 노리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의 말에 공작도 총집사도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기사단장이 알렉스의 실력을 알고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한 말은 공작이 알렉스에게 물었던 말과 총집사가 걱정했던 말과 다른 말이 아니었다.
공작은 고개를 저었고,
"본인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총집사도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언제 또 물어본 건지 모르겠지만, 기사단장 알론소는 공작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 잘되었습니다. 알렉스 공자를 차기 기사단장으로 키우면 어떻겠습니까. 실력도 나쁘지 않고, 병력 통솔에 해결 능력까지 있으니, 기사 단장감으로 안성맞춤입니다."
친동생이라면 기사단장을 맡기기에 조금 애매하겠지만 '서자'이기에 오히려 가능할 것 같았다.
이제 기사단장을 다음 사람에게 넘겨줄 때였다.
아직 몸과 마나는 전성기와 크게 차이 나지 않았지만, 나이는 이미 50을 넘어섰다. 언제 실력이 확 떨어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다음 대 기사단장을 열심히 구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안성맞춤인 대상이 나타나다니.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자신이 뒤에서 지원해주면 몇 년 안에 훌륭한 기사단장이 나올 게 분명했다.
기사단장의 말에 공작은 쓴웃음도 짓지 못했다.
"알렉스는 기사단장으로 쓸 수 없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직 어리고, 실력이 부족한 것은 몇 년 안에 채워질 겁니다."
"아니.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실력이 너무 넘쳐서 안 돼."
영주보다 '훨씬 뛰어난 서자'에게 기사단장 자리를 줄 수는 없었다.
그럭저럭 실력이 있는 서자라면 괜찮겠지만, 알렉스는 잘나도 너무 잘났다.
장로와 가문의 많은 사람이 반대할 테고, 본인도 하려고 할 것 같지 않았다.
* * *
집무실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지 못한 나는 다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다른 귀족들이 오고, 가문의 장로들이 들이닥치는데, 서자가 괜히 모습을 보여서 좋을 게 없었다.
방에서 푹 쉬면서 결혼식을 기다리면 그만이었다.
하녀 플로라가 늘어진 내 모습을 보고 무척이나 답답해했지만, 겨우 쉬게 되었는데, 다른 사람이 답답해한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계속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때, 내 방에 손님이 찾아왔다.
"아드리아 영애가 오셨습니다."
플로라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비 형수가 내 방에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돌려보낼 수도 없었다.
나는 급하게 단장을 하고, 손님을 맞았다.
오랜만에 본 예비 형수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전에도 예뻤던 얼굴은 아름답다고 말할 정도로 변해있었고, 활기차 보이던 표정은 품위 있게 바뀌었다.
시몬 형이 어렸을 때부터 왜 예비 형수에게 매달렸나 했더니, 당첨될 복권을 미리 알아봤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달라진 예비 형수가 무척이나 낯설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어른이 된 모습도, 나에게 말을 높이는 모습도 낯설게 느껴질 뿐이었다.
"아드리아 영애님을 뵙습니다."
나도 그녀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했다.
아드리아는 내 대답에 작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그리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훌쩍 자라셔서 못 알아볼 뻔했어요."
확실히 내 몸이 확 자라서 이제는 아드리아 영애를 내려다볼 정도였다.
하지만, 겉모습이 아니라면, 아드리아가 나보다 훨씬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동안, 그녀의 집이, 그녀의 사정이 그녀를 변하게 한 것 같았다.
후작가의 난 이후로,
이에로 후작가의 영향력은 전보다 엄청 많이 줄어들었다.
명예도 잃고, 첫째 아들도 죽고, 새로 후계자가 된 둘째 아들은 팔이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영지의 장래가 어둡고, 자식을 잃은 덕분에 후작의 건강도 안 좋아지니, 그의 영향력이 예전 같을 리가 없었다.
영향력이 달라졌는데, 공작과 후작의 관계가 전과 같을 리가 없었다.
두 집안의 결혼도 대등한 두 집안의 결합에서 이제는 공작이 후작의 영향력을 흡수하는 형태로 바뀌어 버렸다.
후작가에서는 공작가가 결혼을 빌미로 후작 영지를 좌지우지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할 정도였다.
그 덕분에 결혼식도 지금까지 몇 년이나 미뤄진 것이었다.
시몬 형이 아드리아 영애를 좋아하지 않았으면 결혼 약속이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을지도 몰랐다.
서로 인사를 마친 뒤, 아드리아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예의에 맞게 그녀가 말을 꺼내기를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리니, 영애가 결심한 듯, 문 옆에 서 있는 플로라를 살짝 쳐다보았다.
"밖에 나가서 기다리겠습니다."
플로라가 바로 알아차리고, 문밖으로 나갔다.
플로라가 나간 뒤에 아드리아가 주저주저하며 말을 꺼냈다.
"공자님이 후작가에 오셨을 때, 많은 일이 벌어졌었죠."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녀가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일이.
"그때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내 잘못이 가장 컸었나 봐요."
비밀통로를 서자인 오빠에게 알려주어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걸, 그녀도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저렇게 변한 건가.
"도망갈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시몬 님이 계속 좋아해 주신 덕분에 살아갈 용기가 생겼어요."
도망간다는 말이, 평범하게 떠난다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시몬이 사람 하나를 살린 모양이었다.
"사과할 사람들은 죽었지만, 고맙다는 인사를 할 사람은 남아있더라고요."
그녀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때, 열심히 노력해주신 것을 감사드려요."
그녀가 보기에 결과는 안 좋았지만, 아드리아는 내게 감사를 표했다.
솔직히, 나는 감사받을 자격은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알지 못하지만, 두 번의 삶 동안 그녀를 돕기 위해 노력했었다.
결국, 아드리아는 모르겠지만, 아드리아의 목숨도 구했고.
달라진 모습이었지만, 이렇게 결혼까지 하는 것을 보니, 나름 감회가 새로웠다.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심정이랄까.
감사 인사를 받으니, 그녀가 변한 아쉬움보다 뿌듯함이 더 커진 느낌이었다.
예비 형수의 감사는 공작의 칭찬보다 훨씬 만족스러웠지만, 그녀가 그런 이유로 내 방을 찾아올 때는 아니었다.
"그런데, 고맙다고 말하려고 오신 건가요?"
결혼식을 앞둔 예비 신부가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되었다.
다른 귀족들도 왔는데,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했다.
더군다나, 후작가는 서자에게 집안이 망한 상황.
"여기 온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에요."
다행히 아드리아 영애는 겉모습만 어른이 된 것이 아니었다.
"결혼식 날 신부 호위를 부탁했더니, 총집사님이 공자님을 추천하셨어요."
신부 호위?
이 세계 결혼식에 대해 잘 모르니, 그런 게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신부 호위가 있다고 해도, 신부 쪽에서 준비하는 걸 텐데…….
하지만, 결혼 관습을 모르니, 내가 뭐라 말할 수는 없었다.
"제가 제일 믿을 수 있는 분을 부탁했거든요."
말을 하면서 영애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실력 좋은 분을 말했지만, 총집사님은 다른 뜻으로 생각하신 것 같아요."
총집사가 공작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면, 분명, 실력으로 추천한 것이었다.
"마침 감사를 표하러 공자님 방을 찾아봐야 했기에, 제가 직접 공자님을 찾아뵙고 부탁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드리아는 그렇게 해서 이 방에 오게 된 것이었다.
"돌아가서 거절하셨다고 말하고, 다른 분을 요청하면 될 거예요. 공자님께는 폐가 되지 않을 겁니다."
전과 달리, 남에게 배려도 잘하고, 생각도 깊어졌다.
이런 것이 어른이 된 것이겠지.
아드리아는 어렸을 때 친구로서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몇 년을 다시 살기도 했고.
그런 친구의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잠깐 호위 정도는 서줄 수 있었다.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드리아가 돌아가고, 나는 다시 방 안을 뒹굴었다.
이 뒤에도 손님이 계속 방문하고, 저택은 귀족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손님들을 맞이하느라 공작부인은 바쁘게 움직였고, 하녀와 고용인들은 결혼식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결혼식 전날, 왕실에서 왕을 대신해서 특사까지 찾아왔고, 공작가는 결혼식 준비를 끝냈다.
다음 날,
그레시아 공작의 후계자. 시몬 데 그레시아의 결혼식은 메세타 시의 신전에서 진행되었다.
공작은 결혼 축하 선물로 영지민들에게 식량과 고기를 뿌렸고, 도시에서는 축제가 벌어졌다.
주교가 진행하는 결혼식은 무척이나 장엄하고 지루했다.
나는 키가 작은 기사에게 판금 갑옷과 투구를 빌려 쓰고, 신부 뒤에 서서 그 지루한 결혼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오늘 하루 신부의 호위 기사였다.
알아보니, 신부 호위 기사라는 것이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기사들을 가진 귀족들에게는 결혼식에 신부와 신랑의 호위 기사를 세우는 게 관례였다.
호위 기사는 집에서 출발하는 신랑과 신부를 호위하기 시작해서, 결혼식과 피로연이 끝날 때까지 그들의 옆에서 지키는 역할이었다.
나도 아침부터 신부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마차를 타고 신전으로 올 때까지.
그리고, 지금 신전에서는 멋진 갑옷으로 전신을 두르고, 신부 뒤에 서서 멍하니 주교가 떠드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루한 주교의 설교를 듣고 있자니, 이건 호위가 아니라, 결혼식 장식처럼 느껴졌다.
하긴, 결혼식에 호위 기사가 필요할 이유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건 호위 기사가 아니라 결혼식을 꾸며주는 움직이는 멋진 갑옷일 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게 되니, 지루했던 결혼식이 더 지루해졌다.
더구나 입지 않던 갑옷을 입어서 더 답답했다.
물론, 판금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덕분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키가 크지 않은 덕분에 신부 쪽 호위 기사로 어울리기도 했고.
설마, 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몸이야 기사를 뛰어넘어 힘들지는 않았지만,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결혼식을 지켜보는 동안, 조금씩 무언가 내 감각을 건드리는 게 느껴졌다.
신전 안에는 마나를 가진 수많은 귀족이 있었고, 신전 밖에는 퇴장할 때 예도를 위해 모인 기사들과 축하하기 위해 모인 영지민들이 가득 모여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나로 누구를 감지한다던가, 감각으로 사람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금 내 감각에 뭔가 걸리는 것은 그런 평범한 마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마나들과 달리, 무척이나 희미한 마나였다.
느껴질 듯 말 듯 한 마나. 하지만, 마나 자체는 무척이나 강렬했다.
마나는 강하지만, 알아차리기 힘든 마나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마나를 느껴본 적이 있었다.
촤악!
나는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성가대석을 향해 몸을 날렸다.
'젠장, 결혼식에서 암살자는 무슨 국룰이냐!'
성가대석으로 달려가는 내 눈에 품에서 단도를 꺼내는 사람들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