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63화 (163/563)

제163화

제13편 요새 전투 (1)

요새는 자작 영지의 서쪽에 있었다.

영지의 경계와 멀지 않은 곳으로 요새는 영지에서 수도로 가는 길과 멀찍이 연결되었다.

수도로 가는 길에서 숲속으로 나 있는 소로를 따라 10여 분을 들어가니 목책으로 만들어진 요새가 보였다.

숲 한가운데 만들어진 낡은 목책 요새.

숲에서 나타나는 마물들을 감시하고 필요하다면 정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요새였다.

하지만, 이곳은 얼마 전까지는 사람이 살지 않은 버려진 요새였었다.

왕국이 안정화되고, 영지가 확장되어 이 숲은 안전지대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달랐다.

"드나드는 수레와 병사들로 무척 바빠 보이네요."

숲에 나 있는 외길, 요새로 들어가는 길에는 바퀴 자국과 말 발자국들이 수없이 만들어져 있었다. 아직 남아있는 것을 보니,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되는 자국들이었다.

지금도, 마차 한 대가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요새로 들어가고 있었다.

"요새로는 물자가 들어가는데, 수도 쪽으로는 바퀴 자국이 거의 없다라……."

신기하게도 아직 수도 쪽으로는 물건을 보내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도망갈 생각이라면 미리미리 물건을 보내도 되었을 텐데,

혹시 영지에 미련이라도 남은 것일까.

하기야 영지를 버리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마물이라는 핑계는 있겠지만, 영지를 버리면 수도 귀족들의 시선도 피하기 힘들 것이었다.

우리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 요새가 수도로 가는 중간 기착지에 불과하면 여기까지 달려온 보람이 없었을 테니까.

목책 너머를 살펴보던 미겔이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병력이 많습니다."

목책 너머로 보이는 병사들의 숫자가 만만치 않았다.

이곳까지 한걸음에 달려온 우리는 지금 숲 가장자리에 숨어서 목책 너머를 확인하고 있었다.

중간 연락망을 맡은 기사와 병사들에게도 요새에 대해 최대한 들어놓았지만, 현장에서 교차 확인하는 것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역시, 들었던 것보다 병력이 많았다.

목책 위로 주변을 살피는 병사들을 보니, 이곳에서는 군율도 그럭저럭 지키는 것 같았다.

하기야, 약탈물에는 식량이나 평범한 물건들 이외에도 각종 보석이나 귀한 물건들도 많은 터였다.

이 요새마저 군율이 개판이면 약탈물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요새 점령전인가."

목책으로 만든 작고 낡은 요새이긴 했지만, 그래도 요새는 요새였다.

두 배 이상의 병력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요새. 마물 상대로도 충실히 목적을 수행하는 요새였다.

하지만, 기사, 아니 각성한 귀족을 상대로는 별로 쓸모가 없었다.

제대로 된 성벽이 아닌 이상, 불덩어리가 떨어지고, 땅이 움직이는 상황에서 목책으로 된 요새가 제대로 버틸 리가 없었다.

그런, 귀족이 여기에도 한 명 있었다.

다만, 다른 기사들은 그 귀족을 평범한 기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기사들 위주로 싸워야 할 것 같습니다. 일반 병사들은 목책을 넘기 어려워 보입니다."

미겔의 말에 다른 기사들도 동의했다.

그래도 임시로 만든 요새가 아니라는 것인지, 목책의 높이가 2m가 넘어 보였다. 이래서야 평범한 사람들은 넘어가기가 어려웠다.

우리에게 공성전용 장비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그것은 저 목책을 부수지 못할 때의 이야기였다.

나는 등에 멘 대검을 꺼냈다.

"선두는 제가 서겠습니다. 제가 목책을 부술 테니, 모두 내 뒤를 따르시면 됩니다."

"그건 너무 위험……."

기사들은 놀라 나를 쳐다보았고, 미겔은 반사적으로 내 말에 반박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쳐다보자 하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얼마 전 일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미겔은 내게 고개를 숙였고, 나는 말을 이었다.

"병사들도 기사들을 따라 달려라. 병사들은 방패를 앞세워서 몸을 보호하도록."

병사들에게도 명령을 내린 뒤에, 나는 풀숲에서 몸을 일으켰다.

자신들도 공격에 참여하라는 내 말에 병사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서 내 말을 거역하는 사람은 없었다.

기사들도 내가 목책을 부순다는 말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이었다.

아니, 솔직히 믿기 어렵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책이 무척 두꺼웠다.

거기다, 저 목책은 철목이라고 불리는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철목은 기사가 검에 마나를 싣고 열심히 두드려도 쉽게 잘려 나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나무였다.

나는 공격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지시를 내렸다.

"심문할 사람 몇 빼고 모두 죽이십시오."

어차피 논란을 각오하기는 했지만, 논란이 안 일어나는 편이 더 좋았다.

전에 만났던 기사와 병사들은 탈영병이라는 딱지가 붙어있었기에 상관없었지만, 이 요새는 지금도 이 영지의 군사시설이었다.

괜히 소문나서, 약탈물이 있느냐 없느냐로 고생하는 것보다, 우리가 공격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았다.

마지막 명령을 다 들었는지 확인한 후에 나는 검을 들어 올렸다.

"돌격!"

내 말에 기사들이 앞으로 튀어 나갔고, 나도 달려갔다.

우리가 빠져나온 숲과 목책 사이에는 수십 미터 넓이의 평지가 있었다.

수풀이 가득 자란 평지였지만, 그래도 나무가 하나도 없는 벌판이었다.

혼자 조심스럽게 움직였으면 목책까지 들키지 않았겠지만, 판금 갑옷을 입고 달리는 기사들이 들키지 않을 수는 없었다.

"기, 기습이다!"

처음 우리를 발견한 병사가 외쳤지만, 바로 비상종이 울리지는 않았다.

"설마, 마물이야?"

"판금 갑옷! 기사다! 기사들이야!"

"미친! 왜 기사가 와! 설마, 반란이야?"

"반란이든 뭐든 막아야 해! 빨리 종을 쳐!"

땡땡땡!

반란? 중간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소리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어쨌거나 비상종이 늦은 덕분에 나는 목책 바로 아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른 기사들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도착은 제일 빨랐다.

나는 목책 앞에서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대신 들고 있는 검을 힘차게 휘둘렀다.

대검에는 마나가 가득 차 있었고, 검 날 전체에 아지랑이가 가득 피어오르고 있었다.

절대 부러지지 않는다는 단단한 대검에 마나를 가득 채우고, 검날에 '마나 유영화' 능력까지 부여했다.

이렇게 했는데도 목책이 버틴다면 다음부터는 이 목책을 들고 다닐 생각이었다.

퍼어억!

확실히 튼튼하기는 튼튼했다.

사람을 자를 때도, 다른 나무를 자를 때도 서걱 소리 정도만 들렸는데, 이 나무를 베니, 도끼로 나무를 패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나무 부스러기가 터져나가고, 나무 기둥이 박살이 나서 사방으로 날아갔다.

으아아악!

내가 부숴버린 목책 위에 있던 병사는 아래로 추락했고,

"미, 미친!"

"목책이 부서졌어!"

"맙소사, 귀족이다! 그냥 기사가 아니야! 귀족 기사다!"

다른 병사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확실히 적의 맨탈을 깨부수는 데는 강력한 힘의 과시만 한 게 없었다.

우리 편도 많이 놀란 것 같았지만, 적과 반대로 기세가 더 올랐다.

내가 목책을 더 부수는 사이, 부순 목책 사이로 기사들이 뛰어들었다.

미겔과 몇몇 기사들은 목책 위로 올라가 병사들을 쓰러뜨렸고, 뒤따라온 병사들도 내가 만든 통로를 통해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목책도 충분히 부숴놓았으니 나도 요새 안으로 들어갔다.

그 짧은 시간에 요새 안은 난장판으로 변해있었다.

사방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고,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사람들도 보였다.

"그 문장은 그레시아 공작가? 공작 기사가 왜 여기에 온 거지? 여기는 자작의 요새야!"

"아니, 우리는 강도들을 쫓아 온 것뿐인데? 여기 장물 모아놓은 곳 아냐?"

한쪽에서는 요새에 있던 기사가 힘겹게 검을 막으며 하는 말에 우리 쪽 기사가 놀리듯이 대꾸하고 있었고,

"난 아냐!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야!"

"응, 나도 시키는 대로 하고 있을 뿐이지."

요새 병사가 손을 들고 하는 말에 내가 데리고 온 병사가 창을 내지르며 대답했다.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모두 내가 내린 명령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영지민들은 보이지 않았다.

약탈물을 모아둔 곳을 영지민들에게 보여줄 리도 없었고, 나도 그런 이유로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라고 했던 것이었다.

나도 다시 움직였다.

어차피 묻힐 피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길 생각은 없었다.

나는 심법을 돌려 몸을 가볍게 한 뒤에, 바람처럼 요새를 돌아다녔다.

위험해 보이는 병사들을 도와주고, 숫자가 많이 뭉쳐있는 진영을 무너뜨렸다.

일대일로 승부를 겨루는 기사들의 싸움에도 끼어들었다.

"서둘러야 합니다. 지금은 기사도를 지킬 시간이 아닙니다."

다행히 기사들은 내 말에 수긍했다.

기사들이 일대일 싸움을 포기하니, 싸움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병사들은 요새에 있던 병사들이 더 많았지만, 기사 숫자는 우리 쪽이 더 많았고, 거기다 '귀족 기사'인 내가 있었다.

내가 가담해서 기사들을 빠르게 정리하니, 남은 병사들은 싸움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포로를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우리는 우선 살려놓은 기사와 살아남은 병사들을 심문했다.

죽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그들은 따로 고문을 가하지 않아도 바로 질문에 대답했다.

전에 들었던 대로 이 요새는 약탈물들을 모아두는 곳이었다.

요새 중앙에 있는 창고에 그동안 약탈한 각종 물건을 모아두고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요새 창고였다. 요새에 맞지 않은 커다란 창고에 왜 이곳으로 약탈물들을 모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이제 할 일은 거의 끝난 것 같았다.

증인들을 없애고, 이 창고와 요새를 불태우고 떠나면 공작이 지시한 일이 끝날 터였다.

그 뒤에 어떻게 될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었다.

그렇게 확인을 끝낸 뒤, 뜻밖의 말을 듣게 되었다.

오늘 요새의 군율이 괜찮아 보였던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었다.

평상시에는 이 요새의 병사들도 다른 공식적인 탈영병들처럼 엉망이었는데,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는 이야기였다.

오늘 란사로테 자작이 이곳을 방문하는 모양이었다.

"언제 온다고?"

"지금쯤 올 시간이 되었습니다."

병사의 말에 나는 미겔을 돌아보았다.

"병사들을 정리하고 바로 떠나세요. 길로 움직이면 만나게 될 테니, 숲으로 움직이고요. 저는 뒤에 따라가겠습니다."

이곳에서 자작을 직접 만나게 되는 것은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탈영병으로 만들어진 병사와 기사들을 죽인 것처럼 기사들에게 자작을 죽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빨리 몸을 피해서 마주치지 않은 게 제일 좋았다.

"알렉스 님도 같이 가셔야."

"저는 여기를 태우고 따라가겠습니다."

"하지만, 알렉스 님도 들키면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잖습니까?"

미겔의 말에 내 옷과 기사들의 갑옷을 가리켰다.

"나는 여러분과 다르게 평범한 가죽 갑옷에 평범한 용병 흉갑을 입었으니까요."

기사들은 척 보기만 해도 들키겠지만,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용병에 불과했다.

후딱 불태우고 도망치면 알아볼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결정하고, 살아있는 병사들과 기사들을 마무리하려고 할 때, 나는 문득 목책을 부술 때 들은 말이 떠올랐다.

"반란이란 게 무슨 소리지?"

영지가 엉망이 되긴 했지만, 반란을 일으킬만한 사람이 있었나?

그리고, 나는 황당한 대답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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