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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62화 (162/563)

제162화

제12편 주변 정리 (2)

기사 한 명과 종자, 그리고 병사 십인대.

그 정도 상대를 박살 내는 데는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 기사도 마나를 쓰긴 했지만, 제대로 훈련받은 기사가 아니었다.

미겔에게 몇 합 만에 나가떨어지고, 다른 병사들은 기사들의 일제 돌격 한 번에 끝장이 나버렸다.

병사들도, 나도 나설 필요가 없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을 한쪽에 모으고, 이리저리 부러진 기사를 심문하니 뜻밖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우리가 박살 낸 기사와 병사들은 탈영병이 아니라 영지의 기사와 병사들이었다.

다들 깜짝 놀랐지만, 다행히 그들이 강도가 아닌 것은 아니었다.

이상한 소리였지만,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정식 기사와 병사이면서도 영지민과 여행자를 털어먹는 강도들이었다.

세금으로 충당하기 어려우니, 영주가 일부 기사와 병사를 탈영병으로 위장해서 약탈로 재원을 충당하는 중이었다.

"정식 기사면 곤란하겠는데요."

기사의 말에 미겔은 미간을 모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공식적으로는 탈영병이라면서, 설마 란사로테 자작이 이들을 정식 기사와 병사들로 인정할까요?"

자작은 명예를 따지는 귀족이었다.

정식 병사들로 여행객들과 영지민들을 수탈하기 낯부끄러워서 탈영병으로 위장을 한 귀족이었다.

그런 자작이 이들을 정식 기사와 병사로 인정할 리가 없었다.

"아니면, 증인이 남지 않게 하는 편이 좋으려나."

내 말에 살아남은 기사와 병사들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들은 어린 내가 기사단을 통솔하는 것을 보고 대충 내 위치를 짐작하는 듯했다.

서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어린놈이라면 적어도 공작 아들일 터였다.

그렇다면 귀족일 테고, 귀족은 수하 기사들에게 잡은 포로에게 즉결 심판을 내릴 권한이 있었다.

물론, 영지를 가지고 기사들을 지닌 제대로 된 귀족들만 가능했지만, 세상은 언제나 융통성이라는 게 있었다.

남작가로 가는 길에 마누엘이 귀족으로서 책임을 지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나도 충분히 일을 벌이고, 가문을 방패로 세울 수 있었다.

내가 서자가 아니라면.

내가 실제로 그렇게 하면 장로들이 다 들고일어나 나를 내칠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들은 내가 서자인지 알지 못했다.

포로들이 벌벌 떠는 동안, 나는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아직 내전이 시작된 것도 아니잖습니까. 자기 영지가 이렇게까지 피폐하게 만들어서야 정작 싸울 때 어떻게 버티려고."

고금 이래로 전쟁은 후방이 제일 중요했다.

말 위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몽고의 미친 인간들도 아니고, 영지의 지원이 없으면 싸우기는커녕 그때까지 병력을 유지할 수도 없었다.

"내전 준비라면 이렇게 할 리가 없어요. 영지를 버릴 생각이 아니라면 절대 하지 못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포로가 된 기사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나와 기사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포로가 된 기사는 모른척했지만, 아무것도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기사의 표정을 보니, 쉽게는 말할 것 같지 않았다.

내가 팔을 걷어붙였다.

발레아와 있을 때는 나서지를 못했지만, 나도 고문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나는 한쪽으로 기사를 끌고 갔다.

다른 기사들이 듣지 못하게 고문을 시작했고, 잠시 뒤, 미겔과 함께 기사에게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괜히 시끄럽게 비명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신경을 박살 내는 검은 검도 있었고, 여러 번 죽으며 깨달은 고문 방법도 수십 가지나 가지고 있었다.

차근차근 기사에게서 이야기를 들었고, 얼마 뒤에는 그가 아는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미겔이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지만, 미겔도 이정도 고문은 충분히 행할 수 있는 기사였다

더구나, 눈치를 보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고문으로 들은 이야기가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내전을 대비해서 군사력을 모으는 것도, 영지를 수탈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 영지의 영주, 란사로테 자작은 이 영지를 버릴 생각이었다.

대단히 특별한 이유도 아니었다.

단지 자작이 더는 마물을 막아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힘들지만 마물도 잘 막아냈고, 병사들과 기사들의 훈련도 나쁘지 않았고."

그때가 떠오르는지, 말을 하는 기사의 멍한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런데, 제2 왕자님을 지원하신다면서 영주 성에 병력을 모으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른 곳과 결과는 달랐지만, 시작은 비슷했다.

"치안이 나빠지는 것은 각오했지만, 마물이 급속도로 늘게 될지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몇 해 동안 내버려 둔 동쪽의 숲에서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고, 지금은 영지 일부에 마물들이 눌러앉았습니다."

기사 말로는 이정도 심해질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모양이었다.

이렇게 방치한 적이 수백 년간 처음도 아니었고.

"영지의 병력으로는 더는 방법이 없습니다. 앞으로 계속 밀려나기만 할 뿐입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웨이브 한 번에 영지는 끝장날 겁니다."

지금이야 숲과 영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일정 숫자가 넘어가면 쏟아져 나올 게 분명했다.

이 세계에서는 그것을 다른 말로 '웨이브'라 부르고 있었다.

얼마 전에 만난 병사들에게 들은, 영지 경계를 넘나든다는 마물들도 평범하게 방치된 마물들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똑똑하다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저 마물들은 제대로 된 정찰병들이었다.

알고 있는 모든 이야기를 늘어놓은 뒤, 기사는 기절해버렸다. 너무 자극을 심하게 준 모양이었다.

하지만, 미겔과 내가 알려준 이야기에 더는 기절한 기사를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미겔이 나에게 물었다.

그가 결정할 내용을 이미 벗어나 있었다.

거기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결정할 내용도 아니었다.

이대로 발을 돌려서, 공작에게 보고하면 그만일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심에 잠겼다.

돌아온 날 보았던 공작의 표정들, 이 영지의 상황, 그리고 왕국의 현 모습.

"공작님이 모르실 리가 없겠죠?"

내가 제일 먼저 꺼낸 말에 미겔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내 말에 미겔도 알게 된 것이었다.

내가 수도에서 벌인 일들을 대부분 알아낸 공작이었다.

바로 옆 영지가 이렇게 엉망이 되었는데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여태 알면서 놔두었고, 지금 결혼식을 핑계로 이 시기, 이 영지에 나를 보낸 것이었다.

자신의 '서자'를.

모든 감정을 제하고, 객관적으로만 바라보니,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공작은 사고를 치고 웨이브 직전의 마물들을 남겨두고 옆 영지의 자작이 도망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마물을 막지 않고 영주가 도망치면 쏟아지는 마물들을 막아야 하는 것은 주변의 다른 영지들이었다.

그중에 제일 큰 영지인 공작이 대부분 감당해야 할 테고.

그런데, 후계자 결혼식에 웨이브 같은 게 일어나버리면 공작도 곤란할 게 분명했다.

"그냥 놔둘 생각이었는데, 결혼식과 도망치는 날짜가 애매하게 겹쳐진 건가……."

아니면 웨이브가 예상보다 빨리 일어날 거라는 정보를 얻었을지도.

어쨌거나, 막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내가 나타난 것이다.

가문이 책임질 필요가 없는 실력 있는 '서자'가.

"결국, 공작님이 내게 원한 것은 영지민을 수탈하는 병사들과 기사를 막아, 영주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건가."

공작 성격에 이곳 영주 대신에 자신이 마물을 막아줄 리도 없을 테고.

내게 딸려 보낸 기사와 병사 숫자를 봐도 그 이상을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탈영병'들을 상대하다가 일이 꼬이게 되어도, '서자'라는 위치 때문에 꼬인 일을 가문까지 연관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

단지, '서자' 개인이 일으킨 사고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무리 봐도 자기 좋은 데로 써먹는 것 같았지만, 서자 취급이 그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이 생각들을 미겔에게 이야기하니, 미겔은 정색하며 내게 말했다.

"다른 것보다 공작님은 알렉스 님을 이번 일로 테스트해보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다음 대 공작도 안 한다고 이야기해놓았는데, 테스트받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을 맡기신 적도 없잖습니까?"

내 실력을 알게 되었으니 맡긴 것이었다. 다른 이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미겔은 다시 한번 내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공작님은 시몬 공자님에게도, 마누엘 님에게도 이런 일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뭔가, 행복회로를 왕창 돌린 듯한 말이었지만, 그래도 한껏 우울해지던 마음을 조금은 돌려놓을 수 있었다.

좋아.

이럴 때 땅을 파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서자든 아니든, 지금 앞에 놓인 일을 처리할 때였다.

"그래도, 처음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돌아다니면서 '기사와 병사들을 가장한' 강도들을 처리하면 되니까요. 가끔 마물들을 만나게 되더라도 전부 죽이면 될 것 같고요."

미겔의 말에 다른 기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의 지시대로라면 그렇게만 해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그러다가 영주가 생각을 바꿔서 그냥 도망칠 수도 있겠지만, 이 인원으로 그것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식으로 움직이는 것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별로였고, 약탈하는 기사와 병사를 찾아다니는 것도 귀찮았다.

"그렇게 움직이지 않아도, 공작님의 목적만 이룰 수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우리를 보낸 공작의 목적.

바로 란사로테 자작을 영지에 묶어 두어 마물과 싸우게 만드는 것이었다.

자작을 영지에 묶기 위해서라면, 열심히 돌아다니며 수탈하는 기사와 병사를 처리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사람들의 눈이 있으니, 수탈한 양식과 물건들을 바로 영주성으로 가져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물들이 날뛰고 있는데, 여러 곳에 분산해서 저장했을 리도 없었다.

아마도, 따로 모아두는 곳이 있을 게 분명했다.

그곳을 찾아서 없애버리면 자작은 수도는커녕 한 발짝도 영지를 벗어나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우리 눈앞에는 그 물건들을 모아두는 곳이 어디인지 아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기사는 맛이 가버려서 묻기 어려웠지만, 아직 살아있는 병사는 여럿 있었다.

고문이 끝났지만, 아쉽게도 이들은 수탈한 물건들이 모이는 곳을 알지 못했다.

그래도, 중간에 누구에게 넘겨주는 지는 들을 수 있었다.

몇몇 기사와 병사들은 일이 생각보다 커지는 것에 걱정하기도 했지만, 정예병답게 내 지시를 잘 따라주었다.

우리는 조금 떨어진 마을에서 중간 연락망을 맡은 병사들과 기사를 때려잡을 수 있었다.

이번 기사는 처음 기사보다 더 엉망이었다.

실력은 더 있었지만, 여자를 옆에 끼고 낮부터 술을 퍼마시고 있는데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제대로 된 군율이 없으면 기사와 병사들이 어떻게 무너지게 되는지 이 영지를 보고, 너무도 잘 알게 되었다.

술에 취해서인지, 고문도 심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약탈물들이 모이는 요새를 알아낸 우리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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