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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53화 (153/563)

제153화

제3편 집으로 돌아가는 길

왕실 아카데미의 겨울 방학은 무척 길었다.

왕국이 작은 편이 아니었고, 먼 영지까지 갔다가 오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몇몇 왕국 끝에서 온 학생들은 방학 동안에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수도에 남기로 했다.

수도에 남기로 한 사람 중에는 공국에서 온 대공녀도 포함되었다.

그녀는 거리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지만, 방학 동안에 수도에 남지 않을 나에게는 별 상관없은 이야기였다.

그렇게 남는 학생들 외에는 다들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2학기 동안 평판이 나아진 덕분인지, 마지막 날 많은 여학생이 나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나도 예절 모드 스위치를 올리고, 그녀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전과 다르게 다들 만족한 얼굴로 나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확실히, 대공녀의 수업은 큰 도움이 되었다.

기존에 친하게 지내던 공주나, 카트린은 '예절 모드 알렉스'를 꺼내지도 못하게 했다.

가식덩어리인 다른 귀족들을 보는 것 같다나.

하지만, 발레아는 반대로 '예절 모드 알렉스'를 좋아했다.

놀리기 좋다는 이유였다.

다른 학생들과 작별 인사를 하고, 친한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공주는 내가 수도에 남지 않는 것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하지만, 공주는 왕궁에 머물 텐데, 정식 호위 기사도 아닌 내가 왕궁에서 같이 있을 수는 없었다.

예상보다 훨씬 우울해하는 공주를 겨우 달래고, 카트린에게 끌려가 한바탕 대련한 뒤에, 대공녀와 인사를 하고 겨우 헤어질 수 있었다.

그 뒤에 나는 발레아와 함께 수도의 저택으로 돌아왔다.

발레아는 공작령으로 돌아가는 우리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의외로 발레아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남작 대리가 된 배다른 동생이 영지를 다스리고 있을 텐데, 그녀는 걱정이 안 되는 것 같았다.

저택에서는 고용인들이 짐을 싸느라 부산을 떨고 있었다.

나와 마누엘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이 공작령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 꽤 있었다.

수도로 올 때 우리를 수행했던 고용인들과 하녀들. 그리고, 돌아가지 않고 남았던 기사 몇 명. 이들 모두 우리와 같이 공작령으로 돌아가야 했다.

우리를 데려갈 기사들도 이미 와 있었다.

1년 전 우리를 데리고 왔던 앙헬 기사와 병사들이 며칠 전에 수도에 도착해 있었다.

겨우 1년이었는데,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아니, 나에게는 정말 1년이 아니라 꽤 오랜 시간이었다.

1년이지만, 키도 많이 커져서 이제 일반 성인들 사이에 끼면 작은 키는 아니었다.

물론, 한 덩치 하는 기사들 사이에 끼면 아직도 작아 보이긴 했지만.

아직도 덩치는 차이가 났지만, 앙헬 기사는 나를 보고 무척 놀란 것 같았다.

"정말 달라지셨군요. 전보다 훨씬 강해지신 것 같은데, 제 실력으로는 잘 가늠이 안 되는군요."

수도로 올 때만 해도 앙헬은 나를 엄청나게 무시했었지만, 다시 본 뒤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내가 마나를 숨겨서 실력을 감추었는데도 그 정도였다.

아마도, 몸이 그나마 커져서 겉으로 보이는 느낌이 달라진 것 같았다.

병사들 사이에 후안도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병을 고쳐준 덕분에 나에게 충성을 바치게 된 병사였다.

겨우 1년이 지났는데, 정말 오랜만에 만난 것 같았다.

하기야 나는 정말 오랜만에 만난 것이었다.

모두 내 능력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과 시간 자체가 벌어져 버리니, 나 스스로가 상대방과 멀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사이가 정말 멀어지지 않으려면, 결국 연기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1년 만이네요. 잘 지냈나요? 후안의 어머님도 건강하시고요?"

환하게 웃으며 후안을 만났다.

"네. 어머니도 잘 계십니다. 어머니는 매일 공자님이 무사하기를 기도하고 계시죠."

후안은 푸념을 하듯이 대답했다. 하지만, 실제로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를 맞이 하는 후안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았다.

"그리고, 이제는 말을 놓으시죠. 전에는 어리셔서 그랬다지만, 지금은 다 크신 게 여실히 보이는데, 저 같은 놈에게 말을 올리시는 건 이상합니다."

처음 말을 올렸을 때는, 겨우 각성한 서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왕실 아카데미 기사학부 학생이었고, 예비기사라고 볼 수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이제는 말을 놓아도 될 것 같았다.

"음……. 그래. 그렇게 할게."

내 말에 후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공자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설마, 어머니나 기다리시겠지. 공작님이나 형님이 날 기다리신다고?"

"아니, 기사님들이 기다리신다고……."

이런, 가족만 생각했었다.

나를 가르친 미겔도 있고, 우고도 무뚝뚝한 알론소 기사단장도 있었다.

다른 기사 중에도 나쁘지 않게 지낸 기사들이 있었고.

그러고 보니, 돌아가서 볼 사람이 많았다.

어머니도, 하녀 플로라도 보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공작령으로 돌아가는 게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준비는 빨리 끝났다.

올 때처럼 마누엘과 나, 그리고 발레아가 마차에 올라탔다.

수도 저택의 집사가 다른 고용인들과 함께 문 앞에 서서 우리를 마중했다.

마지막으로 나를 보는 집사의 표정은 무척이나 복잡해 보였다.

나는 집사가 공작부인에게 어떻게 보고를 올렸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수도 저택의 집사는 첫 번째 공작부인 쪽 사람이었다.

제대로 배운 귀족의 집사답게 지저분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도에서 벌어진 일을 모두 공작부인에게 보고했을 것이었다.

물론 마누엘에 대한 보고가 우선이겠지만, 나에 대한 보고가 없을 리가 없었다.

내 성장도, 실력이 느는 것도 보고 했겠지만, 과연 내 인맥이 늘어나는 것은 어떻게 보고 했을지.

나는 복잡한 표정의 집사에게도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집사와 고용인들도 떠나는 마차에 고개를 숙였고, 우리를 실은 마차는 수도를 떠났다.

"기사 학부생이면 예비기사지 않아? 그런데 지금 복장이 그게 뭐냐."

마차가 수도를 벗어난 뒤, 한참 고민하던 마누엘이 나에게 입을 열었다.

1학기 때도 그리 가깝지 않았지만, 2학기 동안은 거의 나와 말도 안 하던 마누엘이었다.

학과도 다르고, 같이 몰려다니던 사람들도 달랐다.

솔직히 내 쪽은 몰려다니는 사람이라고 할만한 사람도 별로 없었지만.

거기다, 나는 2학기 내내 대공녀와 다니거나 훈련만 했으니, 마누엘과 따로 말할 틈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마누엘도 나름 착실하게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었다. 2학기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나도 2학기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1학기처럼 특별한 일이 없어서 추가 점수는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대공녀에게 교육받은 예절 교육 덕분인지, 교양 점수가 전보다 올라서 1학기와 비슷한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1학년 전체에서 10위 안에 드는 성적. 충분히 자랑할 만한 성적이었다.

물론, 내 주위의 사람들은, 대공녀와 하비에르 선배까지 내 점수를 보고 어이없어했지만,

나는 충분히 만족할만한 점수였다.

아무튼, 대충 분위기를 보니, 마누엘은 나에게 뭔가 말을 붙이고 싶어서 꺼낸 말인 듯했다.

그동안 서로 소 닭 보듯 했으니, 계속 무시해도 그만이겠지만, 이제 공작가로 돌아가게 되니, 다시 서열을 다잡을 모양이었다.

다만,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전처럼 우격다짐으로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눈을 보아도 꽤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고.

어떻게 할까.

깽판을 놓아도 되고, 아니면 슬쩍 머리를 숙여도 상관없었다.

수도에 올 때와 달리, 지금은 그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공작 영지에 돌아가서는 공작부인 쪽 사람들에게 짜증이 날 수는 있겠지만, 전처럼 위험에 처할 일은 없었다.

짜증 정도야 어머니를 생각해서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 영지에서 있을 시간이 긴 것도 아니었고.

좋아. 괜히 시끄럽게 할 생각은 없으니, 한 번 정도 숙여주기로 하자.

그런 생각으로 입을 열려는 순간,

"마누엘 공자님 말씀이 맞습니다. 기사를 목표로 한다면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카데미에서 준 검이 있으실 텐데,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군요. 대신 차고 계시는 단검은 기사가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마차 옆에서 말을 몰고 있던 앙헬 기사가 마누엘의 말을 받아서 내게 충고를 했다.

나도 그렇지만, 기사는 귀가 좋았다.

얼마 전에 나를 보고 감탄한 것을 후회하는지, 앙헬의 꾸지람은 매서웠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마누엘의 말도 앙헬의 꾸지람도 당연해 보였다.

나는 아카데미 제복을 입고 허리에 단검 하나만 덜렁 찬 채로 마차에 타고 있었다.

앙헬의 말처럼 아카데미에서 준 검은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보이지도 않았고, 수도로 올 때 가져온 대검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 짐 사이에 깊이 박혀 있을 것 같지만, 기사, 아니 예비기사라도 그렇게 풀어지면 안 되었다.

마누엘은 앙겔 기사의 말엔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괜히 끼어들어서 복잡하게 되었다는 표정이었다.

거기다, 같이 마차를 타고 가던 발레아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솔직히 이건 내 실수였다.

주머니에 유물들을 넣는 게 습관이 되는 바람에, 대검도 다른 물건들도 모두 유물 주머니에 집어넣어 생긴 문제였다.

그렇다고 지금 가슴에서 대검을 꺼내 보여 줄 수도 없는 일이었고.

내가 잘못한 것이었으니, 어쩔 수 없이 조금 혼나야 할 것 같았다.

"……더구나 지금은 무척이나 혼란한 시기입니다. 저쪽에 부서진 마차를 보십시오. 저 마차는 강도들에게 습격을 당한 마차입니다. 수도 경계에서 강도라니, 1년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입니다."

한참 기사의 덕목에 대해 떠들더니, 앙헬은 길 바깥에 밀쳐져 있는 부서진 마차들을 가리켰다.

그의 말대로 마차에는 검과 창, 화살의 흔적이 가득 남아 있었다.

왕이 국정에 참여하지 않게 되었다더니, 벌써 이렇게 엉망이 되어버린 건가.

"수도로 올 때 보니까, 생각보다 영지 사이의 치안이 너무 나빠졌습니다. 강도에, 마물에, 유랑민까지. 영지 사이의 길은 마치 전쟁 중인 나라 같았습니다."

나에 대한 충고가 어느덧 통행과 왕국에 대한 걱정으로 바뀌었다.

그의 말을 들으니, 2 왕자의 말이 떠올랐다.

"왕이 국정도 보지 못한다고 하더니, 영지들도 슬슬 내전 준비를 하는 건가."

당연히 두 왕자는 차기 왕을 노리고 신나게 움직이고 있었을 거고, 다른 귀족들도 이제는 드러내놓고 줄을 서고 있을 게 분명했다.

"영주는 순찰하는 병력까지 성에 모아 단련을 시키고, 마물을 잡던 용병들도, 전쟁 용병으로 모집을 하고."

내전을 준비하려면 영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당연한 일은 영지민에게는 지옥을 가져다주는 일이었다.

"마물을 잡던 용병들이 빠지고, 순찰하던 병력이 빠지니, 강도와 마물이 늘어 치안이 나빠지고, 치안이 나빠지니, 유랑민이 늘고, 유랑민들은 강도가 되고……. 결국, 악순환이 시작된 건가."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혼자 정리하고 있으니, 주변이 조용해져 있었다.

마누엘은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마차 밖에서 떠들고 있던 앙헬도 입을 꾹 닫고 있었다

"또, 말하면서 정리하고 있었어요."

발레아가 웃으면서 하는 말에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것인지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마누엘과 앙헬 기사에게 내 천재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 것 같았다.

들은 이야기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누구에게서 들었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애매했다.

공주와 대공녀를 핑계 삼아야 하는데, 그것도 괜한 배경을 꺼내게 될 뿐이었다.

결국, 나는 분위기를 바꾸는 것을 포기했다.

묵직한 침묵이 괴로웠는지, 마누엘이 입을 열었다.

"좋아, 그렇게 치안이 안 좋다면 돌아가는 길에 마물과 강도들을 최대한 없애면서 가는 것으로 하자!"

"네?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떻게……."

마누엘의 말에 앙헬이 깜짝 놀랐다.

앙헬에게는 용을 조심하라고 한창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용 레어로 쳐들어가자고 하는 소리와 다를 게 없었다.

나도 어이가 없었지만, 마누엘의 표정을 보니, 그의 생각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말로는 서열을 잡기 힘드니, 실력을 보여 줄 생각 같았다.

생각은 알겠는데, 어이가 없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말리지 않았다.

"재미있겠는데요. 저도 찬성이에요."

발레아가 작게 속삭이는 말처럼, 나도 실전으로 내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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