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2화
제2편 2학기
이 이상한 글귀가 뜬 원인 중에 제일 큰 원인은 전 주인, 카를로스 초대 왕이 검을 잡은 지 너무 오래 지났다는 점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에게 검을 넘겨주지 않고 죽어, 검은 수백 년을 홀로 보내게 되었다.
누군가 검을 잡아 다음 주인이 되었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이번에는 카를로스 초대 왕이 설정한 과한 동기화가 문제였다.
검을 잡는 사람마다 죽어버렸고, 결국, 검은 새로운 주인 없이 그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초대 왕의 설정을 유지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었다. 주인 없이 검이 버티기에도 오랜 시간이었고.
결국, 망가졌다면 망가졌다고 할 수 있는 정도로 검의 설정이 풀어져 버렸다.
처음 등장한 용사를 이기면 임시로 그를 등록할 정도로.
나 말고도 임시로 등록된 사람이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결국 다음, 그다음 용사에게 죽을 수밖에 없었다. 용사보다 강했던 사람이 검을 잡지 않은 이상.
물론, 나도 죽어서 과거로 돌아간 이상 등록된 일은 무효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등록된 그 세계는 내 정신세계였다.
과거로 돌아갔어도, 내 정신은 과거로 돌아간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내 정신과 검의 연결은 그대로 남게 되었고, 다시 만나게 되니, 새로운 능력과 함께 정식으로 검 사용자로 등록된 것이다.
"……라는 식으로 이해하면 되는 건가."
메시지를 보게 된 뒤에 어떻게 해서 내가 사용자가 되었는지는 대충 알 수 있었다.
물론, 전부 검이 알려 준 것은 아니었지만, 내 상황과 검이 알려 준 정보에 꿰어맞추니, 대충 저런 이야기가 되었다.
실제로는 내 생각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 검을 쥐고도 멀쩡한 지금은 별 상관없었다.
왕이 쓰던 검이 내 손에 들어온 것이다.
임시 사용자이긴 했지만, 전 주인이 죽어서 없으니, 결국 이 검은 내 검이었다.
완전한 주인이 아니라서 등장하는 상대를 바꿀 수 없는 것 같은 제한은 있었지만, 그래도 이 검만 있으면 용사, 그것도 초대 왕을 상대로 계속 대련을 할 수 있었다.
다른 기사들이 안다면 눈이 뒤집힐 일이었다.
아니, 왕실은 이미 눈이 뒤집혀 있으려나.
나는 바로 내가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을 확인했다.
"상대를 바꿀 수는 없지만, 마지막까지 싸우지 않고 나올 수 있고, 동기화 수치도 조절할……."
임시 사용자도 동기화를 조절할 수 있었다!
나는 바로 명령했다.
"동기화를 낮춰! 반으로!"
얼마나 낮추면 죽지 않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반이나 낮췄는데 죽지는 않겠지.
그럼 테스트를 해봐야 했다.
나는 검을 내려놓고 주머니에 유물들을 담았다.
그리고, 검을 잡았다.
확실히 다시 잡아도 죽지 않게 되었다. 바로 정신세계에 들어가지도 않게 되었고.
다만, 다른 사람이 잡는다면 전처럼 정신세계로 끌려들어 갈 거다. 동기화를 낮춰서 죽지는 않겠지만.
"그러고 보니, 전처럼 막 잡고 싶은 생각은 안 드네."
확실하게 등록이 되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다른 사람은 다를 게 없을 테니, 결국 다른 사람에게는 보여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 검을 잡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다가 들키면 왕실 모독으로 목이 잘려 나가겠지."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손에 쥔 검에 명령을 내렸다.
'진입!'
검으로 들어간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대충 준비한 덕분인지 이번에는 제일 처음 나온 영웅에게 져버렸다.
하지만, 동기화를 낮춘 덕분에, 졌는데도 죽지 않았다. 아니, 동기화를 낮춰서 진 걸지도.
문제는 동기화를 낮추었는데도 너무 아팠다.
나는 검을 던져버리고, 머리를 양손으로 잡았다.
"크으으윽. 머리가!"
머릿속에서 전쟁이 벌어졌고, 척추도 온몸의 신경도 계속 부들거렸다.
분명 반으로 낮추었는데, 죽었을 때 느꼈던 고통과 별로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거의 한 시간 이상 부들거린 뒤에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하기야, 최고일 때 사람을 죽일 정도였으니, 반으로 낮춰도 아프긴 엄청 아프겠지."
솔직히 아픈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고통이라면 익숙하니, 참아내라면 참아낼 수도 있었고.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동기화를 최고로 한 이유가 있긴 있었네."
초대 왕이 괜히 죽을 정도로 동기화를 맞춰놓은 게 아니었다.
동기화를 줄여놓으니, 도대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검을 잡는 느낌도, 적을 상대할 때의 긴장감도, 공기의 흐름도, 마나의 움직임도 전부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실무자가 만든 게 아닐 거야. 기사라면 동기화를 낮춰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걸 알 테니까."
대장장이 신이 뚝딱뚝딱 만들고 '옜다' 하고 던진 거려나.
결국, 동기화를 최대로 올려놓지 않으면 쓸모가 없었다.
"문제는 져버리면 죽어버린다는 점인데……."
아니, 잠깐. 분명 다른 설정을 조정할 수 있었다.
계속 나오는 카를로스와 전부 싸우지 않고 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설정이 있었다.
원하는 나이대의 카를로스를 골라 싸우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싸움에서 이긴 뒤, 다음 상대를 상대하지 않고 나올 수 있었다.
"좋아, 설정 끝."
나는 설정을 마치고, 바닥에 놓인 검을 노려보았다.
설정했으니,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검을 잡기가 쉽지 않았다.
확인한답시고 싸우다가 죽어버리면 무척이나 곤란했다. 왕실 창고를 보던 때로 돌아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죽지 않겠다고 동기화를 낮추면 제대로 테스트도 안 될뿐더러, 이기기는 더더욱 불가능했다.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는데 어떻게 싸우라는 소리인지, 다시 한번 이 검의 제작자에게 욕을 퍼부었다.
어쨌거나, 언젠가는 검을 잡아야 했다. 그래도 처음 검을 봤을 때보다는 훨씬 상황이 좋았다.
전성기의 용사가 아니라, 15살짜리 용사만 이기면 그만이었다.
거기다 이미 한번 이겼던 용사였다.
"똑같이만 하면 분명 이길 수 있어."
편법과 반칙이 가득한 승부였지만, 이기면 그만이었다.
거기다, 지금은 새로운 능력도 가지고 있었다.
"차라리, 전처럼 검이 유혹이라도 하면 이런 고민도 안 할 텐데……."
괜히 고민만 많아져 버렸다.
나는 양손으로 뺨을 두드렸다.
조금 전 머리와 신경을 두드렸던 고통은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행히 후유증도 없는 것 같았다.
가슴에 넣어둔 주머니도 그대로였다. 정신세계에서 부서졌던 쇠뇌도 현실에서는 멀쩡했다.
"좋아, 가자!"
나는 다시 정신세계로 진입했다.
잠시 뒤,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과거로 간 것이 아니었다.
그 시간 그대로 검을 쥔 채로 눈을 뜬 것이다.
"이겼다!"
나는 방안에서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화살도 안 쓰고 이겼어!"
목걸이도 쓰고, 반지도 썼지만, 화살만은 쓰지 않을 수 있었다.
새로 얻은 능력이 대박이었다.
15살짜리 용사는 아직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목걸이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반지의 방어막을 펼쳐서 공격을 막고, 마나를 실은 단검을 던져서 끝을 냈다.
솔직히 쇠뇌를 사용할 때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들키지 않은 화살하고는 다르지, 암. 다르고말고."
대결 내용을 생각해도 전과 많이 달랐다.
지금이라면, 다음에 나오는 용사도 화살을 쓰면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검이 유혹할 때와는 달랐다.
나는 바로 이성을 찾고, 검은 검을 주머니 속에 넣어버렸다.
아직 20살 카를로스를 상대할 때가 아니었다.
15살 카를로스도 유물, 특히 목걸이 없이는 상대할 수 없었다.
그런 실력으로 5년을 더 훈련한 용사를 상대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거기다, 이 검은 편법으로 용사를 이기기 위한 유물이 아니었다. 내 실력을 올리기 위한 훈련소였다.
우선, 15살 카를로스를 유물, 특히 목걸이 없이 싸워서 이겨야 했다.
그 뒤에야, 20살 카를로스에게 도전해 볼 수 있을 것이었다.
그 뒤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평범한 2학기 생활을 이어갔다.
물론, 1학기보다 평범하다는 거지, 다른 학생들처럼 평범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대공녀의 지원 요청으로, 그녀를 따라 각종 행사에 참여했다.
무도회와 다과회, 만찬회, 연회까지.
덕분에 아카데미 안에서는 대공녀와 나와의 이상한 소문도 돌게 되었고, 수도의 사교계에서도 대공녀의 호위로 많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래봤자, 대공녀의 호위인 학생 기사에 불과했지만, 대공녀의 목표였던 많은 여성과 인사를 나누는 것은 목표를 채우고도 남았다.
"고마운 말씀, 감사드립니다. 대공녀가 부르시니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나중에 먼발치에서라도 뵙게 되면, 저에게 큰 축복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어머, 감사하신 말씀을 마음속 깊이 담아두겠어요."
결국, 나는 연회장을 떠날 때, 이야기를 나누던 귀족 영애와 이런 말도 쉽게 할 수 있게 되어버렸다.
"좋아요. 이 정도면 충분해요."
2학기가 끝나가던 어느 날, 대공녀는 내가 예절 교육을 마쳤음을 선언했다.
그녀가 보기에도 충분히 만족할 만한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2학기 동안, 대공녀를 따라다니며, 나는 머릿속에 스위치를 하나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예절 모드 알렉스와 평상시 알렉스로 전환할 수 있는 스위치였다.
나는 여성, 특히 귀족 여성을 만날 때는 예절 모드 알렉스의 스위치를 올리는 방식으로 행동을 바꾸었다.
뭔가 이중인격 같은 느낌이었지만, 일종의 연기로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해서, 늦지 않게 대공녀를 만족시켰고, 아카데미 안에 내 소문도 꽤 긍정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정원이 망가져 버린 여학생도 나에 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말에, 입맛을 다시기도 했지만, 결국 좋게 끝나게 되었으니, 전부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대공녀를 따라다니는 시간 외에는 훈련에 집중했다.
다른 수업이야, 집에서 준비한 정도로 충분했고, 기사 학부 시간과 과외 시간에는 다른 학생들과 대련을 이어나갔다.
공주와 브리아, 카트린 교수와 제국 유학생 요하힘까지.
다행히 제국에서 온 학생들은 별다른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나는 훈련에만 시간을 쏟을 수 있었다.
모두 나를 보고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들이 아는 내 훈련은 일부에 불과했다.
남들은 반년도 안 되는 짧은 2학기를 보냈지만, 나는 그들과 전혀 다른 시간을 보냈다.
검은 검을 얻은 뒤, 나는 수시로 정신세계에 들어가 용사 카를로스와 싸웠다.
처음에는 쇠뇌와 화살을 놓고 들어가고, 그다음은 반지를, 그 뒤에는 목걸이를.
그렇게 하나씩 유물을 빼면서 15살 용사와 싸움을 이어갔다.
그렇게 하나씩 유물을 빼는 동안, 여러 번 죽기도 했고, 고통으로 수업에 빠지는 날까지 생기기도 했다.
당연히 내 시간은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무척이나 긴 2학기를 마치는 날,
나는 두 손에 검만 들고서 15살 용사 카를로스를 이길 수 있었다.
2학기가 끝나면, 바로 겨울 방학이었다.
고향, 공작령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