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0화
제25편 소환 (1)
15살의 용사도 그 고생을 해서 이겼는데, 20살 용사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나도 바닥이었고, 쇠뇌도 다시 망가져 버렸고, 반지도 이미 써버렸다.
하지만, 검을 맞대보니, 전부 갖추고 있다고 해도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다.
20살의 용사는 어설픈 것이 없었다.
커진 덩치는 늘어난 실력 중에 제일 작은 부분이었다.
완숙해진 검술과 경험. 그리고, 능력의 활용까지.
어떻게 그가 용사라고 불리고, 이 왕국을 세울 수 있었는지 여실히 알 수가 있었다.
물론, 그 실력을 모두 알 수는 없었다. 검을 다 섞기 전에 죽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다시 과거로 와서, 고통을 겪은 뒤, 나는 심각한 고민에 잠겼다.
왕국으로 돌아가는 마차 안에서 고민에 잠겨 있자니, 싸움의 후유증으로 생각하고 다들 말을 붙이지 않았다.
그 덕분에 나는 오랜 시간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두 번이나 겪은 고통도 문제였지만, 내가 왕실 창고에서 검을 잡게 된 것도, 죽은 뒤에 당연하게 도전을 하게 된 것도 뭔가 이상했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죽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위기를 자초하다니.
과거로 돌아오면 모를까, 성공했을 때의 문제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왕의 검을 쥔 것을 들켰더라면 뒷일이 어떻게 됐었을지…….
아니, 죽어서 없었던 일이 되기는 했지만, 처음에는 대공녀에게 들켰었다.
평상시의 내 모습이 아니었기에, 이번에는 검을 잡는데 좀 더 고민을…….
아니, 또 이런다. 확실히 이상했다.
"이번에는 절대 검을 잡지 말자. 그냥 확인만 하는 거야."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 때까지는 검을 안 잡을 생각이었다.
'거기다, 15살짜리 용사를 죽였을 때,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때는 그냥 묘한 기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뭔가 다른 감각이었다.
과거로 돌아온 지금은 당연하게도 그 감각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느낌이었는지 궁금하기는 한데…….'
다시금 궁금해졌지만, 나는 애써 고개를 저었다.
검을 잡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생활을 바꾸지는 않았다.
검을 잡지 않더라도 대공녀가 왕실 창고의 유물들을 봐야 할 필요는 있었기 때문이었다.
왕궁에 도착한 뒤에 파견 수업 구성원들은 평범하게 헤어졌고, 그 뒤에 나는 공녀 집에 찾아가 단검을 수리했다.
그 뒤에 아카데미가 다시 열리니, 대공녀와 제국 학생들이 유학을 오게 되었고,
나는 나를 싫어하는 학생들의 지목을 받아 그들을 호위하게 되었다.
그날, 나는 머리를 어지럽히던 원인을 알게 되었다.
"요하힘 공자가 대련을 원하시네요. 호위만 하느라 힘드실 테니 잠시 어울려 주시지 않겠어요?"
싸움을 부추기는 여학생의 말에서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 것이다.
검을 잡고 싶고, 용사와 싸우고 싶은 마음과 여학생의 부추기는 말속에 들어있는 욕망이 무척이나 비슷했다.
'그 검의 능력이었군.'
용사의 검, 검은 검이 나를 꾀어낸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유물이 정신 능력까지 쓰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유물도 하나의 능력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에고 단검도 에고까지 포함하면 능력이 한 개가 아니었고, 구슬을 보면, 수리한 뒤에 얼마나 다양한 능력을 지닐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과거 주인의 실력과 모습을 복제해서 정신세계에다가 수련장을 만드는 검이었다.
그런 검이 사람을 꾀는 정신 능력을 추가로 지녔다는 것은 그렇게 놀랄만한 것도 아니었다.
정원에서의 대결도 전과 같이 끝났다.
세 번이나 정원을 박살 내니, 슬슬 지겨워졌지만, 요하힘과 대련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용사와 싸우지 않기로 했지만, 요하힘과의 대련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
용사와의 싸움을 복습할 수 있었고, 제국 검술과 상대하면서 왕국 검술의 약점을 확인할 수도 있었다.
거기다, 용사가 쓰던 기술을 연습해볼 수 있었다.
"앗!"
검이 손밖으로 튕겨 나가는 것을 본 요하힘이 신음을 흘렸다.
"어떻게 한 겁니까? 튕겨 나갈 정도로 부딪친 게 아니었잖습니까?"
그는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뒷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튕겨 나가게 하려던 것이 아니었다. 용사가 한 것처럼 마나를 이용해서 검을 붙여놓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반발이 일어나 튕겨내 버렸으니, 이건 대 실패였다.
이런 실패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요하힘과의 대련은 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시간은 전과 같이 흘러갔다.
대공녀가 왕실 창고에 들어가게 되었다고 알려 주었고, 나도 그녀의 호위로 같이 들어가게 되었다.
대공녀를 만났을 때, 나는 고민 끝에 쇠뇌를 고쳐달라고 했다.
검을 잡을 생각은 없었지만, 이 화살의 대단함은 그날 너무 잘 보았기 때문이었다.
틈을 만들어 기습한 것이었지만, 어쨌거나 용사를 죽인 것은 이 쇠뇌와 검은 화살이었다.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기에는 이 쇠뇌만 한 것이 없었다.
요하힘과 대련을 하며 비슷한 시간을 다시 보내니, 다시 왕실 창고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만약을 대비해서 주머니에 유물들을 담았다.
반지와 목걸이, 대검과 쇠뇌까지.
그렇게 준비를 끝낸 뒤, 단검과 장검을 허리에 차고는 왕궁으로 출발했다.
이번에도 왕궁 정문 앞에서 제2 왕자가 우리를 맞이했다.
세 번이나 같은 소리를 듣자니 무척이나 지루했지만,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참아낼 수 있었다.
대공녀는 아프신 왕을 만나고, 그 뒤에 대공녀와 나는 지하로 내려갈 수 있었다.
이번에도 검문하는 늙은 귀족이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나는 이번에도 몸을 사렸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시비를 거는 귀족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황실 창고라서 그런지, 검문하는 귀족은 몇 대 전에 왕족에게서 갈라져 나온 귀족이었다.
지금 왕의 육촌 정도로 보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따지면 공작인 내 아버지와 왕이 사촌 관계니, 그는 공작가보다 훨씬 먼 방계일 뿐이었다.
그의 집안을 알게 되니, 왜 내게 시비를 걸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 때문이 아니라, 그레시아 공작 가문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유가 아니라는 것은 알았지만, 당한 것은 나였으니, 이대로 끝낼 생각은 아니었다.
앞으로도 만날 일이 있을 테니, 두고 볼 생각이었다.
검문을 하는 귀족은 누구인지 알 수 있었지만, 창고를 지키는 로브를 쓴 남자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주변에 물어보아도, 경매장 주인에게 확인해봐도,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왕실 창고에 창고지기가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만큼 중요한 사람인지, 아니면 관심이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세 번째 만나면서도 나는 창고지기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전처럼 창고지기가 문을 열고, 대공녀와 나는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보물과 금화가 수북이 쌓여 있는 보물 창고였지만, 대공녀도 나도 평범하게 둘러볼 뿐이었다.
"알렉스 공자는 이런 보물들도 익숙한가 봐요. 전혀 안 놀라시네요."
나도 처음에는 무척 놀랐었다. 두 번, 세 번을 보게 되니, 담담해졌을 뿐이었다.
거기다, 지금 중요한 것은 쌓여 있는 귀금속들이 아니었다.
보물들이 쌓여 있는 곳을 지나, 유물이 전시된 곳. 그 안쪽 깊이 처박아둔, 쇠사슬에 봉인된 저 검은 검이 중요했다.
"저 검은 절대! 손을 대시면 안 됩니다."
유물이 있는 곳으로 오자, 창고지기는 언제나처럼 검은 검을 가리키며 경고를 했다.
동시에 머릿속에서 에고 단검이 용사가 쓰던 검이라고 떠들어댔고, 이어서 창고지기는 손대면 죽는다고 마구 겁을 주었다.
'겁을 주는 게 아니라 사실을 이야기한 거였지.'
확실히 15살 용사만으로 검을 잡은 사람을 모두 죽일 수 없었을 것이다.
무조건 죽는다고 알려지기 전에는 많은 사람이 검을 잡았을 테고, 그중에는 대단한 사람도 있을 터였다.
왕실 기사단장이나, 이름 높은 기사도 있었을 테고,
그런 사람도 다 죽이려면, 15살 용사가 아니라 제대로 된 용사가 상대했을 게 분명했다.
거기다, 첫 상대라고 말도 했었고.
그런데, 나는 무슨 생각으로 처음 나온 용사만 죽이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검을 바라보자, 옆에서 내 옷을 잡는 사람이 있었다.
"절대! 검을 잡으면 안 돼요."
대공녀였다. 그녀가 내 옷을 잡으며 걱정스럽게 나를 보고 있었다.
"네?"
어리둥절해서 물으니,
"지금, 검을 잡으러 갈 것 같은 표정이었어요."
그녀가 내 얼굴을 가리켰다.
그녀의 말에 나는 지금 내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 손은 단검을 잡고, 다른 손은 가슴에 올리고 있었다. 주머니가 들어있는 곳이었다.
거기다, 이미 몇 걸음은 검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에 따라 엄청난 유혹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기사로 이름 높은 사람도 그렇고, 대단한 왕족들도 참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네요."
나를 보고, 창고지기가 입을 열었다.
그는 어린 내가 유혹에 걸린 게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것보다, 그런 게 있었으면 미리 말해주지. 미리 알았으면, 괜히 죽지 않았을지도…….
아니, 생각해 보니 알았어도 한번은 도전했을 것 같았다.
알고도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대단한 유혹이었다.
'무슨 전생의 영화에 나오던 반지도 아니고.'
거기다, 죽지도 않으니, 한 번 정도 도전해 보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죽이면 더 나이 든 용사가 나오는 것은 무리수지.'
내가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이자, 두 사람은 전처럼 유물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이번 삶에서도 똑같이 장비를 준비하고, 요하힘과 훈련을 한 게 다 유혹 때문인 것 같았다.
이리저리 이유를 댔지만, 지금 생각하니, 모두 다 핑계일 뿐이었다.
나는 검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아쉬움은 남아 있었다.
더 나이가 든 용사와 싸워보고 싶었고, 마지막까지 이겨서 내 수련장으로 검을 쓰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왕실 창고에 언제 다시 들어오게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 했다.
이번에는 이것으로 멈출 때였다.
'그러고 보니, 확인할 게 하나 더 남았지?'
15살 용사를 쓰러뜨렸을 때, 느낀 그 감각.
하지만, 이래서야 뭘 느낄 방법이 없었다.
검을 보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했지만, 이번 삶에서는 용사를 쓰러뜨리지도 않았는데, 그 감각을 다시 느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어라?'
하지만, 내 생각과 달리 뭔가 느낀 것 같았다.
딸깍.
뭔가 맞춰지는 듯한 느낌. 저 검은 검과 내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유물과 관계되었지만,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건 내 능력이었다.
새롭게 생긴 능력.
나는 바로 정보창을 열어보았다.
< 기사형 영웅 능력자 >
< 사용 능력 >
- 육체 최적화 : 레벨 17
- 마나 회로 구축법 : 레벨 1
- 마나 감응력 : 봉인 해제 중
- 장비 소환 : 레벨 1
- 봉인 중
< 비인가 능력 >
- 마나 유형화 : 레벨 2
- 사자 회귀 : 레벨 2
마나 유형화가 2레벨로 올라간 것은 분명 방패 능력을 얻은 것 때문일 터였다.
문제는, 처음 보는 저 능력이었다.
거기다, 그 능력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바로 생각났다.
'소환!'
머릿속으로 에고 단검을 소환한다고 생각하니, 허리에 차고 있던 단검이 손에 나타났다.
이 능력은 자신의 물건으로 인정된 유물을 내 앞으로 불러내는 능력이었다.
그리고, 방금 쇠사슬에 둘러싸인 저 검은 검이 내 유물로 등록된 것 같았다.
나는 손에 든 단검과 봉인된 검은 검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