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48화 (148/563)

제148화

제23편 기사의 수련 검 (2)

신경이 박살 나면서 죽는 경험은 예상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고통이 길지 않아서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검을 잡은 것을 후회할 뻔했다.

아니, 마차를 타고 왕국으로 돌아가는 지금도 조금은 후회하고 있었다.

거기서, 카를로스 초대왕이 등장할 줄이야.

'도대체 이유가 뭐지? 분명 카를로스 초대왕이 수련장 내용을 설정했다고 했었어. 그렇다면 초대왕이 나온 것도 그가 설정했다는 것일 테고.'

동기화를 최고로 올려서 그 안에서 죽으면 밖에서도 죽게 만든 것은, 실감 넘치는 대결을 위해서라고 억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대결 상대가 카를로스 용사라니. 저걸 어떻게 이기라고.

왕실 기사단장이라면 이겼으려나.

아니면, 제국에서 이름을 날리는 기사들이라든가. 그레시아 공작, 우리 아버지도 이길 것 같았고.

말을 꺼내 놓고 보니까, 싸울 만한 사람들은 전부 대륙에서도 손에 꼽는 강자들이었다.

'용사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그 용사가 내가 싸워야 할 상대였으니 그게 문제였다.

긴 싸움은 아니었지만, 싸워 보니 무엇이 부족한지 알 수 있었다.

다 부족했다.

키가 우선 20㎝는 차이가 나는 것 같았고, 팔도, 다리도 그만큼 차이가 났다.

체급이 다르니, 힘도 차이가 나고 사거리도 차이가 났다.

더구나 그는 내가 가진 능력들의 모태가 되는 용사였다.

내가 가진 능력들은 그도 다 가지고 있었다.

'육체 최적화', '마나 회로 구축법', '마나 감응력', 그리고 알지 못하는 다른 능력들까지.

용사는 마나 회로 구축법, 마나 심법이라고 불리는 능력을 하나만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왕실이 가지고 있는 마나 심법도 있었고, 그레시아 공작가가 가지고 있는 심법도 잘만 써먹었다.

도대체 몇 개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전부 경험하기 전에 죽어 버렸으니까 알 도리가 없었지.

물론, 그런 대단한 용사라도 카트린에게서 얻은 능력과 죽으면 과거로 돌아오는 능력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행히 능력의 활용은 나보다 대단하지는 않았다. 하나하나 따지면 내가 더 활용을 잘하는 면이 있는 것도 있었고.

하지만, 기본적인 검술이 밀려 버리니, 그런 부분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제대로 된 검술을 배운 게 아니었어.'

요하힘이 나와 다른 왕국 기사들의 검술에 괜히 시비를 거는 게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고, 배우고 있는 왕국 검술은 제대로 된 게 아니었다.

왕실 검술도 따로 있고, 귀족들마다 검술이 나뉘어 있었지만, 그래도 초대왕인 카를로스 기사로부터 제대로 배워 온 검술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직접 카를로스와 싸워 보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직 어려서 어설픈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의 검술은 내가 배우고, 본 검술과 완전히 달랐다.

그의 검술은 그의 능력과 따로 놀지 않았다.

육체 최적화는 검술을 행할 육체를 만들어 주었고, 마나 심법은 그 검술을 사용하기 위해 최적화된 심법이었다.

거기다, 마나 감응력은 상대방을 파악하고 검이 나아갈 길을 알려주었고.

모든 능력이 검술을 받쳐주었고, 검술은 그가 가진 모든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게 해 주었다.

그런 상대를 이기기는 어려웠다.

같은 나이였지만, 그와 싸워 보니, 나는 카를로스 용사의 마이너 버전 정도로 느껴질 정도였다.

필사적으로 대항해 보았지만, 결국 질 수밖에 없었다.

아쉽게도 용사에게서 검술을 배우거나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상대했던 카를로스 용사는 실제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능력과 실력만 따온 일종의 인공지능 같은 존재였다. 유물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아무리 봐도 내가 실력으로 그를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이번 삶도 저번 삶과 똑같이 흘러간다면, 대공녀가 왕실 창고로 가기까지 앞으로 한 달 반 정도 남아 있었다.

그사이에 내 검술 실력이 같은 수준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직 능력을 어떻게 활성화하는지도 모르니, 같은 능력이 되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무리 봐도 길은 없어 보였지만.

'문제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는 거지.'

그냥 꽥 하고 죽은 것도 아니고, 용사라는 인간과 싸우다 죽은 것이었다.

거기다, 다시 붙어 볼 기회가 있는데, 그냥 모른 척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한 번만, 한 번만 더 싸워 보자.'

결국, 도박 중독에 빠진 사람이 꺼내는 말처럼 속으로 한 번만을 반복하게 되었다.

고통과 반복되는 시간이 걱정되었지만, 용사와 싸워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움직였다.

그렇지만, 그냥 싸우다가 질 생각도 없었다.

거기다, 분명 이기면 뭔가 보상도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면, 이겨야 했고, 그냥 이기기 힘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결국, 꼼수, 편법을 쓰기로 했다.

다행히 저 수련장이라는 곳은 내가 검을 잡았을 때 들고 있던 유물들의 성능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부러지지 않는 대검은 그 안에서도 부러지지 않았고, 검기를 뽑아내는 단검은 그 안에서도 강렬한 검기를 뿜어냈다.

단검의 에고는 복제되지 않았지만, 유물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은 편법이 가능해 보였다.

어차피 왕실 창고 안에서 몸수색도 하지 않았으니, 전부 들고 가 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나는 몇 가지 더 방법을 생각해냈다.

* * *

그 전에, 이번 삶은 몇 가지 방법을 쓸 때 빼고는 최대한 전과 똑같이 보내기로 했다.

일이 틀어져서 다시 싸워 보지 못하게 되면 고생을 한 보람이 없어질 테니.

나는 왕국으로 돌아온 뒤에 다시 훈련으로 시간을 보냈고, 대공녀가 불렀을 때는 전처럼 단검을 수리했다.

어차피 고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구슬은 꺼내지 않았다.

단검을 수리한 뒤에 시간이 흘러 학교에 가게 되었고, 다시, 대공녀와 제국에서 온 두 학생을 보게 되었다.

전과 달리, 잘난 체하는 요하힘이 귀엽게 보이기만 했다.

대공녀와 잘 알고 있다는 사실로 다시 유명해지고, 공국에서 있었던 일이 퍼져 나가 더 유명해지기도 했고.

다시 나를 찍은 학생들에게 지목을 받아 정원에서 호위하기도 했다.

이번에도 정원은 박살 내 주었다.

겸사겸사 요하힘의 검도 부러뜨려 주었고.

주말에 카트린의 집에 들러서 에고 단검의 수다도 들었다.

그렇게 똑같은 시간을 보내는 중에 다시 한번 대공녀의 호출을 받게 되었다.

저번 삶과 똑같은 이유에서였다.

왕실 창고를 구경하도록 해 주겠다는 제2 왕자의 말과 그렇게 되면, 왕궁 안에서 호위해 달라는 이야기였다.

최대한 똑같이 움직인 덕분인지, 이번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도 무조건 해야 한다고 대공녀에게 권유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권유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뒤에 나는 대공녀에게 호위 비용을 요구했다.

"상속 능력 학부 지원에 비용을 받는 것도 있나요?"

내 말에 대공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평범한 지원이 아니니까요. 거기다, 대공녀님께 도움도 되고요."

왕실 창고를 가게 되는 일이 틀어지지 않았으니, 이제는 승리하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을 만들어 내야 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대공녀에게 얻어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 얼굴에 철판은 충분히 깔 수 있었다.

"호위 비용으로 이 석궁을 고쳐주시겠습니까?"

나는 주머니에서 석궁 아니 쇠뇌를 꺼냈다.

딱 봐도 망가진 쇠뇌였다.

이 쇠뇌는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검은 화살과 한 쌍이 되는 쇠뇌였다.

주머니 속에 들어 있는 검은 화살은 경매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암살자가 내게 쏜 그 화살이었고, 망가진 쇠뇌는 그 화살을 날린 쇠뇌였다.

나는 방어막이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그 화살을 다시 한번 살려 볼 생각이었다.

"왕실 창고를 가게 돼도 수리 같은 것은 하실 수 없을 테니, 그쪽 훈련은 제가 돕도록 하겠습니다. 유물 경매장에도 아는 사람이 있으니, 망가진 유물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죽기 전 왕실 창고에서 망가진 유물로 손이 가는 대공녀의 모습을 보았었다.

왕실 창고에서 그러기 전에 미리 유물을 하나 수리해 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겸사겸사, 나에게 도움이 되면 더 좋고.

대공녀는 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확실히 제게도 나쁘지 않은 비용이네요. 단검 때처럼 힘들지도 않을 것 같고. 금방 고칠 테니 갈 때 받아 가세요."

예상대로 쇠뇌 수리는 어렵지 않았다. 조금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대공녀도 괜찮아 보였고.

그렇게 용사를 상대하기 위한 무기 하나를 만들어 냈고, 이어서 나는 마지막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붙어 보고 싶습니다."

저번 삶처럼 대련에서 진 요하힘이 나에게 재대결을 요청했다.

그때는 계속 도망 다녔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좋습니다. 바로 하죠."

내 말에 요하힘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쉽게 승낙할 줄 몰랐던 것 같았다.

그날부터 나는 요하힘과 대련을 이어 갔다.

지금, 왕실 기사단장에게 왕국 검술을 배운다고 해도 검 속에 있는 용사의 검술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아니, 왕국의 다른 어떤 사람에게 검을 배운다고 해도, 파편화된 검술로는 용사의 검술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왕국의 검이 아닌 다른 검으로 왕국 검의 약점을 찾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할 방법이라도 알아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나는 요하힘과 계속 대련해 나갔다.

비드라는 자가 더 실력이 좋았지만, 내가 죽여 버렸으니, 남은 것은 요하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요하힘과 비드의 검술이 비슷해서 이어서 실력을 쌓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나는 정신세계에서 보았던 용사의 검을 최대한 따라 하면서 요하힘과 대결을 이어 갔다.

어색한 검이었기에 승부는 전처럼 쉽게 나지 않았고, 요하힘도 흥이 나서 계속 덤볐다.

덕분에 나는 용사의 검과 제국의 검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물론 수박 겉핥기 정도였지만.

그렇게 마지막 준비를 하면서 기다리던 날이 눈앞에 다가왔다.

나는 다시 한번 대공녀와 함께 왕궁으로 향했다.

왕궁 앞에서는 제2 왕자가 떠드는 소리를 들었고, 왕궁 지하 검문소에서는 서자라고 뭐라 하는 귀족도 다시 보게 되었다.

나는 온종일 몸을 사렸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검도 잡아 보지 못하고 쫓겨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더 시비 거는 사람은 없었고, 나와 대공녀는 무사히 왕실 창고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번에도 신체검사는 하지 않았고, 저번과 달리, 주머니에 가득 넣어 온 유물들은 지금도 내 품에서 꺼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공녀와 창고지기는 그때처럼 유물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고, 나는 조심스럽게 봉인된 검에 다가갔다.

저번과 달리, 조심스럽게 쇠사슬을 넘었고, 나는 다시 한번 검에 손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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