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제16편 교환 학생 (1)
다행히 단검의 환상과 말은 나밖에 듣지 못했다.
나는 지쳐 쓰러진 대공녀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에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방문을 잠근 뒤, 나는 말하게 된 에고 단검을 다시 손에 쥐었다.
[새로운 주인의 이름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단검이 처음 꺼낸 말은 환상과 함께 보여준 주인 어쩌고에서 이어진 말이었다.
"알렉스…… 데 그레시아."
[새로운 주인의 이름을 등록했습니다. 알렉스 데 그레시아는 저 불새의 단검의 두 번째 주인이 되었습니다.]
"설마 유물에는 꼭 이런 작업이 필요한 거야?"
[아뇨. 필요 없습니다. 대화를 하기 위해 이름을 알 필요가 있었던 것뿐입니다.]
어째, 조금 싸한 느낌이 들었다. 에고 무기에 휘둘리는 느낌이 나는 대화를 이어갔다.
"내가 두 번째 주인이라면 첫 번째 주인은 누구였지?"
용사라고 했고, 카트린 가문의 유적에서 가지고 온 것이었으니 카트린 가문의 선조이려나.
[불새 용사 라텐하마르입니다. 그는 포위된 요새를 홀로 탈출해서 구원병을 데려와 수많은 병사를 구한 영웅이고, 다른 용사들과 함께 마왕과 마물들을 동쪽으로 몰아넣은 분입니다.]
예상대로였다.
그는 카트린 가문의 가문명이 된 용사였고, 우리 영지의 유적에서 활약했던 용사였다.
나는 왜 이 단검이 우리 영지의 무덤 지하에 있게 되었는지 에고에게 물었다.
[마왕을 직접 상대하는 큰 전투가 있기 전, 후손에 전해 주고자 처음 능력을 얻은 곳에 저희들을 남겨 두셨습니다.]
역시, 무덤 아래 있던 보물 창고는 용사가 후손에게 전해 주려던 곳이었나.
아쉽게도 위치를 알려 주기 전에 전쟁터에서 죽었고, 그 뒤로 마물에게 바닥을 털려서, 결국 단검이 지하 깊숙한 웅덩이에 잠기게 된 거고.
대충 어떻게 일이 진행된 건지 알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듣는 도중에 던전에서 고생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도대체 몇 번이나 죽었었는지.
[생각보다 오래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라텐하마르 용사의 후계자입니까? 아니면 자손이십니까?]
음, 이번에는 내가 좀 미안한 대답을 해야되는 건가.
"후계자도 아니고 후손도 아닌데."
[그럴 리가. 분명 첫 번째 주인의 능력을 사용하고 계십니다만…….]
"그렇기는 하지만, 내 원래 능력은 카를로스 기사 쪽에 더 가깝지."
내 각성 능력인 '육체 최적화'도 마나심법과 아직 활성화가 안 된 '마나 감응력'까지.
모두 카를로스 기사의 상속능력이었다.
[아니, 그럴 리가. 다른 용사의 능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아니, 그보다 하필이면 그 근육 바보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니.]
두 용사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카를로스 기사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게 더 문제인 건가.
에고 단검은 혼자 흥분해서 마구 떠들었다.
"시간이 오래되었으니까……. 수백 년이 지났으니 많은 것이 변한 거지."
시간이 지난 탓은 아니었지만, 에고 단검을 이해시키기 위해 그렇게 이야기를 했다.
[……결국 전 주인님의 희망은 전해지지 않은 것이었군요. 전 도굴범 손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까?]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후손도 멀쩡히 잘 지내고 있고. 내가 도굴범도 아니잖아.
하지만, 설명하면 설명할수록 뭔가 더 귀찮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에고 단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그보다 고장 난 것을 다 고쳤는데, 뭔가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것은 없어?"
에고가 투덜거리는 것을 들으려고 망가진 단검을 고친 게 아니었다.
[용사 라텐하마르의 세 가지 무기. 불새의 단검과 불새의 검, 불새의 방패. 그 중의 제일은 바넷사의 동반자이자, 에고 단검인 저 불새의 단검이었습니다.]
라텐하마르 용사가 가지고 있던 유물 무기 중에 에고는 이 단검 하나였다는 말이겠지?
하긴 이렇게 말하는 무기를 두 개 이상 들고 다니면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았다.
설마, 시끄러워서 보물창고에 던져 놓은 것은 아니겠지.
아니, 그보다 도움이 될 만한 게 없냐는 이야기에 왜 자기 자랑을 하는 거지?
[용사의 사랑을 듬뿍 받은 저는 용사의 마나를 끊임없이 받아들여서 후손이 용사의 능력을 쉽게 이어받을 수 있게 해줄 수 있습니다.]
"아니, 잠깐 네 말대로라면 내가 라텐하마르 용사의 능력을 사용하게 된 게, 네 도움 덕분이라는 거잖아."
[맞습니다!]
에고 단검은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그 이야기는.
"그럼, 네 쓸모는 다했다는 거잖아? 결국 떠버리 에고만 남았다는 소리잖아."
[그동안 큰 도움이 되었으니…….]
도움이 되긴 많이 되었지만, 기껏 대공녀가 고쳐주었는데 아무 쓸모 없는 에고만 남게 되다니.
"다시 원래대로 해 달라고 하면 해 주려나……."
시끄럽기만 한 게 아니라 뭔가 이상한 자긍심까지 가득한 에고라, 말하지 못하던 때가 더 나은 것 같았다.
"아니면 나도 창고에 집어넣어 버릴까. 다른 무기로도 능력을 충분히 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아, 그러실 것은 없습니다. 저, 저는 용사가 사용하던 무기, 유물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다른 유물은 말을 못 하니, 저만이 할 수 있을 겁니다!]
역시, 겁을 주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나.
딴소리만 하던 에고가 처음으로 쓸모 있는 소리를 했다.
만약 다른 용사가 쓰던 무기도 이 단검과 비슷한 효과가 있다면, 그 유물로 새로운 능력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눈썰미가 있다면 창고에 처박아 둘 이유가 없겠지."
무슨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단검이 안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카트린과 같이 있었던 덕분에 방패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걸까?"
내가 잘나서 새로운 능력을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아니, 그냥 옆에서 본 것만으로 능력을 쓰게 된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이려나.
어찌 되었건 간에 카트린에게 방패와 검을 빌려서 테스트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았다.
방패와 단검으로 능력을 얻었으니, 원래 카트린 일가가 보유하고 있었다는 검을 쥐어보면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될지도 몰랐다.
나는 곧 있을 2학기 개학을 무척이나 기다리게 되었다.
* * *
창고에 가두어 둔다는 말은 에고 단검의 제일 큰 약점이었다.
단검의 잘난 척과 시끄러운 말들은 몇 번 약점을 꺼낸 것으로 바로 봉인되었다.
불새의 단검은 내가 물어보거나 다른 용사의 유물을 보지 않는 한 입을 닫겠다는 약속을 하게 되었고, 나는 다시 조용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단검을 깨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카데미에 가게 되었다.
왕국의 기후는 일 년 내내 온화한 편이라 여름 방학이 필요 없어 보이기는 했지만, 일주일밖에 쉬지 못한다는 것은 이쪽 세상의 학생들에게도 불만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았다.
"그 고생을 하고 돌아왔는데 바로 학교로 나와야 하다니, 세상이 다 지옥이야."
국경 부대에 파견 수업을 다녀온 학생은 우울한 얼굴로 책상에 머리를 묻어버렸고,
"나는 어제 겨우 수도에 도착했어. 아니, 아카데미에서 지내는 정도면 괜찮으려나……."
남쪽 오지를 다녀온 온 학생은 새까맣게 변한 얼굴로 해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학생들은 잘나가는 영지에 파견 수업을 다녀온 자들이었다.
교양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다녀온 영지별로 우르르 모여 있는 꼴이 벌써 파벌이 만들어진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런데, 모여서 수군거리는 이들의 말을 슬쩍 훔쳐 들으니 나와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보다 소문 들었어?"
"무슨 소문."
"공국의 대공녀가 수도로 온 모양이야."
"정말? 대공녀가 왜? 공국의 왕세자도 왕국에는 한 번도 안 왔잖아."
"공국의 왕세자가 왕국에 올 리가 없잖아."
"대공녀는 뭐가 다르다고."
재미있는 이야기였는지 다른 학생이 끼어들었다.
"그보다 대공녀는 몸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른 학생이 대신 해 주었다.
"꽤 유명한 이야기였어. 약혼으로 공국에 줄을 대려던 귀족들이 영약을 찾으러 다니기까지 했었다니까."
귀족들 사이에 흐르는 가십은 무서울 정도였다.
"잠깐만, 공주님이 파견 수업을 나간 곳이 공국이었잖아."
"맞다. 설마, 공주님하고 같이 온 거야?"
"그렇게 되는 거였나."
"공주님이 공국으로 가신 이유가 대공녀를 모셔오려고 한 건가."
"그거야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공주님에게? 네가 물어봐."
"공주님에게 물어볼 필요가 없잖아. 공주님만 파견 수업을 간 것도 아니고."
말을 하던 학생이 여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발레아를 불렀다.
"발레아 양. 파견 수업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발레아에게 모여들었다.
다른 학생들이라면 얼굴부터 벌겋게 변했겠지만, 발레아는 달랐다.
"파견 수업이라, 음. 있었죠. 무척이나 많은 일들이."
그녀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녀의 표정은 다른 이들이 무척이나 궁금하게 했다.
대공녀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었겠지만, 말을 하면서 발레아가 쳐다본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어라. 나?
학생들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과연, 그런 건가."
나를 본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뭐가 그런 건데.
"맞다. 알레스 공자도 같이 갔었지. 그러면 아무 일도 안 벌어졌을 리가 없지."
왜 내가 가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데?
도대체 내 이미지가 이렇게 된 거야.
아니 그거보다 대공녀에 대해 물어보려는 거 아니었어?
물어본 놈이 고개를 끄덕이면 어떻게 해!
일을 벌인 것은 '현장 학습'밖에 없었는데.
'실전 수업'때는 그냥 열심히 마물들과 싸운 것밖에 없었잖아.
분명 저기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고 있는 발레아 때문이었다.
계속 이상한 소문을 흘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하긴 마물을 그렇게 박살 내는 사람은 처음 봤었지. 공국에서 마물이라도 잡은 걸까?"
마물 대신 제국 기사들을 잡기는 했는데…….
결국, 발레아 탓이 아니라 내 원죄였을까.
그렇게 여러 명의 학생이 나를 놀렸다.
전에는 본체만체했던 학생들이었다. 놀리기는 했지만, 다들 입학 때보다는 사이가 좋아진 것이다.
물론, 싫어하게 된 학생들도 더 많아졌다.
무시하던 학생들 중에 친해진 학생들이 생긴 만큼 싫어하는 학생들이 늘어난 것이다.
지금도 학생 무리 몇몇이 나를 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그들을 보니 조용한 학창 생활은 예전에 끝난 것 같았다.
수업 전의 소란은 교수님이 들어오면서 끝이 났다.
하지만, 교수님을 따라 들어온 사람들을 보고 학생들은 다시 한번 소란스러워졌다.
방금 전까지 이야기하던 사람이 들어온 것이다.
"이번 학기부터 같이 다니게 된 유학생과 교환 학생들이다."
먼저 소개한 사람은 나도 잘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공국왕의 딸, 대공녀가 유학생으로 아카데미에 오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같이 온 학생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소년과 소녀.
먼저 소년이 입을 열었다.
"대공녀님과 공주님과 같이 다니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국에서 교환 학생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요하힘 폰 시라흐입니다. 시라흐 백작의 셋째 아들입니다."
분명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무척이나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는 나이도 다르고 분위기도 달랐지만, 얼마 전에 내게 죽었던 비드와 무척이나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