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화
제13편 우리는 다시 돌아갑니다 (2)
오가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한적한 길.
길 가까이에 숲이 펼쳐져 있는 습격하기 좋은 길이었다.
우리가 달려가는 길을 보니, 조금 어이가 없었다.
일을 그렇게 벌였는데, 똑같은 길을 가게 되다니.
기사들 숫자도 줄이고, 비드라는 강자도 없앴다.
거기다, 공국왕에게 이야기까지 했는데.
솔직히 그 여관에 모여있는 사람들만 미리 처리했어도 다시 습격을 받을 이유가 없었다.
도대체 공국왕이 알아서 처리한다는 때는 언제란 말인가. 자기 딸이 위험해진 다음이라는 소리였나?
이대로 가다가는 또 습격을 당할 거다.
비드도 죽고, 검은 기사들 숫자도 줄었으니, 그때만큼 위험하지는 않을 테지만, 내가 모두 막아줄 수는 없었다.
죽는 사람이 많이 나올 게 분명했다.
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어 마차를 돌리려 했다.
"잠깐만……."
하지만, 나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내가 말을 걸려 했던 공국 기사는 이미 한껏 긴장해 있었다.
그는 검을 움켜쥐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다른 기사들도 살펴보았다.
공국 기사들 모두가 한껏 긴장했다. 다들 긴장한 채로 무언가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주위의 공기가 달라져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긴장된 공기가 주변에 가득했다.
그런 공기 때문일까.
공국 기사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왕국에서 온 기사들도 호위에 집중하고 있었다.
다른 길로 빠진 마차들. 그리고 긴장한 기사들. 하지만, 아무도 마차를 돌리라고 하지 않았다.
맙소사. 설마 알고 있었다는 건가.
우리가, 대공녀가 습격당할 거라는 걸?
황당한 생각이었지만, 기사들의 반응을 보면 그런 이유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아니, 설마 그렇게까지 할 리가.
공국왕이 아무리 정치적인 인간이라도, 딸을 이용해 함정을 파서 적들을 잡겠다는 생각을 할 리가…….
그런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바람에 나는 미처 경고하지 못했다.
잠깐의 머뭇거림이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하려고 할 때는 이미 내 감각에 뭔가 걸려든 뒤였다.
이미 감각을 바짝 끌어올렸기에 걸려든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죽기 전에 이 자리에서 느꼈던 바로 그 감각.
숲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모두 마나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젠장, 과거와 똑같았다.
숫자가 줄어들었는지 마나의 크기는 조금 줄었지만, 위치도 사람들도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속으로 공국왕에게 욕을 퍼부으며 가슴에서 검을 꺼낼 때였다.
'어라?'
내 감각에 무언가 더 걸려들었다.
전혀 다른 방향. 그 느낌은 반대쪽 숲과 뒤쪽 길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방향은 다르지만 조금 전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쪽에서 오는 것은 마나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숫자가 더 늘었다고?'
내 예상보다 인원이 더 있었던 건가? 죽기 전에는 전부 보낸 게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휘저었지만, 이번에는 바로 외칠 수 있었다.
"습격이다! 모두 방어대형으로!"
차자작.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기사들은 검을 뽑았다.
공국 기사들은 미리 준비했기 때문일 테고, 왕국 기사들도 긴장된 분위기 덕분에 바로 검을 뺄 수 있었다.
"왼쪽 숲에 적이 숨어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서도 반대쪽 숲에서도 다가옵니다!"
내 말에 왕국 기사들은 놀라 마차를 둘러싸려고 했다.
"뒤쪽과 반대쪽 숲은 지원군입니다! 왼쪽 숲 쪽만 막으면 됩니다!"
그때, 공국의 선임 기사가 소리쳤다.
지원군이라고? 숲에 숨어 있는 것도 알고 있었고? 설마, 진짜 함정이었어?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몸은 그동안의 훈련과 경험으로 알아서 움직였다.
주머니에서 단검과 대검을 빼낸 뒤, 마차 위로 올라갔다.
"대공녀님은 안전한 곳으로! 우리가 뒤를 막는다!"
히이이잉!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는지, 공국 기사의 말에 마부가 채찍을 휘둘렀다.
마차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여기까지는 죽기 전과 같았지만, 전과 달리 모든 기사가 마차를 따라오지 않았다.
왕국 기사들 태반이 마차를 따라왔지만, 공국 기사들은 일부만 마차를 따라왔다.
나머지 기사들은 그 자리에 남아 숲에서 뛰쳐나오는 자들을 기다렸다.
"하하, 감히 우리를 감옥에 가두었겠다! 원수를 갚으러 왔다!"
"왕국 용병을 우습게 보다니!"
용병들과 검은 기사들이 숲에서 뛰쳐나오면서 전과 같은 말을 외쳤지만, 지금은 허망하게 들릴 뿐이었다.
숲 밖으로 뛰쳐나온 그들은 전과 다른 광경을 보게 되었다.
길옆에 나란히 서서 그들을 기다리는 기사들과 반대쪽 숲에서 쏟아져나오는 병사들. 그리고, 뒤쪽 길에서 달려오는 다른 기사들까지.
"설마……. 함정인가……."
주변을 보며 허탈하게 말하는 용병도 있었고,
"저희가 틈을 만들겠습니다! 기사님들은 목적을 이루시기를 바랍니다!"
현실을 깨닫고도 계획을 성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용병도 있었다.
나는 달려가는 마차 위에 서서 그들의 외침을 들었다.
"가자!"
용병들이 죽음으로 길을 뚫고, 기사들은 그들이 만들 길로 포위망을 탈출하려고 했다.
공국 병사와 기사들은 그들을 막으려 했고,
"막아!"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하게 해! 하나라도 빠져나가면 대공녀님이 위험해진다!"
적들은 몸을 던져서 포위망에 구멍을 냈다.
"제국을 위해!"
"몸을 던져서 길을 열어!"
결국, 포위망에 구멍이 났다.
검은 기사들 일부가 포위망을 빠져나와 앞서 달려가는 마차를 쫓았다.
"정말, 함정이었다니."
나는 딸을 함정의 미끼로 삼은 공국왕의 결정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가 말한 때라는 게 지금을 말하는 거였다니.
딸을 노린다는 것을 깨닫고, 왕국으로 딸을 보낸 뒤, 딸을 노리는 자들을 일망타진한다라.
설마, 성안을 소란스럽게 하지 않으려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
기사들과 용병들이 성안에서 싸우게 되면 뒤처리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
그런 생각이었으면, 지금쯤, 싸우지 못하는 남은 인원들을 잡아들이고 있으려나.
딸을 지킨답시고 많은 병력을 보내고, 기사들도 보냈겠지만,
"완벽하게 함정에 빠뜨렸다고, 항상 안전하리라는 보장은 없을 텐데."
더구나 뒤가 없는 적이라면 아무리 강한 상대일지라도 달려들게 되어 있었다. 지금처럼.
검은 기사들과 마차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리고, 앞쪽에서 길에 손을 짚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저 사람인가. 죽기 전에 바닥을 터트려 마차를 넘어뜨린 사람이.
나는 단검에 마나를 밀어 넣은 뒤, 그를 향해 던졌다.
슈우욱! 퍽!
단검이 빛살처럼 날아가 남자의 머리에 꽂혔다.
꿀렁.
땅이 위아래 흔들리다가 멈추었다.
남자는 쓰러졌고, 마차는 쓰러진 남자 옆을 지나갔다.
신체 능력자도 아니면서 보호 없이 능력을 쓰려고 하다니.
들키지 않았다면 최고의 결과를 냈겠지만,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나 그때의 일을 되짚었다.
땅을 터트린 남자가 근처에 있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 뒤를 따라오는 검은 기사들 외에는, 이제 더는 마차가 달리는 것을 막을 만한 것은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마차와 같이 달리는 기사들과 함께 싸워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는 마차 뒤쪽을 향해 힘껏 칼을 휘두른 뒤에,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윽!"
비명과 함께 나는 바닥에 내려섰다.
마차 위에서 듣고 있자니, 마차 안에도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공주가 같이 싸우겠다고 소란을 피우고 있었고, 대공녀는 무엇을 할 생각인지, 한참 마나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발레아도 이리저리 뭔가 하려는 것 같았고.
공주의 실력도 나쁘지 않았고, 발레아도 믿고 있었지만, 그들을 싸움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막바지였다. 잘못해서 죽거나 하면 곤란했다.
이번 일로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일이 상당히 꼬일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적이 문제가 아니었다. 제삼자, 혹은 아군도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장기 말들이 아니었다.
지금도 다시 시작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내 예상대로 일이 진행된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공국왕이 마음대로 일을 벌였기 때문이었지만, 다른 사람이 또 일을 벌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일을 끝낼 생각이었다.
바닥에 내려서서 쓰러진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의 머리에 꽂힌 단검을 뽑아 들었다.
한 손에는 대검, 다른 손에는 단검. 다른 유물도 전부 제자리에 있었다.
이를 악문 검은 기사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비켜라!"
선두에 선 기사가 크게 외쳤다.
비킬 생각이면 막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선두에 선 기사는 죽기 전에 본 기억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싸웠던 기사였다.
꽤 잘 싸웠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끝을 보지 못했다.
나는 마나를 가득 끌어올려 목걸이에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그냥 싸워도 지지 않겠지만, 한사람에게 붙잡혀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은 없었다.
강해진 마나가 몸 전체에 퍼져나가고, 대검과 단검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선두에 선 기사가 검을 휘둘렀고,
시간이 느려졌다.
싸움은 길지 않았다. 나는 한 사람도 내 옆을 지나가게 하지 않았다.
기사 두 명의 합격도, 동반자살을 노리는 검도, 모두 이겨냈다.
물론, 목걸이를 쓴 덕분에 오래 지나지 않아 마나가 다 떨어져 버렸지만, 그때는 나 외에는 서 있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확실히 성장해 있었다.
수치로 보는 능력만 성장한 것이 아니었다. 내 검술도, 실력도, 경험도 전과 달라져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서 목걸이를 썼지만, 그냥 싸웠어도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국 기사들 여럿과 싸워 이기다니.
다시금 자신감이 삐쭉 치솟으려 했다.
그래도 마나가 다 떨어진 탓인지, 금방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직 멀었다. 나보다 강한 사람은 아직 많았다. 기사가 전부가 아니었다.
이 세상은 기사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상속능력을 가진 귀족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아직 나는 그들과 제대로 싸워보지 못했다.
나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더는 싸움은 무리였고, 걷는 것도 귀찮았지만, 괜히 여기 남아 있다가 사람들에게 시달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천천히 걷자, 바닥에 드문드문 떨어진 피를 볼 수 있었다.
떨어진 피가 점점 많아지고, 잠시 뒤에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았다.
신기하게도 반쯤 마차 색으로 변해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가슴이 반쯤 갈라져서 이미 죽어있었다.
저 상처는 내가 좀 전에 마차에서 뛰어내릴 때, 검으로 만든 것이었다.
죽기 전처럼 앞 마차에 숨어들지 않았다면, 내 검을 피할 수 있었다면, 죽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었다면, 그는 살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이곳이 다니에르 자작의 마지막 목적지였다.
그가 죽는 것을 본 사람도 없었고, 내가 그를 벤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는 이제 공국왕의 판 함정 때문에 죽게 된 희생자였다.
두 나라 사이에 어떻게 마무리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나는 자작의 시체를 뒤로 한 채로 계속 걸었다.
어느 정도 걸어가다 보니, 멀리서 다가오는 마차가 보였다.
내가 뛰어내린 그 마차였다.
마차는 더 멀리 가지 않고, 다시 돌아오고 있었다.
마차 옆에는 달아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기사와 병사가 호위하고 있었다.
마차가 가는 방향으로도 병사와 기사들이 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정면에서 오던 병사들은 포위 시간이 늦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원래 3면에서 포위하려고 했었다던가.
아무래도 공국왕이 허락한 작전은 엉망으로 진행된 모양이었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내통자들에게 들키지 않고, 계획을 진행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고 들었지만,
결국, 대공녀까지 위험에 빠뜨릴뻔한 작전이었다.
성공하기는 했지만, 이런 작전을 구상한 사람은 문책을 당하는 게 맞았다.
물론, 작전을 승인한 공국왕이 제일 나빴지만.
마차가 멈추고, 마차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따라오던 적들은요?"
먼저 내린 대공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더는 따라오지 못할 겁니다."
내 말에 공주와 발레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지만, 대공녀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숫자를 내가 막았다는 게 믿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다른 기사들도 믿기 힘든지, 기사 몇 명이 먼저 달려갔다.
어차피 그들은 시체만 보게 될 터였으니, 나는 그들을 쳐다보는 대신에 대공녀에게 물어보았다.
습격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대공녀에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습격이 있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까?"
내 말에 대공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죄송해요.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은 들었어요. 비밀로 하라는 말에 말씀을 못 드렸어요."
그래도 자식에게는 말해 주었다는 건가.
다만, 대공녀의 사과는 번지수가 잘못되었다.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공주와 발레아를 쳐다보았다.
괜히 휩쓸려 죽을 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뿐만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도 있었다.
뒤에 남아 있는 선배들과 바닥에 쓰러져 죽은 자작도 있고.
"네. 모두에게 사과드릴 거예요. 그리고 공자님께도 다시 사과드려요."
그래도 대공녀는 공국왕과 다르게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사과를 했다.
공주뿐만 아니라, 서자인 나에게도.
"사과로 제가 그 검을 봐 드릴까요?"
"네?"
"손에 들고 계신 단검 말이에요. 유물 맞죠? 조금 고장 난 것 같은데, 제가 손봐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라? 말도 안 했는데, 수리를 해 준다는 건가?
그녀의 말에 기뻐했다가, 다시 어리둥절했다.
아니, 잠깐, 단검은 왜?
나는 단검을 살펴보았다.
카트린이 던전에서 준 단검이었다. 새로운 능력을 준 단검.
처음에는 말도 했었는데.
설마, 멀쩡한 단검이 아니었어?
나는 놀란 눈으로 대공녀와 단검을 쳐다보았다.
<위기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이 설정되었습니다.>
메세지 창 뒤로 단검이 햇빛에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