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7화
제12편 우리는 다시 돌아갑니다 (1)
왕국에서 온 아카데미 학생들이 돌아가는 날.
공국 수도의 한 여관 지하에는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전과 달리, 이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용병들도 보이지 않았고, 기사들도 자리에 없었다.
대신 내통자들과 상인으로 온 자들. 제국의 특사와 공국을 담당하고 있는 조직의 책임자가 이곳에 남아 있었다.
"우리가 할 준비는 다 끝났죠?"
조직의 책임자이자, 오래된 상단의 단장인 에밀리오가 연락책을 담당하는 조직원에게 물었다.
"네. 기사분들과 용병들도 계획했던 장소에 도착해서 모두 준비를 마쳤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대답을 들었는데도 에밀리오와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다.
"하아. 이번 일은 예상보다 더 엉망이었어요."
"너무 준비 없이 급하게 일이 진행된 탓입니다."
특사가 조직의 명령에 불만을 토해냈다.
공국왕과의 협상이 깨져버린 탓에 특사는 소득 없이 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조직을 돕기 위해 협상도 마음대로 꼬아버렸는데, 이렇게 소득 없이 끝나버렸으니, 고국에 돌아가면 징계를 받게 될 가능성이 컸다.
특사로서는 협상을 망쳐버린 조직에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에밀리오 단장은 특사에게 조직을 대신해서 변명에 가까운 말을 했다.
"그것도 있지만, 중간에 일이 틀어진 게 너무 많았어요. 국경을 넘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상점가 작전도 엉망이었고."
말을 꺼내놓고 보니, 급하게 벌인 일이 아니더라도, 일이 꼬인 게 한둘이 아니었다.
거기다, 더 황당한 일이 있었다.
"버나드……. 아니 비드님 소식은 아직 없나요?"
"네. 구치소에서 풀려난 것까지는 확인했지만, 그 뒤는 소식도, 위치도 파악이 안 됩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봤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고……."
내통자들을 관리하는 담당자의 말에 모두 표정이 어두워졌다.
"싸움을 좋아하고 자유분방한 분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래도 맡은 일은 제대로 하는 분이라고 들었는데……."
에밀리오의 말에 비드를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조직원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개인적으로는 개인적인 이탈이 아니라 사고로 생각됩니다."
"누군가에게 당했다는 말인가요."
작전 도중에 떠났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그가 누군가에게 당했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되었다.
"그럼 더 걱정이네요. 누가 고의로 일을 망치는 자가 있다면……."
우연이 겹쳐서 생긴 문제들이라면 그나마 나았다.
그렇지 않고, 누군가 고의로 방해하고 있다면 지금 마지막으로 준비하고 있는 일도 성공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일을 진행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니……."
"하아……."
에밀리오는 물론, 대부분 사람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모두, 위에서 내려온 명령 때문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최대한 빨리 대공녀를 데려오라는 명령.
그 명령 때문에 작전을 짤 시간도 부족했고, 제대로 준비도 못 했다.
물론, 그래도 처음에는 충분히 성공할 거라고 자신했지만, 여러 번의 실패가 이어진 지금은 자신하기가 어려웠다.
"제가 기사님들 실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드 님 없이 괜찮을까요? 아니, 이것도 의미 없는 이야기군요. 비드 님이 있든 없든 해야 하는 일이니……."
주저하며 말을 꺼내던 에밀리오 단장은 말을 마무리 짓지 못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네. 대공녀가 왕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놔둘 수는 없으니까요."
공국왕이 협상을 깨면서 한 말 때문에 이들은 마지막 계획을 행해야 했다.
예상보다 기사 숫자도 줄었고, 비드도 없었지만, 대공녀가 떠나는 것을 막아야 했다.
"작전이 끝난 뒤에 바로 제국으로 넘어갈 테니, 저희도 모임은 오늘을 끝으로 당분간 중지하죠."
에밀리오의 말에 모두 동의했다. 특히 협력자들을 담당하고 있는 조직원은 그녀의 말에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근래 너무 일을 많이 벌였습니다. 저희를 도와주시는 분들도 분위기가 안 좋다고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무리하게 벌인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기사들이 성벽을 넘는 것을 눈감고, 용병들을 풀어주고, 마지막으로 기사들을 수도 밖으로 보내기 위해서도 여러 가지 손을 썼었다.
이번 일이 끝난 뒤에는 많은 조력자가 한동안 몸을 사려야 했다.
"그럼, 다들 뒤처리를 잘해주시고, 다음에 모일 때까지 각자 맡은 위치에서 잘 행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회의를 마무리하고, 모두 헤어지려 할 때였다.
쾅! 쾅! 쾅!
천장 위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범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누군가 문이 부서질 정도로 강하게 두들기고 있었다.
이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잠겨 있다! 부셔!"
콰아앙!
바로 문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 건물은 포위되어 있다! 모두 손을 들고나와라! 저항하는 자는 바로 사살하겠다!"
문이 부서지고, 뒤이어 마나가 실린 음성이 들려왔다.
"경비대인가?"
에밀리오의 말에 조직원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경비대면 저희가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보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급하게 지하실 한쪽 벽을 밀어, 비밀 통로를 열었지만, 열린 통로에서 다른 사람이 먼저 튀어나왔다.
출구 쪽에서 비밀 통로를 지키던 조직원이었다.
"출구가 막혔습니다! 기사들이 포위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출구도 막혔다고? 어떻게 알고?"
"어떻게 하지? 싸워야 하나?"
"출구 쪽을 뚫어보죠!"
"우리 중에 제대로 된 전투원이 누가 있습니까! 기사가 있다잖아요! 싸우면 전멸입니다!"
모두가 떠드는 가운데, 에밀리오가 크게 외쳤다.
"조용!"
다행히 정신이 없는 가운데에서도 다들 에밀리오의 지시를 따랐다.
지하실은 바로 조용해졌다.
"지하실 입구를 찾아! 못 찾겠으면 이상해 보이는 건 다 부셔!"
물론, 위에서는 부서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지만,
"항복하죠. 말을 들으니, 경비병들이 아니라 기사들이 왔다던데. 기사들이 온 거라면 제대로 우리를 노리고 온 겁니다."
"아직 손쓸 곳은 많습니다. 모두 무사히 풀려날 수 있을 겁니다."
에밀리오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놀라서 허둥거렸지만, 그녀 말대로 공국에는 조직과 제국에 협력하는 사람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들의 힘을 빌리면 무사히 풀려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저들이 쳐들어온다는 것을 왜 몰랐던 거죠? 기사단 안에도 연락하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에밀리오의 물음에 다들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행정부에도 특별한 일은 없었습니다만……."
"그럼 도대체 어디서 온……."
모두 의아해하는 순간, 가까운 곳에서 폭음이 들렸다.
콰앙!
"찾았다! 여기가 입구입니다!"
폭음과 함께 뿌옇게 먼지가 퍼지고, 먼지 속에서 마나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곳에서 잘도 숨어있었군."
이어서 문을 부수라고 외친 남자의 목소리도 들렸다.
"저희는 모두 항복합니다."
에밀리오의 말에 지하실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양손을 들었다.
그녀의 말을 들었는지, 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격 중지. 여기 먼지 좀 날려버려."
"네."
부서진 지하실 문 쪽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 바로 먼지를 가라앉혔다.
뿌옇던 먼지가 사라지고, 손을 든 사람들은 지하실로 내려온 기사들을 보게 되었다.
"왕실 기사단. 그중에서도 공국왕이 데려온 기사들이네요. 이러면 우리가 알 방법이 없죠. 정말 제대로 준비했는데요."
에밀리오 뒤에서 내통자들을 관리하던 조직원이 속삭였다.
그 말에 에밀리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생각보다 안 좋은 상황이었다.
쉽게 풀려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나는 제국의 특사다. 내 몸에 손을 대지 말도록."
한쪽에서 특사가 성질을 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고의로 화를 내고 있었지만, 기사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인원이 전부인가?"
"네, 전부입니다."
기사의 말에 에밀리오는 그녀가 자랑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기사는 그녀의 얼굴을 보지도 않았다.
"예상대로군. 다른 놈들은 수도 밖으로 나갔겠지?"
"네?"
그 뒤에 기사가 한 말은 에밀리오를 놀라게 했다.
설마, 모두 알고 온 것일까?
모두 알고 온 것이면 왜 자신들만 남았을 때 온 것인지.
하지만, 그녀는 압송되어서 갇힐 때까지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와 동료들은 예상외로 아주 오래 갇히게 되었다.
* * *
에밀리오와 조직원들이 체포되던 순간.
나와 아카데미 학생들은 마차를 타고 수도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마차 행렬은 죽기 전보다 더 길고 화려했다.
단지 배웅이었던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대공녀가 왕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동생이 떠나는 것을 보러 나온 공국의 왕세자도 볼 수 있었다.
'시몬이 조금 더 잘생겼으려나.'
얼굴은 공작가의 후계자인 시몬이 나은 것 같았지만, 공국 왕세자는 이미 결혼했다.
'약혼만 한 시몬이 한걸음 뒤처진……. 아니, 결혼 안 한 시몬이 더 좋은 건가?'
결혼에 대한 혼란스러운 생각이 스쳐 갔지만, 그래도 시몬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이 후계자님은 두 왕자와 같은 상속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마나 감응력>
공국의 왕세자와 공국왕이 이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공국왕은 아직도 왕국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왕립 아카데미로 떠나는 대공녀에게는 없는 능력이었다. 덕분에 아카데미에서 시비가 줄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대공녀의 능력은 그녀의 어머니, 왕비에게서 받은 것일 가능성이 컸다.
왕비는 제국의 귀족이었다고 들었는데.
대공녀의 능력은 원래 제국 귀족 가문의 능력이었을 것이다.
일을 벌였던 놈들은 제국에 남아 있던 능력자들이 죽어서 마지막 남은 대공녀를 데리고 가려고 했던 것일까?
정확한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아직, 이런저런 상상에 불과했지만, 내 예상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왕세자 말고도 여러 귀족이 대공녀와 인사를 나누었다.
공국왕은 따로 모습을 보이지 않아, 하비에르 선배는 아쉬워했지만, 공국왕은 나오지 않는 편이 여러 사람의 심장에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며칠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고 행사를 치른 뒤, 대공녀는 우리와 마차를 타고 카를로스 왕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마차를 따라오는 기사의 숫자는 오히려 전보다 줄어 있었다.
배웅이 아니라, 왕국까지 대공녀를 호위할 기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공주와 대공녀가 탄 마차 앞, 마부의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죽기 전에는 자작이 반대해서 못 앉았지만, 이번에는 나를 별로 싫어하지 않게 된 자작이 흔쾌히 허락했다.
나는 마차 안에서 들려오는 여성들의 음성을 들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특이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수도 밖 풍경도 그대로였고, 기사들도, 마차에 붙어 말을 모는 하비에르 선배도 전과 같았다.
선두에 선 기사들이 일행을 이끌었고, 길게 늘어선 마차들을 보고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길을 나아가던 마차 행렬은 어느덧 한가로운 길에 접어들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길은 공국으로 올 때 보았던 대로가 아니었다.
하지만, 모르는 길도 아니었다.
'맙소사,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다고?'
지금 가는 길은 죽기 전 접어들었던 바로 그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