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34화 (134/563)

제134화

제9편 두 번째 외출 (2)

외출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기사들이 옆에서 대공녀와 공주를 지켰고, 변복을 한 기사들이 사람들 사이에 숨어서 그녀들을 호위했다.

하비에르도 공주 옆에서 열심히 주변을 살폈다.

실력도 좋고, 성격도 좋고, 열심이니, 졸업한 뒤에도 성공할 게 분명했다.

다만, 며칠 전에 있었던 소란이 외출에 아예 영향을 안 준 것은 아니었다.

외출 시간도 짧아졌고, 다니기로 한 장소도 반으로 줄었다.

관청가도 건너뛰고, 유명한 명소들도 반 이상 보지 못했다.

하지만, 노점상들이 가득한 상점가는 다시 가게 되었다.

시끄러운 노점상들은 전과 다르지 않았다.

공주와 대공녀가 물건을 구경하는 모습도 그때와 변하지 않았고, 노점상들의 사기도 그대로였다.

"유물이 아니에요. 대전쟁 이후에……."

"이 팔찌도 평범한……."

죽기 전에 들었던 대공녀의 유물 판정은 이번에도 노점상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대공녀는 망가진 유물을 알아보았다.

나는 전처럼 싼값에 물건을 사서 대공녀에게 주었다.

오늘은 최대한 죽기 전과 비슷하게 움직일 생각이었다.

이미 많은 일을 저질렀지만, 왕국 기사들이 국경 수비대에 묶여 있는 것을 보니, 일은 다시 벌어질 모양이었다.

괜히 다르게 움직여 일을 망칠 수는 없었다.

전처럼 괜히 싸게 샀다는 오해도 풀어준 뒤에, 나는 사건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이게 다 뭐야! 완전히 개판이잖아!"

잠시 뒤, 멀리서 시끄럽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기다리던 사람들이었다.

죽기 전에 보았던, 내가 죽였던 용병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내가 벌인 일 때문인가?'

용병 숫자도 전보다 늘었고, 용병들 표정도 그때와 달라 보였다.

죽기 전에 상점가에서 깽판을 쳤을 때와 달리, 지금 용병들의 표정에는 살기 비슷한 것이 흐르고 있었다.

'왜 저렇게 화가 났지?'

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용병들 때문에 무척이나 난감했다.

조금 위험해 보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전처럼 움직이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쓰레기 같은 놈들이! 네놈들 때문에 우리 왕국이 이렇게 고생하는 거야!"

"네놈들이 벌어간 돈들은 전부 우리가 피땀 흘려 번 돈이라는 걸 알고 있냐?"

"이런 놈들은 전부 죽여버려야 해!"

노점상 앞을 지나가며 용병들이 꺼내는 말도 전과 달리 연극처럼 보이지 않았다.

반쯤 살기를 담아 으르렁대는 모습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다 부셔!"

"죽어!"

"전부 박살 내버려!"

거기다, 이어진 폭력은 평범한 난동 수준을 넘어갔다.

전처럼 노점들이 부서지는 것을 넘어, 노점상들도 용병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아악! 살려줘요!"

"아, 아파!"

"으억. 억. 억."

열심히 노점상을 두들겨 패는 용병 중에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리는 사람도 보였다.

나는 그가 작게 중얼거리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젠장, 네놈들을 죽여도 개운치 않을 정도란 말이야! 누가 돌아가신 건지 알아? 같이 일한 게 몇 번인데, 이렇게 죽을 분이 아니란 말이야!"

그제야 나는 왜 저들이 이렇게 화가 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이 용병들과 기사들이 가까웠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노점상에게 행패를 부릴 이유는 없었다.

당연히 이유를 모르는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행패를 이해할 리가 없었다.

"당장 막아요!"

대공녀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공주를 호위하던 기사들이 용병들에게 달려들었다.

전처럼 행패를 막으려는 모습이 아니었다.

칼집에 넣은 채로 검을 휘두르는 기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몇몇 기사들은 칼집에서 검을 뽑아 들고 용병을 상대했다.

전보다 훨씬 싸움이 격렬했다.

부러지고, 피가 튀는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하비에르 선배도 싸움에 끼어들고 싶어서 몸을 떨었지만, 공주를 호위하는 임무를 잊지 않았다.

그는 공주 앞에 서서 싸움을 지켜보았다.

상점가를 난장판으로 만든 싸움이 점점 가까워졌다.

전보다 훨씬 격렬했지만, 싸움은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기사들도 전보다 많이 충원되었지만, 용병들은 더 많이 늘어나 있었다.

큰 차이는 나지 않았지만, 용병들이 승기를 잡은 채로 대공녀 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 조금 뒤에는 공주와 대공녀가 싸움에 휘말릴 거고, 멀리서 지켜보던 비드 기사와 동료들이 나서게 될 것이다.

저번 삶에도 못 하게 막았던 일이었다.

이번에도 막아설 생각이었다.

저번 삶보다 더 확실하게.

하비에르 선배가 지키고 있으니 공주는 걱정이 없었다.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가며, 검을 뽑았다.

검날이 햇빛에 번쩍였다.

"넌 뭐냐!"

노점상을 패던 용병이 다가오는 나를 보고 소리쳤다.

나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검을 휘둘렀다.

츄악!

붉은 피가 하늘로 솟구쳤다.

"크아아악!"

피와 함께 비명이 퍼져나갔다.

용병이 팔을 잡고 바닥을 굴렀다.

놀란 용병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빠르게 움직이며 검을 휘둘렀다.

피가 치솟고, 비명이 상점가를 가득 메웠다.

놀란 용병들이 사방으로 몸을 피했다.

내 주변부터 싸움이 멈췄다, 맞고 있던 노점상들도, 싸우던 기사들도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너무 심한……."

대공녀도 놀라서 나를 말리려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심한 대응이었다.

거리에서 난리를 친 깡패들에게 군인이 총을 쏜 느낌이랄까.

하지만, 이미 서로 죽고 죽인 관계였다.

죽이지 않고, 팔다리를 안 자른 것만으로도 무척이나 관대한 조치였다.

거기다, 피가 솟구치고, 비명으로 난리가 난 것만큼 상처는 크지 않았다.

포션을 먹고, 한두 주 쉬면 대충 나을 상처였다.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심한 상처를 입힐 생각은 없었다. 단지 심한 부상으로 보이게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내 생각대로 다른 사람들은 내가 용병들을 크게 다치게 했다고 생각했다.

공국 기사들도, 노점상들도, 대공녀도, 공주도.

그리고, 멀리서 지켜보던 제국인들도.

내가 검을 휘두르는 것을 보고, 제국인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당장 멈춰라! 사람을 죽일 셈이냐!"

맨 앞에서 덩치 큰 남자, 비드가 내게 불같이 화를 내며 달려들었다.

기다리고 있었던 바였다.

나도 그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앙!

검이 부딪치고 그는 나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젠장! 이런 실력을 갖췄으면서!"

비드의 눈은 전처럼 호승심이 가득 차 있지 않았다.

대신, 그는 동료의 부상에 분노하고 있었다.

이 뒤에 벌어질 일을 알고 있는 나에게는 웃기는 소리일 뿐이었다.

비드가 나와 싸우는 동안, 그의 동료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용병들을 보호했다.

나는 비드와 싸우면서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이래서야 둘이 같은 편이라는 걸 숨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맙소사, 이런 실력이라니, 공주와 대공녀를 노리는 건가!"

거기다, 말로는 대공녀를 노린 범행으로 몰아갔다.

그의 동료들은 내 말에 난감해했다.

"아니, 우리는 대공녀님을 지켜드리려고……."

그들 가운데에는 어떻게 하든지 일을 원래대로 돌리려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꺼낸 말은 지금 상황에서는 더 큰 문제를 만들어버렸다.

말을 꺼낸 남자도 급하게 입을 막았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 중에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일이 엉망이 되어버렸지만, 비드는 그런 상황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내가 처음부터 최선을 다해 그를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능력은 봉해 놓았고, 내 무기와 다른 유물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나는 온전한 내 능력을 펼치고 있었다.

당연히 비드도 최선을 다해야 했다.

그도 불을 뿜는 능력을 펼치지 못하고 있었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기 위해 검술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물론, 전처럼 내가 밀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미리 대비하고 있었던 만큼,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비등하게 싸우던 중에,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모두 싸움을 멈춰라!"

그들이 왔을 때 싸우고 있는 사람은 나와 비드밖에 없었다.

나는 검을 멈추었다. 비드는 내가 검을 멈추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는 무척이나 아쉬워 보였다.

동료에 부상에 흥분했던 남자가 저렇게 금방 싸움에 빠지다니.

저 정도면 정말 싸움에 중독됐다고 말해도 될 것 같았다.

다친 용병들의 상처를 살펴본 대공녀는 상처가 크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압송하세요. 왕국인인 것처럼 속이고 우리 공국인들을 다치게 한 자들이에요. 철저히 조사하세요!"

소극적으로 대응하던 전과 달랐다.

그녀는 병사들을 직접 지휘해서 다친 노점상들과 행인들을 치료소로 보내고, 부서진 거리도 정리했다.

전처럼 고민에 잠긴 모습이 아니었다.

뭔가 단단하게 결심한 모습이었다.

'더 잘된 거겠지?'

대공녀의 달라진 모습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나는 병사들에게 끌려가는 비드를 잠시 멈춰 세웠다.

그는 나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제야 내 모습을 제대로 본 모양이었다.

"맙소사, 네 나이가……. 말도 안 돼, 그 나이에 그런 실력이라니……."

나를 보고 무척 놀란 것 같지만, 아직 나는 놀라게 할 게 남아있었다.

나는 검을 들어 슬쩍 그에게 보여주었다.

검 끝이 일렁거렸다.

비드의 눈이 커졌다.

눈이 커진 비드에게 작게 속삭였다.

"다음에 제대로 붙어 보자고."

내 말에 그는 입맛을 다셨다.

지금 저 남자는 당장 내가 불러내면 바로 따라올 것 같았다.

나는 그걸 위해 내 능력도 보여준 것이었고.

비드와 용병들이 병사들에게 끌려가고 거리가 어느 정도 정리된 뒤,

공주가 옆에 와서 말을 꺼냈다.

"이번에도 갑자기 검을 휘둘러서 깜짝 놀랐어요."

공주가 놀랄 만했다. 공주만이 아니라 다들 깜짝 놀랐으니.

"알렉스 공자님에게는 다 생각이 있겠지만, 미리미리 알려주면 놀랄 일이 줄어들 거로 생각해요."

확실히 공주의 말대로였다. 죽은 뒤에는 설명 없이 혼자 뛰어다니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다. 그때가 되면 다 마무리되어서 많은 설명이 필요 없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외출이 다시 마무리되었다.

외출이 끝나고 하비에르 선배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발레아는 나를 보는 눈이 더 반짝였고, 뭔가를 결심한 것 같은 대공녀는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외출이 끝났지만,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들 왕궁으로 돌아간 뒤에, 나는 국경 수비대에 복귀하지 않고, 행정부로 향했다.

그곳에서 벤자민 선배를 만난 뒤에 이번에는 임시로 죄수들을 가두는 구치소로 향했다.

구치소는 북쪽 검문대와 가까운 성벽에 붙어있었다.

평범한 감옥처럼 보이긴 했지만, 이곳도 지금은 밀수업자들을 임시로 가두는 데 쓰이는 곳일 뿐이었다.

몇 시간 뒤, 나는 감옥 밖을 나서는 남자를 보았다.

벤자민 선배가 알려준 대로였다.

전보다 일이 커졌지만, 풀려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다만, 나와 싸운 남자는 그 실력 때문에 따로 가두었고, 나는 벤자민 선배에게 그가 풀려나는 시간과 장소를 들을 수 있었다.

남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남자가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검을 들어 올렸고,

"다시 붙기는 조금 빠른가요?"

비드는 일렁이는 내 검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아니, 당장 붙어보자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