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22화 (122/563)

제122화

제22편 접견

죽지 않고도 만들어진 세 번째 저장 시점.

이번의 저장 시점은 나도 예상할 수 있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저장 시점을 보며 어느 정도 감을 잡았고, 이번에는 결국, 저장 시점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물론, 100% 확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 맞춘 덕분에 앞으로는 언제 나타나게 될지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멀리 떨어진 새로운 지역으로 내가 이동하는 것이 첫 번째 원인이었고, 동시에 저장 시점이 만들어지는 곳은 큰 사건이 벌어질 만한 곳이어야 했다.

그리고, 되돌아보면 큰 사건이 벌어졌다.

누가 저장 시점을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미래에 벌어질 일도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기에 미래를 알지 못하는 나는 저장 시점을 100% 맞추기는 불가능했다.

그래도 신기하게도 이제는 어느 정도 감이 오는 것 같았다.

'잠깐! 그럼 저장 시점이 만들어졌다는 말은 이 공국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진다는 이야기잖아!'

매번 적어도 한번은 죽기까지 했고.

'설마, 이번에도 죽는 것은 아니겠지?'

뭔가 기분 나쁜 결론이 나와버린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공국으로 넘어온 뒤로는 나도 다시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다른 나라의 왕족이 방문한 것이니만큼 예의를 갖춰야 했기 때문이었다.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나요? 밖의 경치가 왕국하고 다르지 않아서 그런 건가요?"

내 앞에 앉아 있던 발레아는 내 표정을 보고 창밖을 내다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를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발레아는 내가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다만, 왜 안 좋은지는 그녀가 알 수 없었다.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은 둘째치고, 그녀 말대로 마차 옆으로 지나가는 공국의 풍경은 왕국 북쪽의 다른 영지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높아진 산맥과 넓은 벌판.

북쪽으로 올라와서 그런지 산들이 좀 더 높고, 조금 더 서늘해지기는 했지만, 다른 영지들처럼 풍요로워 보였다.

자연만이 아니었다.

중간에 들리게 된 마을도, 왕국의 마을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공국이 된 지 그리 오래된 것도 아니니까요. 공국이 된 뒤에도 국경이 꽉 막혀있는 것도 아니고."

발레아의 말처럼 공국으로 넘어올 때, 우리가 탄 마차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검문소 비슷한 것은 있었지만, 병사들은 오가는 마차를 멈춰 세우지 않았다.

우리가 지나갈 때는 오히려 바짝 긴장해서 경례를 붙이고 있었고.

"멈추지 않는다면, 공국과는 무관세인가. 그렇게 되면 왕국 쪽은 손해일 텐데."

제국 쪽 관세는 공국이 받을 테고, 왕국이 따로 관세를 먹이지 않는다면 공국만 이익을 보는 구조였다.

"처음 공국을 세울 때 그렇게 정했대요. 따로 세금을 내게 되면 공국으로 다닐 이유가 없게 되잖아요."

공주가 옆에서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역시, 공주는 아는 것도 많고, 똑똑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왕국 쪽에는 엄청나게 손해를 보는 내용이었다.

공국을 세울 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협상 내용을 듣다 보면, 죄다 공국에 퍼주는 호구 같은 결과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숲과 산맥을 배경으로 한 너른 평야를 지나, 우리는 공국의 수도이자, 화려한 산업 도시인 '철벽 도시', 아이언월에 도착하게 되었다.

"뭔가 이상하게 생긴 도시네요."

발레아가 멀리서 다가오는 도시의 성벽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창밖을 내다봤지만, 도시를 보니, 발레아처럼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처음 본 도시의 성벽은 무척이나 높고 단단해 보였다.

두꺼운 돌과 군데군데 철까지 덧붙여 보강한 성벽은 국경에 있는 요새 도시의 면모를 한껏 보여주고 있었다.

문제는 그 성벽이 군데군데 뻥 뚫려 있다는 점이었다.

왕국 쪽만이 아니라, 뚫린, 아니 허물어진 성벽 사이로 보니, 제국 쪽 성벽도 마찬가지였다.

허물어진 성벽을 보강하지 않아서 뻥 뚫린 것 같지도 않았다.

마치 성벽을 군데군데 허물어서 길을 낸 것처럼 보였다.

"원래 제국을 지키기 위해 만든 요새 도시였는데, 교역을 주로 하다 보니, 성벽이 불편해서 여러 곳을 허물어버렸데요. 그 덕분에 조금 이상한 모습의 도시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다시 또박또박 공주의 설명이 들려왔다.

도시가 가까워지자, 묘한 느낌은 더 심해졌다.

허물어진 성벽 말고도, 도시에 들어가기 위한 검문소 주변도 병사들 대신에 노점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전생에 보았던 시장통처럼 보이는 모습에 나는 추억이 생각날 지경이었다.

다만, 이번 검문소는 그냥 통과하게 두지는 않았다.

국경에서와 달리, 이곳 검문소에서는 확실히 검문했다.

"신고에서 빠뜨린 물건이 있으면 바로 압수라는 것 명심해."

"한두 번 장사하나요. 전부 확인해 보세요."

"그럼 전부 확인해 본다."

"아니, 정말 확인하려고요? 그럴 것까지는 없잖아요. 뒤에 줄이 잔뜩 서 있는데. 하나하나 어떻게 검사하겠다고."

"그럼, 알아서 빠진 거 다시 신고해."

"알았어요. 알았어. 오늘은 왜 이리 까다로워졌대요."

"저기 왕국에서 높으신 분이 오시기도 했고, 며칠 전부터 제국 쪽 분위기도 뭔가 이상한 모양이야.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졌어. 우리도 이럴 때는 전부 정석대로 해야지 뭐."

"쩝, 장사 망했네. 별수 없죠. 당분간은 납작 엎드려야겠네요."

검문소 앞에 멈춰서서 귀를 열고 있자니, 상인과 병사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우리 이야기 말고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려왔지만, 아쉽게도 자세한 이야기는 병사도 상인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는 사이, 말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말들 위에는 기사들이 타고 있었다.

기사들은 우리, 아니 공주가 탄 마차 앞에 멈춰서서 경례를 했다.

"왕궁까지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형식적인 인사였기에, 공주가 따로 나서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마차 옆에서 달리던 기사들은 뒤로 물러섰고, 공국 기사들이 마차 옆에 붙어서 일행을 선도했다.

소란스러운 거리를 지나 한참을 달려가니, 공국의 왕궁에 도착했다.

아름다운 무늬가 가득 그려진 내부 성벽과 삐쭉 솟은 첨탑, 그리고, 화려한 성.

아름다운 공국의 왕궁은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마차는 내부 성벽을 통과한 뒤, 멋진 정원 옆을 지나, 왕궁 정문 앞에 멈춰 섰다.

정문 앞에는 사람들이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저희 훌리안 공국은 아이샤 데 카를로스 공주님을 환영합니다."

집사복을 입은 장년의 남자가 마차에서 내린 공주에게 인사를 했다.

하는 행동으로 보아하니, 이 왕궁의 총집사 역할을 하는 귀족 같았다.

공주는 예법에 맞춰 그의 인사에 답례했고, 집사장은 고용인들에게 우리의 짐을 옮기게 했다.

"피곤하실 테니, 우선 숙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공주님께서는 잠시 뒤에 왕께서 잠깐 시간을 내신다고 하니 알현 준비를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알겠어요.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공주는 먼저 하녀들과 함께 왕궁 안으로 들어갔다.

남은 우리는 짐을 내리는 동안, 왕궁을 구경했다.

다른 마차에서 내린 선배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휘둥그레진 눈으로 왕궁을 구경하고 있었다.

"와, 정말 왕궁에서 지내게 되는 건가?"

"선배 따라오기를 잘한 것 같네요."

"그렇지?"

두 사람은 예의에 어긋날까 봐 다른 사람이 들리지 않게 작게 속삭였지만, 나 말고도 두 사람의 말을 엿들을 사람이 있었다.

어느새 두 사람 옆에 다가간 다니에르 자작이 그들의 기대를 무너뜨려 버렸다.

"죄송하지만, 두 분은 이곳 왕궁에 짐을 푸실 필요가 없습니다."

"네?"

"하비에르 학생은 국경 초소에서 파견 수업이 진행되니, 기사분들과 함께 바로 북쪽 국경 초소로 움직이시면 됩니다."

자작의 말에 하비에르 선배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그리고, 벤자민 학생은 통관 업무를 담당하는 남쪽 통관 건물로 가시면 됩니다. 미리 연락해 두었으니, 맞아 주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벤자민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충격을 받은 하비에르가 급하게 나와 발레아를 가리켰다.

"발레아 양은요?"

"발레아 학생은 왕궁에서 공주님을 도와 파견 수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럼, 알렉스는 저와 같이 가나요?"

발레아에 대해 대답했을 때와 달리, 자작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한껏 지으며 하비에르의 질문에 대답했다.

"음. 솔직히 이해가 안 가지만, 공주님의 지시로 왕궁에 남게 되었습니다."

자작이 마음에 들든, 들지 않든 간에 나는 왕궁에 남게 되었고, 두 선배는 발레아의 눈물 어린 배웅을 뒤로 한 채로 왕궁을 떠났다.

공주를 보호하겠다는 하비에르의 의지는 안타깝게도 아카데미의 커리큘럼을 이길 수 없었다.

"아쉽게도 '파견 수업'을 조정할 수 있는 학생은 공주님을 배경으로 둔 알렉스 공자님밖에 없나 보네요."

"발레아도 남았잖아요."

"저야 공자님이 빽인 걸요."

발레아와 내가 만담을 나누며 숙소를 향하는 동안, 다니에르 자작은 집사장과 함께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공주님이 가셨던 방향과 같은 방향이었다.

자작도 공국에 일하러 온 것이니, 따로 움직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숙소에서 짐을 풀었고, 공주는 따로 공국왕과 만나게 되었다.

* * *

왕국의 대회의실의 문보다 더 커 보이는 문이 열리고, 화려한 방이 눈에 들어왔다.

방 깊은 곳, 높은 단 위에 왕관을 쓴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커다란 체격, 강인한 얼굴, 절로 흘러나오는 카리스마까지.

이 방에 누가 들어오던지, 저 중년 남자가 공국왕임을 부정하기 어려워 보였다.

공주는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중앙까지 걸어간 그녀가 공국왕에게 인사를 했다.

"아이샤입니다.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녀의 인사에 공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와라. 많이 컸구나."

왕은 공주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번이 두 번째 보는 건가. 너는 기억 못 하겠구나. 어렸을 때니."

하지만, 공주는 기억하고 있었다.

공국왕과 처음 사촌을 보게 된 순간도, 처음 본 사촌이 자신의 손을 꼭 잡은 것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기억하고 있다고 지금 말할 상황은 아니었다. 공주는 왕의 말에 고개만 숙였다.

"그래,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을 테니, 어린 너까지 이런 자리에 묶어 둘 필요는 없겠지. 프리다를 만나러 왔다고 들었다. 충분히 만나고 돌아가도록."

서먹한 접견이 끝나고, 공주는 방을 빠져나갔다.

공주가 나간 뒤, 왕은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리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어린아이들에게는 못 할 짓이기는 하지. 그래도 왕족이라면 각오해야 할 일이겠지."

왕이 문을 향해 손짓했다.

방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의 수신호에 대답이 들려왔다.

"다니에르 자작입니다."

말과 함께 문이 열리고, 자작이 안으로 들어왔다.

자작은 고개를 숙이고, 왕의 앞까지 걸어가서, 깊게 고개를 숙였다.

왕이 가까이 다가온 자작을 재미있게 바라보았다.

왕은 거두절미하고 바로 자작에게 물었다.

"그래, 두아르도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네, 제2 왕자님의 밀명을 받아왔습니다."

갑작스러운 말이었지만 자작은 바로 그의 말에 대답했다.

"좋아. 한 번 들어보지. 첫째 놈보다는 낫군. 그놈은 여태 연락도 안 하던데."

왕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자작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제1 왕자보다 한걸음 일찍 도착한 것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좋은 결과를 가져갈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자작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눈앞의 공국왕은 오래전 형을 밀어내고 왕국을 먹어 치우려 한 사람이었다.

공국왕의 아버지인 선왕이 겨우 무마시킨 덕분에 겨우 좋게 끝이 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욕심이 남아있을지도 몰랐다.

조심스럽게 한 걸음씩 다가가, 제2 왕자께서 원하시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했다.

그렇게 자작은 공국왕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참 뒤에 자작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방을 나섰고, 방에 남은 공국왕은 닫힌 문을 보며 묘한 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다시 다시 신호를 보냈다.

아직 접견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방문이 열리고, 문밖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제국의 칙사입니다."

왕은 늘어졌던 자세를 바로 했다.

여태까지와는 달리, 이번에는 무척이나 중요한 접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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