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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21화 (121/563)

제121화

제21편 공국으로 (2)

물론, 공주를 데리고 공국으로 가는 파견 수업은 다른 파견 수업과는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어쨌거나 승계 서열 3위인 왕족을 데리고 공국을 방문하는 일이었기에 일행을 통솔하는 사람도 평범한 하급 귀족이나 서기관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니에르 자작이라니.

제2 왕자의 심복에다가, 수도 귀족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귀족이니, 이번 파견 수업의 인솔자가 충분히 될만한 사람이긴 했다.

하지만, 제2 왕자가 심복인 그를 공국까지 보내버린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왕은 아직 죽지 않았다.

몸이 무척 안 좋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는 진단까지 받았지만, 아직은 살아 있었다.

왕이 살아있으니, 지금은 제1 왕자와 제2 왕자 모두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물밑에서 싸워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책사이자, 지저분한 일을 담당하는 다니에르 자작은 제2 왕자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을 공국으로 보낸다니, 적어도 한 달은 자리를 비울 텐데, 괜찮은 건가?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나는 단지 귀찮은 사람과 같이 움직이게 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을 뿐이었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공주도 그리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고,

"공주님을 모시게 되어서 무한한 영광입니다. 제가 인솔자이긴 하지만, 저는 공국과 행정적인 일을 보기 위해 파견 수업을 핑계로 같이 가는 것일 뿐입니다. 파견 수업은 공주님의 원대로 하시면 됩니다."

역시, 혀에 기름을 바른 듯한 그의 말은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공주에게 최대한 편의를 봐주겠다는 말에 공주는 감사를 표했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형식적인 감사일 뿐이었다.

자작은 전혀 개의치 않았고, 사람들을 인솔해 출발 준비를 끝냈다.

확실히 일 처리는 잘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전에 만났을 때보다는 조금 더 날카로워 보였다.

그는 마차를 타는 나를 알아보고, 눈살을 찌푸렸고, 내 귀에 대고 다시 협박했다.

"나대지 말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요."

공주와 같이 파견 수업을 하게 된 것 때문인지, 같은 파견 수업 조원이어서 공주와 같이 마차를 타게 되어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내가 그에 눈에 띈 것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문제는 그가 이번에 말을 꺼낸 장소가 시끄러운 무도회장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나에게 작게 속삭인 말이었지만, 내 귀에 대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공주님의 호위니까요."

오히려 나는 큰소리로 그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

쉽게 댈 수 있는 핑계가 있는데 협박에 굴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내 대답에 자작만 궁색하게 될 테니.

예상대로,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신의 마차로 향했다.

"자작이 뭐라 했는데요?"

"그냥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 보네요."

"정말, 평범하게 사촌을 보러 가기도 쉽지 않네요."

먼저 마차에 올랐던 공주가 작게 투덜거렸다.

카트린과 같이 있을 때나, 다른 사람이 없을 때는 공주는 훨씬 편하게 말을 하곤 했다.

지금처럼 작게 투덜거리기도 하고,

이번 여행에는 카트린이 없으니, 더 나에게 의지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파견 수업이라고 하지만, 반쯤 공식 행사에 가까웠다. 원래 교사가 같이 가는 행사가 아니었으니, 카트린이 같이 가기는 어려웠다.

아니, 내가 같이 가지 않았으면 억지로라도 카트린이 같이 갔겠지만, 내가 참가하게 되니, 그녀는 무리하게 참가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보다 신뢰를 얻게 된 걸까.

내 뒤로, 발레아와 공주의 하녀가 마차에 올랐다.

두 상급생은 자작과 함께 다른 마차에 타게 되었다.

결국, 이 마차에 타는 남자는 나밖에 없었다.

설마, 남작은 내가 부러웠던 게 아니었을까.

머릿속에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는 동안, 내 귀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습관적으로 마나를 이용해서 주위의 소리를 들으려고 하고 있었기에, 듣게 된 대화였다.

"왜, 자작님이 가시게 된 거야? 다들 피곤하게 말이야."

"제2 왕자님의 지시라던데?"

학생들과 자작이 모두 마차에 탄 뒤에, 서기관들이 마차밖에서 작은 목소리로 뒷말을 하고 있었다.

"왕자님이 따로 밀명이라도 내린 건가?"

"그런 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다른 소문도 있어."

"무슨 소문?"

"이번에 자작님이 왕자님에게 찍혔다는 소문이 있어."

"엥? 입속의 혀처럼 굴던 사람이었잖아. 그런 사람이 왕자님께 찍혀?"

"왕자님이 원하시던 물건이 있었는데 못 구했나 봐. 그 와중에 뭔가 잘못되었는지, 왕자님이 화가 많이 나셨고. 그래서 정신을 차리라고 밖으로 내돌리신 모양이야."

아. 설마. 나 때문이었어?

내가 반지를 뺏고, 암살자까지 죽여서 자작이 이리로 보내졌다는 건가?

물론, 소문일 뿐이겠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자작의 신경이 날카로운 게 이해가 됐다.

다만, 자작이 왕자에게 찍혀버렸다고, 내 불편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같이 가는 것은 그대로였고,

어차피 서기관들 말대로 왕자가 그에게 따로 지시한 것도 있었을 테니, 그가 제대로 일을 처리하면 제자리로 돌아가게 될 것이었다.

그렇다면, 제대로 일 처리를 못 하면 제자리로 못 돌아가는 건가?

갑자기 기분이 괜찮아졌다.

암살자 때문에 기겁한 기억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왕자의 심복이라 반쯤 포기했었는데, 생각해보니, 이번 기회에 빚을 갚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건 공국을 다녀오는 길은 평탄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것은 자작 때문일 수도, 나 때문일 수도 있었다.

* * *

준비가 끝나고 마차가 출발했다.

공주가 탄 마차와 자작과 상급생들이 탄 마차, 서기관들이 탄 마차와 하녀들이 탄 마차. 거기다 물건들이 실려있는 마차까지.

파견 수업은 결국, 기사들까지 호위하는 대규모 행렬이 되어버렸다.

"더는 파견 수업이라고 부르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죄송합니다. 저 때문이에요."

"아니에요. 공주님이 사과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는 기쁘기만 한걸요. 제가 언제 이런 호위를 받으며 공국에 가보겠어요. 전부 공주님 덕분이에요."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자꾸, 그러시면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가면이 서로 맞부딪치고 있었다.

어른인 척하는 어린아이와 애교를 부리는 사이코패스가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내 팔에 소름을 돋게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던 것 같았다.

공주 옆에 있던 하녀는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기쁘게 바라보고 있었다.

"많이 친하신가 봐요. 친구를 사귀시게 되어서 다행이에요."

하녀의 말에 나는 몸서리를 쳤다.

하기야, 발레아가 친구가 많기는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공주와 발레아가 친해 보이기도 하고.

생각해 보니까, 아카데미에서 공주와 제일 이야기를 많이 나눈 여학생이 발레아였나?

나는 어느새 공주와 절친이 되어버린 발레아를 보며 나지막이 혀를 찼다.

수도를 빠져나온 마차는 잘 정리된 돌길을 계속 달렸다.

다른 지방과 달리, 공국으로 향하는 길은 돌과 잡석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이렇게 포장된 길이 나 있는 이유는 바로 공국의 수도이자, 제국과의 국경 도시 때문이었다.

그 도시는 제국과 왕국이 세워진 이후, 제국과 왕국이 국경을 통해 교역하던 곳이 도시로 성장하게 되었고, 어느덧 왕국 제일의 상업 도시가 되었다.

공국으로 분리되기 전에는 수도보다 더 많은 세금이 걷힌다는 소문도 돌 정도로 대단한 도시였고,

공국으로 분리된 지금도 왕국과 제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의 교역으로 엄청난 부를 쌓고 있었다.

지금의 왕이 보위에 올랐을 때, 잘난 동생의 반란을 막기 위해 영지로 주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단한 곳이었고, 공국으로 독립한 뒤에는 왕국이 한동안 경제적으로 어려웠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그런 공국으로 가는 길이었으니, 이렇게 포장되고 관리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공국까지 가는 동안 많은 마차가 오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왕족의 문양이 그려진 마차였던 만큼, 다른 마차들은 멈춰서서 마차에 예의를 표했다.

마차에서 나와 인사를 하고 싶어 하는 귀족들도 보였지만, 공국으로 가는 길이 멀었기에 마차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공국으로 가는 동안, 나는 대부분 마차 앞, 마부 옆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공주는 마차 안에 있었으면 했지만, 주변의 눈 때문이라도 계속 있기는 쉽지 않았다.

대신, 기사들이나 서기관들과 안면이라도 익히려 했지만, 공국까지 가는 동안에 그들과 몇 마디 대화를 나누기도 힘들었다.

내가 서자여서인지, 아니면 공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자작이 훼방을 놓은 건지 모르겠지만, 공국까지 가는 동안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은 실패했다.

공국까지 가는 길은, 도로뿐만 아니라, 역참과 마을도 잘 준비되어 있었다.

덕분에 노숙도 하지 않고, 말도 중간에 바꿀 수 있어서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기사들과도 서기관들과도 친해지지 못했지만, 그래도 친해진 사람이 있었다.

나처럼 심심해진 3학년 하비에르 선배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게 된 것이었다.

그는 전에도 보았던 것처럼 꽤 개방적인 사람이었다.

내가 서자인 것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오히려 '실전 수업' 때 보았던 내 실력에 감탄해서 나와 친해지려 했다.

그와 여러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열혈 기사인 그와의 대화는 결국 군사 쪽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여기처럼 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으면 기사단의 진격은 물론이고, 보급에도 무척 유리하잖아. 왕국 전역에 이런 도로를 깔아야 해."

내가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고, 나라 발전에도 좋은 이야기였지만, 좋은 계획에는 항상 약점이 있었다.

"공국과 전쟁이라도 난다면 이 도로가 문제가 되겠네요."

내가 편해지면 공격해오는 적도 편해지는 법이었다.

하지만, 하비에르 선배는 내 말에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뭐, 그럴 일이 있지도 않겠지만, 그렇게 되면 공국으로 쳐들어가기도 편해지지 않겠어?"

공국의 왕국 산하의 국가라는 것은 둘째치고, 국력의 차이가 심하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확실히 공국은 그레시아 공작령과 비교해도 영토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 작은 공국이니, 왕국을 쳐들어오기는 어려워 보였다.

다만,

'제국이 공국을 통해서 공격해오면 막을 수 있나?'

물론, 공국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쳐들어와도 막기는 쉽지 않아 보였지만, 공국으로 오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하지만, 마지막 말은 선배에게 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괜한 걱정이었고, 왕국 군이나 왕실 기사단에 갈 생각이 없었던 나에게는 쓸모없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렇게 한가로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일행은 공국과의 국경을 넘게 되었다.

나는 국경을 넘기 전, 긴장한 채로 허공을 지켜보았다.

두 번이나 같은 일이 있었다. 분명 이번에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잠시 뒤, 국경을 넘는 순간.

<훌리안 공국에 도착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이 설정되었습니다.>

내 예상대로 새로운 저장 시점이 만들어졌다.

* * *

우리가 국경을 넘은 뒤, 제국의 수도에 있는 한 저택에서는 무척이나 급한 결정이 내려졌다.

"몇 개월 전부터 카를로스 왕국 전체가 안 보이더니, 조금 전부터는 훌리안 공국도 안보이기 시작했어요."

예언자의 급한 보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언자의 말을 듣고, 책이 가득한 방 안에서 남자가 바로 명령을 내렸다.

"공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계획은 모두 최대한 빠르게 마무리하도록. 소란이 생기던, 수많은 사람이 죽건 상관없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닥쳐오기 전에 최대한 일을 끝내 놓아야 해!"

내가 저장 시점을 보며 고민하는 그 시간, 여러 마리 전서구가 공국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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