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7화
제17편 경매장 (2)
진행자는 물론, 경매장 손님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결국 물건은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단돈. 100골드에.
아직, 확실히 목걸이에 쓸 수 있는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가능성만으로도 충분히 지를만했다.
확실히 돈이 많으니까, 이럴 때 부담이 없었다.
앞으로도 돈 벌 일이 생기면 최대한 모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 때문에 일어난 작은 소란은 다음 경매가 진행되자 금방 잊혔다.
뒤로 갈수록 쓸만한 유물들이 나왔다.
절삭력을 올려주는 검에, 능력 사용을 도와주는 반지. 시간을 알려주는 오르골까지.
경매에 나오는 유물들을 보며 나는 유물들을 만들어낸 고대 제국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서재에서 읽은 내용과 영지의 서기관에게서 들었을 때는 대전쟁 전 이 대륙을 지배했던 고대 제국은 전생의 중세 유럽 같은 곳인 줄 알았었다.
조금 힘이 강한 기사들이 농도를 때려잡고, 마술사라 불리는 사이비들이 귀족들을 현혹하는.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숨겨진 일들을 알게 되니, 고대 제국이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대 제국 때 만들어진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 거기다 유물들은 하나같이 특이한 능력을 품고 있었다.
거기다, 영웅, 아니 용사 관리용으로 만들어졌다는 에고까지.
지금은 이런 유물들을 만들기 어려워하는 것을 보면 차라리 고대 제국 때가 더 발전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럼 왜 대전쟁 이후로 고대 제국의 역사가 지워진 걸까?'
대전쟁 때문에 지워졌다고 보기에는 남은 유물과 유적이 적지 않았다.
누군가 고의로 지웠다는 걸까? 하지만, 한 나라도 아니고, 대륙 전체의 역사에서 다 사라지다니.
누군가 지웠다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큰 일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는 사이에, 경매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무대에서 내려갔던 진행자는 반지 하나를 들고 다시 무대로 올라왔다.
"고객 여러분께서 여태껏 기다리던 유물을 공개할 시간이 왔습니다."
여성 진행자가 신이 나서 마지막 유물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유물은 작은 반지였다.
"이 반지에는 많은 내력이 있지만, 여러분이 원하는 것은 그런 내력이 아니라는 것을 저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유물들은 열심히 내력을 떠벌려놓고, 지금 와서는 딴소리를 하는 진행자였다.
"이 반지는 마나를 주입하면 30분 동안 반지의 주인 주변에 원형의 방어막을 만들어줍니다."
말을 하면서 그녀는 손가락에 반지를 끼었다. 곧이어 반지가 반짝 빛이 나더니, 그녀 주변에 희미한 막이 펼쳐졌다.
"지금 보고 계시는 이 방어막은 1회 한정으로 방어막 외부의 공격을 막아줍니다. 화살이나 마나가 담긴 검, 마물의 강한 공격까지 전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방어막이 공격을 막아내는 시연을 하는 대신에 펼쳐진 방어막을 사라지게 했다.
"제가 방어막을 오래 펼치거나 공격을 막는 시범을 보여드리면 좋겠지만, 구매한 분께서 작동이 안 된다고 화를 내실 수도 있어요. 시범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녀는 관객들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 감았다. 확실히 경매장 진행은 무척이나 잘하는 여자였다.
"하루에 한 번밖에 방어막을 만들지 못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시간제한이 있는 방어막 능력자를 데리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약점을 살짝 알린 뒤에 더 큰 장점으로 약점을 확 덮어 버렸다.
"자,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가는 300골드부터!"
마지막 물건이라서 그런지 시작 가격이 엄청 높았다.
확실히 경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유물다웠다.
다른 유물들과 마나 활용 측면으로는 대단한 차이가 있지는 않았지만, 이 마지막 유물은 방어막을 만드는 반지라는 점에 큰 차이가 있었다.
남을 공격하는 무기가 좋은 것도 나쁘지 않고, 전장에서 목숨을 부지해주는 좋은 갑옷을 가지는 것도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갑옷처럼 눈에 드러나지 않는 반지 같은 유물은 전장뿐만 아니라 어디서도 사용이 가능했다.
길에서나, 회의장에서나, 자신의 집 안에서도.
특히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귀족들에게는 정말 꼭 필요한 유물이었다.
제2 왕자가 탐을 내는 게 당연해 보일 정도였다.
'물론, 이 유물 말고도 비슷한 물건이 더 있겠지.'
귀족. 왕족의 욕심이란 그런 걸 테니.
그리고, 나는 그 욕심에 딴지를 걸 생각이다.
솔직히 많이 욕심나는 유물은 아니었다. 가지면 좋을 것 같지만, 내 대검이나 단검, 주머니를 봤을 때처럼 꼭 가지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리고, 꼭 가져야 할 이유도 없었고.
기사로서 성장하는 나에게는 저 반지가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30분 정도 방어막을 펼치는 동안, 한 번의 공격을 막아준다는 이야기는, 공격 한 번에 방어막이 깨져버린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신체 능력이 좋지 않은 다른 상속능력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나는 방어막 대신에 칼질 한 번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아니면 피할 수도 있고.
거기다,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니, 전장에서 기사들에게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유물이었다.
'미리 방어막을 친 뒤에 날아오는 기습을 막는 데는 어느 정도 건 쓸모 있어 보이기는 하는데.'
하지만, 딱 그 정도 쓰임새밖에 없었다.
정말, 귀족이나 왕족들의 자기 보호 용이었다.
경매가 시작되었지만, 고객들의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300골드! 구매하실 분 없으십니까?"
진행자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재차 소리쳤다.
그때, 2층 VIP석에서 손이 올라왔다.
"300골드."
"300골드 나왔습니다!"
진행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손을 든 VIP는 입꼬리를 삐뚜름히 올리고 있었다.
대단하긴 대단했다.
무도회장에서 다른 귀족에게 전달한 말이 경매장에서 이렇게 효력을 발휘할 줄 생각도 못 했다.
여기 있는 고객들이 전부 제2 왕자 쪽 귀족들일 리도 없을 텐데.
'서로 싸우고 있지만, 밖에서 보면 결국 한통속이라는 걸까.'
하지만, 여기 한통속이 아닌 사람이 있었다.
"300골드 더 없습니까?"
간절히 외치는 진행자의 말에 내가 번쩍 손을 들었다.
"400골드."
모두가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전과 같은 놀란 얼굴들이었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달랐다.
건너편에 앉아 있는 VIP, 다니에르 자작님도 나를 노려봤다.
무도회 때는 자작의 시선에 고개를 숙여야 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나는 그를 향해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400골드 나왔습니다! 400골드!"
"500."
자작이 다시 손을 들었다.
"500골드 나왔……."
"600골드."
진행자의 말이 끝나기 전에 나도 다시 손을 들었다.
내가 가지지 못해도 상관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물건도 얻게 되었고, 이번에는 최대한 물이나 먹일 생각이었다.
그렇게 몇 차례 자작과 나는 손을 들었고,
경매금액은 수직으로 치솟았다.
"1,000골드 나왔습니다! 1,000골드입니다!"
자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얼굴을 반도 가리지 못하는 가면을 쓰고 온 탓에 나는 자작의 표정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자작의 표정을 보니 꽤 통쾌했지만, 슬슬 나도 졸리기 시작했다.
1,000골드면 절대, 적은 돈이 아니었다.
적은 돈이라니, 수도에다가 큼지막한 집을 지을 수 있는 돈이 적은 돈일 리가.
한껏 벌은 덕분에 배포가 무지막지하게 커졌지만, 남은 돈이 줄어드니, 다시 배포가 쪼그라들었다.
지금 수도에 저택을 살만한 큰돈을 가지고 있지만, 제2 왕자를 뒤에 둔 자작과 돈 싸움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한껏 물을 먹였으니, 이제 슬슬 물러설 때가 된 것이다.
"1,100골드!"
나는 마지막으로 레이스를 걸었다.
자, 콜을 걸어라! 나는 빠지련다.
네 일그러진 얼굴을 보았으니, 이제 충분하다.
나는 다리를 꼬며 자작을 쳐다보았다.
자작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오케이, 빨리 들어!
나는 자작을 속으로 힘껏 응원했고, 자작의 손은 거의 다 올라갔다.
하지만, 자작의 입은 열리지 않았다.
그는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더니, 다시 팔을 내렸다.
자작이 팔을 내리자, 고객들도 놀라고, 진행자도 놀라고, 나도 깜짝 놀랐다.
'아니, 손은 왜 내리는데.'
유물을 가져가지 못하면 제2 왕자한테 혼나는 거 아니었나?
이걸 나한테 던지면 어떻게 해!
나쁜 유물은 아니지만, 너무 비싸잖아!
비싸게 값을 올린 게 나였고, 솔직히 그리 많이 올라간 것도 아니었지만,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결정되었습니다. 1,100골드에 낙찰되었습니다."
결국, 방어막 반지는 1,100골드를 부른 나에게 오게 되었다.
경매가 끝난 뒤, 나는 덩치의 안내를 따라, 저택의 안쪽 방으로 향했다.
방 안에는 '신검 추적자', 경매장 주인이 앉아 있었다.
"큰일을 치셨더군요."
방에 들어가기 전부터 그는 내가 유물을 판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면을 썼다고 내게 VIP 입장권을 준 그가, 나를 몰라볼 리 없었다.
"저희로서는 감사한 일이지만, 괜찮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저쪽 VIP가 누구인지 아시나 봅니다."
"하하. 대충 아는 정도죠."
대충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내 정보도 파보려나?
"저도 대충 아시겠군요."
"그럴 리가요. 불새 사냥꾼이 뒤에 계시는데 그럴 수는 없죠. 저희가 여태 이곳에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전부 모르는 척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내 말에 마구 손을 저었다. 글쎄 계속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괜찮아 보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일도 모르는 척할 테니, 그건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거기다 바로 이어서 하는 말은 경고처럼 들렸다. 아니, 경고였다.
나는 주머니를 꺼내 그의 앞에 금화를 쏟아부었다.
유물을 팔고 가져간 금화의 반이 다시 빠져나갔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경매장 주인은 나에게 반지와 보석함을 닮은 목걸이를 건네주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그리 웃고 싶지 않았다.
유물 하나는 잘 구한 것 같았지만, 다른 하나는 홈쇼핑 마감 찬스에 걸려든 느낌이었다.
자기가 만든 함정에 자기가 빠진 꼴이었기에 더욱 한숨이 나왔다.
나는 보석함 비슷한 유물을 주머니에 넣고, 반지를 손에 꼈다.
하루에 한 번밖에 안 되기에 지금 쓸 생각은 없었지만, 아까워서라도 차고 다닐 생각이었다.
거래를 마치고 방을 나서자, 복도에서 내 앞을 막는 사람이 있었다.
다니에르 자작이었다.
그는 내 앞을 막아선 채로 내게 거래를 제안했다.
"당신이 받은 유물을 다시 나에게 파셨으면 합니다."
그의 말에 나는 반색을 했다. 내 앞을 막은 것도 화가 나지 않았다.
내가 산 금액보다 크면 더 좋겠지만, 솔직히 1,000골드도 괜찮았다. 100골드 손해지만, 그 정도는 충분히 참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가 꺼낸 말은 내 생각과 달랐다.
"500골드 드리겠습니다. 제게 넘기시죠."
"네?"
나도 모르게 저런 소리가 나왔다.
"당신은 모르겠지만, 제2 왕자님의 심부름으로 나온 겁니다. 무사히 돌아갈 생각이라면, 그 금액에 유물을 넘기시죠."
황당한 소리에 나는 입을 딱 벌렸다.
이놈은 다단계 옥 장판 용팔이보다 나쁜 놈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