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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14화 (114/563)

제114화

제14편 무도회 (1)

내게 날아온 초대장은 1학년, 왕립 아카데미 신입생을 위한 무도회 초대장이었다.

1학년 상반기를 끝내기 전에 아카데미를 잘 적응한 것을 축하해주는 무도회.

물론, 그런 의미로 시작한 무도회였지만, 지금은 초기의 의미는 퇴색되어서, 결국, 귀족 간에 친분을 쌓기 위한 자리가 되어 버렸다.

1학년을 전부 초대하는 것도 아니었고, 아카데미 후원회에서 정한 학생만 초대하는 무도회였다.

아카데미 후원회라는 것은 왕립 아카데미를 지원하기 위한 왕실과 귀족의 모임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후원회도 결국, 왕족들과 잘나가는 귀족들이 아카데미에 입김을 불어 넣기 위해 만들어놓은 조직이 되어버렸다.

결국, 초대받는 사람은 잘나가는 귀족들의 자제이거나, 써먹기 좋아 보이는 상속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었다.

도무지 왜 내게 이런 초대장이 날아왔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거야 공주 때문이잖아요."

옆자리에서 발레아가 이유를 알려주었다.

나는 교양 수업이 끝났는데도 강의실에 남아서 초대장을 노려보는 중이었다.

학생들은 식당으로 가버렸고, 강의실에는 나와 발레아만 남아 있었다.

다른 때와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학부가 달라서 발레아와 같이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지만, 이렇게 교양 시간만 되면 발레아는 내 옆에 달라붙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사귀냐는 소리를 들었겠지만, 신기하게도 발레아와 나는 그런 소리를 듣지 않았다.

발레아의 처세술 때문인지, 아니면 서자라는 내 위치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우리 두 사람 사이의 애매한 느낌 때문인지.

어쨌거나 다른 학생들은 발레아와 나 사이를 신기해하면서도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내 주위에는 발레아보다 훨씬 눈길을 끄는 사람. 아이샤 공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레아는 계속 말을 이었다.

"실력 자체로 봐서는 초대장이 날아오지 않을 리가 없잖아요. 그레시아 공작의 서자라는 것 때문에 다들 외면한 거지."

신기했다. 다들 조심하는 '서자'라는 말을 쉽게 꺼내고 있는데도, 그녀의 말은 예의가 없게 느껴지지 않았다.

"'현장 학습'하고 '실전 수업'으로 공주님의 호위라는 걸 다들 알게 되었으니, 호위라는 명목으로 충분히 초대할 수 있게 된 거죠."

예의를 차리지 않은 자연스러운 설명 덕분에 이해가 쏙쏙 되었다. 이 설명보다 더 좋은 설명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해서 뭔가 딴지를 걸고 싶어졌다.

"그렇게 따지면, 발레아 영애도 초청장을 받아야 합니다."

내 말에 발레아는 입술을 쑥 내밀었다.

"대단치 않은 능력을 가진 남작 딸을 신경을 쓰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제 실력을 숨겨서 그런 거잖아요."

"쉿!"

내 말에 그녀는 장난을 치듯이 손가락 하나를 내 입술에 댔다.

발레아의 상속능력은 1학년 내에서, 아니 아카데미 전체를 놓고 봐도 순위권에 드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있었다.

시험 때도, 현장 학습과 실전 수업 때도 평범한 식물 변형만 보여주었다.

옆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해도, 자신이 위험해도 본 실력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 같았으면 절대 못 할 일이었다.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내 입술을 막은 발레아가 초청장을 집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제 몫까지 즐겨 주세요. 앞으로 힘든 일이 가득할 텐데, 이런 시간도 있어야죠."

초청장을 쥐어 쥔 뒤에 그녀는 내 귀에 입을 대고는 작게 속삭였다.

"이건 비밀인데요. 저는 나설 수가 없어요. 제가 너무 튀어버리면 저를 찾아오는 사람이 생길지도 몰라요. 저와 계약을 했으니, 그때는 공자님이 지켜 주셔야 해요."

발레아는 이번에도 역시 내가 알아듣기 힘든 말을 했다.

나중에 물어봐도 설명해 주지 않을 테니, 이런 말은 그냥 기억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자신을 지켜달라니. 분명 계약에는 그런 내용은 없었던 것 같은데.

내가 뭔가 말하기 전에 그녀는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녀가 강의실을 나간 뒤, 내 책상의 무늬가 전과 달라져 있었다. 그녀가 능력으로 남긴 글이었다.

"다들 알지 못해도 괜찮아요. 저를 알아주는 건 알렉스 공자님 한 명이면 충분해요."

정말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여자였다. 내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절대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마나가 움직이며 무늬를 흩트렸다.

* * *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초청된 학생 중에 공주도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공주가 포함되는 바람에 무도회에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오게 되었다.

바로, 그녀의 오빠인 제2 왕자가 참여하게 된 것이다.

제2 왕자가 참여하게 되자, 평범한 신입생 무도회가 더는 평범한 무도회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무도회 회장이 바로 바뀌었고, 준비된 음식도, 음악가들도 전부 바뀌었다.

이름 있는 귀족들은 무도회에 참가하려고 했고, 당연히 초청장이 발부된 학생들은 빠질 수 없게 되었다.

참여하게 된 다른 학생들은 제2 왕자가 온다는 소리에 기뻐했지만, 나는 기뻐할 수가 없었다.

"넌 파티복도 없잖아. 어쩔 수 없지. 내 옷이라도 빌려줄까?"

뜬금없이 마누엘이 와서 옷을 빌려주겠다고 말하고,

"하녀들을 시켜서 의상을 맞춰드릴게요. 춤 교습이 필요하면 좋은 선생님을 붙여 드릴게요."

공주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의욕적으로 나를 준비 시키려 했다.

나는 전부 거절했다.

마누엘 말대로 무도회 복장은커녕 제대로 된 파티복 하나 없었지만,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옷은 없지만, 돈은 무척이나 많이 가지고 있었다.

나는 수도에서 제일 좋은 의상실을 찾아서 옷을 맞추었다. 다행히 그곳에서는 내가 누군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들은 왕자가 오는 무도회에 참가한다는 말만 듣고는 최선을 다해 옷을 만들어 주었다.

다행히 무도회 전에 옷이 완성되었다.

무도회 때문에 오랜만에 마누엘과 나는 수도의 저택에 돌아와 있었다.

주문한 옷으로 갈아입고, 어깨에 아카데미 학생을 알려주는 견장을 찬 뒤에 방을 나섰다.

복도를 지나가니 하녀와 다른 고용인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밖으로 나가, 마차를 기다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누엘은 물론이고, 집사도, 다른 고용인들도 몇 번이나 나를 쳐다보았다.

확실히 돈값을 했다.

"그 옷은 설마, 공주님이 빌려주신 거냐?"

마누엘의 질문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알아서 상상해주는데 거기다가 진실을 이야기해 줄 이유가 없었다.

마차를 탄 뒤에도 마누엘은 자꾸 내 옷을 쳐다보았다.

마누엘의 옷도 나쁜 옷은 아니었지만, 돈으로 바른 내 옷에는 비할 수 없었다.

물론, 진짜 부자들과 왕족들이 나선다면 답이 없겠지만, 아카데미 학생 중에는 제일 괜찮아 보일 거라고 의상실 주인이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

원래 아카데미 안에서 할 예정이었던 무도회였지만, 왕자님이 참여하는 바람에 마차는 수도에서 왕궁을 빼고 제일 크다는 저택으로 향했다.

바로 공국왕의 저택이었다.

공국왕이 독립을 하기 전에 쓰던 곳으로, 공국왕의 배려로 각종 행사 때에 사용하고 있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왕국의 수도는 어둡지 않았다.

가로등도 밝았고, 집마다 창으로 밝은 빛을 뿌리고 있었다.

공국왕의 저택은 더 밝았다.

환한 빛에 휩싸인 저택은 그레시아 공작의 본가보다 훨씬 크고 화려했다.

"공국왕의 위세가 장난이 아닌가 보네."

마누엘도 왕자가 참석하는 무도회에 흥분한 것 같았다.

내가 화려한 저택을 보며 꺼낸 말에 그는 아무 딴지도 없이 착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대단하신 분이지. 왕께 피해가 될까 봐 아예 공국으로 영지를 분리하고 왕국에서 손을 떼셨잖아."

다만, 아쉽게도 마누엘의 대답은 현실과 차이가 있었다.

마차는 화려한 건물 앞에 멈추었고, 우리는 마차에서 내려 기다리는 집사에게 초청장을 건네주었다.

집사는 우리 두 사람을 무도회장으로 안내했다.

무도회장이 열리고,

"안드레스 데 그레시아 공작의 자제이신 마누엘 데 그레시아 공자와 알렉스 데 그레시아 공자입니다."

나는 내 이름을 외치는 소리를 들으며 마누엘과 함께 무도회장으로 들어갔다.

무도회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학생들도 대부분 와 있었고, 여러 나이대의 귀족들이 학생들보다 많이 와 있었다.

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귀족이라니. 이래서야 신입생 축하 무도회라고 말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학생들은 나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렇게 제대로 차려입은 게 처음이니 다들 놀라는 게 당연했다.

카트린도 무척 놀란 것 같았고, 브리아도 입을 딱 벌리고 쳐다보았다.

귀족들은 마누엘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자라는 내 위치와 내 의상이 매치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내 모습에 의아해했지만, 귀족들은 우리에게로 다가왔다.

그레시아 공작의 아들. 마누엘이 왔는데 모르는 척을 하기는 어려웠다.

"반갑네. 나는 알렉산드로 자작이네. 공작님과는 꽤 자주 만나본 사이지."

"마누엘입니다.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 그래."

공작을 아는 척하는 귀족의 인사와 마누엘의 평범한 대답이 이어졌다.

귀족들이 많이 몰려온 덕분에 인사는 짧게 이어졌고, 마누엘과 같이 있었기에 나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흠, 자네가……."

의상이 좋아졌다고 해도, 내 위치는 달라지지 않았다.

귀족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로 내 앞에 섰다.

그들은 내 인사에 관심도 없었지만, 마누엘과 다른 내 인사에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손자를 보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자작님을 많이 닮았다고 들었습니다."

"오, 자네도 알고 있었나. 손자가 말이지……."

"카프가 선배 아버님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선배가 남작님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래? 카프가가 내 이야기를 했다고?"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몸도 안 좋으신데 귀한 발걸음을 하셨습니다."

"하하, 어떻게 알았나. 내가 아프다는 건 아는 사람이 몇 없는데."

나는 마누엘과 달리, 그들의 개인적인 사정에 맞춘 제대로 된 인사를 전했다.

모두 경매장 주인이 건네준 정보 덕분이었다.

수도에 사는 귀족들의 뒷소문과 개인적인 이야기들은 지금처럼 안면을 익힐 때 큰 위력을 발휘했다.

마누엘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고, 많은 수는 아니었지만, 나와 인사를 한 귀족들도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렇게 귀족들과 학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을 때, 다시 종소리가 들려왔다.

땡.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는 신호였다.

"정명한 기사이자, 카를로스 기사의 후계자인 그라시오사 데 카를로스 국왕의 둘째 왕자이신 두아르도 데 카를로스 왕자와 막내딸이신 아이샤 데 카를로스 공주가 들어오십니다."

소란스럽던 무도회장이 바로 조용해졌다.

사람들은 자세를 가다듬었고, 이어서 무도회장 문이 열렀다.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왔다.

화려한 옷을 입은 젊은 남자와 어린 소녀. 제2 왕자와 아이샤 공주였다.

왕자는 그린 듯한 미소를 그리며 안으로 들어왔고, 공주도 다른 때와 같은 담담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공주와 내 눈이 마주쳤다.

공주의 눈동자가 커졌고, 아주 잠깐 표정이 바뀌었다.

금방 원래 표정으로 돌아갔지만, 나는 표정이 바뀐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표정이었고,

어린 소녀가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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