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제13편 유물 거래 (3)
나를 막아선 자들은 생각보다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
특히 제일 앞에서 덤벼 오던 덩치는 무척 실력이 괜찮은 용병처럼 보였다.
아직 다 크지 못한 나에게 그가 달려드는 모습은 마치 대형트럭이 소형차를 덮치는 모습 같았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런 자들에게 당하기에는 내 실력이 너무 좋아져 버린 모양이었다.
달려오던 덩치를 메치기로 넘겨버리고, 힘줄 몇 군데를 검으로 잘라내 버리니, 덩치는 바로 무력화되었다.
다른 놈들도 대충 치워버리고, 나는 덩치의 다리를 끌고 다시 조금 전에 나왔던 건물로 걸어갔다.
가는 도중에 안내를 보던 여성을 만나게 되었고, 급하게 달려오던 여성은 내가 덩치를 질질 끌고 오는 것을 보더니 냉큼 나에게 사과를 했다.
일이 꼬였다느니, 개인적인 행동일 뿐이라느니 이리저리 변명했지만, 어차피 내가 돌아가는 도중에 저들에게 강도를 당할 뻔한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틈틈이 정신을 차리려는 덩치를 기절시키며 건물에 도착했다.
나는 덩치를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3층까지 덩치를 끌고 올라가지 않아도 되었다.
들어가 보지 못한 건물 1층 문이 열려 있었다. 그 안에서 내 유물들을 감정해 주던 남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건물 1층은 주점이나 모임을 하기 위한 장소처럼 보였다. 게임에서 보았던 길드 회의실과 닮았다고 할까.
그 안에 남자 혼자 있었다. 주변에 여러 기척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리 신경 쓰이게 하는 기척들은 아니었다.
내가 덩치와 다른 놈들을 제압했다는 소식이 빠르게 전해진 모양이었다.
남자의 얼굴은 꽤 창백해 보였지만, 덩치를 끌고 오는 내 모습에도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급하게 말을 꺼냈다.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이건 듀이가 개인적으로 벌인……."
여자에게 들은 말이 다시 반복될 모양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았다.
"그 안에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 바 아닙니다."
나는 바닥에 엎어져 있는 덩치를 가리켰다.
"그리고, 아예 관계가 없다면 이 남자를 죽여도 됩니까? 그게 아니라면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군요."
내 말에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의절하지 않는 것을 보니 의외로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거기다, 신기하게도 다시 덤벼들려는 생각은 안 하는 것 같았다.
주위를 둘러싼 기척들에서도 나를 죽이겠다는 느낌은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우선, 사과드리겠습니다. 불새 사냥꾼의 소개로 오시게 된 것을 늦게 알았습니다. 미리 알았으면 이런 불상사가 없었겠죠."
말하는 것을 보니, 불새 사냥꾼, 카트린이 누구인지 대충 아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앞에 있는 남자도 귀족이라면 귀족이었고, 카트린도 용병 일을 하면서 얼굴을 가리고 다니지 않았으니, 수도에서라면 그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말을 듣고 보니, 카트린 소개가 아니었으면, 대놓고 강도질을 할 생각이었던 모양이었다.
뭐,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테니, 상관은 없었다.
그래도, 상대가 저자세를 취하고 있으니, 이야기하기는 수월했다.
"상처에서 피도 흐르지 않고……. 생각보다 훨씬 실력이 좋으시군요."
기절한 채로 굴러다니는 덩치를 보며 남자가 감탄했다.
힘줄을 끊으면서 마나로 혈관들을 잘 지져주었으니, 피가 보이지 않는 게 당연했다.
더구나 상처도 크지 않아 제대로 된 포션만 먹으면 멀쩡하게 돌아올 게 분명했다.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괜히 손님이 다치시기라도 했으면 일이 더 복잡했을 겁니다. 불새 사냥꾼에게 선을 대려면 얼마나 뇌물을 바쳐야 했을지……."
그는 귀족들이 버글거리는 수도에서 유물 거래를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하소연을 했지만, 내가 그 하소연을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그의 말을 끊고, 나는 필요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 뇌물을 바치지 않게 되었으니 내게 무얼 주시겠습니다. 손님의 신뢰를 망가뜨린 것과 위해를 가하려 했던 부분을 포함해서요."
"하아, 그건 정말 죄송합니다. 다만 저희는 장사꾼입니다. 솔직히 돈이 더 나가게 되는 것은 그리 원하지 않습니다. 혹시 아까 원하시는 정보가 있으신 것 같던데……."
확실히 눈치가 빠른 남자였다.
"글쎄요. 돈으로 받는 편이 좋긴 한데……. 그래도 먼저 말씀하셨으니, 그 정보라는 것부터 들어보죠."
좀 더 발을 빼고 싶었지만, 이미 눈치를 챈 뒤여서 블러핑을 크게 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열심히 관심이 없는 연기를 하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우선 백 퍼센트 확실한 정보는 아닙니다."
의아하게도 그가 처음 꺼낸 말은 정보의 가치와 신뢰성을 스스로 낮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다 보니, 그가 그렇게 말을 하는 게 당연해 보였다.
"훌리안 공국왕의 가신 중에 유물을 수리할 수 있는 상속 능력을 가진 귀족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나는 그가 꺼낸 말을 듣고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필 공국왕이라니.
다른 나라 소속이 아닌 것은 다행이지만, 공국왕이니.
제1 왕자, 제2 왕자와 관련된 인물이 아닌 것은 좋지만, 하필이면 공국왕이니.
공국왕의 이름을 딴 훌리안 공국은 왕의 동생인 훌리안 공작이 자신의 영지를 왕국과 분리해서 공국으로 승격시킨 곳이었다.
공국으로 승격되어 강력한 자치권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래도 카를로스 왕국에 소속된 공국이었다.
하지만, 유적에서 백작에게 들었던 바로는 공국왕은 제1 왕자, 제2 왕자 이상으로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망가진 유물들이 공국왕 쪽으로 여럿 들어가기도 했고, 그 유물 중에 멀쩡해진 유물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처음 말한 것처럼 그도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무시하기도 어려운 정보였다.
"더구나 가신 중에 누구인지는 더욱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마 공국왕이 열심히 숨기고 있는 거겠죠."
나는 이어진 말에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저 욕심 많은 공국왕의 나라로 가서 공국왕이 숨겨놓은 가신을 찾아내 유물들을 고쳐달라고 해야 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지금도 하드코어한 인생인데. 여기서 더 힘들면 어떻게 하라고.'
나는 답답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며 남자에게 말했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라니, 생각보다 아쉽군요."
"확실하지 않다고 말은 했지만, 그래도 틀리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생각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지금은 우선 정보의 가치를 깎을 때였다.
"거기다 공국왕이 숨기고 있는 가신이라니, 이 정도 정보로는 저울추가 맞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도, 어디 가서도 찾기 힘든 정보입니다."
열심히 내 말에 반박하고 있지만, 그도 어느 정도 내 말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아, 그러면 다음에 오시면 경매에 VIP 초대권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일 좋은 자리에, 경매에 나온 유물의 자세한 정보까지 드리는 자리입니다. 대귀족이나 후원을 많이 한 분들이 아니면 함부로 내주지 않는 초대권입니다."
말만 들어도 좋은 초대권 같았다. 돈도 벌었겠다, 경매장에서 유물도 사보고 싶었으니, 그가 내민 초대권은 저울에 올리기 괜찮은 물건이었다.
다만, 나는 아직 갑질이 부족했다.
"경매로 안 팔고 직접 유물을 판 저입니다. 초대권이 그리 만족스럽지 않네요."
"하지만, 저희도 많이 양보한 겁니다. 돈으로 달라고 하시면 저희도 달리 생각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어라? 자금이 부족한 건가? 생각보다 돈에 대한 집착이 심해 보였다.
"돈은 힘들다고 하시니, 그럼 돈 말고 다른 것으로 하죠."
"돈이 아니면 더 줄 게 없습니다만……. 좋은 유물이 들어오면 먼저 연락드릴 수도 있기는 한데……."
그의 말에 나는 손가락을 두 개 펼쳐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하나 접고,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초대권을 받기로 하고."
다시, 손가락 하나를 더 접었다.
"정보상이나 그 비슷한 것을 하고 있죠? 수도의 정보를 모아주세요. 정보가 괜찮으면 경매장뿐만 아니라 정보상의 VIP가 되도록 하죠."
귀족들에게 줄을 서고, 수도에서 유물 경매장을 하는데, 이 안에서 흐르는 정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제대로 된 정보상을 하지 않더라도, 쓸만한 정보를 구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남자는 나를 빤히 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아예 기둥뿌리를 다 가져가려고 하시는군요."
확실히 그는 내 예상대로 수도의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어차피 돈 드는 것도 아니고, 나만 알고 있다면 손해 보는 일도 아니잖아요."
"돈을 더 벌 기회를 놓치게 되는 거죠."
그의 말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내 알 바는 아니었다.
거래가 끝났으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대장을 받으려면 언제 오면 됩니까."
"일주일 뒤에 오시면 됩니다."
나는 그의 대답을 듣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다음에 만날 때는 뭐라 부르면 될까요?"
"경매장 주인으로 부르셔도 되고, ……'신검 추적자'로 부르셔도 됩니다."
신검 추적자라.
나는 남자를 잠시 살펴보았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거래소 직원으로 알았다가, 상속 능력을 가진 귀족인 걸 알았고, 뒤이어 이 조직의 두목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에게 '신검 추적자'라는 별명을 말해 주었다.
'불새 사냥꾼'처럼 용병용 별명일 게 분명하지만, 무척이나 특이한 이름이었다.
별명 때문인지 묘한 인연을 느끼며 나는 건물을 나섰다.
* * *
손님이 간 뒤 신검 추적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전, 무슨 생각으로 잘 쓰지 않는 별명을 이야기했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뭔가 계속 말리는 느낌이야."
"그럼, 뒤를 좀 파볼까요?"
언제 들어왔는지 여자가 그의 말에 대답했다.
"됐어. 괜히 들켰다가는 본인이 달려들던, 귀족 놈들이 달려들던 일만 커질 거야."
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도 일거리가 왕창 늘었는데, 더 일을 늘릴 이유가 없었다.
"이 녀석이나 데리고 가서 치료해. 다친 놈들이 더 있으면 그놈들도 치료해 놓고. 지금 분위기도 영 이상하니 이상한 놈이 설치는 거야. 다들 몸조심해."
그는 오늘은 문을 닫으라고 소리를 치고는 유물을 옮겨놓은 곳으로 향했다.
사고가 났건, 복잡한 일들이 많건 간에, 그에게는 유물을 보는 게 우선이었다.
대단한 유물들도 아니었고, 용사가 쓰던 신검도 아니었지만, 유물을 살피는 일은 그의 꿈과 목적을 위해서도 멈출 수 없는 일이었다.
* * *
다행히 거래소 주인은 그 뒤로 신용을 지켰다.
일주일 뒤, 나는 그에게서 경매 시간과 위치를 들을 수 있었고, 초대장도 제대로 받았다.
그리고, 꽤 두꺼운 종이철도 받을 수 있었다.
귀족들의 정세와 수도 내부의 분위기가 적힌 종이였다.
중구난방이었지만, 꽤 쓸만한 정보지였다.
나는 시간을 들여 정보지에 적힌 내용을 확인했고,
경매장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다른 것보다, 두둑한 돈이 있으니, 아카데미 수업도, 다른 일들도 기쁘게 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경매가 있기 며칠 전에 날아온 초대장 하나에 밝았던 기분이 우울했다.
날아온 초대장은 파티 초대장, 아니 무도회 초대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