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12화 (112/563)

제112화

제12편 유물 거래 (2)

남자는 쏟아지는 유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각반과 낡은 검. 등처럼 보이는 물건.

작은 주머니 입구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궁금해지는 커다란 투구도 있었고, 투박한 모양의 팔찌와 쇠 막대기도 있었다.

모두 오래되고 낡은 고물처럼 보이는 물건들이었다.

낡은 물건들은 방 가운데 가득 쌓였고, 나는 상대방에게 처리를 부탁했다.

"이게 전부입니다.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이 유물들은 카트린과 함께했던 던전에서 내 몫으로 받은 유물 일부와 봉인지 유적에서 찾은 유물들이었다.

유용하기도 하고 재미있는 유물들도 많았지만, 기숙사에 있는 내게는 짐만 되는 유물들이었다.

유물은 남겨놓은 귀금속처럼 부피가 작지 않았다. 앞으로 뭘 얻게 될지 모르니, 주머니 속을 충분히 비워놓아야 했다.

멍하니 유물을 보던 남자가 내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쌓인 유물 앞에 다가왔다.

그리고, 유물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이건, 소리를 줄이는 부츠군요. 스스로 빛을 내는 허리띠하고, 온도 조절이 가능한 가죽 흉갑……."

그는 유물을 하나하나 옆으로 내려놓으면서 유물의 기능을 이야기했다.

내가 마나를 흘려 넣어서 파악한 기능과 같은 것도 있었고, 내가 잘못 파악하고 있던 유물도 있었다.

그렇게 전부 손으로 확인한 뒤에 그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손수건으로 손을 닦은 후. 나에게 말했다.

"대단한 유물들은 아니지만, 모두 유물이 맞습니다."

나도 상대가 어떤 상속 능력자인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유물에 손을 대면 어떤 유물인지 알게 되는 능력을 지닌 상속 능력자였다.

그제야 나는 상속 능력자가 왜 이런 곳에서 일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재능에 맞는 일을 하고 있었다.

물론, 왕궁의 보물 창고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게 더 좋을 것 같긴 했지만, 어차피 개인 사정이 있을지도 모르니, 더 관심을 둘 이유는 없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전부 경매장에 올리겠습니까? 아니면 바로 파시겠습니까?"

경매장이라. 한번 봐두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한데.

"경매장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죠?"

"상설 경매장은 이곳 2층에 있습니다."

"유물 전부가 그곳에 있다는 건가요?"

"그럴 리가요. 대단한 유물들은 따로 경매일과 장소를 지정해서 경매를 진행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선 바로 팔게 되면 얼마입니까?"

그는 종이를 꺼내 끄적거리다가, 찢어버리고, 다음 장에 금액을 적어서 보여주었다.

숫자가 굉장했다.

대단한 유물이 아니라고 했지만, 숫자가 이 정도 되면 충분히 대단해지는 모양이었다.

수도에 있는 우리 공작가의 저택을 살 수 있는 금액. 이 금액이면 나도 바로 부자였다.

우선 표정을 잘 유지하고.

경매장에 올릴 것인지, 이 금액으로 팔 것인지 다시 한번 고민을 한 뒤에, 결정을 내렸다.

"1할 더 쳐주면 바로 팔겠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대충 따져보니, 최대 2할까지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거기까지 협상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그리고, 경매장에 올리면 충분히 더 받을 수 있겠지만, 나는 이곳을 아직 믿기 어려웠다.

괜히 경매에 올렸다가 떼이기라도 한다면 이리저리 귀찮아질 게 분명했다.

"1할이라……."

내 말에 그는 책상에 펜을 두드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금화로 드리면 되겠습니까?"

나도 금화가 제일 편했다.

"네."

잠시 뒤, 다른 사람이 큰 자루에 금화를 담아 왔다.

"제국 금화입니다. 왕국 금화는 유통하기가 만만치 않아서……."

제국 금화가 금 함유율이 왕국 금화보다는 조금 낮긴 하지만, 크게 차이 나는 것은 아니었다.

자루에 마나를 흘려 넣어보니, 이상한 것이 섞여 있지 않았다.

이쪽 세상은 마나 전도율 덕분에 가짜 금화가 만들어지기 어려웠다.

물론, 일반 시민 중에는 금 함유율을 확 떨어지는 가짜 금화에 속는 일도 있지만,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기사나 귀족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마나를 다룰 수 있군요."

"마나도 못 다루면서 유물을 가져왔을 리가 없죠."

그와 나는 서로 간을 보는 대화를 나누었고,

나는 자루에 담긴 금화를 주머니에 쏟아 넣었다.

"그 유물 주머니는 파실 생각이 없습니까? 경매에 올려놓으면 지금 받으신 금화보다 더 벌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남자는 금화를 가득 담고도 부피가 달라지지 않은 주머니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렇지만, 내가 주머니를 팔 리가 없었다.

주머니를 비우기 위해 유물을 팔고 있는데, 주머니를 팔라니.

유물 가방이라도 어디서 구하게 되면 모를까, 절대 팔 리가 없었다.

나는 주머니에 금화를 담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어봤다.

"아, 맞다. 혹시 문제가 생긴, 아니 고장 난 유물을 고칠 수 있는 장인을 알고 있습니까?"

유물을 거래하고 경매까지 하는 사람들이었다. 혹시, 그런 사람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네? 유물을 수선하는 상속 능력자, 아니, 사람 말인가요? 그런 사람이 있으면 우리가 멀쩡한 물건을 찾아 헤맬 리가 없죠."

남자는 고개를 저었지만, 나는 그의 말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분명 사람이라고 했는데, 남자는 상속 능력자를 이야기했다.

유물을 수리할 수 있는 상속 능력자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지그시 남자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지금 대답을 듣기는 어려워 보였다.

어쨌거나 이들도 유물을 수리하지는 못하는 것 같고.

정보를 얻었으니 오늘은 물러서기로 했다.

* * *

큰 손님이 건물을 나간 뒤, 남자가 있는 방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입구에서 알렉스를 상대하던 여자도, 벽에 기대고 있던 용병들도, 그리고, 소파에서 기다리던 사람들까지.

모두 방에 들어와 남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알렉스의 예상과 달리 알렉스를 상대하던 남자는 이 조직의 두목이었다.

"모두 내보냈어?"

남자의 말에 문 앞에서 안내를 보던 여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바람잡이밖에 없었잖아요. 어차피 차이프리 백작이 실종되는 바람에 파리만 날리고 있었으니까요."

"아니, 백작이나 되는 인간이 봉인지에 기사단 전체를 꼬라박는 게 말이 돼? 덕분에 이번 달은 왕창 적자잖아!"

여성의 말에 남자는 버럭 화를 냈다.

백작이 봉인지에서 기사단을 말아먹은 것 자체는 이들과 아무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그 사건 덕분에 유적 탐사를 하려던 자들이 다들 손을 빼게 되었고, 유물 거래도 확 줄어버리게 되었다.

"그래도 방금 손님 덕분에 이번 달은 흑자로 바뀌었을 텐데요. 엄청나게 큰 손님이었잖아요."

"덕분에 유동 자금이 바닥이 되었지."

"뭐, 바로 경매 한번 돌리면 될 텐데 뭐가 걱정이에요."

여성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남자는 얼굴을 찡그렸다.

"제대로 경매하기에는 미끼 상품이 없잖아. 방금 나간 놈이 가지고 있던 유물 주머니만 있었어도 경매가 북새통일 텐데."

그의 말에 용병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럼, 뺏어오죠. 확인해 봤는데, 혼자서 다녀간 거였어요."

부하의 말에 남자가 슬쩍 손을 저었다.

"에이, 그래도 신용이 있는데."

여자가 그의 손짓에 혀를 찼다.

"무슨 헛소리예요. 언제부터 신용 있는 사람이었다고. 덤비면 안 되는 사람 잘 가리고, 빼앗은 뒤에 들키지 않게 잘 처리해서 이렇게 버티는 거잖아요."

왕국의 수도에서 귀족들에게 줄을 대, 유물 경매장을 운영하는 이들이었지만, 이들은 신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상적인 상인들은 아니었다.

물론, 정상적인 상인이라면 왕국 수도에서 몰래 유물 경매장을 운영할 리도 없었다.

"그럼 어쩐다. 금화가 아깝긴 아까운데……."

남자가 고민하는 얼굴이 되니, 다른 부하가 옆에서 살살 바람을 넣었다.

"유물이 엄청 많았잖습니까. 분명 남들이 모르는 유적을 찾은 게 분명합니다. 유물도 더 있을 겁니다. 아니면 유적에 남아 있는 게 있을 수도 있고요. 바로 납치해서 돈도 찾고, 정보를 더 얻는 게 어떻겠습니까?"

"음, 확실히 유물을 수선하는 사람을 찾았었지. 분명 더 있긴 한 것 같은데. 아, 맞다. 거기서 왜 상속 능력자 이야기를 꺼내 가지고. 설마, 알아차렸으려나."

말을 하다가 실수가 생각나는 바람에 남자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요."

부하의 물음에 그는 쥐어뜯던 머리를 놔두고, 여자에게 물었다.

"지금 뒤를 따르고 있지?"

"네, 근처에 있는 애들하고 같이 덮치라고 할까요?"

여자가 반색하면 말하자, 남자는 다시 머리를 잡았다.

"으…….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꺼림직한데."

"수염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어서 그렇지 완전 애송이였습니다."

"그래서 꺼림직하다는 거야."

그런 애송이가 유물 주머니에 유물을 가득 담아서 혼자 이곳을 찾아온 것이다.

덕분에 욕심이 들솟았지만, 그만큼 꺼림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기는 아쉬운데요."

다른 부하의 말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래, 끙, 어쩔 수 없지, 누구 소개로 왔는지만 확인하고 움직이자."

남자의 말에 여자가 손을 들었다.

"그건 제가 들었어요."

"누구야."

"불새 사냥꾼이라는데요."

여자의 말에 남자가 입을 딱 벌렸다.

그리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염병, 불새 사냥꾼 쪽이었어?"

"불새 사냥꾼이 왜요?"

여자가 의아해하자, 남자는 낙담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전부 멈추고 신경 끊어. 네가 말한 덤비면 안 되는 사람이야."

"도대체 불새 사냥꾼이 누군데 그래요?"

"몰라도 돼. 괜히 나 몰래 움직였다가는 수도가 뒤집히는 꼴을 보게 될 거야."

남자가 계속 물어보는 여자를 향해 으르렁 대자, 여자는 미안한 얼굴로 그에게 사과했다.

"먹이가 괜찮아 보여서 듀이에게 쫓게 했어요."

"뭐? 듀이?"

여자의 말에 남자는 입을 딱 벌렸다.

"맙소사. 듀이라면 머리보다 손이 먼저 나가는 놈이잖아."

"직감이 좋긴 한데, 지금 쫓아간 애는 딱 듀이가 좋아할 먹이 아냐?"

"빨리 돌아오라고 해!"

"네!"

남자의 명령에 여자가 뛰쳐나갔고,

"이미 일을 벌였다에 금화 1개."

"난 늦지 않았다에 1개."

"잡아서 데려오는 중이다에 1개."

"싸우다 죽였다는 없냐?"

다른 부하들은 듀이가 일을 벌였는지를 걸고 내기를 하기 시작했다.

"헛소리 말고 당장 안 나가! 일이 벌어졌으면 수습해야 하잖아!"

남자가 버럭 화를 내자, 부하들은 냉큼 방을 빠져나갔고, 남자는 줄을 댄 귀족들의 연락처를 찾기 시작했다.

직접 불새 사냥꾼, 백작의 딸에게 연결하기는 어려우니, 다른 귀족에게 부탁해야 했다.

* * *

한참 남자가 귀족들의 연락처를 뒤지고 있을 때,

뒷골목을 걸어가던 나는 갑자기 내 앞뒤를 가로막은 사람들을 보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와, 와, 정말 놀라워. 이렇게 그림에 그린 것 같은 클리셰라니."

전생에 보았던 웹소설처럼 일이 진행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이렇게 딱 맞아떨어질 줄 예상도 못 했다.

나를 막아선 덩치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나는 조금 전 유물을 팔았던 곳에서 느꼈던 마나였다.

나는 그에게 친절한 미소를 지어주었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하나 남은 유물, 단검을 꺼내 들었다.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 덕분에 유물을 수선하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

고객을 함부로 대하는 장사꾼은 갑질하는 고객을 얻게 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충분히 갑질을 할 생각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