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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10화 (110/563)

제110화

제10편 구원

마물들에 의해 숲이 출렁거리는 것을 보며, 아이샤는 자신을 숨기기 시작할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날도 현자로 이름 높은 개인 교사에게 칭찬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왕비인 어머니에게 달려갔었다.

복도를 내달려, 어머니의 응접실에 다가갔을 때, 그녀는 하녀들의 모습을 보고 뭔가 이상한 일이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응접실 밖을 지키던 하녀도, 항상 어머니를 보필하던 하녀장도, 모두 응접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서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응접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샤는 하녀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폐하께서 오셨나요?"

하녀장은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국왕의 몸이 안 좋아진 뒤에 어마마마의 처소에도 거의 오시지 않고 있었다.

그럼 누구일까?

하녀장은 왕비의 손님이 누구인지 이야기해 주었다.

"제2 왕자님이 오셨습니다."

"아, 둘째 오라버니가 오셨어요?"

그녀는 제2 왕자가 왔다는 소리에 바로 응접실 쪽으로 달려갔다.

왕세자인 첫째 오라버니는 무서운 분이라서 대하기 어려웠지만, 둘째 오라버니는 첫째 오라버니와 달리 무척 친절한 분이었다.

제2 왕자는 그녀가 하는 말도 잘 들어주었고, 여러 가지 조언과 칭찬도 많이 해 주었다. 그는 아이샤가 어마마마와 이모, 국왕 다음으로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공주는 좋아하는 제2 왕자에게 오늘 칭찬받은 것을 자랑할 생각에 하녀장이 놀라 그녀에게 손짓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하녀장도 응접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기에, 공주가 응접실 앞으로 달려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공주가 응접실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그녀는 응접실 안에서 들려오는 왕비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제발, 아이샤를 살려 주세요."

어마마마의 목소리에는 울음이 담겨 있었다.

공주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작은 오라버니가 오셨다고 들었는데?

턱.

"이렇게 무릎을 꿇겠어요. 아이샤는 자그마한 여자아이일 뿐이에요. 나이가 차면 먼 나라에 시집을 보낼 테니, 제발 아이샤는 손대지 말아 주세요."

이해가 안 되었지만, 분명 어마마마의 목소리였다.

그럼 어마마마와 같이 방 안에 있는 것은 오라버니가 아니라 악마일지도 몰랐다.

공주는 두려운 마음을 이겨내고 다시 문을 열려고 했다.

그때,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릎을 꿇는다고 되는 일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아프시지 않았다면 왕비께서 무릎을 꿇으실 리가 없을 테니까요."

악마가 아니었다. 둘째 오라버니의 목소리였다.

공주는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모두 아이샤가 너무 똑똑해서 생긴 일이에요. 귀를 기울여 보세요. 두 왕자 대신에 아이샤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말들이 들려오고 있잖아요."

제2 왕자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공주를 칭찬하던 목소리도 저렇게 부드러웠는데.

"형이 바보 같은 것은 모두 잘 알고 있지만, 왜 내가 같이 묶이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목소리로 왕비에게 투덜거리고,

"아이샤 각성이 얼마 안 남았단 말이에요. 아이샤가 제대로 각성해버리면 아버지께서 죽기 전에 이상한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잖아요. 그럼 곤란하죠."

무서운 소리를 하고 있었다.

"뭐, 당장 어떻게 한다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아직 각성까지 2년 남았잖아요."

여기까지 들은 공주는 잡고 있던 문고리를 놓고, 천천히 하녀장을 향해 걸어갔다.

믿을 수 없는 대화였고, 어린아이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이샤는 나이에 비해 너무 똑똑했다.

하녀들이 서 있는 곳에서는 대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공주는 하녀장 옆에 서서 제2 왕자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날 이후, 밝고, 명랑한 공주는 더는 없었다.

똑똑하다던 공주의 소문도 사라졌고, 단지, 대신 조용하고, 조금은 어른스러운 공주에 대한 말들이 하녀들 사이에서 간간이 나올 뿐이었다.

마물들과 함께 공주는 무서웠던 그 날의 기억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훈련도 많이 했었고, '현장 학습' 때도 마물들과 싸워봤었다.

그때도 무서웠지만, 그래도 카트린이 있어서 참아낼 수가 있었다.

지금 카트린은 멀리 강 쪽에 있었다.

그녀가 위험해도 도와주기 어려운 곳이었다.

학생들이 위험해질 때 달아날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라는데.

당장 무서워진 공주는 그런 이유를 떠올리기도 어려웠다.

공주는 당장 의지할 곳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장이라는 잘생긴 3학년 선배는 흥분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처럼 무서워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나머지 학생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그녀만 무서워하는 게 아니었지만, 그리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한 명, 여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알렉스 공자는 안 무서워요?"

아이샤 공주는 억지로 입을 열어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 공주는 다른 사람이 어깨에 올린 손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었다.

알렉스 공자가 어깨에 손을 올린 뒤, 무서움이 사라졌다.

공포가 사라지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마나가 흘러들어오는 것이 느껴진 것으로 봐서는 마나 탓인 것 같았다.

하지만 공주에게는 하나의 기적이었다.

지금 공주는 처음으로 그날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를 구해준 소년은 그날, 모두를 놀라게 했고, 공주에게는 네 번째로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다.

* * *

'마나 심법'의 활성화는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것이었다.

시간이 느려지는 느낌은 마나 소모가 너무 많아서 오래 사용할 수 없었지만, 평상시에도 전부다 두 배 이상 강해진 것 같았다.

다른 능력을 꺼내지 않아도, 나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마물들을 베고, 공주를 지키고, 진형을 유지하면서, '실전 수업'에 온 모든 학생은 그레시아 공작가의 서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왜 그레시아 공작가가 왕국에서 손꼽는 명문가가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렇게 며칠에 걸친 실전 수업은 뜬금없는 스타를 만들고는 사상자 없이 끝나게 되었다.

* * *

한편, 같은 시각에 백작은 텅 빈 지하 광장을 보며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없어. 아무것도 없어."

그의 말대로 이 지하 광장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벽에 걸려 있는 물건도 없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물건도 없었다.

유물은커녕 녹슬어가는 가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장식 비슷한 것은 광장 중앙에 있는 받침대밖에 없었다.

당연히 받침대 위도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실내를 보고, 백작은 좌절했다.

자식을 바쳐서 지도와 인장 반지를 다시 찾았건만, 지도를 따라 도착한 유적은 황당하게도 텅 비어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선조의 유지에, 가문의 소망이 이렇게 끝날 리가 없어."

백작은 알렉스가 죽기 전에 보았던 백작보다 훨씬 깊게 실망하는 중이었다.

백작이 왕실 기사단과 같이 들어왔을 때는 유적에 있는 유물을 어느 정도 포기한 상태였다.

그때도 제대로 된 유물이 없어서 실망했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큰 기대에 부풀어 가문의 기사단을 데리고 온 상황이었다.

백작은 반쯤 얼이 빠진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에 거지꼴이 된 기사들이 서 있었다.

30명이 넘는 기사들이 같이 출발했지만, 지금 그의 뒤에 서 있는 기사들은 6명.

보이지 않는 기사들은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 모두 죽었다.

공간이동 장소에서 유적이 있는 폐허까지 오는 길에도 죽은 기사들이 있었지만, 기사들이 제일 많이 죽은 장소는 유적이 있는 폐허였다.

왕실 기사단과 같이 왔을 때는 충분히 힘으로 폐허에 있는 마물들의 둥지를 무너뜨릴 수 있었고, 알렉스는 혼자서 둥지를 돌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왕실 기사단만큼 강하지 않은 백작의 기사단은 마물들과 싸우다 많은 기사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지하 유적 안에서도 구더기 마물들에게 남은 기사들이 또 죽게 되었고, 결국, 다친 여섯 명의 기사만 남게 된 것이다.

"다른 창고도 쓰레기만 남았고, 맞아 함정도 망가진 게 있었어. 분명 이건 누가 먼저 들어와서 가져간 거야."

공작의 중얼거림에 기사들은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뭐라 말할 기운도 없었다.

"설마, 그 서자 놈이 먼저 온 거 아냐?"

증거도 없고, 논리적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자식도 잃고, 50년 전처럼 다시 한번 기사단이 결딴이 난 상황에서 가져갈 유물이 없었다.

그는 도무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돌아가면, 제대로 추궁을 해야지. 분명, 전에 대화할 때도 뭔가 이상했어."

아카데미에서 그 서자와 대화했을 때는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지금 백작은 모든 일이 의심스럽게 여겨질 뿐이었다.

"그레시아 가문이 서자 따위를 신경 쓸 리가 없을 테니까. 납치해서 고문하면 뭔가 알아낼 수 있을 거야."

흥분한 탓에 과한 결정을 내리고 있었지만, 백작은 돌아가서도 지금 생각을 바꾸지 않기로 다짐했다.

어차피 공국왕 쪽에 줄을 설 생각이었다. 그레시아 공작이 공국왕 쪽에 설리도 없으니, 공작과 관계가 나빠져도 별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못 가본 곳을 확인해야지."

아직 유적 내부를 다 돌아다닌 게 아니었다.

백작은 남은 기사들에게 말했다.

"모두 남은 포션을 마셔라. 남은 구역을 확인하고 복귀하겠다. 남은 구역은 지하 깊은 곳이니 마물들도 없을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확인하고 돌아가자."

포션을 마신다고 해도, 이 인원으로 무사히 돌아가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유적을 더 돌아다닌다니.

기사들은 이해가 안 갔지만, 백작의 기사들인 그들은 백작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백작은 지도를 확인했다.

파피루스의 뒷면.

유적 내부 지도의 위쪽은 그가 통과한 유적의 위층이었고, 아래쪽에는 아직 그가 가보지 못한 지하층이 있었다.

"미로인가……. 그래도 미로가 대부분 나와 있으니 헤매지는 않겠지."

지도가 몇 군데 작게 찢어져서 미로 중에 몇 곳을 확인할 수 없게 됐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백작은 기사들이 포션을 마시고,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게 되자, 공주와 알렉스가 통과했던 지하 미로로 향했다.

* * *

<위기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이 설정되었습니다.>

실전 수업이 끝나고 빛기둥을 향해 돌아가는 도중에 나는 메시지창을 보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죽었을 때 시간과 같은 시간이었다.

'위기가 종료되었다라. 설마, 백작 문제가 해결된 건가?'

죽었던 시간이 지난 뒤에도 메시지가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런 때에는 위험이 아직 남아 있었을 때였고.

이번에도 혹시나 해서, 지도에 자그마한 흠집을 만들어 두었다.

백작이 유물을 찾기 위해 지하 미로로 들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남긴 흠집이었다.

운이 좋으면 미로에서 꽤 오랫동안 헤맬 테고. 더 운이 좋으면 우리가 돌아갈 때까지 복귀하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생각보다 훨씬 운이 좋았다.

백작과 그의 기사단은 우리가 복귀하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도 유적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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