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화
제8편 두 번째 실전 수업 (1)
수업 시간이었지만, 학장의 호출로 나는 차이프리 백작을 만나게 되었다.
학장의 집무실과 붙어있는 화려한 응접실에서 차이프리 백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부른 학장은 바로 자리를 비웠고, 차이프리 백작은 차가운 눈으로 안으로 들어오는 나를 쳐다보았다.
"네가 그레시아 공작의 서자냐."
죽기 전에도 느꼈지만, 백작은 나를 싫어하고 있었다.
나를 싫어하는 것인지, 아니면 '서자'를 싫어하는지 모르겠지만, 싫어하는 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는 그에게 인사를 했다.
"알렉스 데 그레시아입니다."
서자 따위가 가문의 성을 말하면 더 싫어할 테니, 모른 척하고 열심히 말해주었다.
당연히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원래대로라면 한 소리를 들었겠지만, 그는 눈살만 찌푸린 채로 나를 앉게 했다.
나에게 묻고 싶은 게 있으니, 그는 기분 나쁜 것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왜 불렀는지 아느냐?"
나는 학장이 불러서 온 건데?
백작이 부른 이유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아는 척할 상황은 아니었으니.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모르는 척할 뿐이었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훑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라이드를 찾다가 우리 가문의 유물을 찾아 주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라 정확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불렀다."
아들이 실종된 아버지가 충분히 물어볼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죽기 전 유적에서 그가 아들에 관해 묻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도 분명 아들 때문에 나를 찾은 게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친절하게도 라이드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가 어떻게 실종되었고, 어떻게 찾으러 다녔고, 결국 못 찾게 된 것까지. 라이드의 이상한 행동에 대한 의문까지 포함해서 최대한 자세히 그에게 말해주었다.
내 이야기를 전부 들은 그는 이상한 표정이 되었다.
신경 쓰지 못한 아들에 대해 들은 아버지의 죄책감과 원하는 이야기를 듣지 못한 귀족의 조급함이 그의 표정에 모두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표정에서 사라졌다.
"……네가 찾은 것은 그게 전부냐. 혹시 다른 물건은 없었고?"
혹시, 주머니까지 찾는 건가? 욕심도 많네.
하지만, 일부러 빼놓았는데 내가 줄 리가 없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 뒤에도 여러 질문을 했다.
유물을 찾은 위치도 물었고, 다른 시체들은 못 봤는지, 혹시 지도와 비슷한 지형을 본 적이 있는지, 그리고, 지도와 반지에서 특이한 점을 본 적이 있는지까지.
아들에 관해 물어보는 대신에 유물과 유적을 내가 얼마나 아는지 하나하나 확인했다.
나는 무심한 얼굴로 그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는 내 대답을 들으면서 나를 뚫어지라 바라보았지만, 이미 아기 때부터 연기에 자신이 있던 나였다.
나를 모르는 귀족을 속이는 것은 무척이나 쉬운 일이었다.
모든 질문에 답을 하니, 그는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할 이야기는 다 했으니, 이제 나를 내보내겠지?
하지만, 나는 그가 축객령을 내리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드린 유물들이 중요한 것이었나요? 인장이 새겨진 반지가 가문의 도장이었다던가……."
내 말에 백작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구한테 들은 거지?"
"네? 그냥 상상인데요?"
상상이 아니라, 주머니 속에 같이 들어있던 편지에 적혀 있었다.
"상상이라니……. 서자라서 그런가, 정말 예의가 없군."
그는 나를 쳐다보며 나지막이 혀를 찼다.
"네가 가문의 물건들을 가져와서 이번만 참는 거다. 어디 가서 그런 쓸데없는 말을 꺼내면 너 같은 서자는 살아남지 못할 거야!"
그는 강한 목소리로 협박을 하고는 비웃는 얼굴로 나를 내보냈다.
"명예도 모르는 놈이니, 원하는 대로 금붙이라도 던져주지. 돌아가라. 네 놈이 불만을 품지 않을 정도로 금화를 던져줄 테니."
나는 그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는 방을 나섰다.
'이 정도면 돈을 노리고 유물을 건네준 반쪽짜리 서자로 보였겠지?'
돈도 얻고 의심도 줄이고, 일거양득의 계책이었다.
나는 응접실 문을 닫고는 기쁜 마음으로 안에 있는 백작에게 중지를 치켜세웠다.
유적에서의 일을 생각하면 저 얼굴에 중지 대신 검이라도 날리고 싶었지만, 그때 일은 지금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아쉽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백작이 공국 왕에게 줄을 대는 문제도 있고, 제1 왕자와 제2 왕자의 세력 속에 공국 왕의 첩자들이 가득 침투해 있는 문제도 있지만, 그런 일들은 우선 제쳐놓기로 했다.
제1 왕자, 제2 왕자가 신나게 치고받는 것도, 공국왕이 중간에서 깽판을 놓아도 나와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유적에서처럼 나와 공주에게 시비만 걸지 않는다면 나는 즐겁게 지켜볼 생각이었다.
'시비를 걸면 백작에게 한 것처럼 최대한 딴지를 걸겠지만.'
수업 시간에 불러낸 백작 탓에 오전 수업도, 점심시간도 끝나버렸다.
그래도, 백작이 준다고 한 금화 덕분에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나는 바로 기사 학부 수업으로 향했다.
"늦었어!"
카트린의 호통을 들으며 나는 바로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그리 늦지 않았다.
"그동안 실전 수업 준비를 했으니 오늘은 대련으로 몸을 풀 겁니다."
카트린의 말에 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전 수업 준비가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선배들과 함께 하는 실전에 가까운 훈련이었기에, 몸이 피곤한 것뿐만 아니라,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았다.
대신 대련은 어느 정도 수준이 맞는 사람들끼리 할 수 있어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게 되었다.
나도 대련할 사람을 정해 두었다.
"브리아 같이하자."
언제부터인가 항상 대련을 같이하게 된 브리아였다.
"전에는 맨날 내가 같이하자고 했는데, 이제는 알렉스 공자가 같이하자고 하네요."
내가 처음으로 브리아에게 대련을 같이하자고 말한 날은 '현장 학습'을 다녀온 다음 날이었다.
'유적'에서 알아차린 이유로 인해 나는 브리아와의 대련이 꼭 필요했다.
"싫은 건 아니지?"
"싫기는요."
내 물음에 브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싫어할 리가 없었다.
브리아는 '현장 학습' 때 내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가 나에 대해 가지고 있던 '본받을 만한 기사'라는 편견이 현장 학습 이후로 훨씬 더 커져 버렸다.
그런 이유로, 그녀에게 여러 가지로 시달리고 있지만, 그녀와 대련을 하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오늘도 질문이 있나요?"
'현장 학습' 이후, 나는 브리아에게 대련 이외에도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나, 연애에 필요한 정보 같은 것이 아니라, 그녀가 가지고 있는 능력, 마나 심법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다.
그녀에게 묻기 전에 먼저 머릿속으로 내 능력을 떠올려 보았다.
촤르르르.
바로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 기사형 영웅 능력자 >
< 사용 능력 >
- 육체 최적화 : 레벨 15
- 마나 회로 구축법: 레벨 1
- 마나 감응력: 봉인 해제 중
- 봉인 중
- 봉인 중
< 비인가 능력 >
- 마나 유형화: 레벨 1
- 사자 회귀: 레벨 1
내 상태, 아니 능력창이 눈앞에 펼쳐졌다.
구슬을 가져온 덕분에 등급으로 되어있던 부분은 다시 레벨로 바꿀 수 있었지만, 그래도 능력창은 죽기 전과 다른 부분이 남아 있었다.
바로 <마나 회로 구축법>이었다. 죽기 전에 보았던 능력창에는 <마나 회로 구축법>이 '봉인 해제 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봉인 해제 중'이 아니라 '레벨 1'로 적혀 있었다.
이미 봉인 해제가 되어 능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뜬금없는 변화였지만, 나는 왜 달라졌는지 알 것 같았다.
죽기 전 유적을 탈출할 때, 그리고, 혼자서 마물들의 둥지를 진입할 때 느꼈던 시간이 느려지는 경험을 했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 다 마나를 사용해서 시간이 느려진 것이었고, 영지에 있을 때 다른 기사들에게 비슷한 경험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마나 심법을 따라 마나를 계속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세상이 느려지는 듯한 경험을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영지에서 미겔에게 교육을 받을 때, 그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실제로 느려졌는지, 그냥 상상일 뿐인지 알 수 없지만, 마나 심법을 나누어 주신 공작님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니겠죠."
그가 직접 경험한 것도 아니었고, 들리는 풍문을 이야기한 것뿐이었지만, 직접 경험해보니, 미겔의 말은 사실처럼 느껴졌다.
<마나 회로 구축법> 속칭 마나심법이라 불리는 상속능력은 기사 용사인 카를로스 왕국의 대표적인 능력이었다.
아쉽게도 왕족들은 마나심법이 아니라, 마나 감응력을 주된 능력으로 삼고 있었지만, 초대 왕의 피가 흘러 들어간 귀족들은 마나 심법을 주된 능력으로 삼고 있었다.
그중 제일 유명한 가문이 그레시아 공작 가문이었다.
내 아.버.지. 그레시아 공작도 마나 심법을 상속능력으로 가지고 있었고, 첫째 형 시몬도 같은 마나 심법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가문도 그랬지만, 심법을 얻게 된 귀족들은 가문의 기사들에게 능력으로 얻게 된 마나심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귀족들처럼은 아니었지만, 기사들도 자신들의 마나를 심법이 흐르는 길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마법사들과 달리, 기사들이 이 시대까지 살아남은 이유였고, 기사들이 가문과 왕실에 종속이 된 이유였다.
어쨌거나, <마나 구축 회로>, 마나 심법을 알려면 그레시아 공작이나 시몬에게 묻는 것이 제일이었다.
하지만, 그걸 물으러 영지로 돌아갈 수도 없었고, 나는 지금 영지로 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공작가 대신에 마나심법을 가지고 있는 학생 중에 제일 친한 브리아에게 부탁하게 된 것이었다.
"마나를 움직이는 동안 시간 감각은 달라지지 않냐고? 그게 왜 달라지는데?"
하지만, 아쉽게도 쉽게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내가 복수의 능력을 얻게 된 것을 말할 수도 없었고, 남들과 다르게 능력을 얻게 되어, 제대로 활용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저 하나하나 물어가면서 답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 나름대로 훈련을 이어가는 와중에 다시 한번 '실전 수업' 시간이 되었다.
죽기 전과 다르게 '실전 수업'은 원래대로 마물들과 싸울 예정이었다.
왕실 기사단이나 귀족 장교들도 따라오지 않았다.
대신, 차이프리 백작과 백작의 기사들이 학생들과 함께 봉인지로 이동했다.
봉인지로 이동한 뒤에 그들은 학생들을 남겨두고 길을 떠났다.
학생들 사이에는 백작의 기사들이 왕실의 명령을 받고 움직인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지만, 나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었다.
백작과 기사들은 이미 내가 전부 쓸어 담은 텅 빈 유적으로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