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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07화 (107/563)

제107화

제7편 유품을 돌려주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은 들어갈 때보다 어렵지 않았다.

함정도 들어올 때 망가뜨려 놓았고, 마물들의 습격도 이미 예상되는 벽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어서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항상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지상의 폐허에 진을 치고 있는 마물의 둥지를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았고, 다시 한번 봉인지를 통과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제일 큰 문제는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유적에 들어가 탐사를 마치는 데까지 4일 이상을 써버렸었다.

돌아가는 데 이틀 이상을 쓰지 못하는 상황.

잘못해서 시간이 늦기라도 하면, 진짜로 혼자 낙오되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실전 수업'때까지 혼자 봉인지를 헤매야 할지도 몰랐다.

거기다, 이번 '실전 수업'이 죽기 전의 '실전 수업' 장소와 같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으니, 늦으면 큰일이었다.

식사도 포기하고, 잠도 포기하고 나는 계속 봉인지를 내달렸다.

그나마 한번 지나간 곳이었기에 마물들의 영역을 우회해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라이드를 죽였던 마물의 둥지를 지나, 출발했던 동굴 쪽이 아니라 빛줄기가 솟구치는 공터로 달려 나갔다.

해가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 오늘은 약속했던 일주일. 학장이 이미 봉인지에 와 있을 터였다.

"어, 설마?"

나는 이를 악물고 나무 위를 달려가다가, 덜컥 걸음을 멈추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광경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무 아래로 뛰어내렸다.

땅 위에 갑옷과 무기들이 흩어져있었다. 뼈들과 사체의 일부도 눈에 들어왔다.

마물들이 먹어 치우고 남은 흔적들이었다.

학생들이 보았다면 속에 있는 것을 다 토해냈을 끔찍한 모습이었다.

제대로 된 시체들이 아니었지만, 나는 이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학생들을 찾기 위해 나와 같이 떠났던 아카데미 기사들. 나와 다른 팀에 속해 있다가 실종되었던 기사들이었다.

여러 번 신호탄을 쏘아 올려도 반응을 하지 않아 죽었다고 생각하기는 했었지만 이렇게 실제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시간이 부족했지만, 나는 주위를 굴러다니고 있는 갑옷과 무기 중에 그나마 제대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들을 수습해 등에 짊어졌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 아카데미 기사가 된 사람들이었지만, 이런 곳에서 실종자로 잊히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모르고 지나갔으면 모를까, 직접 보게 되었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잠시, 사람들에게 설명할 내용을 떠올리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그게 아니라, 이 유품들이 있으면, 수색이랍시고 혼자 빠져나온 핑계를 댈 수 있겠지."

좋은 취지였다고 남에게 말할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에게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진실한 사람이 되자' 같은 윤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만약 계속 나를 속이게 된다면, 수많은 죽음 속에서 어느 순간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 거라는 강한 예감 때문이었다.

굴러다니는 기사의 망토로 유품들을 묶은 것과 같이, 내 마음도 다시 묶은 나는 봇짐을 짊어지고 다시 출발했다.

빛이 솟구치고 있는 방향을 향해.

* * *

'현장 학습'의 합류 지점인 공터 중앙.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는 지금도 열린 상자에서 빛기둥이 치솟고 있었다.

그리고, 상자 앞에는 카트린이 서서 학장에게 사정하는 중이었다.

"좀 더 기다려 주세요! 알렉스는 돌아올 거예요."

카트린과 학생들, 그리고 살아남은 기사들은 점심때쯤에 공터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학장과 기사들은 그들을 보고 무척이나 기뻐했다.

학장은 일행이 도착하자 바로 아카데미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카트린과 기사들의 부탁으로 좀 더 머무르기로 했다.

머무는 시간은 해가 저물 때까지.

그리고, 지금 그 시간이 된 것이다.

카트린은 조금 더 기다려달라고 부탁했지만, 학장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충분히 기다려줬어요. 벌써 5일 이상 돌아오지 못했다면서요. 그럼 그 학생도 실종된 것으로 봐야 할 거예요."

"하지만……."

"취지는 좋았겠지만, 무리한 일이었습니다. 봉인지에 학생 혼자 보내다니."

오히려 학장은 알렉스를 혼자 보낸 카트린에게 주의를 주었다.

학장을 말리는 것은 카트린뿐이었다.

같이 돌아온 아카데미 기사들은 차마 학장에게 말할 위치가 아니었고, 학생들은 어서 빨리 돌아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브리아는 카트린을 거들려고 했지만, 오히려 카트린이 그녀를 말렸다.

학교에 미련이 없는 자신이야 학장에게 대들어도 상관이 없지만, 학생인 브리아는 달랐다.

"더는 기다릴 수 없어요. 철수합니다."

학장은 앞을 가로막는 카트린을 능력으로 건너뛰고, 상자를 닫았다.

빛기둥이 사라지고, 공터에는 노을만이 남게 되었다.

카트린의 어깨에 힘이 빠지고, 학생들과 기사들이 학장 주위로 모였다.

"이제 출발합니다."

학장의 선언이 떨어지자, 카트린은 남을 생각에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그때였다.

"제가 많이 늦었죠?"

노을이 지는 나무 위에서 소년의 음성이 들려왔다.

* * *

와. 식겁했다. 늦은 줄 알았네.

눈앞에서 빛기둥이 사라져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미친 듯이 몸을 날려 공터에 도착했고, 아직 사람들이 남아 있는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늦었잖아!"

카트린이 나를 보고 득달같이 화를 냈다.

하지만 말과 달리 그녀 눈에는 눈물이 글썽였다.

"그래도 다행히 돌아왔군요. 할 말은 많지만 그래도 무사히 돌아왔으니,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학장은 다가오는 나를 향해 화를 내려다가, 내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닫았다.

내가 봐도 내 모습은 엉망이었다. 씻기기는커녕, 잠도 못 자고, 먹은 것도 거의 없었다.

거기다, 마물과 싸우고 함정을 헤쳐나가느라 옷은 다 찢어지고 상처도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카트린은 물론, 학생들도, 기사들도 내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나는 먼저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다른 분들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괜찮아. 아니, 괜찮습니다. 알렉스 공자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돌아오지 못한 기사들도 기뻐했을 겁니다."

미로 기사가 기사들을 대표해서 내 사과에 고개를 저었다.

여태까지 반말로 말하던 그였지만, 처음으로 나를 존대해주었다.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다만, 아직 내 말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래도 기사분들의 유품을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마물들과 최선을 다해 싸우신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만, 사체가 많이 훼손돼서 가져올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습니다."

나는 등에 메고 있던 봇짐을 땅바닥에 풀었다.

와르르.

봇짐을 풀자 갑옷 일부와 부러진 검, 피 묻은 목걸이와 아카데미 기사 문양이 새겨진 손수건 등이 바닥에 쏟아졌다.

"아……."

바닥에 쏟아진 물건들을 보고, 모두 말을 잃었다.

같이 수색하던 기사들은 물론이고, 이번에 학장과 같이 넘어온 기사들도, 모두 유품 앞으로 다가왔다.

유품을 확인하던 그들은 차례로 유품 앞에 서서 검을 들어 올렸다.

시체 대신, 낡고 볼품없는 물건들을 앞에 두고, 기사들은 떠난 동료들을 추모했다.

노을이 지는 봉인지 공터에서 기사들의 장례식이 펼쳐졌다.

엄숙한 분위기 때문인지, 학장도 기사들의 예식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잘했어. 정말 잘했어."

카트린이 내 옆에 서서 내 어깨를 두드렸다.

"아카데미로 돌아간 뒤에도, 학장님이 뭐라 못하실 거야."

"험……. 험……."

카트린의 말에 옆에서 같이 기사들을 보던 학장이 헛기침했다.

늦을 뻔했지만, 기사들의 유품을 가져온 것이 정답이었다.

거기다, 아직 다 돌려준 것이 아니었다.

나는 가슴에 손을 넣어 주머니 속에서 유물 두 개를 꺼냈다.

유물 지도와 인장 반지.

나는 그 유물들을 학장에게 보여주었다.

"그게 뭐죠?"

"라이드는 찾지 못했지만, 라이드를 찾다가 발견한 겁니다. 라이드가 실종된 곳 근처에서 찾았습니다."

"근처에서 찾았다고 라이드와 무슨 관계가……."

"이 반지에 새겨진 인장 무늬가 라이드 가문의 문양과 비슷해서요."

내 말에 학장이 급하게 인장 반지를 살펴보았다.

"설마……. 이게 왜 여기에……."

그는 반지를 자세히 살피더니, 눈썹을 찡그렸다.

"아무래도 차이프리 가문의 물건이 확실한 것 같네요. 이건 내가 백작에게 전해주겠습니다."

그는 지도와 반지를 조심스럽게 챙겼다.

학장도 인장 반지가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는 아는 모양이었다.

"수고했습니다. 학생이 한 훌륭한 행동은 좋은 성적과 백작의 보상이 내려질 겁니다."

기사들의 유품을 가져왔을 때도 학장은 전과 다르지 않았지만, 인장 반지를 확인한 뒤에는 그의 표정이 백팔십도 달라졌다.

대단한 능력 덕분에 다시 보게 된 학장이었지만, 지금 보니, 역시 첫인상처럼 정치적인 사람이었다.

노을이 사라지기 전에 기사들의 예식이 끝났고, 마물들이 몰려오기 전에 우리는 아카데미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전과 달리, 늦게 돌아온 바람에 출발한 건물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실내에는 교직원 몇 명과 학생은 공주와 발레아, 피아르 정도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반가워하는 것은 그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공주는 내가 남도록 부탁한 것을 사과했다.

나에게는 오래전 일이어서 그녀의 사과가 낯설게 느껴졌다.

죽기 전, 유적에서는 공주와 꽤 가까워졌었는데, 지금 공주와는 그때와 달리, 애매한 거리감이 남아 있었다.

다시금 아쉬움이 마음에 흠집을 내며 지나갔지만, 이미 같은 경험을 여러 번 했던 나는 상처 난 마음을 다잡고 공주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학생들이 생환을 기뻐하는 동안, 그때처럼 학장과 카트린과 미로 기사가 방음벽을 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종된 라이드 이야기가 분명했다.

다만, 그때와 달리, 이야기는 빨리 끝이 났다.

학장이 금방 이야기를 끝낸 것이었다. 내가 준 유물 때문이었다.

나는 가슴에 숨겨둔 주머니를 쓰다듬었다.

유물 두 개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지만, 나는 충분히 배가 불렀다.

지도와 인장 반지가 빠졌지만, 주머니 안에는 더 많은 유물이 담겨있었다.

유적에서 담아온 여러 유물과 구슬.

안 들어가는 구슬을 억지로 집어넣은 덕분에 무사히 가져올 수 있었다.

'현장 학습'이 끝나고, 아카데미는 그때처럼 꽤나 시끄러웠다.

학생도 실종되었고, 기사들도 죽었었다.

봉인지를 다녀오는 일이 그만큼 위험했지만, 사람들이 죽는 것이 당연한 일일 리가 없었다.

나는 그 소란 사이에서 더 유명해졌다.

혼자 봉인지를 돌아다니면서 유품을 챙겨온 것 때문이었다.

아카데미 기사들도 나를 볼 때마다 감사 인사를 했고, 학장은 그의 말대로 추가 성적과 장학금을 주었다.

예상대로 '실전 수업'은 그대로 진행되었다. 왕실 기사단도 오지 않았고, 귀족 장교들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기사단이 봉인지 이동에 같이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같이 가게 된 사람이 있었다.

차이프리 백작이었다.

그는 '실전 수업'이 시작되기 얼마 전에 아카데미를 찾아왔다.

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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