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101화 (101/563)

제101화

제1편 2인 탐사

지도가 그려져 있는 파피루스는 유적에 들어오기 전과 전혀 다른 물건이 되어 있었다.

앞면은 지형이 그려져 있는 그대로였지만, 유적 내부가 그려진 뒷면은 엄청나게 복잡한 내부 구조가 모두 그려져 있었다.

"왜 그렇게 지도를 열심히 찾아다녔는지 이제 알겠어. 차이프리 백작은 지도의 비밀을 알고 있었겠네."

지도를 못 찾게 되니 왕실의 힘으로 밀어붙일 생각을 한 것일 테고.

다행히 지도에는 공주와 내가 떨어져 내린 미로에 대해서도 잘 나와 있었다.

"하지만 외우기는 무리일 것 같고."

나는 지도를 다시 주머니에 넣지 않고, 공주에게로 몸을 돌렸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공주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네. 알렉스 공자가 구해주신 거죠?"

공주는 차분히 나에게 물었다.

조금 전에 마물들에게 달려든 것도 그렇지만, 지금도 공주는 전혀 나이답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침 옆에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대충 겸양했지만, 공주는 감사 인사를 건너뛰지 않았다.

어두운 통로에 둘만 남겨져 있어도 공주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다만, 그녀는 조금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제가 잘못한 것일까요?"

공주는 조금 전 일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가만히 있을 걸 그랬나 봐요. 괜히 나서서 알렉스 공자까지 위험에 빠트렸어요."

그녀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누가 가르쳤는지 아는데 어디서 거짓말을.

"만약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가만히 있으실 겁니까?"

"……."

역시, 공주는 내 물음에 대답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여기에 떨어진 것은 공주의 탓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원래 공주님과 제가 위험할 일은 없었습니다."

"……예?"

나는 함정으로 떨어질 때 벌어진 일을 설명해 주었다.

"능력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막은 귀족이 있었다고요?"

내 말에 공주의 눈이 커졌다.

"그전에 저를 죽이려고 한 기사도 있었죠."

그녀는 믿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설마, 오라버니들이……."

"뭐, 아랫사람들의 과한 충성일 수도 있고. 넌지시 지시 비슷한 것을 내렸을 수도 있죠."

아마, 공주가 직접적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은 처음일 것이다.

입학식장이 폭발한 일은 없었던 일이 되었으니까.

공주는 처음 겪어보는 경험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나이답지 않게 어른인 척하고 있었지만, 공주는 아직 10살밖에 안 되는 어린 소녀였다.

본인이 머리가 좋고, 카트린과 왕비에게서 제대로 교육을 받은 덕분에 티가 나지 않았지만, 아직 그녀는 제대로 된 경험을 하지 못했다.

'이제부터 현실을 배워나가는 거겠지.'

그렇게 하나둘씩 때가 묻어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안절부절못하던 공주의 생각이 계속 뻗어 나가다가 한가지 걱정을 더 하게 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카트린이 위험해요!"

"카트린은 괜찮을 겁니다. 일부러 우리를 떨어뜨리는 것을 못 봤을 테니까. 공주님이 죽었다고 생각하면 카트린은 오히려 안전할 겁니다."

공주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저들의 목표는 공주였다. 전부가 가담한 것도 아니고, 들키지도 않았는데, 쓸데없이 카트린을 죽일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공주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보다, 카트린이 저를 찾아다닐 거예요!"

아, 그것까지는 생각 못 했다.

공주를 찾는답시고 혼자 움직인다면 카트린이라도 위험한 게 당연했다.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함정이 원상 복구가 되었는지 천장이 막혀 있었다.

주변에 널브러진 구더기 마물들의 잔해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저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카트린 때문이라도 서둘러야 했다.

"움직일 수 있으신가요?"

내 말에 공주가 몸을 일으켰다.

"통로가……. 엄청 복잡한데요. 미로인 건가요?"

지도를 살피던 나는 공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출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공주는 의아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저……, 지금 들고 있는 종이가 뭔가요?"

왜 안 물어보나 했다.

"이곳, 유적의 지도입니다."

"네?"

나는 오늘 잠깐 사이에 공주를 여러 번 놀라게 했나 보다.

"유적의 지도는 어떻게 가지고 있었나요?"

"현장 학습 때 일주일 동안 여기 봉인지에 낙오되었잖습니까. 그때 수색을 하다가 기사 시체 주변에서 찾았습니다. 무엇에 쓰는 건지 몰랐는데, 이 유적에 관한 지도였습니다."

"아. 그 기사가 차이프리 백작 가문의 기사였군요."

거짓말에 진실을 조금 섞었는데, 공주는 내 말을 믿어주었다.

역시 공주는 아직 때가 타지 않은 순진한 소녀였다.

"정말 다행이에요. 알렉스 공자와 같이 있어서."

음. 때가 타지 않은 게 아니라, 나를 믿어줘서인 건가.

안타깝게도 이미 더러워진 나는 양심의 가책을 조금도 받지 않았다.

"확인해 봤는데, 우리가 떨어진 곳으로 바로 올라가는 길은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공주에게 지도를 보여주었다.

지도에 그려진 유적의 내부는 몇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공주와 내가 떨어졌던 층이 제일 위층이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제일 아래층이었다.

우리가 떨어진 함정을 찾아 미로에서의 위치를 확인하니, 다행히 목적지인 유적의 심장부와 멀지 않았다.

원래 지도가 없다면 이 아래층 미로에서 한없이 헤매다 죽게 되겠지만, 지도가 있으니 유적의 중심에 제일 먼저 도착할 수 있을 듯했다.

"다른 사람들과 만나려면 유적 중심에 도착해서 그들을 기다리던가, 돌아가는 길에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지도를 유심히 살피던 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가 지도를 살펴봐도 내 말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잠깐만 쉬고 출발하죠."

"바로 가도 돼요."

"아뇨. 공주님도 저도 체력을 회복해야 해요."

솔직히 나는 아직 괜찮았지만, 공주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계속 이동한 데다가, 짧지만 격렬한 싸움에 추락까지 했다. 긴장과 걱정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지만, 공주는 지금 쉬어야 했다.

내 말에 뭐라 반박하려고 했지만, 곧 자신이 지쳤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선 채로 숨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나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공주에게 권유했다.

"체력을 회복하려면 쉬는 것도 제대로 쉬어야 합니다."

내 말에 공주는 조심스럽게 바닥에 앉았다.

나는 먼저 눈을 감은 채로 마나를 순환시키기 시작했다.

공주의 호흡이 느려지는 게 느껴졌다. 그녀도 나처럼 마나를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역시, 시키는 대로 잘하는 착한 공주님이었다.

다행히 뭔가 다가오는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10여 분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눈을 떴다.

공주는 아직도 눈을 감고 있었다. 호흡은 계속 느린 상태였고, 공주의 입에서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에 마나를 불어넣어 소리를 들어보았다.

"엄마, 괜찮아요. 난 할 수 있어요. 카트린, 카트린 이모 기다려요."

잠꼬대였다.

무슨 꿈을 꾸는지 모르겠지만, 잠꼬대로나마 원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무서워. 하지만, 괜찮아."

역시, 공주는 담대한 게 아니라 참아내고 있었다.

어두운 통로 벽에 기대앉아 작게 잠꼬대를 늘어놓고 있는 소녀의 모습은 누가 봐도 안쓰럽게 여겨질 것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으로 벽을 두들겼다.

텅. 텅.

"움직일 시간입니다."

나도 공주가 조금 불쌍해 보였지만, 단지 그뿐이었다.

내 인성이 삭막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공주를 걱정하기에는 내 코가 석 자였다.

"아……."

공주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곧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잠들었던 것을 알아차렸는지,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공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지도를 다시 한번 확인한 뒤에 걷기 시작했다. 공주도 내 뒤를 따라 걸었다.

'카트린과 무덤 아래로 떨어지고, 이번에는 공주인가. 우연치고는 묘하게 비슷하네.'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속으로 피식 웃고는 계속 걸음을 옮겼다.

미로는 정말 복잡했다.

미로 층은 파피루스 뒷면의 유적 내부 지도를 반이나 차지하고 있었다.

갈림길도 많고, 한쪽 벽을 따라 걸어가도 출구가 나오지 않게 되어 있었다.

거기다, 그냥 걸어서는 결코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여기, 이 돌이 이상해요."

공주가 가리킨 벽에 박힌 돌을 힘껏 밀어 넣었다.

마나를 써서, 보통 사람에 몇 배의 힘을 써야 겨우 돌이 움직였다.

쿠구궁.

돌이 움직이자, 반대쪽 벽이 아래로 내려앉았다. 새로운 통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막다른 곳에 숨겨진 길이 있었다.

지도에 다른 색으로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면 나도 쉽게 찾기 어려웠다.

미로는 복잡할 뿐만 아니라 함정도 있었다.

"멈춰요! 그 앞은 함정입니다!"

공주가 내딛던 발을 허공에 두고 눈을 껌뻑였다.

나는 공주를 잡고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지도에 함정이 다른 색으로 표시되어 있기는 했지만, 정확히 무슨 함정인지는 알기 어려웠다.

나는 벽에 박힌 돌을 깨어 공주가 밟으려던 바닥에 힘껏 던졌다.

캉!

돌이 바닥에 튕기고,

슈아악!

벽에서 거대한 낫이 튀어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

공주가 몸을 움찔 떨었다. 내가 막지 않았으면 저 낫에 몸이 잘려 나갔을 게 분명했다.

나는 놀란 공주를 가라앉힐 겸 유적을 만든 사람들을 욕했다.

"도무지 왜 이런 미로하고 함정을 만들었는지 모르겠네. 대단한 걸 숨겨 놓으려면 그냥 단단한 금고나 만들면 될 텐데."

그냥 별생각 없이 떠든 말이었는데, 공주가 내 말에 답했다.

"고대 제국 때의 유행이었대요. 자신의 재력과 권력을 자랑하려는 방법이라고 들었어요."

맙소사. 뭔가 제대로 된 이유가 있는 줄 알았는데, 결국, 돈 많은 놈들의 자랑질이었다니.

결국, 미로는 전생의 시계, 가방, 자동차 같은 거였다는 말인가.

뜻밖의 비사를 들은 나는 왕실에 있다는 도서관이 더욱 궁금해졌다.

공작의 저택에 있는 서재에도, 다른 곳에서도 고대 제국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다.

분서갱유나 문화대혁명 수준의 역사 소거였는데, 그래도 왕실 도서관에는 자료가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쨌거나 지도 덕분에 함정도 피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도로도 알 수 없었던 것이 있었다.

"앞으로 굴러요!"

내 말에 공주가 앞으로 몸을 던졌고, 그 순간 벽을 뚫고 구더기 마물이 튀어나왔다.

"죽어!"

나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한입에 사람을 삼킬 정도로 큰 구더기였지만,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검에 반으로 잘려 나갔다.

마물들은 지도에 나와 있지 않았다.

원래 이 유적이 만들어졌을 때는 없었을 마물이었기에, 항상 긴장해야 했고, 처음 나타났을 때는 꽤 위험했었다.

그래도, 다행히 숫자가 많지 않았다. 이 아래까지 내려온 마물은 많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미로에서 길을 찾고, 함정을 피하고, 마물을 처리한 뒤에 우리는 유적의 중심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