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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98화 (98/563)

제98화

제23편 유적으로

'많은 수의 인간이 한자리에 모여 있으면 더 많은 마물이 몰려든다.'

현장학습 때 들었던 봉인지와 마물에 대한 정보는 사실이었다.

나는 우리를 향해 몰려드는 마물로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었다.

백 명에 가까운 인원에게 달려드는 마물의 숫자는 우리의 배 이상이었고,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여러 종류의 마물이 동시에 달려든다는 것이었다.

사람이 없으면 자신들끼리 생태계를 만드는 마물들이지만, 사람이 나타나면 먹이가 되는 마물과 포식자 마물이 일제히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적은 인원이면 대부분 한 종류의 마물만 상대하게 되지만, 이렇게 대단위 인원이 움직이면 멀리까지 여러 종류의 마물을 끌어당길 수밖에 없었다.

"부대 정렬!"

선두에 선 왕실 기사단이 검을 뽑아 들고 몰려오는 마물들을 상대했다.

그들은 상속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귀족이 기사가 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

가속 능력자가 앞으로 튀어 나가 먼저 달려오는 들개 마물들을 흩어 버렸고, 힘과 체력이 강화된 육체 강화 능력자들은 방패를 들어 올려 마물의 진격을 막아 냈다.

그리고 한 걸음 뒤에 물러서 있던 마나 심법 능력자들은 방패를 든 기사들 사이로 빠져나와 멈춘 마물들의 몸을 그대로 갈라 버렸다.

수십 번, 수백 번 합을 맞춘 것처럼 물이 흐르는 듯 자연스러운 연계 공격이었다.

그렇게 마물들의 초기 공격은 무너뜨렸지만, 아직 달려드는 마물들의 수는 많았다.

쓰러진 마물들에 이어 여러 종류의 마물들이 앞쪽 숲에서 튀어나왔다.

"화염구!"

쓰러진 마물들을 건너뛰던 여러 마리의 마물들이 기사들 뒤에서 날아온 불덩어리에 쓸려 나갔다.

이어서, 물로 만든 칼날이 계속 튀어나오는 마물들을 썰어 버렸고, 넝쿨들이 움직여서 마물들을 묶어 버렸다.

또한, 전기가 쏟아지고 공기가 폭발하기도 했다.

뒤쪽에 있던 귀족 장교들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역시 상속 능력으로 만든 광역 공격은 기사들의 능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던 마물들의 수가 확 줄어 버렸다.

귀족 장교들과 함께 상속 능력 학부 학생들도 마물에게 자신의 능력을 뽐냈지만, 귀족 장교들과 달리 제대로 된 피해를 주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두세 명씩 짝을 지어서 한 타깃을 공격하는 게 좋을 걸세."

그래도 귀족 장교들이 그들에게 조언해 준 덕분에 학생들도 조금씩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기사 학부 학생들은 처음 계획했던 대로 귀족 장교들과 상속 능력 학부 학생들을 빙 둘러싼 채로 마물들의 공격에 대비했다.

왕실 기사단은 정면을 막는 방패였고, 우리 기사 학부는 갑옷, 귀족 장교들과 상속 능력 학부는 무기였다.

진형을 짠 윗분들은 유적 탐사대를 하나의 기사처럼 운용할 생각이었다.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고 실제로도 효과적인 진형이었지만, 기사 학부 학생들에게는 그리 좋은 작전이 아니었다.

앞으로 계속 나아갔기 때문에 마물의 주력은 왕실 기사단과 충돌했지만, 이곳 봉인지는 사방에서 마물이 쏟아져 나오는 곳이었다.

마물들은 다른 방향에서도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기사 학부 학생들로 이루어진 갑옷은 왕실 기사단으로 구성된 방패만큼 튼튼하지 못했다.

갑옷이 날아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갑옷 여러 곳이 망가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예상보다 격렬한 공격에 나는 공주 옆에 붙어서 최선을 다해 마물들을 상대했다.

최대한 주변을 살펴 다른 학생들도 도와주었지만, 내가 제일 신경 써야 하는 사람은 역시 아이샤 공주였다.

처음에 들이닥친 마물들처럼 많은 숫자가 계속 밀려오지는 않았지만, 숲을 나아가는 동안 마물들은 끊임없이 공격해 왔다.

기사 학부 학생들은 한두 명씩 다치기 시작하더니 결국 사망자가 나왔다.

제일 먼저 죽은 사람은 예상과 달리, 나에게 친절하게 말을 건 3학년 선배였다.

차세대 왕실 기사단 단장을 꿈꾸던 그였지만, 죽음의 칼날을 피하지는 못했다.

아니, 그의 착한 성격이 그를 죽게 만들었다.

주변에 있던 학생들을 도우려고 몸을 사리지 않았던 탓에 남들보다 먼저 죽음을 맞게 된 것이다.

역시 전쟁터는 착한 사람이 제일 먼저 죽는 곳이었다.

마물들은 수시로 우리를 공격했지만, 우리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마물들의 공격이 멈추었을 때 잠시 대기하며 체력을 회복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이동과 전투가 계속 이어졌다.

오전과 오후, 밤이 될 때까지 학생 두 사람이 더 죽었다. 모두 기사 학부 학생들이었다.

50년 전 차이프리 가문의 기사단이 유적 탐사에 실패한 것이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4, 5명의 소규모 팀이라면 모를까, 대규모 인원이 봉인지를 가로지르는 것은 웬만한 준비로는 살아남기 어려워 보였다.

왕실 기사단과 귀족 장교, 거기다 왕립 아카데미 교수와 학생들로 이루어진 탐사대에서도 이렇게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일개 가문의 기사단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차이프리 백작도 그것을 깨달았는지, 갈수록 표정이 안 좋아졌다.

밤이 되기 전에 탐사대는 쉴 곳을 찾아냈다.

숲 가운데 탐사대 전체가 머물 만한 큰 공터가 있었다.

주변에 나무가 없어 시야가 확보되었고, 땅도 평탄해서 잠자리를 만들기에도 좋아 보였다.

일행이 자리를 잡자, 학장이 공터 중앙에 전에 보았던 상자를 설치했다.

현장학습 때 보았던 물건이었다. 상자를 설치한 일정 공간을 마물의 시야에서 벗어나게 해 주는 대단한 유물이었다.

학장이 상자를 열자 빛기둥이 하늘로 치솟았고, 그 순간 주변 공기가 달라졌다.

경계 인원을 따로 두고, 사람들은 식사 준비와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그곳에서 유물 가방과 귀족 장교의 아공간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되었다.

가방과 아공간에서는 각종 식자재와 야영 장비가 끊임없이 튀어나왔고, 거의 맨몸으로 온 사람들은 이곳이 봉인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풍족한 식사 준비와 안락한 야영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유물 주머니에 개인용 장비와 음식 재료를 가득 들고 왔는데, 몰래 꺼낼 필요도 없어 보였다.

"뭔가, 진 것 같은 느낌이네."

"뭐가 진 것 같은데요?"

혼자서 투덜거리고 있을 때, 발레아가 툭 하니 치고 들어왔다.

분명, 이곳은 기사 학부생들이 모여서 야영하는 곳이었다.

발레아는 당연히 상속 능력 학부였고.

하지만, 그녀는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우리 쪽으로 넘어와 여학생들과 수다를 떨었다. 그것도 내 옆에 찰싹 붙어서.

상속 능력 학부에도 친구가 많은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여기에 끼어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여기에 왜 온 겁니까?"

"당연히! 다들 울적해할 것 같아서 위로해 주러 왔죠."

내 질문에 그녀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말대로 기사 학부의 분위기는 그리 좋지 않았다.

하루 동안 동료이자 친구가 셋이나 죽었기 때문이다.

사망자는 전부 2, 3학년에서 나왔다.

덕분에 1학년들은 상급생 눈치를 보느라 조용했고, 2, 3학년들은 억지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분위기는 착 가라앉아 있었다.

"저는 상속 능력 학부잖아요.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거죠."

기사 학부가 아니라도 충분히 주변의 눈치를 봐야 했다.

역시, 이해하기 힘든 여자였다.

그래도 그녀가 공주와 다른 여학생들과 수다를 늘어놓은 덕분에 어두운 분위기가 조금은 밝아졌다.

하지만, 벌써 여러 번 죽음을 본 브리아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할까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일까? 전생보다 훨씬 터프한 세상이었지만, 동료의 죽음을 보고 힘들어하는 것은 전생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별생각 없이 그녀의 질문에 대답했다.

"하루 정도만 더 가면 될 거예요."

하지만, 내 말에 질문한 주변 사람들이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어, 어떻게 그걸 아세요?"

"저도 못 들은 내용인데요."

사람들이 의아해하고 공주가 고개를 젓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괜한 걱정에 실수한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일정을 알 리가 없었다.

왕실 기사단의 선임 기사도, 학장도, 차이프리 백작도 우리에게 일정을 알려 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 방법이 있긴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도의 앞면에는 유적까지 가는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물론 지도가 그려진 당시에는 이곳이 고대 제국의 중심부였고, 마왕이 봉인된 지금은 숲과 넝쿨로 뒤덮였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오니 지도와 맞춰 볼 수 있을 만한 지형을 찾을 수 있었다.

'차이프리 백작가가 지도를 보고 유적을 찾아 헤맸을 테니, 나도 가까이 가면 알아볼 수 있는 게 당연하겠지.'

나는 지금도 지도의 앞면에 그려진 지형과 비슷한 지형을 찾을 수 있었다. 공터 옆을 흐르는 작은 강도 지도에 나와 있었고, 멀리 보이는 바위산도 지도에서 찾을 수 있었다.

대충 반 정도 온 것 같으니, 하루만 더 걸으면 될 것 같았다.

지도는 더 자세하게 적혀 있었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의 표식이 우거진 숲에 묻혀 찾기가 불가능했다.

그래도 우리가 제국의 중심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잘 알 수 있었다.

내 눈앞에도 깨진 그릇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고대 문양. 고대 제국의 그릇이었다.

이런 딴생각을 한참 해 버렸다.

아직도 사람들은 나를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살짝 들었습니다."

결국,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내 말에 공주와 다른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발레아는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분명 딱 봐도 저 눈은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우리가 유적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근처에 있는 다른 1학년 학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름이 레오넬이었지.

현장 학습 때 일주일을 같이 보낸 남학생이었다.

"그건 그렇죠. 우리는 유적 전문가도 아니니까요."

"귀족 장교분들하고 왕실 기사단도 같이 왔으니 그분들이 유적을 탐사하겠죠. 우리야 입구를 지키게 되려나요."

다른 학생들도 떠들기 시작했다.

하루 만에 초긍정적이었던 학생들이 현실로 돌아왔다.

"그렇게 생각하면 다들 괜한 신경전을 벌였는지도 모르겠네요. 다른 실습 조와 별 차이도 없는 것 같고."

회의를 느끼는 학생도 있었고.

"그래도 왕실 기사단 단원들을 봤으니, 면접에서 가산점이라도 붙겠죠."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보고 싶어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공주를 잠깐 확인했다.

아직 어린 소녀였지만, 어른처럼 침착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공주는 나와 다르게 진짜 천재처럼 보였다. 당연히 두 오빠의 눈에도 그렇게 보였을 거고.

공주는 유적에 들어가게 될 게 분명했고, 공주가 가면 나도 유적 탐사를 하게 될 것이었다.

* * *

다음 날, 학생 한 명을 더 잃은 탐사대는 저녁 무렵에야 오래된 폐허에 도착했다.

폐허 안에는 유적으로 통하는 길이 있었고.

공주는 몇몇 학생들과 함께 유적 탐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몇몇 학생들 중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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