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화
제20편 복귀
슈우우웅 팡!
하늘에 다시 신호탄이 올라갔다. 이번에는 흰색의 신호탄.
흰색은 신호탄을 본 사람은 모두 신호탄으로 위치를 알려 달라는 신호였다.
악셀 기사가 신호탄을 쏜 뒤에 우리 모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른 곳을 수색하고 있는 기사들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지 않을까 해서였다.
한참을 기다렸지만, 다른 신호탄은 올라오지 않았다.
어차피 구조 요청 때 신호탄이 올라오지 않았기에 별로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더는 다른 기사들의 생존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미로 기사와 악셀 기사는 나와 함께 카트린 교수님과 학생들이 기다리고 있는 동굴로 향했다.
혼자 이동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무 위로 가지는 못했다.
그 때문에 동굴까지 가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다들 괜찮습니까?"
"어서 오세요."
기사들도, 동굴에서 기다리던 카트린과 학생들도 서로를 보고 기뻐했다.
기사들은 나에게 그동안의 일을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학생들이 살아 있는 것을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고.
카트린과 학생들은 자신들을 구하러 온 기사들이 무사해서 반가웠기 때문이다.
다만, 기사들의 상당수가 죽거나 실종되었고, 학생 중에서도 실종자가 나왔기에 그들 모두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나는 눈앞의 메시지를 읽고 있었다.
[위기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이 설정되었습니다.]
예상했던 저장 시점이지만,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애매한 시간과 위치였다.
다른 이벤트로 '저장 시점'이 만들어지지 않는 한, 죽으면 이 시간과 이 장소에서 다시 시작하게 될 터였다.
'뭐, 몇 년을 반복한 적도 있으니까.'
나는 메시지를 치워 버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일행에게 다가갔다.
* * *
봉인지에서 지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우선 식량이 문제였다.
기사들이 각자 준비한 일주일분의 식량이 있었지만, 학생들은 하루 이틀 분량밖에 없었다.
식량만 문제가 없다면 동굴 안에서 돌아갈 때까지 계속 머물렀겠지만, 아쉽게도 숲에서 모자라는 식량을 구해야 했다.
우리는 낮 동안 먹을 수 있는 나무 열매와 동물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봉인지의 숲은 식용 열매와 동물보다 마물의 수가 더 많았다. 열매와 동물을 구하는 것보다 마물과 싸울 때가 더 많았다.
다행히 학생, 기사들과 카트린까지 도와주어서 겨우겨우 식량을 마련할 수 있었다.
거기다, 동굴도 마냥 안전한 곳은 아니었다.
어느 날은 밤에 마물들의 습격을 당하기도 했다.
모두 나서서 공격해 온 마물들을 처치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날 밤은 모두들 뜬눈으로 밤을 새울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다른 장소로 거처를 옮길까 고민도 해 봤지만, 마지막 날까지 근처에서 더 좋은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많은 일이 있었고, 고생도 많이 했지만, 마지막 날에는 고생한 만큼 다들 꽤 친해져 있었다.
학장이 돌아오겠다고 말했던 7일째 아침.
우리는 처음 목적지인 공터로 향했다.
교수 한 명과 기사 두 명, 그리고 나를 포함한 학생 다섯 명.
총 8명이 숲을 가로질렀다.
일주일 내내 길잡이 역할을 했던 내가 앞장을 섰다.
하지만, 길잡이는 그리 필요하지 않았다.
얼마 가지 않아, 전방에 빛기둥이 치솟았기 때문이었다.
기사들이 마지막 남은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슈우우웅, 팡!
푸른색 연기가 하늘을 수놓았다.
푸른색. 생존자를 찾았다는 신호였다.
* * *
"살아 있었군요!"
공터에 도착하자, 학장이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맞이했다.
학장과 같이 온 기사들도 살아 돌아온 우리를 보고 놀란 눈치였다.
신호탄을 보기는 했지만, 학생 대부분이 살아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여기 온 인원이 전부입니까?"
학장의 말에 미로 기사와 카트린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틈나는 대로 살펴보았지만, 다른 기사들을 찾을 수 없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많고 할 말도 많지만, 지금은 우선 아카데미로 돌아갑시다."
학장은 빛을 쏘아 내던 상자를 닫은 뒤에 우리와 그를 호위하던 기사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자, 그는 마법진을 가동했다.
그의 손짓에 마나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가득 모인 마나는 우리를 감싼 뒤에 멀리 하늘 너머와 연결되었다.
"출발합니다!"
학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상이 출렁거렸고, 다음 순간 우리는 아카데미에 도착해 있었다.
* * *
넝쿨이 가득한 숲 대신, 딱딱한 돌벽이 카트린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곳은 봉인지로 출발할 때 있었던 건물 안이었다.
"카트린!"
안도의 숨을 내쉬던 카트린의 품에 작은 아이가 안겼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아직 어린 소녀인 아이샤 공주였다.
그녀는 카트린의 옷을 잡고,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더러워. 냄새도 나고."
"괜찮아. 하나도 안 더러워. 카트린이 무사히 돌아온걸."
무서운 왕과 오빠들 때문에 너무 빨리 어른 흉내를 내게 된 조카였다.
기특하면서도 걱정되었는데, 지금은 가면을 벗어던지고 그녀의 품에서 아기처럼 울고 있었다.
공주의 우는 모습을 보니, 카트린은 자신의 조카가 더욱 안타까웠다.
그녀는 조용히 공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고, 잠시 뒤에 공주는 울음을 멈추고 다시 어른의 얼굴을 했다.
아쉽지만, 이제는 공주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시간이었다.
"아이샤가 알렉스를 보냈다며."
"네. 알렉스 공자에게 무리한 부탁을 했어요."
"알고 있으면 됐어. 그래도 아이샤가 부탁한 덕분에 모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어. 알렉스 덕분에 모두 살아서 돌아왔어."
"정말인가요? 당장 알렉스 공자에게 감사 인사를 해야겠어요."
"그리고 무사히 돌아온 학생과 기사들도 위로해 주고."
"네!"
자신의 결정 덕분에 모두 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까. 공주는 밝은 얼굴로 알렉스에게 다가갔다.
카트린은 공주와 이야기를 나누는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알렉스 주위에 공주 이외에도 여러 학생이 모여 있었다.
일주일을 같이 보낸 브리아도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알렉스 옆에 있었고, 발레아라는 이름이었나? 상속 능력 학부의 여학생도 그에게 수건을 건네주고 있었다.
"뭔가 이상하게 준비성이 있네."
그녀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같이 일주일을 보낸 학생들도 그와 아는 척을 했고, 같이 있던 기사들도, 미리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남학생도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처음 아카데미에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직 모른 척하는 학생도 많은 것 같지만,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거지."
왕비에게 추천하고, 아카데미로 불러온 당사자로서 눈에 보이는 광경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카트리네 교수님,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그때, 학장이 그녀를 불렀다. 그는 미로 기사도 부른 뒤, 주변에 마나로 방음벽을 쳤다.
"피곤하실 것 같지만, 짧게라도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를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학장은 봉인지에서는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지만, 아카데미 학생들은 모두 각성한 귀족들이었다.
왕비의 여동생인 교수를 포함해 학생들의 실종은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
학장 자신을 포함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알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카트린은 실종부터 돌아올 때까지의 이야기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했다. 기사들과 합류한 다음은 미로 기사가 카트린의 말에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 이야기했다.
주의 깊게 이야기를 들은 학장은 카트린과 기사의 말이 끝나자 미소를 지었다.
"공주에게도 들었지만, 알렉스 학생이 정말 많은 일을 했군요. 최소한 추가 학점 정도는 주어야겠습니다."
학장의 말에 미로 기사도 알렉스를 칭찬했다.
"네, 인성은 물론이고 실력도 대단했습니다. 어떤 능력인지 모르겠지만, 웬만한 기사보다 강했습니다."
"그레시아 공작의 아들이니까요."
공작 일가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카트린은 학장의 말에 굳이 딴죽을 걸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로 기사와 수색대에 참가하신 기사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돌아오시지 못한 분들의 가족에게는 따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학장은 미로 기사에게 감사를 표했다.
학장의 말이 일종의 축객령이라는 것을 안 기사는 학장에게 인사를 하고 다른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방음벽 안에는 학장과 카트린만 남게 되었다.
학장의 표정이 바뀌었다. 그는 굳어진 얼굴로 카트린에게 말했다.
"교수의 말대로라면 라이드 학생이 길을 잘못 들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겠죠?"
카트린 말고 듣는 사람은 없었지만, 학장의 목소리가 전보다 작아져 있었다.
학장의 물음에 카트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황상 라이드가 뭔가를 노리고 우리에게 능력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커요. 하지만, 가능성일 뿐이에요.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그냥 우연일 수도 있고……."
카트린은 끝까지 다른 이유를 찾아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도,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학장도, 모두 라이드가 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학장이 고개를 저었다.
"라이드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도 이번에는 단순한 사고로 보고할 수밖에 없어요. 당사자도 실종되었고, 증거도 없으니 정황만 가지고 백작 아들을 범인으로 몰 수는 없으니까요."
학장의 말에 카트린도 동의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그편이 덜 괴로울 것 같았다.
"다만, 사고로 보고하게 되면 카트리네 교수의 평점이 깎일 겁니다. 월급이 몇 개월 정도 감봉될 겁니다."
학장은 미안해했지만, 카트린은 별 상관이 없었다. 그녀의 가문은 백작가이고 언니가 왕비이며, 용병으로 벌어 둔 돈도 꽤 있었다.
아카데미 교수직을 맡은 것도 아이샤 공주 때문이었고, 평점과 감봉은 그녀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 * *
카트린과 학장이 오랫동안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내 이야기가 아니라, 라이드 이야기일 게 분명했다.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동안의 일을 되짚어 보면 라이드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당사자는 실종, 아니 마물에게 먹혀 버렸고, 다른 증거가 없으니 이 일은 의심만 품은 채로 묻혀 버릴 게 뻔했다.
카트린과 학장을 보고 있는 사이에 내 옆에서는 발레아와 브리아가 봉인지에서 있었던 일을 떠들고 있었다.
"알렉스 공자가 마지막에 떡하니 나타나서 모두를 구했다는 거죠?"
"그때는 정말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줄 알았다니까요."
발레아와 브리아는 다시 만난 것에 기뻐하며 그전보다 더 단짝이 된 것 같았다.
"카트린 교수님의 조가 다른 길로 빠진 걸 알게 된 뒤에 공주님이 두 손을 모으고 알렉스 공자님을 바라보았단 말이죠. 그걸 본 공자님이 '공주님이 원하신다면 목숨을 걸고 제가 가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홀로 숲으로 사라져 버렸어요."
"오! 그렇게 공자님이 우리를 찾아오신 거군요."
그 와중에 발레아는 내가 한 말을 엄청나게 과장해서 떠들어 댔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얼굴이 뜨거워져서 도저히 이곳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다른 학생들도 돌아가는 중이고, 공주도 인사를 한 뒤에 돌아간 모양이니 나도 슬슬 기숙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첫 현장학습. 첫 봉인지 방문에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이번에는 내가 사건을 찾아간 것이었지만, 아무래도 평범한 아카데미 생활은 불가능한 것 같았다.
탁, 탁.
옆구리에 차고 있는 주머니를 두드렸다.
그래도 보상이 있으니 마음이 흡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