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88화 (88/563)

제88화

제13편 수색 (2)

하루 전.

봉인지로 옮겨진 카트린이 담당한 조는 봉인지의 낯선 환경에 금방 적응했다.

"브리아와 레오넬이 선두, 라이드와 헤수스가 뒤를 받치도록. 미리사는 마물이 등장하면 레오넬에게 능력을 사용해."

"네!"

다른 조처럼 기사 학부의 두 학생을 전방에 세우고, 상속 능력 학부의 두 학생과 행정 학부인 미리사를 뒤에 배치했다.

그녀는 미리사의 능력을 기사 학부에서 능력이 떨어지는 레오넬에게 사용하도록 했다.

브리아는 기사 학부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실력자였고, 상속 능력 학부의 라이드는 신입생 선서까지 한 대단한 가문에다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었다.

거기다, 카트린이 뒤에서 학생들을 지키니 카트린의 조는 딱히 힘들지 않게 마물들과 싸울 수 있었다.

크아아앙!

곰처럼 생긴 푸른 털의 마물이 뒷다리로 일어나서 괴성을 질렀다.

일그러진 얼굴. 입 안에서 타오르는 푸른 불꽃.

브리아와 레오넬이 앞에서 마물을 막아섰고, 마물은 푸른 화염을 쏘아 냈다.

콰아아아아!

입에서 뿜어져 나간 화염은 막아선 두 학생 쪽이 아니라 엉뚱한 곳으로 쏘아졌다.

"잘했어!"

"저항이 강해서 오래 못 버팁니다!"

마물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던 라이드가 숨을 헐떡였다.

기사 학부 두 학생이 그 틈에 마물을 공격했다.

마물은 머리를 흔들며 혼란스러워했다.

덕분에 다른 학생들의 공격을 버티지 못했고, 카트린이 나설 것도 없이 금세 쓰러지고 말았다.

"라이드 학생, 수고했어요. 마물을 상대하기 좋은 능력이네요."

카트린의 말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라이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봤자, 가문에게 그리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요."

그의 말에 카트린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라이드의 능력은 그의 가문의 능력이 아니라 어머니 쪽인 외가의 능력이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안정적으로 마물들을 쓰러뜨리며 전진하던 카트린의 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갑옷과 뼈만 남은 오래된 시체 하나가 그들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기사인가. 상당히 오래된 시체인데……."

"설마 아카데미 기사인 건가요?"

"제국 기사 아냐?"

카트린의 말에 시체에 다가온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음. 갑옷에 문양이 아직 남아 있네. 문양을 보면…… 차이프리 백작가…… 기사인 듯한데."

학생들은 모두 라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는 시체에 다가와 낡은 갑옷을 쓰다듬었다.

"저희 기사단 갑옷이 맞습니다. 아마 봉인지로 출정을 왔던 기사들 중에 복귀하지 못한 기사인 것 같습니다."

마왕과 용사들의 마지막 전투와, 인류와 마물의 혈투가 있었던 봉인지는 남은 마물 때문에 접근을 금하는 금지 구역이 되었다.

하지만, 금지로 지정된 뒤에도 많은 가문과 국가, 개인이 봉인지로 기사단과 용병, 능력자들을 보냈다.

위험천만한 곳이었지만, 그만큼 기회의 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봉인지에서는 마왕과의 싸움으로 이 땅에 묻힌 용사, 기사, 군인, 신관들의 유품과 유물이 계속 발견되었고, 아직도 남아 있는 던전과 대단한 부산물을 얻을 수 있는 마물까지 가득한 곳이었다.

라이드는 담담한 얼굴로 시체 옆에 놓인 낡은 검을 챙겼다.

기사의 유품으로 가져갈 생각인 것 같았다.

'생각보다 그리 오래된 것 같지는 않은데, 50년 정도 되었나?'

좀 더 살펴보니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얼마 안 된 시체였지만, 50년 이상 된 시체이니 라이드가 알지 못하는 일일 가능성이 컸다. 그의 담담한 태도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모두 시체에 묵념한 뒤에 길을 떠났다. 마지막까지 시체 옆에 남아 있던 라이드가 가방에서 반지 하나를 꺼냈다.

그는 반지를 손가락에 낀 뒤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반지가 붉게 변했다.

반지를 확인한 라이드가 굳은 얼굴로 일행을 따라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번 더 마물을 처치한 일행은 라이드의 요청으로 합류 지점의 빛을 확인했다.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던 브리아가 아래로 내려와 의외의 말을 꺼냈다.

"방향이 잘못되었습니다. 길을 잘못 든 것 같습니다."

"정말이야?"

브리아의 말에 카트린은 눈살을 찌푸렸다.

길을 잘못 들다니, 그동안 이런 실수를 한 적은 없었는데…….

하지만, 실제로 브리아가 직접 확인한 결과였다.

일행은 브리아가 말한 방향으로 진로를 바꾸었다.

그 뒤로 일행은 계속 걸었다.

마물들도 계속 나왔고, 점점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걸어가는 동안, 카트린은 수시로 방향을 확인했다.

브리아 뿐만 아니라 카트린 본인도 나무 위로 올라가서 방향을 확인했다.

'목적지가 너무 멀어. 왠지 봉인지 중심 쪽으로 향하는 느낌도 들고.'

해가 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빛이 가리키는 목적지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너무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학생들에게 불안감을 안겨 줄 수는 없었다.

"조금만 더 가면 돼. 모두 힘내!"

서두르기 위해 그녀도 적극적으로 싸움에 임했다.

그렇게 일행은 노을이 지기 시작할 무렵 빛이 가리키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공터도 아니었고 빛을 내뿜는 상자도 없었다.

거기다 학장과 다른 학생들도 없었다. 대신, 마물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붉은 꽁지깃이 달린 다리 여섯의 도마뱀 마물들이었다.

"이게 뭐야!"

"다들 물러서! 진형을 갖춰!"

카트린이 모두에게 외쳤고 학생들도 정신을 차리고 진형을 갖추었지만, 마물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설마 마물들의 둥지?'

너른 분지에 나뭇가지와 넝쿨로 이루어진 두꺼운 바닥. 그리고 다른 마물들보다 몇 배는 큰 마물이 중앙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쿠에에엑!

큰 마물이 괴성을 지르자, 둥지에 있는 마물들이 모두 일행에게 달려들었다.

일행이 상대할 만한 숫자가 아니었다.

카트린이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모두에게 말했다.

"내가 뒤를 지킬 테니, 모두 달려!"

카트린의 고함에 일행은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움직였다.

서걱!

몰려드는 도마뱀 마물의 몸을 베어 가며 카트린은 뒤에서 일행을 지켰다.

열심히 마물을 베었지만, 카트린 혼자서 마물들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처음부터 낙오됐는지 라이드는 초반부터 모습이 보이지 않았고, 그가 빠진 탓에 다른 학생들은 쉽게 마물들의 공격을 당했다.

빛 능력자인 헤수스가 제일 먼저 마물들에게 휩쓸렸다.

광원을 터트려 눈을 공격하는 능력을 지닌 헤수스였지만, 안타깝게도 마물에게 공격받았을 때는 아직 노을이 사라지지 않을 때였다.

번쩍거리는 빛과 함께 헤수스는 먼저 달려드는 도마뱀 마물에게 머리가 뜯겨 나갔다. 다른 부분들도 밀려오는 마물들에 파묻혀 일행의 뒤에 남겨졌다.

헤수스가 죽자, 충격을 받은 미리사가 그다음으로 죽었다.

다른 사람의 능력을 증폭시켜 주는 능력을 가진 미리사였지만, 그 자신은 싸울 줄 모르는 조금 튼튼한 능력자일 뿐이었다.

미리사가 죽자, 증폭된 능력이 원래로 돌아온 레오넬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그렇게 학생들이 한 명씩 죽어 가는 동안, 카트린은 필사적으로 마물들을 쓰러뜨렸다.

방패로 마물들을 쳐 내고, 일렁이는 검으로 검이 닿지 않는 마물들을 죽였다.

대단한 실력이고 훌륭한 활약이었지만, 그녀 혼자의 힘만으로는 학생들을 지킬 수 없었다.

결국, 대다수의 학생을 잃고 그녀도 큰 상처를 입은 뒤에야 마물들의 추적을 겨우 뿌리칠 수 있었다.

마물들이 둥지로 돌아가자, 카트린과 홀로 남은 브리아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잘했어."

카트린의 말에 브리아가 우울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카트린은 더는 걷기 힘들어 보였다.

그녀의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찢어지고 갈라지고, 특히 옆구리가 뜯겨 나가서 창자가 보일 지경이었다.

강력한 각성 능력자라 저 큰 상처에도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거지, 보통 사람이었으면 이미 쇼크사 했을지도 모른다.

"다들 죽었겠죠?"

브리아의 말에 카트린은 뭐라 말할 수 없었다.

"거기다 밤이 되었어요.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하는 거죠?"

이번에는 카트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늦은 거네요."

"수색대가 출발했을 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돌아갔을 테고요. 그리고 수색대가 올 때까지 밤을 보내야 하잖아요."

아쉽게도 카트린의 말은 브리아를 안심시키지 못했다.

거기다 브리아는 어느 정도 봉인지와 현장학습에 대해 공부해 온 듯했다.

아쉽게도 카트린은 고통 때문에 브리아를 위로해 주지 못했다.

브리아는 이곳까지 참 잘 싸워 왔는데. 카트린이 점수를 준다면 100점에 가까웠다.

"큭, 여기서 수색대를 기다리자. 밤에는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아."

그녀 말대로 봉인지의 밤은 낮보다 훨씬 위험했다. 괜히 설치다가는 죽기 딱 좋았다.

카트린은 억지로 팔을 움직여 가슴에 포션을 뿌리고 붕대를 감았다.

통증이 몇 배 더 심해졌다. 포션을 뿌렸기 때문이었다. 포션은 상처를 몇 배나 빠르게 낫게 해 주었지만, 그만큼의 고통을 주기도 했다.

한쪽 나무에 기대어 무릎을 감싸 쥐었던 브리아도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카트린의 말을 이해했다기보다는 지치고 충격을 받아 무심코 고개를 끄덕인 것 같았다.

그때였다.

저벅, 저벅.

가까이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윽!"

카트린이 신음을 흘리면서도 검을 치켜들었다.

우울증에 가까운 상태였던 브리아도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헉, 헉, 저, 접니다. 라이드."

숲속에서 등장한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닌, 제일 처음 낙오됐던 라이드 공자였다.

"살아 있었군요!"

브리아가 환한 얼굴로 라이드를 환영했다.

대신 카트린은 살아 돌아온 라이드를 보고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는 바람에 낙오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갔습니까?"

라이드는 어두워지는 브리아와 카트린의 표정으로 여기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교수님이 여기서 기다리자고 하시네요. 수색대가 올 거라고."

브리아의 말에 라이드는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살아남았어요?"

브리아는 라이드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낙오된 뒤에 조심스럽게 숲이 파괴된 흔적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다행히 안 걸려서 이곳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일행이 도망치면서 낸 흔적이었다. 그래도 라이드라도 살아서 돌아와 주니 브리아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브리아가 빨개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생리현상은 어쩔 수 없었다.

브리아가 수풀 속으로 사라진 뒤에 라이드가 카트린에게 다가왔다.

그는 옆구리 상처를 확인한 뒤에 다시 자리로 돌아가려 했다.

그가 몸을 돌렸을 때, 그의 등 뒤에서 카트린의 말이 들려왔다.

"헉, 헉, 왜 능력으로 경로를 바꾸었죠?"

그는 몸을 돌려 카트린을 바라보았다.

"학, 하악, 왜 일부러 낙오한 거죠?"

그는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로 반쯤 죽어 가는 카트린을 노려보았다.

"무슨 소리입니까? 경로를 바꾸다니요. 낙오된 이유도 지금 설명했잖습니까?"

"하악, 하악, 라이드 당신의 능력은 감각 교란이잖아요. 마물의 시각, 청각, 후각까지 다 교란하는데 사람도 충분히 가능하잖아요. 하아, 우리가 나무 위에 올라갈 때마다 시각을 교란해서 빛의 위치를 바꾼 거 아닌가요?"

카트린의 말에 라이드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

"도대체 무엇을 찾으려고 낙오를 한 건가요? 설마, 옆구리에 차고 있는 주머니 때문인가요?"

라이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다시 카트린에게 다가가 귓가에 속삭였다.

"죄송합니다. 주머니를 알아차리지 못하셨으면 편히 가실 수 있었을 텐데요."

그는 팔을 뻗어 카트린의 목을 졸랐다.

카트린이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라이드를 안쓰럽게, 혹은 안타깝게 바라보다 결국 눈을 감았다.

잠시 뒤, 볼일을 보고 돌아온 브리아는 편하게 잠자는 듯이 누운 카트린을 보고 입을 막았다.

"더 버티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라이드는 안타까운 얼굴로 죽은 카트린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수색대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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