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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84화 (84/563)

제84화

제9편 현장학습 (2)

'자동 시점이 지금 설정되다니 조금 방심했나.'

죽지 않고 자동 시점이 설정된 게 지금까지 세 번이 있었다.

[봉인지에 도착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이 설정되었습니다.]

[봉인지]라…….

첫 번째 자동 시점은 [각성식]이었고, 두 번째는 [아카데미 입학]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봉인지].

특정 행사나 사건 말고도 일정 지역에 도착하는 것도 새로운 이벤트가 되는 모양이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겠고.

하기야, 마왕 봉인지니 중요한 건 당연했다.

돌이켜보면 하나하나 이해가 되었지만, 그건 일이 벌어진 뒤에야 깨달았을 뿐이었다.

매번 뒷북인 느낌이라 이럴 때면 나 자신이 조금 한심했다.

나는 두 손으로 뺨을 두드렸다.

'정신 차리자.'

"알렉스 님도 놀라셨나 봐요."

내가 뺨을 두드리는 것을 보았는지 옆에서 발레아가 말을 걸었다.

"네, 조금 놀랐습니다."

암, 놀랐고말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그리 멀리 흩어진 것은 아니에요. 조금만 걸으면 학장이 있는 집합 장소에 도착할 거예요."

내 말에 니엘 교수가 공주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저 교수도 참 일관성 있었다.

교수의 모습에 나는 마누엘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왜, 그런 표정으로 보지?"

그야, 니엘 교수에게 캐릭터와 자리를 빼앗겼으니까.

아직 마누엘은 어렸다.

이쪽 세상에서는 성인 취급이었지만, 전생이었다면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이니 실제로도 어렸다.

그러니 니엘 교수를 상대하기에는 아직 멀었다.

딱 봐도 마누엘은 공주 때문에 이 조에 참여했다.

내 실력을 알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나에 대해 혐오하는 것도 아니었고.

나와 같은 조라도, 가족이라 어쩔 수 없다는 이유가 있어 명예에도 별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니엘 교수 때문에 공주에게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공작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위치나 배워 온 귀족의 예절 같은 것 때문에 우물쭈물하다가 교수에게 새치기를 당한 것이다.

"다들 정신이 들었으면 준비하세요."

교수의 말에 일행은 정신을 차렸다.

이미 검을 뽑아 든 공주를 제외하고, 다른 일행들도 서둘러 무기를 뽑아 들었다.

마누엘은 집에서 가져온 명검을 손에 쥐었고, 발레아와 피아르도 형식적이나마 검을 들었다.

나도 등에 메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피아르와 아이샤 공주는 내가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검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분명 양손 검일 텐데……."

키가 전보다 커져서 처음 들고 다닐 때처럼 이상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한 손으로 드는 것은 무리일 것 같은 거대한 검이었다.

그런 검을 한 손으로 쉽게 잡고 있으니 놀라는 게 당연했다.

"전에 쓰던 단검은 이제 안 쓰시네요."

발레아는 얼마 전 자신과 싸웠을 때 쓰던 단검이 생각난 것 같았다.

"원래 이쪽이 주무기였습니다."

몸에 숨길 수 있고 능력을 활용하기 쉬워서 단검을 자주 사용했지만, 오랜 시간 배우고 훈련했던 것은 이 대검이었다.

우우웅.

나는 대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대검 끝에서 내 눈에만 보이는 붉은 아지랑이가 작게 피어올랐다.

이제는 단검을 들지 않아도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교수도 내 검을 신기한 듯이 보다가 금방 고개를 젓고, 공주에게 말했다.

"모두 출발하죠. 너무 늦으면 점수가 깎일지도 몰라요."

"어디로 가야 하죠?"

발레아의 물음에 모두 니엘 교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거대한 나무와 넝쿨로 가득한 주변을 살펴보더니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안쪽으로 이동된 건가? 이러면 찾기가 어려운데."

작게 중얼거리던 그녀는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더니, 결국 나를 바라보았다.

"그…… 기사 학부 맞아?"

"네."

말 걸기가 어려웠나? 모를 리가 없는데, 쓸데없는 것을 물어보고 있었다.

"그럼, 아무 나무 위로 올라가서 확인 좀 해 볼래?"

그녀의 말에 옆에 서 있는 나무를 확인했다.

양팔로 감싸 안기 어려운, 두껍고 높은 나무였다. 내가 아니더라도 육체 능력이 있는 상속 능력자라면 누구나 올라갈 수 있었다.

"저도 기사 학부인데요."

옆에서 공주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설마 공주님을 올라가라고 하지는 않겠지?"

오히려 나를 혼내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역시, 노련한 정치꾼이었다.

마누엘도 놀란 눈으로 교수를 바라보았다.

아니, 우리 착. 한. 형님에게 벌써 나쁜 물을 들이면 곤란한데…….

괜히 말린 기분에 뭔가 한마디 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우선 그녀의 말대로 하기로 했다.

"나무 위에서 뭘 찾아야 하나요?"

"올라가 보면 알아."

네에, 네에. 속으로 욕을 한 사발 하고, 나는 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마나를 손과 발에 두르고, 가지를 피해 쑥쑥 위로 올라갔다.

스파이더X가 부럽지 않은 속도였다.

그렇게 아파트 5층 높이까지 올라가니 나무 끝에 도달했다.

그 뒤에 주변을 살피자, 교수의 말대로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멀리 푸른 광선 한 줄기가 하늘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신기하네. 무슨 능력이지? 레이저 능력 같은 건가."

아니면 플래시 능력일지도.

아무튼 저 광선이 출발한 곳이 교수가 말한 목적지가 분명해 보였다.

나는 나무 위로 올라온 김에 주변을 살펴보았다.

아래에서 보았을 때는 나무와 덩굴이 가득한 정글이었지만, 이곳에서 보는 봉인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수해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지만, 멀리 눈 덮인 산맥도 보였고, 호수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다.

멀찌감치 점처럼 보이는 날짐승, 아니 마물도 보이고. 이 정도 거리에서 저 정도 보이면 생각보다 큰 마물이었다.

우지끈.

숲 한가운데 나무들이 쓰러지며 길을 내는 광경도 보였다.

"확실히 위험한 곳이네."

여기서 보니, 이곳이 봉인지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빛줄기를 확인한 뒤에 아래로 뛰어내렸다.

착.

작은 소리와 함께 바닥에 내려서니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모였다.

"빛줄기가 위로 솟아오르고 있는 곳을 보았습니다."

나는 빛줄기가 솟아오른 방향을 가리켰다.

"맞아. 학장님이 하신 거예요."

나에게 차갑게 대답하더니, 이어서 공주에게는 부드럽게 설명하는 니엘 교수였다.

"자, 그럼 출발하죠."

그녀가 다시 일행을 이끌었다. 이번에는 목적지도 알았으니, 모두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무와 넝쿨이 가득하고, 수풀이 우거진 정글 같은 숲을 나아가니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이 세계를 많이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이 숲은 어딘가 낯설고 이상했다.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고, 공기도 마나도 왠지 찐득찐득했다.

다른 곳보다 몇 배나 많은 마나가 느껴졌지만, 어딘가 불길해 보이는 마나였다.

그래서인지 덩굴이 뒤덮인 숲은 무척이나 음침해 보였다.

일행도 무척이나 긴장한 것 같았다.

그때, 교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모두 알고 있듯이 이 마왕 봉인지는 대전쟁 때 용사들이 수많은 병사와 기사들과 함께 마왕과 마물들과 싸워 마왕을 봉인한 곳이에요."

그녀는 걸어가면서 설명을 이어 갔다.

마왕의 등장 이후 끝없이 밀리던 전선은 용사라고 불리는 신기한 능력자들의 도움으로 이곳까지 전선을 밀어붙일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고대 제국과 수많은 나라가 멸망했고, 병사들과 기사들,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 갔지만, 결국 이 대륙 동쪽 끝인 봉인지까지 마왕과 마물들을 밀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용사들은 마왕을 죽이지 못하고 이곳에 마왕을 봉인했고, 봉인된 마왕의 마나가 주변을 휩쓸어 마물들을 가두었다.

용사와 인간들도 마왕을 봉인하는 데 지쳐서 더는 싸울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마물이 모여 있는 이곳을 봉인지라고 지정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실제 봉인지에서 들으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럼, 이 찝찝한 기분이 마왕의 마나 때문인 건가요?"

"마왕의 마나. 마기라고 부르기도 하죠."

공주의 질문에 니엘 교수는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정체된 마나 사이로 묘한 마나가 섞여 있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마나였다.

머릿속이 간질거리다가 결국 생각이 났다.

입학식에서 자살한 여강사에게서, 그리고 피아르의 스승이라는 자에게서 보았던 마나와 닮아 있었다.

여러 가지 상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봉인된 마왕이 스승이라는 자를 세뇌하는 장면에서, 제국의 연구진들이 봉인지에 연구실을 세워서 마기를 분석하는 장면까지.

쩝, 아무래도 전생에 만화나 웹소설을 너무 많이 본 것 같았다.

쓸데없는 상상을 지워 버리고, 사실만 기억에 담아 두었다.

그 뒤로도 교수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공주에게 잘 보이려는 교수의 노력 덕분에 이곳에서도 수업은 충실하게 진행되었다.

꼴 보기 싫었지만, 우리에게 도움이 되니 입 닥치고 잘 듣기로 했다.

그렇게 숲을 걸어가다가 나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묘하게 거슬리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만요."

일행을 멈춰 세우고, 주변을 살폈다. 특별히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귀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조용했다.

조용할 리가 없는데. 역시 뭔가 있었다.

이번에는 코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기분 나쁜 냄새가 코에 스며들었다.

찾았다!

"왜 멈춰 세운 거지?"

그때, 교수가 인상을 쓰며 내게 물었다.

"마물입니다."

나는 2시 방향을 가리켰다.

내 말에 교수는 눈썹을 찡그렸다.

"정말이야?"

"네."

"나보다 빨리 알아차렸다고?"

"제가 코가 좋습니다."

나는 손가락으로 코를 가리켰다.

코 덕분에 겨우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나의 움직임도 조금 달라져 있었다. 마나 움직임이 바깥과 달라서 나도 놓칠 뻔했다.

"아, 맞아요. 뭔가 다가오고 있어요."

교수는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어진 공주의 말에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곧 그녀도 알아차렸다.

"공주님 말씀대로네요. 모두 준비해요."

이 정도로 노골적이니 오히려 참신하게 느껴졌다.

"마물이 나타났으니 진형을 연습해 봅시다. 행정 학부와 상속 능력 학부에서는 따로 배우지 않지만, 마물과 상대할 때는 진형이 중요합니다."

그래도 아카데미 교수는 역시 아카데미 교수였다. 필요한 설명은 제대로 해 주었다. 물론, 공주를 바라보면서 해 주고 있었지만.

"조원들의 상속 능력에 따라 여러 진형을 만들 수 있어요. 다행히 여기에는 기사 학부생들이 있으니 우선 행정 학부와 상속 능력 학부 학생은 뒤로 물러서세요."

교사의 말에 마누엘과 발레아가 냉큼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기사 학부생들이 앞으로 나와 주세요. 기사가 마물을 일차로 막아 주고, 그 후 귀족들이 능력으로 마물들을 죽이는 거랍니다."

결국, 기사는 몸빵 하라는 이야기일 뿐이잖아.

"아, 공주님은 조금 물러서서 다른 학생들을 보호해 주세요. 싸우는 중에 다른 마물이 나타날 수도 있어요. 기사 중 한 명은 다른 능력자들을 보호하는 게 좋아요."

맞는 이야기이긴 한데, 결과적으로 보면 나만 앞에 나서라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공주도 같은 생각인지 나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뒤로 손을 저어 그녀를 물러서게 했다.

교사의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크르르릉.

크르르릉.

울창한 숲 사이로 표범처럼 보이는 검은색 마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크고 작은 두 마리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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