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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83화 (83/563)

제83화

제8편 현장학습 (1)

대전쟁 때 용사들이 힘을 모아 마왕을 봉인했다는 봉인지.

대륙의 동쪽.

웬만한 나라 크기만 한 거대한 영역을 차지하는 곳으로, 마계로 돌아가지 못한 마물이 가득한 대륙의 마계라고 불리는 곳이다.

봉인지의 경계는 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 걸쳐져 있었는데, 다행히도 우리 왕국은 봉인지와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다.

대전쟁 때 다른 용사들과 마왕을 봉인한 카를로스 기사. 우리 왕국의 초대왕은 마왕을 봉인한 뒤에 공간 이동 마법진을 발견한 이곳에서 왕국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이동 마법진을 관리하고 활용하기 위한 아카데미를 세웠다.

학생들의 교육을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전기에 적힌 대로 다시 마왕이 발호했을 때 이동 마법진을 통해 제일 먼저 달려가기 위해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이동 마법진은 왕국의 공공연한 비밀이 되었다.

그리고 아카데미 학생들은 이 이동 마법진을 이용해서 봉인지로 가서 마물과 맞서 싸워야 했다.

이것은 용사의 능력을 이어받은 귀족의 의무였다.

이쪽 세상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해야 할까.

물론, 시간이 지나갈수록 의무는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현장학습이라는 수업을 통해 모든 신입생들은 봉인지를 방문해야 했다.

기사 학부와 상속 능력 학부, 그리고 행정 학부까지도.

그래서 이런 인원들로 조를 짜게 된 것이다.

행정 학부 한 명에 기사 학부 두 명, 그리고 상속 능력 학부 두 명.

조 인원은 학생들의 선택 위주였고,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교수들이 수정해서 정하기로 했다.

먼저, 공주가 나와 같은 조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발레아가 바로 나와 같은 조를 하고 싶다고 신청을 했다.

내 배다른 형님은 공주를 보더니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나와 같은 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행정학부 한 사람이 필요했는데, 결국 기숙사 방이 내 옆방이라서 피아르가 같은 조가 되었다.

더 이상 우리 조가 되겠다고 자원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감히 공주와 같은 조를 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같이 하고 싶어 하던 잘난 귀족 몇몇은 내가 같은 조에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을 바꿔 다른 조로 가 버렸다.

결국, 나 때문에 이런 구성원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모두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고 있을 때, 공주가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아이샤입니다."

공주의 인사는 무척이나 귀여웠지만, 모두 내색하지 않았다.

허겁지겁 공주의 인사에 답례할 뿐이었다.

"마누엘 데 그레시아입니다."

내 배다른 형님은 언제나처럼 그동안 배운 귀족 예절을 뽐냈고.

"발레아예요. 반가워요."

발레아는 내 옆에 붙어서 가식적인 목소리로 수줍은 여학생을 연출했다.

"알렉스입니다."

나는 평범하게 인사했고.

"피, 피아르입니다."

피아르는 고개를 숙인 채로 겨우 말했다.

인사가 끝나자, 다시 조용해졌다.

다들 멀뚱거리며 서 있을 뿐이었다.

다른 조들은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 조 하나만 적막감이 감돌았다.

'망한 것 같네.'

친해서 같은 조가 된 것이 아니라, 이리저리 끼워 맞춘 조인 데다 공주까지 끼어 있으니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거기다, 대화를 이끌어 가야 할 공주는 아직 어렸다.

다행히 그런 어색한 분위기에서 먼저 말을 꺼내는 사람이 있었다.

"저……."

다들 조금 놀랐다.

말을 꺼낸 사람이 피아르였기 때문이었다.

"제, 제가 이 조에 같이 있어도 되는 건가요?"

하지만, 놀란 것과 달리 그의 말은 사람들을 기운 빠지게 했다.

전에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목걸이를 분실한 뒤에는 소극적으로 변해 버렸다.

"이미 조가 정해졌잖아요. 너무 늦었어요."

발레아가 그의 말에 대답했다. 부드러운 목소리였지만, 말속에 묵직한 뼈가 느껴졌다.

발레아의 말에 피아르의 머리는 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다시 조용해지려는 순간, 마누엘이 입을 열었다.

"그럼 조장은 누가 하는 거지?"

말을 하면서 마누엘은 다른 사람들을 쭉 둘러보았다. 공주만 빼고.

성격하고는. 반말하고 싶어서 공주를 빼고 둘러본 거였다.

거기다 둘러보는 꼴이 자기를 지목하라고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럼 마누엘 님이……."

"알렉스 님이 좋겠어요!"

그 시선에 피아르는 반사적으로 마누엘을 지목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발레아가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이년이 나를 물 먹이려는 건가!

아니, 조장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

조장을 하면 얼마나 고생할지 뻔하게 보이잖아!

고귀한 10대 소녀, 말 지지리 안 듣는 배다른 형제, 반쯤 제정신이 아닌 데다 나를 죽였던 여자에다 잔뜩 주눅 든 행정 학부 학생까지.

다행히 다들 제대로 무장은 하고 왔지만, 이 구성원들을 통솔하는 것은 절대 무리였다.

"공주님이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냉큼 높은 사람에게 짐을 떠넘겼다.

"네?"

공주는 내 말에 깜짝 놀랐고, 다른 사람들도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하긴 공주의 나이가 걱정되겠지.

"제가 옆에서 도와드리겠습니다. 공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네. 알겠어요."

하지만, 다시 한번 옆에서 바람을 넣으니 공주는 순순히 수락했다.

공주가 수락하자, 조장이 결정되었다.

반대는 당연히 없었다. 어린 나이가 걱정되지만, 공주가 하겠다는데 어느 누가 나서서 반대를 하겠는가.

나도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공주가 조장이 되어야 그나마 말을 들을 터였다.

공주는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웠고.

옆에서 조언 비슷하게 참견해서 컨트롤하면 될 듯하니까.

거기다, 조장이 딱히 큰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 수업은 보호자를 낀 사파리 관광에 가까우니까.

"공주님이 계신 조인가요?"

여교사 한 명이 우리 옆으로 다가왔다.

"제가 여러분 조를 맡게 되었네요."

중년의 여교수. 교양학 수업인 '상속 능력 기초' 수업에서 본 교수였다.

상속 능력 학부 쪽 교수라고 들었는데.

"아이샤 공주님, 니엘입니다."

"학생으로 대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그녀는 우리를 대충 훑어보고는 공주에게 인사를 올렸다.

공주는 난감한 얼굴로 손을 저었고, 학생들은 교수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교수가 대놓고 학칙을 어기고 있었다.

아카데미 안에서는 계급과 관계없이 평등하게 대하라.

아카데미를 만든 초대왕의 왕명이었지만, 교수부터 지키지 않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 교수는 계승권이 없는 귀족이었던가. 아이들도 상속 능력이 안 나타났고.

세대를 이어 가며 피가 섞이면 어느 순간 태어난 아이들이 각성을 못 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어머니가 평민인 나도 그럴 위험이 있었고, 귀족끼리 섞이더라도 결국 그런 자식은 능력이 없는 귀족이 되었다.

그래서 귀족들은 강한 능력을 가진 자식을 후계자로 세우려 하는 것이다.

뭐, 그 덕분에 장자는 후계자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신나게 형제끼리 싸우기도 하는 거고.

아마 니엘 교수도 본인이 마지막인 단승 귀족으로 끝날 것이다.

그래서 공주에게 잘 보이기 위해 무리수를 둔 거고.

이 조를 담당하려고 뭔가 수를 썼으려나.

원래대로라면 카트린이 우리와 같이 움직였을 텐데, 그녀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잘나신 대귀족 자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쨌거나 각 조는 교사나 실력 있는 기사들이 맡았다.

구경에 가까운 현장학습이라 깊게 들어가지 않더라도, 마왕 봉인지가 안전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렇다고 학생 전체가 우르르 몰려다니면 마물들의 시선을 다 끌어 버릴 테고.

결국, 보호자인 기사나 교사들이 소규모 인원을 통솔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조장은 교사의 지시를 전달하는 연락책 정도밖에 의미가 없었다.

"조장은 누구로 정했죠?"

"제가 조장입니다."

"역시, 공주님이십니까."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공주를 바라보는 교수였다.

그런데 왜 공주에게 이렇게 줄을 대려고 애쓰는지 모르겠다. 제1 왕자, 제2 왕자 쪽에 비하면 무척이나 헐거운 끈일 텐데.

그렇게 담당자들까지 다 조별로 모이자, 학장은 마법진 위로 올라갔다.

"모두 자리에 서세요. 이동진을 가동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동이 끝날 때까지 능력 사용은 금지입니다."

그의 말에 우리는 담당자의 지시에 따라 각자 위치에 섰다. 뭔가 규칙이 있는 것 같은데 아직 알 수 없었다.

모두 제자리에 서자,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우우우웅.

공기가 떨리고, 마법진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와, 진짜 마법진이야."

다들 빛나는 마법진에 놀라고 있었지만, 나는 휘몰아치고 있는 마나에 더 놀라는 중이었다.

'일종의 마나 흡수진인가.'

본인이 가지고 있는 마나를 증폭하는 목걸이와 다르게 마법진은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능력 사용을 금지시킨 것이 이해가 되었다.

이렇게 마나를 빨아들이는데, 괜한 능력을 썼다가는 엉망이 될 게 분명했다.

"장비를 확인하고, 조별로 손을 잡으세요. 잘못하다가는 혼자 낙오될 수 있습니다."

일렁이는 마나가 안정되자, 학장이 모두에게 말했다.

장비를 모두 확인한 뒤에, 우리 조도 손을 잡았다.

니엘 교수가 마누엘과 손을 잡았고.

마누엘은 피아르와 손을 잡았다.

피아르는 발레아와, 발레아는 나와 손을 잡았고, 내 반대쪽 손은 공주가 잡았다.

학장이 주위를 훑어본 뒤에 능력을 일으켰다.

"출발합니다."

화아아악!

말과 함께 마법진이 눈이 부시도록 밝은 빛을 내뿜었다.

사람들이 빛에 휘감겼고, 나는 마나가 멀리 뻗어 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목표인 봉인지로 연결되는 것 같았다.

'저 마나를 건드리거나 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잠시 무서운 생각을 떠올리던 나는 시야가 확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건물 안에 있었는데, 우리는 어느새 나무들, 아니 밀림 속에 들어와 있었다.

다른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빽빽한 밀림 안에 우리 조원 다섯과 니엘 교수만 서 있었다.

동시에 현기증이 확 일어났다. 놀이 기구를 연달아 10번은 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우엑!"

피아르가 바로 헛구역질을 했고.

"욱!"

"웁!"

마누엘과 다른 학생들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틀어막았다.

공간 이동의 후유증 같았다. 나도 속이 뒤집혔지만, 급히 마나를 끌어올렸다. 마나가 움직이자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마나를 움직이면 좀 괜찮아진답니다."

언제 자리를 옮겼는지, 니엘 교수가 공주의 등을 두드리며 말하고 있었다.

니엘 교수의 조언 덕분인지 공주의 표정도 금방 괜찮아졌고, 마누엘과 발레아, 피아르 순서대로 창백했던 얼굴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는 학생들.

"여기가 봉인지?"

피아르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고.

"그냥 울창한 숲 같은데……."

마누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좀 더운 것 같아요."

발레아는 손부채를 만들어 흔들었고.

공주는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었다.

역시, 나이답지 않은 공주였다.

그리고 나는 허공을 보며 구시렁거리고 있었다.

눈앞에 메시지창이 떠올라 있었다.

[봉인지에 도착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이 설정되었습니다.]

젠장, 또다시 세이브 포인트가 설정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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