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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80화 (80/563)

제80화

제5편 공주의 각성식 (2)

생각보다 왕은 젊어 보였다.

아들 둘이 차기 왕을 노리고 한판 붙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다 늙은 노인인 줄 알았는데, 멀리서 보기에는 중년에서 막 노년으로 넘어가는 정도로 보였다.

하지만, 눈에 마나를 넣어 살피니 얼굴에 병색이 역력한 게 느껴졌다.

'아픈 건 맞나 보네. 일종의 약발인가.'

이곳까지 왕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나가 느껴졌다. 정돈되지 않고 강제로 쑤셔 넣어서 마냥 흘러넘치는 마나였다.

'정말, 얼마 안 남았나 보네.'

마나빨로 억지로 버티는 게 눈에 보였다. 저 정도면 몸은 한계에 가까울 게 분명했다.

강력한 능력자인 왕이니만큼 그 몸으로도 더 버티겠지만, 사실 시간을 조금 연장하는 데 불과할 뿐이었다.

'뭐, 그런 것까지 내가 걱정할 건 아니고.'

왕의 반보 뒤에 리아 왕비가 따르고 있었다. 지금은 전에 보았을 때와 달리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었다.

왕과 왕비 뒤로 젊은 청년 둘이 걸어가고 있었다.

한눈에도 그들이 왕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첫째 왕자와 20대 초반의 둘째 왕자.

저 두 사람이 차기 왕에 제일 가까운 자들이었다.

공주의 파벌로 분류가 되어 버린 나에게는 적에 가까운 자들이다. 물론 상대방은 나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지만.

두 왕자의 뒤로 어린 아이샤 공주가 따라 걷고 있었다. 둘째 왕자와 10살 넘게 차이가 나는 10살짜리 어린이가 굳은 얼굴로 왕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녀를 보니, 과거 내 각성식 생각이 났다.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데다 반복된 삶으로 신체 나이보다 정신연령이 훨씬 높은 나였지만, 각성식 때에는 무척 긴장했었다.

아이샤 공주도 창백한 얼굴을 보니 많이 긴장한 듯했지만, 그래도 나이에 비해 잘 이겨 내는 것 같았다.

'나이에 맞지 않는 똑똑한 아이라는 건 나보다 공주에게 더 어울리는 표현일지도.'

공주 뒤로는 기사들과 신관들이 따라 걷고 있었다.

확실히 왕실의 내부 행사가 맞았다. 각성식은 왕의 직계만 참석했다.

다만, 나와 같이 멀찍이 서서 각성식을 지켜보는 사람들 중에 대귀족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영지를 가지고 있는 귀족들은 수도로 발걸음을 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적어도 대리인은 보낼 수 있었을 테고, 수도에 머무는 귀족들도 상당히 많았다.

하지만, 지금 내 주변에 있는 귀족들 중에는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공주의 지금 위치를 말해 준다고 해야겠지.'

현재 살아 있는 왕비의 딸이긴 하지만, 그녀의 두 오빠와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왕은 저렇게 몸이 안 좋은 것을 표를 내고 있었고 왕자들은 이미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으니, 공주의 각성식에 참석해서 괜한 오해를 사려는 귀족들이 많을 리 없었다.

아카데미 학생들은 이 행사를 지켜보는 나를 대단하게 생각했지만, 제대로 아는 자들은 비웃을지도 모른다.

뭐, 내 처지와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공작가의 저택 뒤에 있는 묘실과 달리, 왕성의 묘실은 훨씬 웅장하고 화려했다.

왕 일행은 선대왕들의 조각상 사이로 걸어가 묘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는 왕 일행이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갔다.

왕 일행은 보이지 않았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두 조용했다.

잠시 뒤.

화아악.

묘실 안에서 마나가 요동치는 게 느껴졌다.

드디어 공주가 각성한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상속 능력을 얻었을지 궁금해하며 작게 속삭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왕과 그 일행이 다시 묘실 밖으로 걸어 나왔다.

걸어 나오는 일행의 표정은 다양했다.

왕은 창백한 얼굴로 혀를 차고 있었다.

두 왕자는 모두 만족한 얼굴이었고, 기사들과 신관들은 조금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왕비는 들어갈 때와 표정이 크게 변하지 않았고, 공주도 담담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그냥 담담한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묘하게 기쁜 듯한 느낌도 들고.'

뭔가 나온 사람들의 표정으로는 결과를 알기 어렵다고 느꼈는데, 옆에서 카트린의 말이 들려왔다.

"잘된 것 같네요."

나는 고개를 돌려 카트린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 * *

각성식이 끝난 뒤, 사람들은 바로 해산했다.

예상과 달리 모였던 사람들은 바로 흩어졌고, 나와 카트린은 왕비의 부름에 그녀의 궁으로 향했다.

전에 만났던 커다란 응접실에서 나와 카트린은 공주와 왕비를 만났다.

우우우웅.

마나의 벽이 방 주위를 둘러쌌다.

내가 마나로 만들었던 방음벽과는 다른 마나의 벽이었다.

"외부의 시선은 모두 막았습니다."

나이가 든 하녀가 왕비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녀복을 입고 있지만, 왕비의 시중을 드는 하녀가 평범한 여성일 리 없었다.

적어도 이름 있는 귀족이 확실했다.

그녀가 펼친 마나의 벽은 그녀의 상속 능력일 게 분명했다.

"아이샤, 이제 표정을 풀어도 돼요."

"휴우, 힘들었어요."

왕비의 말에 공주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굳은 얼굴을 풀더니,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카트린도 공주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고생했어. 다행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아."

"응, 카트린 덕분이에요."

공주의 밝은 대답에 카트린이 고개를 저었다.

"저보다 알렉스의 도움이 컸죠."

"알렉스 님에게도 감사드려요."

"아니, 인사 받을 일을 한 것 같진 않은데요."

공주의 인사는 나를 난감하게 만들 뿐이었다.

나를 방에 두고 마나 벽을 친 것부터가 문제였다.

방에 마나 벽을 친 걸 보니, 분명 왕비와 공주, 카트린만 알아야 하는 비밀 이야기를 할 듯했다.

거기에 왜 내가 끼어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공주가 왜 기뻐하는지도 모르겠고, 나한테 왜 감사하는지도 모르겠다.

누가 나에게 이유를 좀 알려 주면 좋겠어!

"호호, 아무래도 알렉스 공자에게 먼저 설명을 해 줘야 할 것 같네요."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모습에 왕비가 살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각성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몰라 말을 못 했어. 다행히 결과가 좋으니 말해 줄게."

카트린이 왕비의 말을 이었다.

드디어 궁금했던 말을 들을 모양이었다.

솔직히 안 들었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왕비와 공주, 카트린의 표정을 보니 이미 늦은 모양이었다.

그녀들이 생각하기에는 나는 이미 그녀들과 한 팀이었다.

듣지 않겠다고 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아, 먼저 각성식에서 말한 대로 어떤 상속 능력을 얻었는지 다시 말해 줘요."

왕비의 말에 공주가 말했다.

"보이지 않는 검기. 외가인 라텐하마르 백작가의 상속 능력을 얻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녀는 앞에 놓은 작은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 차를 저으라고 놓은 숟가락이었는데, 그녀가 손에 쥐자 숟가락 끝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저 일렁거리는 기운은 전에 본 적이 있었다.

바로 던전에서 카트린이 사용하던 능력이었다.

그리고 나도 던전에서 얻은 단검을 들면 그 능력을 쓸 수 있었다. 솔직히 사람에게 기습할 때는 최고의 능력이었다.

아, 이제야 왕과 다른 왕자들의 표정이 이해되었다.

공주가 얻은 능력은 무척이나 훌륭한 능력이었고 쓸모도 많은 능력이었지만, 왕가의 능력은 아니었다.

거기다 국왕의 능력이라는 '마나 감응력'을 두 왕자가 가지고 있었으니, 어머니 쪽의 능력을 얻은 공주는 이제 두 왕자와 경쟁을 하기 어려워졌다.

왕의 표정이 안 좋았고, 두 왕자의 표정이 밝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왕비와 공주의 표정도 나쁘지 않았는데? 거기다 지금은 아예 웃는 얼굴이고.

머릿속으로 고민을 하며 공주를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맞다. 조금 전, 공주의 말은 뭔가 이상했다.

그녀는 '상속 능력을 얻었다'가 아니라 '상속 능력을 얻었다고 말씀드렸다.'라고 했다.

설마 다른 능력을 얻고 백작가의 상속 능력을 얻었다고 말한 건가?

하지만, 내 눈앞에는 아직도 끝이 일렁거리는 숟가락이 보이고 있었다.

"혹시 실제는 다른 능력을 얻으신 겁니까?"

혹시나 해서 꺼낸 내 말에 공주는 고개를 저었고, 왕비와 카트린은 미소를 지었다.

"왕실의 각성식에서 거짓말을 하면 안 돼요. 확실히 공주는 '보이지 않는 검기' 능력을 얻었어요."

왕비가 공주의 대답에 추가로 말해 주었다.

그리고 카트린이 왜 왕비와 공주가 좋아하는지 이유를 알려 주었다.

"다행이야. 걱정이 많았어. 왕가의 능력이 아니니 두 왕자님의 시선도 공주님에게서 멀어질 거야."

아, 그렇군. 공주는 나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공주가 왕가의 능력, 특히 '마나 감응력'을 얻었으면 두 왕자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지금 두 왕자가 서로 칼날을 노린 채로 출발 신호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거기다 공주까지 등장해 버리면 두 왕자의 칼날이 어디로 먼저 향하게 될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왕비와 공주는 왕자들의 칼날을 피해 목숨을 겨우 건진 사람들 같지 않았다.

왕비가 입을 열었다.

"이번 대의 왕자와 공주는 선조의 피가 너무 짙어요. 신관들의 말로는 역사상 가장 피가 짙은 세대라고 해요."

신관이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는 건가? '치료술'에 '계약'에 왕족의 피의 농도까지 파악할 수 있다니, 신관의 능력은 의외로 다재다능한 모양이다.

어쨌거나 왕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당연히 그 말은 왕족들만 아는 비밀로 했고, 왕자들은 모두 예상대로 '마나 감응력'을 얻었어요."

자식들이 다 능력이 좋다고 마냥 좋은 건 아닌 모양이다.

"신관의 말에 따르면, 아이샤도 '마나 감응력'을 얻을 가능성이 컸어요."

"그래서 공주가 마나 감응력을 얻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했어. 내가 용병으로 돌아다닌 것 중에 그런 이유도 포함되어 있었지."

"그리고 방법을 찾아냈어."

카트린이 나를 가리켰다.

"아, 설마."

공주가 옷소매에서 단검을 꺼냈다.

며칠 전 카트린에게 빌려준 단검이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숟가락 대신에 단검을 잡았다. 단검 끝이 일렁거렸다.

"던전에서 찾은 유물로 우리 가문의 상속 능력을 얻게 된 너를 보고 각성을 유도할 방법을 찾게 된 거야."

이어진 말에 따르면, 던전에서 돌아온 그녀는 바로 나를 수도로 불러들였고, 가문의 유물들을 모아 공주에게 만지게 했다.

아쉽게도 그 유물들은 공주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느낌이 온 것은 던전에서 얻은 방패였다.

카트린과 왕비는 마지막으로 내 단검을 빌려서 공주에게 만져 보게 했다.

그랬더니, 단검이 반응했다.

"머릿속에서 말이 들렸어요. [힘을 원하는가]라고."

제길, 저 유치한 말을 또 듣게 된다니.

"공주에게 단검을 몸에 숨긴 채로 각성식에 참여하게 했어요. 작은 단검이라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고, 결국 우리의 예상대로 외가의 상속 능력을 얻게 되었어요."

저 단검 덕분에 왕가의 능력 대신 백작가의 상속 능력을 얻게 된 건가?

하지만, 그게 그렇게 좋은 건가? 당장의 위기는 피했지만, 그래도 괜찮은 건가?

찌푸린 내 얼굴을 보았는지 왕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생각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었어요. 아이샤."

왕비의 말에 공주가 몸에 힘을 줬다.

우우우우웅.

공주의 몸 전체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맙소사. 저건 '보이지 않는 검기'가 아니었다. 전혀 다른 능력이었다.

부우웅. 치지직.

작은 불꽃들이 공중에 나타났고, 머리카락 사이로 스파크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공주는 각성식에서 왕가의 능력 대신 다른 능력을 얻은 게 아니라, 왕가의 능력과 외가의 능력을 모두 얻게 되었어요."

왕비의 말대로였다.

공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갈한 마나는 왕가의 상속 능력.

'마나 감응력'으로 만들어지는 마나였다.

공주는 '마나 감응력'을 몸에 두른 채로 일렁거리는 단검을 들고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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