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제1편 테스트
어두운 밤.
방 안에 홀로 앉아 책상 속 깊은 곳에 숨겨 둔 목걸이를 꺼내 들었다.
보석을 뺀 피아르의 목걸이와 바꿔치기한 미리사의 목걸이였다.
그동안 평화로운 일상이 지속되어서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딱 봐도 번잡한 일들이 벌어질 것 같아 다시 꺼내 든 것이다.
뭔가 일이 벌어지기 전에 미리 문제될 만한 것은 확인하고 치워 버릴 생각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목걸이는 무척이나 평범해 보였다.
유리처럼 보이는, 크지 않은 보석이 중앙에 박혀 있는 단순한 형태였다.
금 목걸이도 아니고, 쇠로 만든 얇은 체인으로 이루어진 목걸이였다.
"철이 아니었나? 보석도 평범한 보석이 아닌 것 같고."
하지만, 눈에 마나를 집중해서 살펴보니 목걸이의 재질도 철이 아니고 마나가 잘 통하는 합금 같았고, 보석도 평범한 보석이 아니었다. 기묘한 형태로 섬세하게 가공된 투명한 보석이었다.
딱 봐도 연구할 거리가 가득한 느낌의 물건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연구를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지금 이 목걸이를 살펴보는 것은 목걸이를 어떻게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이 목걸이로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전생에도 스마트폰이나 자동차의 원리를 알 필요는 없었다. 그저 어떻게 쓰는지 알면 그만이었다.
피아르의 스승이라는 자에게 들은 대로라면 마나를 증폭, 폭주시키는 목걸이였다.
마나를 담아 놓고 나중에 작동하도록 시한장치로도 쓸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까지는 자세히 듣지 못했고.
목걸이를 차고 있는 상속 능력자의 마나에 과부하를 걸어서 사람을 터트리는 물건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눈을 휘둥그레 뜰 정도로 무시무시한 물건 같았지만, 다행히도 제한이 덕지덕지 걸려 있었다.
우선 만들기가 무척이나 어렵다고 했다. 두 개를 만드는 데에도 1년 이상이 걸렸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미리사나 피아르같이 체내에 마나를 많이 담아 놓는 버퍼, 증폭형 능력자가 아니면 과부하를 걸어도 사람이 터져 나가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거기다, 아무에게나 목걸이를 채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다.
마나 감지가 높거나 오랫동안 차고 있어서 목걸이와 체내의 마나가 잘 순환되어야 비로소 작동하는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목걸이를 작동시킬 수 있는 상속 능력자도 거의 없는 모양이었다.
스승이라는 자가 아는 사람은 자신 말고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입학식 날 자살한 여강사. 그녀가 남은 한 사람이었다.
그는 마나 감지 능력이 높고, 체내의 마나를 잘 활용할 수 있는 특이한 능력자만이 이 목걸이를 작동시킬 수 있다고 자랑처럼 이야기했다.
"마나를 불어넣는 것은 나도 할 수 있기는 한데 말이지."
웅웅웅.
내 손 위에 놓인 목걸이는 마나를 받아들여 흐릿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그날 보았던 마나의 유동과 비슷한 느낌으로 마나를 밀어 넣으니 목걸이가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나를 볼 수, 아니 느낄 수 있기에 가능한 묘기였다.
"나밖에 못 하는 거였으면 좋겠는데……."
나처럼 마나를 감지하는 사람을 또 보지 못했지만, 나만이 가능하다고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무척이나 어려운 일인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래 봤자, 이걸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빛나는 목걸이를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스승이라는 작자나 자살한 여강사처럼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목걸이를 작동시키는 일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아무나 채운다고 작동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피아르, 미리사의 목에 다시 걸어 주고, 목에 손을 짚어 폭파하는 정도밖에 쓸모가 없었다.
"멀리서 터뜨리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자살 폭탄범이 되는 거네."
결국, 지금은 전혀 쓸모없는 물건이었다.
"자살 폭탄범이라……."
나는 책상 위에 놓인 목걸이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자살 폭탄범이 될 거면 굳이 피아르나 미리사의 목에 다시 걸 필요가 없었다.
나는 잠시 고민을 하다가 목걸이를 들어 내 목에 걸었다.
"……."
아무 이상이 없었다.
슬쩍 웃음이 나왔다. 괜히 긴장했다.
"역시, 뭐가 달라질 리가 없지."
그리고 이어서 마나를 움직여 보았다.
몸속에서 마나가 순환하기 시작했다.
"잘 돌아다니네."
역시, 이번에도 별문제는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목걸이 쪽으로 마나를 밀어 넣어 보았다.
가슴 쪽으로 움직이던 마나가 목걸이를 통과해서 다시 몸으로 스며들었다.
목걸이는 빛나지도 않고, 마나를 담지도 않았다.
"음, 평범한 마나로는 가동되지 않는 게 맞긴 한데……."
나는 손에 마나를 불어넣어 보았다. 조금 전 목걸이에 마나를 불어넣을 때와 비슷한 형태의 마나를.
손 위로 피어오르는 마나가 보였다.
나는 손을 목걸이 쪽으로 움직여 보았다.
20㎝.
10㎝.
5㎝.
1㎝.
마지막 순간, 나는 목걸이 앞에서 손을 멈추었다.
"설마, 자살이 되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봐도 그럴 확률은 거의 없었다.
그래도 목걸이에 손을 가져다 대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실험을 내 몸 가지고 하는 것은 좀 무식한 짓이 맞지?"
슬쩍 손을 아래로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또 멈추었다. 그리고 한숨.
"다시 살아나지만 않았어도 이런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목걸이에 손을 올렸다.
우우우웅.
손에서 흘러 나간 마나가 목걸이를 빛내기 시작했다.
"우앗!"
목걸이에서부터 전기가 흘러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몸이 찌르르 떨려 오고, 목걸이로 마나가 빨려들었다. 동시에 몇 배나 강한 마나가 다시 몸으로 빠져나왔다.
마나가 미친 듯이 순환했다. 고여 있던 마나가 모두 목걸이로 빨려들어 가 거대한 덩어리가 되어 다시 튀어나왔다.
근육이 부풀어 오르고, 머리에서 김이 났다. 온몸이 마나로 가득 찬 느낌이었다.
꽤나 시간이 지난 것 같았지만, 사실 손을 올리고 잠시의 시간도 지나지 않았다.
'젠장, 정말 죽는 건 아니겠지.'
몸이 터져 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나가 빠져나가야 해. 뭔가 방법이…….'
나는 필사적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온몸에 마나가 들끓어서인지 눈앞의 먼지도, 미세한 마나도 보이고 느껴졌다.
팔의 솜털에 닿는 바람도 느껴지고, 머릿속은 평소의 몇 배나 되는 빠른 속도로 핑핑 움직였다.
'단, 단검이 있어!'
나는 옷장 안에 있는 단검을 꺼내.
콰앙!
손에 쥐고 마나를 뿜어냈다.
부우우웅!
단검에서 붉은빛이 치솟았다. 엄청나게 두꺼운 검기였다.
'이러다 천장이 뚫리겠어!'
다급하게 앞으로 누이니.
쨍그랑.
붉은 검기가 창을 깨고 밖으로 뻗어 나갔다.
부아아아앙!
붉은 검기는 마치 레이저처럼 창문 밖으로 뻗어 나가다가 차츰 사라졌다.
털썩.
검기가 사라지는 순간, 나는 그만 바닥에 쓰러졌다.
정신이 멍했다. 온몸의 마나가 전부 사라져 버렸다.
마나 고갈이었다.
"으그그그극."
나는 몸을 덜덜 떨며 이를 악물었다.
마나가 사라진 근육이 마구 꼬였다.
마나 고갈 정도가 아니었다. 단순한 마나 고갈이 아니었다.
몸속에 있는 마나 한 톨까지 전부 쥐어짜 버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몸을 떨고 있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죠?"
피아르였다.
옆방에까지 소리가 들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방 안에 사람을 들일 수 없었다. 목걸이를 차고 있어서 피아르는 더더욱 안 되었다.
떨리는 입을 겨우 열었다.
"……검 연습을 하다가 실수……했어. 조심할……게."
"……네. 조심하세요."
내 말에 애매한 침묵이 흐른 뒤, 그의 대답이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작게 한숨을 내쉬고, 이어서 다시 숨을 들이쉬고 계속 반복했다.
하지만, 마나는 느껴지지 않았고 통증이 계속 이어졌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겨우 실낱같은 마나의 기운이 몸속에 느껴지기 시작했다.
꿈틀.
조금씩 모이는 마나.
나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마나가 흘러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자, 겨우 주위에 신경을 쓸 수가 있었다.
짹짹.
멀리서 새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니, 창문으로 붉은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아침인가……."
분명 간밤에 자기 전에 일을 벌였는데, 정신을 차리니 아침이었다.
"밤새 마나를 모았다는 건데."
지금도 마나는 겨우 움직이고 있었다.
정말 죽을 뻔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밤새 죽을 만큼 아팠다.
"역시 안 하는 게 좋았어."
때늦은 후회를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 안은 엉망진창이었다.
옷장은 부서져 있었고, 창도 박살이 나 있었다.
저 창은 마나가 뿜어져 나가 박살 낸 걸 테고.
"설마, 검을 꺼낼 때 옷장이 박살 난 건가?"
그냥 검을 꺼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는 목걸이가 작동되었을 때의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온몸에 마나가 들끓고, 힘이 세지고 빨라지고 감각이 몇 배나 상승하고 검기가 날뛰었었다.
"머리 회전 속도도 빨라졌지. 전부 마나가 증폭되었기 때문이겠지?"
예상대로(?)였다.
이 목걸이는 마나를 증폭, 혹은 폭주시키는 것이니 죽지만 않으면 필살기 같은 괴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더 강력한 효과라니.
하지만, 과부하가 걸린 이상 피해가 없을 수 없었다.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큰 피해였다.
"필살기는 필살기인데, 쿨타임이 그냥 쿨타임이 아니잖아. 자기희생 주문도 아니고, 이렇게 한번 쓰면 맛이 가 버리고 죽을 만큼 고통스럽다니. 이래서야 실전에서 쓸 수 있으려나 몰라."
나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온몸이 결리고 아팠다.
"죽지 않은 게 다행인 건가."
나는 목걸이를 빼내 빤히 바라보았다.
뭔가 대단한 쓸모를 찾은 것 같은데, 써먹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 스승 같은 자들이 더 있다면 안전하지도 않을 것 같고."
목에 걸었다가 다른 사람이 작동을 시키면 큰일이었다.
"그래도 조금 위력을 낮추면 위험할 때 써먹을 수는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목걸이를 가방 깊숙이 처박아 버렸다.
그날, 피곤한 몸으로 수업에 들어가자 발레아가 다시 내 옆자리에 앉았다.
"어제, 남자 기숙사에서 폭음이 들려왔대요. 유령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고, 붉은빛이 하늘로 치솟았다는 소리도 있어요."
그녀는 말을 하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 주위로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녀의 손짓에 남자도 여자도 반갑게 인사를 받아 주었다.
어제는 괜한 말을 했던 모양이다.
내 옆에 있다고, 모두 같이 왕따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하긴 저 얼굴에, 저 꾸며진 성격으로 왕따 같은 것을 당할 리가 없었다.
쩝, 결국 내가 못났기 때문일지도.
그보다, 생각보다 소란이 더 컸던 모양이다.
피아르가 그냥 돌아간 게 신기할 정도였다. 왕따인 덕분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강의실을 나가기 전에 발레아가 내 귀에 속삭였다.
"밤에 잠깐 만날래요?"
엥? 무슨 소리지?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이 보였다.
"오늘 밤 저와 데이트를 해 주세요."
그녀의 미소와 부드러운 음성은 오늘 밤을 기대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는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아버지 일로 공자님께 물어볼 게 있어요."
그녀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