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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75화 (75/563)

제75화

제25편 실험체 (3)

마나가 갑자기 멈춰서 깜짝 놀랐지만, 기사급도 안 되는 상대에게 질 이유가 없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속 능력을 만들어 내는 대단한 자였지만, 기사와 용병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르는 모양이었다.

마나를 멈추는 상속 능력이라.

저번 삶에서 한 말 때문에 긴장했는데, 다행히 상대할 만한 능력이었다.

아니, 평범한 기사나 귀족이면 상대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제 그가 나를 막을 방법은 더 없었다.

그는 열심히 눈을 굴렸지만, 금방 나에게 제압당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인질도 없었다. 잠깐의 반격에 놀랐지만, 이번에는 오랜만에 계획대로 일이 착착 진행되었다.

나는 그를 밧줄로 묶은 뒤, 목에 마나를 불어넣어 말소리를 줄이고 팔다리의 힘줄을 끊어 놓았다.

"크윽, 나에게서 무슨 말을 들을 거라고는 꿈도 꾸지 마라."

힘줄이 잘리면서도 강단 있게 말을 하는 그였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이미 들었었다.

"네가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어. 안 그래? 피아르와 미리사의 스승님? 아니, 너도 실험체지?"

그는 통증도 잊은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너, 너는 누구지?"

아카데미 신입생에 그레시아 공작가의 서자였지만, 나는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준비한 물건들을 늘어놓았다.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으니, 이야기할 시간은 충분해."

기숙사 방도 혼자 쓰고 있었고, 공작가 서자인 나에게 찾아와 확인할 사람도 없으니 오늘 밤, 아니 내일 새벽까지 자유 시간이었다.

내가 늘어놓는 물건을 보고는 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고문에는 솔직히 자신이 없으니, 조금 실수해도 양해해 주면 좋겠어."

많은 것을 들을 생각은 없었다. 중요한 몇 가지 정보만 들으면 충분했다.

나는 밤을 새워 이야기를 들었고, 날이 밝기 전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위기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새로운 '저장 시점'이 설정되었습니다.]

* * *

시체들은 이틀 뒤 발견되었다.

이틀 동안 문이 닫힌 가게에 의문을 느낀 옆집 주인이 가게 문을 억지로 열었고, 가게 2층에서 시체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바로 경비대가 출동했다.

치안 기사와 경비병들은 사방에 피가 튀어 있고, 서로 간에 검을 찔러 댄 흔적이 역력한 현장을 보게 되었다.

현장을 확인한 기사가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묻어 버리자."

그 말에 같이 온 경비병들이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괜찮을까요? 아카데미 바로 앞에서 벌어진 일인데. 이번에 공주님도 입학했다고 들었는데요."

"그러니까 묻자고. 어차피 가게 직원들 사이에서 벌어진 칼부림이잖아. 이 정도는 빈민가 쪽에서는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야."

"그건 그렇지만……."

"지금 수도 분위기가 장난 아니잖아. 아카데미 입학식 때도 뭔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거기다 이 일까지 터져 봐. 그럼 어떻게 될지는 잘 알겠지?"

아카데미 앞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이었다.

이 동네의 치안을 담당하는 그로서는 진급이 막히는 정도가 아니라 잘못하다가는 목이 떨어져 나갈지도 모를 사건이었다.

왕실에 충성하고 정의를 수호하는 그런 기사라면 모를까, 그는 수도에 가족이 있는 안정된 생활을 하는 직업 기사였다.

괜한 일을 들추어내서 굳이 문제를 만들어 낼 이유가 없었다.

기사와 경비병들은 빠르게 가게를 치웠고, 주변을 다니며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

그렇게 상가 거리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 * *

솔직히 별로 기대하지 않았다.

전생의 스릴러 영화가 떠올라 혹시나 해서 꾸민 현장이었다.

너무 허접한 트릭이라 당연히 들킬 줄 알았는데, 살인 사건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공주의 호위 기사에게 물어봐도, 카트린에게 물어봐도,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래도 왕실까지는 올라온 뒤에 묻을 거로 생각했는데, 말단 실무자가 그대로 묻어 버릴 줄이야.

미디어가 발달하지 않았으니 더 묻어 버리기 쉬웠으려나.

돌아오는 길에 대로 옆에 버려 놓은 시체를 묻느라 새벽녘까지 고생했는데,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날 밤 스승이라는 자에게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말이 많았지만, 아쉽게도 알고 있는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다.

자신이 소속된 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했고, 앞으로의 계획도, 연락 라인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가 훈련을 받은 곳과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는 들을 수 있었다.

북쪽에 있는 강대한 나라.

이에로 후작가 때 일을 벌인 자들의 출신 국가인 차르 제국이었다.

'제국 정부가 벌인 일인지, 아니면 제국 안에 있는 다른 조직이 벌인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에로 후작가에서 일을 벌인 자들과 이 남자가 같은 조직일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도 듣고 싶었던 내용은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었다.

"맞…… 맞아. 그 목걸이가 마나를 폭주하게 만드는 매개체야. 마나를 다루는 상속 능력자들은 그 목걸이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의 마나를 폭주하게 만들 수 있어."

목걸이에 관한 이야기도.

"나는 지하 던전 같은 실험실에서 능력을 얻게 되었어. 잠……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찾고 깨우는 아이템이 있어. 테스트가 끝나서 수거해 갔어."

그와 피아르가 어떻게 능력을 얻게 되었는지도.

"테스트가 끝나서 폐기 처분을 하려고 한 거야. 마지막 테스트라고 해야 할지도. 나도 돌아가서 어떻게 될지 몰랐는데, 이게 맞는 끝일지도 몰라."

왜 테러를 벌였는지도 들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단순한 이유였다.

"폐기 처분이니까. 어차피 다 철수할 생각이었어. 모두 죽으면 더 올 사람은 없을 거야. 어차피 목걸이만 없어도 폭주는 불가능하고."

일의 뒤처리 문제도 들을 수 있어서 편하게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다 포기한 느낌이라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지.'

일을 마친 뒤, 며칠을 두고 본 뒤에 나는 피아르와 미리사의 목걸이를 슬쩍 빼돌렸다.

피아르는 밤에 몰래 방에 들어가 기절시킨 뒤 빼 왔고, 미리사는 복도에서 부딪치는 척하고 보석을 뺀 피아르의 목걸이와 바꿔치기했다.

두 목걸이가 똑같아서 미리사는 목걸이의 보석만 빠져 버렸다고 생각했다.

목걸이 때문에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소란스러웠지만, 나는 무척이나 평안한 시간을 보냈다.

피아르와 미리사 주변에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지도 않았고, 공주를 노리는 사람도 없었다.

신입생 전체가 듣는 교양 수업들은 무척이나 지루했고, 기사 전공 수업은 제 실력을 드러내 보이지 못해 답답할 따름이었다.

어서 빨리 실전 시간이 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게 평안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신입생이 한 명 추가로 입학했다.

"집안 문제로 입학이 늦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입학했으니, 따라갈 수 있게 주변에서 도와주세요."

교양 시간인 상속 능력 기초. 여교수가 옆에 서 있는 여학생을 소개했다.

"발레아 드 메세시아예요. 아버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입학이 늦었습니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소녀가 모두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그녀는 사람들의 눈을 일일이 맞추며 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미소를 짓지 못했다.

서로 인사를 나눌 정도로 그녀를 알고 있었고, 친하다면 친한 사이였지만.

그녀는 한 번 나를 죽인 적이 있었다.

나도 그녀의 아버지를 죽였고.

아카데미 입학식이 끝나고 한 달 뒤, 내가 죽인 남작의 딸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이다.

"들어가서 앉아요."

인사가 끝나자, 선생은 발레아를 자리에 들여보냈다.

발레아는 강의실을 쭉 훑어보더니 내 쪽으로 걸어왔다.

언제나처럼 내 주위는 비어 있었지만,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안녕하세요."

그녀는 어제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것처럼 나에게 친근하게 인사를 했다.

"네. 안녕하세요."

나도 그녀에게 인사했다.

"장례식은 잘 치렀나요?"

"갑작스러운 장례식이라 이리저리 정신없었지만, 아버지에게는 그 정도면 충분하겠죠."

다른 사람은 알 수 없겠지만, 나는 그녀의 말속에 가시가 들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혼자 오셨네요."

"기존의 남작이 죽었으니 새로운 남작이 되어야지요. 왕실의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영지에서 남작 대행으로 생활하겠죠."

형제에 관한 이야기인데, 마치 남에 대해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는 눈치가 보여서 더 있기 어려웠어요. 아버지가 살아 계셨으면 그나마 남작 딸이라 영지에 붙어 있어도 괜찮겠지만, 배다른 동생이 남작 대행이잖아요. 다른 귀족가에 싼값에 팔려 가지 않으려고 냉큼 아카데미로 도망 왔어요."

그녀는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즐겁게 이야기했다.

"그럼 남작 부인은……."

"어머니도 고향으로 돌아가실 예정이고요. 친정에서 구박받으면서 살아가겠죠. 뭐."

이번 삶에서는 나와 엮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본성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가족에 대한 환멸이 그녀의 말속에 깊게 배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말이죠……."

신기하게도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를 죽인 여성과 이렇게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나도 그녀와의 대화가 즐거웠다.

그런데, 너무 대화에 몰입했던 모양이었다.

"거기 두 사람, 수업 시작했어요. 잡담은 나중에 해요."

교수의 말과 함께 우리를 향해 석필들이 날아왔다.

교수의 능력이 염력이었던가.

턱!

마나에 싸여 빠르게 날아온 석필이었지만, 나에게 날아온 석필은 내 손가락에 잡혀 부르르 떨었다.

텅!

발레아를 향해 날아온 석필은 그녀의 바로 앞에서 얌전하게 책상 위로 내려앉았다.

발레아의 능력, 일명 '영역 선포'였다.

짧은 대화 동안에 벌써 능력을 발휘했던 모양이었다.

얼마 전보다 더 발전한 것 같은 모습에 좀 더 긴장되었다.

교수는 석필을 잡는 우리들의 모습에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학생들은 교수의 꾸지람을 받은 우리들을 비웃었다.

"주변을 봐요. 나와 이야기하면 좋을 게 없어요."

작게 속삭이는 내 말에 그녀는 주변을 둘러보며 씩 웃었다.

"제가 보기에는 저 바보들하고 친분을 맺는 것보다 공자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쪽이 훨씬 더 제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요."

그녀도 몸을 내 쪽으로 숙이고는 작게 속삭였다.

그녀의 본성을 몰랐다면, 그녀의 말에 무척이나 감동했을 텐데.

아니, 내가 원래 나이였다면 그녀에게 반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 나는 그녀의 꿍꿍이가 무엇인지 고민하느라 머리에 쥐가 날 정도였다.

친한 척하는 그녀 덕분에 그날 수업은 엉망이 되어 버렸다.

그나마 학생 중에 대화가 되는 사람이 나를 죽이고, 내가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라니.

그날 남작이 벌인 일과 그녀의 특이한 능력까지.

앞에 닥쳐 올 일이 아니라면 발레아 문제를 고민하느라 머리털이 다 빠졌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눈앞에 공주의 각성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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