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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천재는 무한리셋 중-74화 (74/563)

제74화

제24편 실험체 (2)

멀쩡한 입학식장과 그 옆의 진료실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정문과 그 옆의 면회실이 보였다.

슬쩍 안쪽을 들여다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담당 교직원에게 물어봐도 아직 방문한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피아르와 미리사의 면회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할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늦지 않았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한 뒤에 면회실 뒤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면회실 뒤쪽 담벼락 옆으로는 무성한 나무들과 베어 내지 않은 긴 수풀이 자라나 있었다.

조경 때문인지, 아니면 교직원들의 게으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충분한 도움이 되었다.

나는 무언가 찾는 것처럼 몸을 굽히고는 수풀 사이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감각을 끌어올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슬쩍 수풀 속으로 몸을 숨겼다.

담벼락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겨 전날 미리 숨겨 놓은 가방을 꺼내 들었다.

가방에는 망토와 평범한 옷이 들어 있었다.

나는 준비한 옷과 망토로 갈아입은 뒤, 입고 있던 교복을 가방에 넣어 다시 원래의 장소에 숨겨 놓았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담벼락 너머에도.

휙.

나는 재빠르게 담을 뛰어넘은 뒤, 옷을 확인했다.

옷차림도 달라졌고, 망토로 얼굴도 가렸으니, 들킬 염려는 없었다.

나는 상점 거리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얼마 걷지 않아, 아는 사람을 보았다.

앞에서 걸어오는 남자는 저번 삶에서 본 적이 있던 남자였다.

피아르의 스승이라는 작자가 있던 건물 1층에서 나를 막아서던 남자였다.

맨 앞에서 나를 막아서던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

'면회 요청을 하러 가는 거겠지?'

지금 시간에 그가 아카데미로 가는 이유는 그것밖에 없을 듯했다.

다행히 엇갈리지는 않은 듯했고, 스승이라는 작자도 지금 와 있다는 소리였다.

슬쩍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아카데미 지역을 벗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아카데미의 담벼락을 옆에 두고 돌을 깔아 놓은 대로가 쭉 이어져 있었다.

대로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가오는 남자 말고는 사람도, 마차도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이곳은 아카데미 정문과도 떨어져 있었고, 상가 거리도 언덕 너머에 있어 지금 당장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알기 어려워 보였다.

나는 다가오는 남자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상대도 관심이 없는 듯이 걸어왔지만, 내 감각에는 그가 긴장했다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와 나는 서로 관심 없는 척 스쳐 지나갔다.

상대의 긴장이 바로 풀린 것이 느껴졌다.

나는 슬쩍 몸을 돌려 바닥에 손을 짚었다.

"여기 돈을 떨어뜨리신 것 같은데요?"

"네?"

그가 몸을 돌리자, 나는 몸을 일으켜 손에 쥐어진 은화를 보여 주었다.

"어? 그럴 리가 없는데?"

그는 옆구리로 손을 옮겼고.

나는 은화를 쥔 손을 그를 향해 뻗었다.

그리고 그에게 작은 마술, 혹은 손기술을 보여 주었다.

은화가 순식간에 마나를 품은 단검으로 변하는 마술을.

푹.

그는 가슴에 꽂힌 검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그로서는 날벼락 같은 일일 거다.

아무래도 해명이 필요할 것 같아 내 쪽으로 쓰러지는 그에게 설명해 주었다.

"입학식 테러의 보답이야."

"아……."

그는 바로 이해했다는 얼굴로 쓰러졌다.

나는 쓰러진 상대를 들어 대로 옆 수풀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시체를 수풀 속에 밀어 넣었다.

"대낮에 대로에서 사람을 죽이다니……."

아무도 보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벌인 일이지만, 내가 봐도 정말 대담한 짓이었다.

전생 같았으면 며칠 지나지 않아 CCTV에 걸려서 바로 체포될 게 뻔한 짓이었고, 이곳에서도 함부로 벌이기 힘든 짓이었다.

아무리 이곳 치안이 좋지 않다고 하지만, 왕립 아카데미 근처에서 살인이 벌어지는 것을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피아르와 미리사가 외박을 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

"일을 묻어 버리도록 만들 수밖에."

이 시체를 묻느라 시간을 보낼 수도 없고.

작은 일은 더 큰 일로, 작은 살인은 더 큰 살인으로 덮을 수밖에 없었다.

시체를 뒤져 봐도 특별한 물건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시체를 수풀로 위장한 뒤에 빠르게 그곳을 벗어났다.

낮은 언덕을 넘으니 바로 상점 거리가 나타났다.

아직 아카데미 수업이 끝나지 않은 시각.

여기까지 오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은 것처럼.

아직 아카데미 수업이 끝나지 않았기에 아카데미 학생, 교사 등을 주로 상대하는 상점 거리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여기 와서 구경해요!"

거리를 지나가는 나에게 호객을 하는 장사꾼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가게는 주인만 앉아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에고, 올해는 손님이 영 없어."

"공주님도 입학해서 대목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손님이 더 없는 것 같다니까."

"이게 다 수도 치안이 뒤숭숭해서 그래."

"쉿, 그런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귀에 마나를 밀어 넣어 듣고 있자니, 왜 이렇게 한가한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정말 왕이 죽을 때가 된 건가.

전생에 시장 경기로 정치 상황을 알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곳 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왕이 죽어 왕자들끼리 내전이라도 벌일 것 같았다.

'거기다 이상한 놈들이 테러도 벌이고 있고. 후작가 때를 생각하면 제국도 일을 벌이고 있었지.'

거기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공주 쪽에 한 발 깊숙이 걸쳐 놓은 상태였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상점 거리를 지나갔다.

상점 거리에는 여러 가게들이 있었다.

일상용품과 수업에 쓰는 물품을 파는 상점, 그리고 대장간과 연계된 무기점도 있었고, 식료품을 파는 상점과 음식점도 있었다.

또한, 입학식이 끝난 뒤로 파리만 날리고 있는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다.

나는 거리 안쪽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 들어갔다.

평범한 기념품 가게였다.

아기자기한 물건들이 선반과 벽에 진열된 가게 안에 가게와 어울리지 않는 수염이 덥수룩한 주인이 가게 한쪽에서 졸고 있었다.

나는 졸고 있는 남자를 알고 있었다.

죽기 전에 이 집을 찾아왔을 때 두 번째로 나를 막던 남자였다.

'정말 졸고 있잖아?'

저번에는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는데, 지금은 진짜로 졸고 있었다.

상황에 따른 연기를 정말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긴장이 풀어져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도움이 되는 상황이었다.

나는 기감을 높여 건물 안을 쭉 훑었다.

1층에는 졸고 있는 저 남자밖에 없었고, 2층에는 두 명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2층에 있는 사람 중 하나는 피아르의 스승이라는 그 남자의 마나가 확실했다.

나는 이리저리 물건을 살피며 졸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나는 졸고 있는 남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 손님이 오셨……?"

그는 깜짝 놀라 눈을 떴지만, 그 눈은 금방 감기고 말았다.

어깨를 치는 동안 마나를 헝클어 놓았고, 마지막은 마나와 함께 목 뒤를 깊게 눌러 그를 기절시켰기 때문이다.

나는 기절한 그를 벽에 기대어 놓았다.

몸속에 마나를 심어 놓았으니 다른 사람이 쉽게 깨우긴 어려울 터였다.

괜한 양심 때문에 그를 살려 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그도 죽여야겠지만, 밖의 사람들이 지나가는 동안에 살인을 벌이기는 힘들었다.

나는 다시 문 쪽으로 다가가 조용히 가게 문을 닫았다.

아직 2층에서는 특별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고.

나는 바로 2층을 향해 움직였다.

* * *

저번 삶에서 한바탕 싸웠던 1층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복도를 지나 바로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슬슬 2층에 있는 사람들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게 분명했다.

나는 마나를 가득 끌어올렸다.

마나는 내 몸을 더 빠르고 강하게 만들어 주었고, 남은 마나는 단검으로 흘러 들어가 붉은 검기가 단검에서 치솟았다.

나는 몸속에 가득 찬 힘을 느끼며 2층 방문을 걷어찼다.

벌컥!

문이 잠기지 않아 문은 부서질 듯이 열렸다.

나는 방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한 명은 1층에서 싸웠었던 마지막 한 사람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피아르의 스승이라는 남자였다.

두 사람 다 갑자기 들어온 나를 보고 놀란 눈치였지만, 이번에는 두 사람 다 내가 누구인지 묻지 않았다.

1층에서 싸웠을 때는 석궁을 들었던 남자가 이번에는 검을 들고 나에게 달려왔다.

그리고 스승이라던 자는 나를 향해 두 손을 펼쳤다.

뭐지?

뜻밖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는 우선 달려오는 남자를 처리할 생각에 그를 향해 단검을 휘둘렀다.

남자가 휘두른 검은 무척이나 질 좋아 보이는 검이었지만, 검기를 두른 검을 버텨 낼 수는 없었다.

나는 검과 함께 상대의 몸을 잘라 버릴 생각이었는데.

덜컥.

'마나가 멈췄다?'

몸속에 흐르던 마나도, 검 위로 피어오르던 붉은 검기도 갑자기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몸속의 마나가 굳어져 버린 것 같았다.

몸속에 충만하던 힘이 사라지고, 강력한 마나의 힘 대신 육체의 힘만 느껴졌다.

나는 마주 휘두르던 검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덜컥 멈춘 것 같은 움직임에 달려오던 남자가 이를 보이게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푹!

"이런, 누구인지 확인도 못 했는데."

스승, 루이는 난감한 얼굴로 팔을 내렸다.

"뭐, 이렇게 갑자기 공격당하면 어쩔 수 없으니까. 아무래도 이번 일은 완전히 꼬인 것 같은데 우선 자리를 옮겨야 하나?"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던 루이는 검을 휘두른 채로 멈춰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왜 그러고 있지? 아직 다 안 죽은 건가?"

바로 대답이 들려왔지만, 대답을 한 사람은 검을 휘두른 그가 아니라 나였다.

"아뇨. 이미 죽었습니다."

나는 목에 박힌 단검을 뽑았고, 나를 감싸 안았던 남자는 피를 뿜으며 아래로 허물어졌다.

"어떻게? 마나를 멈췄는데?"

과연, 그의 능력이었나.

목걸이를 이용해 사람을 터트리는 남자였으니, 이런 능력도 충분히 가질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능력인데…….'

몸속의 마나를 멈추다니.

상속 능력도, 기사의 검도, 신관의 치료술도 모두 마나로 발현되는 힘이었다. 그런 마나를 멈추게 하다니.

제대로 쓴다면 귀족이나 기사들에게 실로 치명적인 능력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능력에 제한이 없을 리가 없으니.

놀란 눈으로 나를 보는 그의 얼굴은 땀으로 가득 차 있었다.

피아르와 미리사에게 마나를 보냈을 때는 괜찮아 보였는데, 목걸이 때문이었을까?

그가 손을 내린 뒤에는 다시 마나가 제대로 움직였다.

나는 검기가 제대로 흘러나오는 것을 확인한 뒤에 그를 향해 걸어갔다.

"마나가 없다고 지면 그동안의 고생이 아깝지."

마나 없이도 기사와의 싸움을 충분히 이어 가도록 그동안 훈련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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